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들의 모국어

술꾼들의 모국어

$16.80
Description
“‘안주 일체’라는 손글씨는 이 땅의 주정뱅이들에게
그 얼마나 간결한 진리의 메뉴였던가”

소설가 권여선이 쓰는 안주 일체, 인생 일체
먹고 마시는 이야기에서 느껴버리는 모국어의 힘
유려한 문장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며 한국문학이 가장 신뢰하는 이름이 된 작가 권여선. 2023년 제8회 김승옥문학상, 2021년 제15회 김유정문학상, 2018년 제19회 이효석문학상, 2016년 제47회 동인문학상, 2015년 제18회 동리문학상, 2012년 제44회 한국일보문학상, 2008년 제32회 이상문학상, 2007년 제15회 오영수문학상 등 유수의 상을 거느림은 물론 동료 소설가가 뽑은 올해의 소설 등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며 사반세기가 넘게 글쓰기에 매진해온 작가. 특히 술과 인생을 애틋하게 이야기한 《안녕 주정뱅이》(창비, 2016)부터 최근작 《각각의 계절》(문학동네, 2023)까지“서두르지도 앞지르지도 않고 이 삶에 가장 알맞은 소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권여선 독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 삶에 가장 알맞은 소설을 아는 작가’가 2018년 출간한 《오늘 뭐 먹지?》는 저자의 처음이자 유일한 산문집이다. 술과 안주, 음식 등을 특유의 입담으로 풀어쓴 이 책은 많은 독자의 ‘맛깔나는 인생 산문’으로 자리매김했다. 후속작을 기다려온 독자의 성원에 힘입어 출간 6주년 기념 특별 개정판을 선보인다. 정겨운 그림으로 사랑받아온 치커리 화가와 협업해 본문 삽화를 전면 교체하고, 지금껏 작품세계를 들여다본 심도 깊은 작가 인터뷰를 수록했다. ‘주류(酒類) 문학의 위엄’이라는 상찬을 받은 바 있는 저자가 작품에서는 미처 다 풀어내지 못했던 먹고 마시는 이야기들을 통해 권여선만이 쓸 수 있는 산문의 풍요로움을 다시금 일깨운다.

인터뷰나 낭독회 등에서 틈만 나면 술 얘기를 하고 다녔더니 주변 지인들이 작가가 자꾸 그런 이미지로만 굳어지면 좋을 게 없다고 충고했다. 나도 정신을 차리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앞으로 당분간은 술이 한 방울도 안 나오는 소설을 쓰겠다고 술김에 다짐했다. 그래서 그다음 소설을 쓰면서 고생을 바가지로 했다.
A와 B가 만나 자연스럽게 술집에 들어가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내용을 쓰다 화들짝 놀라 삭제 키를 누르거나 통째로 들어내는 일이 잦다보니 글의 흐름이 끊기고 진도가 안 나가고 슬럼프에 빠졌다. 모국어를 잃은 작가의 심정이 이럴까 싶을 정도였다. 다시 나의 모국어인 술국어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느꼈지만 허벅지를 찌르며 참았다. 그 결과 주인공이 술집에 들어가긴 했으나 밥만 먹고 나오는 장면으로 소설을 마감하는 데 가까스로 성공했다. 그러자니 얼마나 복장이 터지고 술 얘기가 쓰고 싶었겠는가.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다 산문으로나마 음식 얘기를 쓸 수 있게 되니 마음이 아주 환해졌다. 빛을 되찾는다는 ‘광복(光復)’의 감격을 알겠다. 드디어 대놓고 술 얘기를 마음껏 할 기회를 잡았구나 싶다. “음식 관련 산문인 줄 알았는데 웬 술?”이란 반문은 내게 진정 무의미하다._‘들어가는 말’에서

책에서는 계절에 어울리는 다양한 음식들이 총 5부, 20개 장에 걸쳐 소개된다. 대학 시절 처음 순대를 먹은 후 미각의 신세계를 경험하고 입맛을 넓혀가기 시작한 저자에게(‘라일락과 순대’) 먹는 행위는 하루를 세세히 구분 짓게 하며, 음식은 ‘위기와 갈등을 만들기’도 하고 ‘화해와 위안을 주기’도 하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매운 음식에 대한 애정(‘땡초의 계절’)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고, 단식 이후 맛보는 ‘간기’는 부활의 음식에 다름 아니다(‘젓갈과 죽의 마리아주’). 창작촌 작가들과의 만남에서도(‘급식의 온도’), 동네 중국집 독자와의 만남에서도(‘졌다, 간짜장에게’) 음식은 새로운 관계 맺음에서 제대로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이 밖에도 제철 재료를 고르고, 공들여 손질을 하고, 조리하고 먹는 과정까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야말로 최고의 음식을 먹었을 때의 만족감을, 쾌감에 가까운 모국어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이 산문집은 권여선이 소설에서는 미처 다 풀어내지 못한, 그리고 앞으로도 하지 못할 그야말로 ‘혀의 언어’로 차려낸 진수성찬이다.

