향신료를향한탐욕,대항해시대와세계화를열다
향신료전쟁은세계사에서매우중요한3가지변곡점을낳았는데그첫번째는바로세계화의길을열었다는것이다.17세기당시유럽인들은향신료의산지에대해구체적으로아는바가거의없었다.후추와시나몬이인도에서온다는건알았지만정향과육두구는아시아어딘가로짐작할따름이었다.안다고해도구할길이막막했다.육로는길이험하고재난과강도를만날위험이컸기때문이다.성공도,안전도보장할수없었다.하지만실크로드를통해들어온향신료는부르는게값일정도로최고의‘하이리스크하이리턴’사업품목이었다.작은가능성에도기꺼이투자할상인과귀족들,도전을마다하지않는탐험가들,생계유지를위해일거리를찾던뱃사람들은이를놓칠수없었다.몇년이걸릴지,도중에무슨일이벌어질지,그끝에무엇이기다리고있을지전혀알수없는항해에기꺼이나섰다.(120쪽)
아프리카남단희망봉까지진출한바르톨로메우디아스,아메리카대륙을발견한크리스토퍼콜럼버스,인도항로를개척한바스쿠다가마,태평양을횡단해최초로세계일주에성공한페르디난드마젤란,두번째로세계일주에성공한해적영웅프랜시스드레이크,육로를통해당시동서무역의요충지였던말레이반도믈라카까지다녀온랠프피치,얼음바다를헤치고북방항로를개척한헨리허드슨등위대한탐험가들의공통된목적은하나였다.정향과육두구의산지로알려진스파이스제도를찾는것이었다.하지만스파이스제도는실재하는지조차확신할수없는신비의땅이었고,‘불쾌하고해로운공기로가득찬’섬에‘방패같은얼굴과말꼬리같은머리카락’을가진식인종들이살고있다는뜬소문만무성했다.(37쪽)
15세기말,향신료가막을연대항해시대는이후수백년동안이어졌다.항해기간은평균약3년이었고영영돌아오지못한선단도부지기수였다.많은이가폭풍우에휩쓸려수장되었고,먹을것이떨어져굶어죽었으며괴혈병과이질,풍토병과말라리아등에걸려죽었다.미지의육지에닿았다가그곳원주민들과마찰이일어나목숨을잃기도했다.북방항로를개척하겠다고북극으로향한사람들은얼음에갇혀얼어죽었다.(192쪽)《향신료전쟁》은그럼에도불구하고결코포기하지않았던탐험가들의위험천만한여정을생생하게그린다.덕분에독자들은그들이보여준불굴의의지와용기에감탄하게된다.
대항해시대의영웅들은전세계를바닷길로이어진단일무대로만들었다.또다른쾌거는미지의영역이었던스파이스제도의정체를밝힌것이다.이곳을선점한장본인은포르투갈이었다.16세기초,포르투갈은믈라카를점령하고전초기지로삼아마침내스파이스제도를찾아냈다.그곳은말레이제도에속한말루쿠제도와10개의작은섬으로이루어진반다제도였다.포르투갈은정향과육두구무역을독점하기위해스파이스제도의위치와항로를발설하는자를사형에처할정도로기밀유지에힘썼다.그정도로정보가공유되지않으니유럽각국은자기만의항로를개척하기위해숱한실패와난관에도도전을멈추지않았다.그결과네덜란드와영국이포르투갈의뒤를이어말루쿠제도에발을디뎠다.
세계최초의주식회사,향신료무역에뛰어들다
향신료전쟁이불러온세계사의두번째변곡점은바로주식회사의탄생이다.동인도회사의설립은글로벌경제사에대변혁을일으켰다.16세기말,영국에서는정향,육두구,후추등향신료수요가커졌다.하지만말루쿠제도를차지한포르투갈상인들이무역을독점하며떼돈을버는모습을속절없이지켜봐야만했다.1600년,런던의상인과모험가들은보다효과적인항로개척을위해동인도회사를설립하고동인도제도로선단을보내기로했다.영국역사상최고의군주로꼽히는엘리자베스1세도그들을지원했다.무역상제임스랭커스터가이끄는선단은자바해의반텐에도착해상관(외국인이경영하는대규모상점)을열고주재원을두는등외교적성과도거두었지만무엇보다5척의배에가득향신료를싣고돌아왔다.영국동인도회사는항해가끝나면벌어들인돈을투자금에따라배당하고정산을끝내는일종의합자회사형태였다.향신료판매로거둔어마어마한수익금은투자자들에게분배되었다.(102쪽)
영국동인도회사의대성공에큰자극을받은네덜란드도1602년에동인도회사를설립했다.당시네덜란드는스페인으로부터독립한후다양한사업으로큰부를축적하고있었다.그래서막강한자금력,우수한조선술과항해술을바탕으로향신료사업에뛰어들었다.이때네덜란드상인들은투자자들을모집하면서지분을증명하는문서를나눠주었는데이것이바로오늘날주식의효시다.세계최초의주식회사에투자한것은상인과귀족,부자들만이아니었다.소액투자자도많았는데심지어주인을따라투자한하녀도있을정도였다.(68쪽)