음식은 위기와 갈등을 만들기도 하고 화해와 위안을 주기도 한다. 한 식구(食口)란 음식을 같이 먹는 입들이니, 함께 살기 위해서는 사랑이나 열정도 중요하지만, 국의 간이나 김치의 맛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식구만 그런 게 아니다. 친구, 선후배, 동료, 친척 등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다. 나는 사람들을 가장 소박한 기쁨으로 결합시키는 요소가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을 놓고 둘러앉았을 때의 잔잔한 흥분과 쾌감, 서로 먹기를 권하는 몸짓을 할 때의 활기찬 연대감, 음식을 맛보고 서로 눈이 마주쳤을 때의 무한한 희열. 나는 그보다 아름다운 광경과 그보다 따뜻한 공감은 상상할 수 없다._본문에서

저자

권여선

저자:권여선
1965년경북안동에서태어났다.서울대학교국문과와동대학원을졸업했다.1996년장편소설《푸르른틈새》로제2회상상문학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장편소설《레가토》《토우의집》《레몬》,소설집《처녀치마》《분홍리본의시절》《내정원의붉은열매》《비자나무숲》《안녕주정뱅이》《아직멀었다는말》《각각의계절》이있다.이상문학상,동인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동리문학상,김승옥문학상,김유정문학상,이효석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들어가는말_소설가의미식법

1부일취월장의봄
라일락과순대
만두다운만두
김밥은착하다
꽃중의꽃부침개꽃
젓갈과죽의마리아주

2부그렇게살벌하게매력적인걸음으로여름은온다
면의면면
물회,그것도특!
땡초의계절
여름나기밑반찬열전

3부끝없이달고달고다디단가을의무지개
냄비국수와고로케
급식의온도
가을무삼단케이크

4부목에서손이나오는겨울첫맛
그국물그감자탕
솔푸드꼬막조림
어묵한꼬치의든든
집밥의시대

5부나의별미별식
유서깊은오징어튀김사
삐득삐득고등어
명색이콩가루의명절상
졌다,간짜장에게

인터뷰_그의소설이맛있는이유

출판사 서평

인터뷰나낭독회등에서틈만나면술얘기를하고다녔더니주변지인들이작가가자꾸그런이미지로만굳어지면좋을게없다고충고했다.나도정신을차리고이래서는안되겠다싶어앞으로당분간은술이한방울도안나오는소설을쓰겠다고술김에다짐했다.그래서그다음소설을쓰면서고생을바가지로했다.

A와B가만나자연스럽게술집에들어가술을마시며대화하는내용을쓰다화들짝놀라삭제키를누르거나통째로들어내는일이잦다보니글의흐름이끊기고진도가안나가고슬럼프에빠졌다.모국어를잃은작가의심정이이럴까싶을정도였다.다시나의모국어인술국어로돌아가고싶은유혹을느꼈지만허벅지를찌르며참았다.그결과주인공이술집에들어가긴했으나밥만먹고나오는장면으로소설을마감하는데가까스로성공했다.그러자니얼마나복장이터지고술얘기가쓰고싶었겠는가.

호시탐탐기회만엿보다산문으로나마음식얘기를쓸수있게되니마음이아주환해졌다.빛을되찾는다는‘광복(光復)’의감격을알겠다.드디어대놓고술얘기를마음껏할기회를잡았구나싶다.“음식관련산문인줄알았는데웬술?”이란반문은내게진정무의미하다._‘들어가는말’에서

책에서는계절에어울리는다양한음식들이총5부,20개장에걸쳐소개된다.대학시절처음순대를먹은후미각의신세계를경험하고입맛을넓혀가기시작한저자에게(‘라일락과순대’)먹는행위는하루를세세히구분짓게하며,음식은‘위기와갈등을만들기’도하고‘화해와위안을주기’도하는중요한매개체이다.매운음식에대한애정(‘땡초의계절’)은운명과도같은것이고,단식이후맛보는‘간기’는부활의음식에다름아니다(‘젓갈과죽의마리아주’).창작촌작가들과의만남에서도(‘급식의온도’),동네중국집독자와의만남에서도(‘졌다,간짜장에게’)음식은새로운관계맺음에서제대로중요한역할을해낸다.이밖에도제철재료를고르고,공들여손질을하고,조리하고먹는과정까지의이야기를듣다보면그야말로최고의음식을먹었을때의만족감을,쾌감에가까운모국어의힘을느낄수있다.이산문집은권여선이소설에서는미처다풀어내지못한,그리고앞으로도하지못할그야말로‘혀의언어’로차려낸진수성찬이다.

음식은위기와갈등을만들기도하고화해와위안을주기도한다.한식구(食口)란음식을같이먹는입들이니,함께살기위해서는사랑이나열정도중요하지만,국의간이나김치의맛도그에못지않게중요하다.식구만그런게아니다.친구,선후배,동료,친척등모든인간관계가그렇다.나는사람들을가장소박한기쁨으로결합시키는요소가음식이라고생각한다.맛있는음식을놓고둘러앉았을때의잔잔한흥분과쾌감,서로먹기를권하는몸짓을할때의활기찬연대감,음식을맛보고서로눈이마주쳤을때의무한한희열.나는그보다아름다운광경과그보다따뜻한공감은상상할수없다._본문에서

작가의말

A와B가만나자연스럽게술집에들어가술을마시며대화하는내용을쓰다화들짝놀라삭제키를누르거나통째로들어내는일이잦다보니글의흐름이끊기고진도가안나가고슬럼프에빠졌다.모국어를잃은작가의심정이이럴까싶을정도였다.다시나의모국어인술국어로돌아가고싶은유혹을느꼈지만허벅지를찌르며참았다.그결과주인공이술집에들어가긴했으나밥만먹고나오는장면으로소설을마감하는데가까스로성공했다.그러자니얼마나복장이터지고술얘기가쓰고싶었겠는가.

호시탐탐기회만엿보다산문으로나마음식얘기를쓸수있게되니마음이아주환해졌다.빛을되찾는다는‘광복光復’의감격을알겠다.드디어대놓고술얘기를마음껏할기회를잡았구나싶다.
(…)지인들은벌써내가소설에서못푼한을산문에서주야장천풀어내겠구나걱정들이태산이지만마음껏걱정하라고말해주고싶다.무엇을걱정하든그이상을쓰는게내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