영국과네덜란드에이어프랑스,덴마크,스웨덴등유럽각국은앞다퉈동인도회사를만들었다.이기업들은아시아지역에서상대를몰아내고자신의세력을넓히기위해치열하게경쟁했다.그중에서단연두각을나타낸것은영국과네덜란드의동인도회사였다.하지만두기업의명암은운영의유연성과향신료전쟁의승패에따라극명하게갈렸다.영국의동인도회사는1657년에합자회사형태를버리고주식회사로변모했다.엄청난투자금이들어오자회사의역량은크게올라갔고향신료뿐아니라비단,면직물,화약의원료인초석,차,아편등사업품목과시장을다각화하여‘해가지지않는나라’대영제국의기틀을마련했다.(243쪽)
자본주의경제에서기업은생산과판매를독점해이익을극대화하려고한다.하지만이전략은위험하다.경쟁에서살아남으려는자는내구력과난관을극복할힘을키우지만독점자는그런노력을기울이지않기때문이다.그결과내외부적으로취약해지기십상이다.네덜란드동인도회사가그랬다.한때인류역사상가장가치가높은기업으로성장했던네덜란드동인도회사는변화보다안주를택했다.그로인해거대한조직에차츰내부적균열이생겼고부패,비능률,나태가만연해졌다.1800년,네덜란드동인도회사는결국파산을선언한다.(250쪽)반면영국은세력이약해진네덜란드령식민지를공격해자국의식민지로편입했다.1809년영국은말루쿠제도와반다제도에서네덜란드를몰아내고향신료전쟁의최종승자가되었다.
영국과네덜란드,양국동인도회사의활약은근대금융사에새로운장을여는계기가되었다.하지만그과정이마냥긍정적이지만은않았다.향신료를차지하기위한동인도회사의아시아진출은누군가에게는침략이었기때문이다.
제국주의와일제강점기의기원에향신료전쟁이있었다
1980년대초,건설회사에서근무하던저자는스리랑카지사로발령을받았다.스리랑카는1948년에영국의식민통치에서벗어난신생독립국이었는데,알고보니16세기초부터440여년동안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의식민지배를차례로받았다.저자는향신료의역사에대해공부하면서비로소서구열강들이이먼나라까지몰려와식민지를건설한이유를알게되었다.(5쪽)향신료전쟁이불러온세계사의세번째변곡점은제국주의의시작이다.17세기유럽인들의향신료사랑은아시아국가들의식민지배라는안타까운결과로이어졌다.당시유럽강국들의항로개척은식민지경쟁을예고하는것이나다름없었다.이들은각각의개척지에서자국의영향력을높이기위해수단과방법을가리지않았는데식민지화와강압적통제가대표적이었다.스파이스제도를찾기위해포르투갈이전진기지로삼았던말레이반도의믈라카는원래수많은나라에서온상인들이평화롭게교역하던곳이었다.하지만포르투갈이무력을앞세워침공한이후평화롭던경제활동은중단되었고무려4세기이상식민지가되어야했다.(34쪽)
동인도회사의주목적은무역이었지만실제로는회사영토내에서사법,외교,군사활동의권리를가지고식민지경영에집중했다.사실상총독부의역할을한것이다.이들은이익을챙기는데혈안이되어약탈과학살도서슴지않았다.향신료전쟁은인간의끝없는탐욕과흉포를여실히보여준다.대표적인예가네덜란드동인도회사의총독을두번이나역임한얀쿤이다.그는인도네시아를식민통치하는데기초를다진리더로추앙받지만말루쿠와반다원주민입장에서보면침략자이자약탈자에불과하다.얀쿤이이끄는네덜란드군대는수백명의일본사무라이용병과함께아이섬,런섬,론토르섬,암본등에서학살을자행했는데반다제도전체인구1만5000명중1000여명만살아남았을정도로무자비했다.심지어최초의영국령지역이었던런섬에서모든육두구나무를뿌리째뽑아섬전체를황폐화시키고다시는재생불가능하게만들었다.(209쪽)그래서네덜란드내에서도얀쿤이라는인물을두고국가적영웅과학살자라는상반된평가가팽팽하다.(229쪽)
세계사에서인종말살(제노사이드)의원인은대개정치적이해관계나종교적충돌이다.하지만얀쿤의학살은향신료인육두구의독점거래를위한것이었다.저자는얀쿤의이야기를쓰다가거의3주동안집필을멈추어야했을정도로큰충격을받았다.(228쪽)그럼에도불구하고얀쿤의이야기를적나라하게펼쳐보인것은이를통해우리가추구해야할가치를고민해볼수있기때문이다.무역을빌미로동남아시아에들어간유럽열강이결국식민지화하는과정은우리나라의일제강점기를떠오르게만든다.1908년,일본은조선과의무역을독점하기위해동양척식주식회사를설립했는데이는동인도회사를벤치마킹한것이다.우리나라의가슴아픈역사는그기원을거슬러올라가면향신료전쟁이있었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향신료전쟁》은제국주의라는인류의과오와그로인한상처가결코반복되어서는안된다는묵직한메시지를독자들에게던지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