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저희가 본 것을 같이 봐주시고, 함께 괴로워해주십시오”
―장강명(‘기획의 말’에서)
바로 지금, 한국의 교육 실태를 조망하는
소설가 14인의 첨예하고 애틋한 시선
대한민국 교육이 병들어가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킬러 문항 배제’ 논쟁은 현행 입시 제도를 둘러싼 각종 문제를 다시 한번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으로 공교육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면서, 교육 주체들의 불만과 성토가 일거에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쟁점들의 배경에는 승자 독식 사회를 고스란히 반영한 한국의 교육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학교와 학원, 가정 내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불화와 스트레스는 이제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모두의 문젯거리가 되었다.
《킬러 문항 킬러 킬러》는 2023년 8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작가 10인이 손잡고 〈한겨레〉에 연재한 소설과 이러한 취지에 공감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탠 ‘교육 소설 앤솔러지’이다. 첨예한 시선을 지닌 소설가들이 입시 경쟁과 학교폭력, 사교육 열풍, 부모와 자녀 간의 진로 갈등,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 등 한국 교육 현장의 이슈들을 폭넓게 조망한다. 그러므로 《킬러 문항 킬러 킬러》는 문학작품을 통해 오늘날의 교육 실태를 촘촘히 톺아볼 수 있는 계기이자 우리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의 실마리가 되어줄 것이다.
‘저희의 목표는 독자님들이 무언가를 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도로 정리해본다. 그 ‘무언가’가 뭐냐, 하고 물으신다면 아주 정확하게 꼬집어서 답하기는 어렵다.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 선생님들의 인간성을 억압하고 있는, 비인간적인 무언가다. 수십 년 동안 보아왔던 것 아니냐, 하고 또 물으신다면 2020년대의 모습은 또 다르다고 대답하고 싶다. _장강명, ‘기획의 말’에서
“규정을 다 지키며 사는 사람은 경쟁에서 점점 밀려나
나중에는 아예 게임에 끼질 못하게 돼”
모두를 피해자로 만드는 구조의 부조리함
《킬러 문항 킬러 킬러》의 첫 소설인 이기호의 〈학교를 사랑합니다: 자퇴 전날〉에서 성적이 좋지 않은 고등학생 ‘나’는 부모로부터 자퇴와 검정고시를 권유받는다. 검정고시 만점이 내신 2등급으로 반영되므로 자퇴가 입시에 더 유리하리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자 ‘나’를 대신하여 반대해주리라 믿었던 학교 측에서는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라며 자퇴를 적극 옹호한다. 학교가 학생의 대입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제 역할 수행마저 포기하는 교육 현실이 기이하다.
장강명의 〈킬러 문항 킬러 킬러〉에서는 수능 시험일 아침 한 소년이 부모로부터 수백만 원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집중력 강화제’를 건네받는다. 학생 변별을 위해 출제되던 킬러 문항이 수능에서 배제됨으로써 상대적으로 쉬운 문제를 빠르게 푸는 방식이 성공 전략으로 떠오른 탓이다. 긴장하면 덤벙대는 자식이 실수라도 할까 봐 불안한 부모와 반칙을 저지르면서까지 친구들과 경쟁하고 싶지 않은 소년의 대립은 끝내 생각지도 못한 반전으로 이어진다.
정진영의 〈덜 싸우고 덜 상처받는 전략〉은 뛰어난 작곡가가 되고 싶다는 아들에게 엄마가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진학을 권하는 이야기이다. 음악을 하고 싶다면 명문대에 꼭 들어가야 한다는, 그것이 음악으로 실패하더라도 든든한 보험이 되어주리라는 엄마의 말에는 일견 납득되는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작곡을 배우고 싶을 뿐” “내가 원하는 건 두리고와 서울대학교가 아냐”라는 아들의 항변에서 우리는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마음이 실제로는 일방적인 억압으로 작용할 뿐임을 여실히 볼 수 있다.
자녀의 성공적인 입시를 위해서라면 부정행위나 겁박마저 불사하는 부모들의 모습은 기실 누구보다 자식의 안위와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부모들의 심정을 과연 비난만 할 수 있을까. 《킬러 문항 킬러 킬러》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자녀에 대한 애정이 깊을수록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부모의 모순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실패자가 되지 않으려면 부조리한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그로 인해 모두가 피해자일 뿐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몇십 년 뒤에 이 문제를 바라볼
후대의 눈에는 정답이 선명하게 보일까?”
오늘날의 교육 현실을 소설로 쓰다
이서수의 〈구슬에 비치는〉에서는 과도한 학습에 지친 아이와 상담을 나눈 담임선생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 이야기가 나온다. 그 영상 속에서 담임은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으니까 무조건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 아이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른들이 이상한 짓을 하니까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라며 상기된 얼굴로 항변한다. 학생의 괴로움을 지켜보면서도 이를 도울 수 없는 교사의 무기력한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다.
주원규의 〈한 바퀴만 더〉는 엄마 ‘윤’이 학교폭력 피해자인 아들을 시골의 대안학교로 전학시켰다가 다시 대치동으로 돌아와서 겪게 되는 곤란을 다룬다. 소수 정예를 내세우는 학원들이 하나같이 외국어고등학교나 과학고등학교 출신만을 받아주기에 아들이 다닐 수 있는 학원이 한 곳도 없게 된 것이다. 엄마 때문에 자신은 ‘루저’가 될 거라는 아들의 비난에 ‘윤’은 혼란과 자책감을 느끼며 대치동 학원가를 돌고 또 돈다.
문경민의 〈지나간 일〉에서도 학교폭력은 당사자인 자녀뿐 아니라 부모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사건 당시 가해자 학생의 엄마와 피해자 학생의 엄마는 제 자식을 감싸느라 서로 날선 감정을 주고받았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매일 기도하는 심정으로 지낸다는 말에 “우리 애도 그쪽 애 때문에 힘들었어요”라고 응수하며 각자의 어려움만 토로한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우연히 다시 마주친 두 사람은 “무엇이라 명명할 수 없는 뒤엉킨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느낀다.
한편 박서련의 〈다른 아이〉는 영어 유치원에서 남자아이끼리 커플로 소꿉놀이를 하는 바람에 벌어진 소동을 다룬다. 외국인 교사가 뭘 모르고 저지른 일이라 여긴 엄마 ‘나’는 이에 항변하러 ‘마이클’을 찾아간다. “아직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은 아동들에게 그런 식으로 성소수자 역할을 맡기는 건 무책임하다고” 따져 묻는다. 그러자 마이클은 고개를 갸웃하며 알 수 없는 웃음만 지어 보인다. “난생처음 듣는 외국어처럼” 생경하게만 느껴지는 질문을 되돌려준다.
이렇듯 현재 한국문학 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소설가 14인이 써 내려간 이야기는 저마다 날카로운 시각과 뜨거운 쟁점을 내포하고 있다. 생동감 넘치는 인물과 구성으로 교육 현실의 풍경들을 핍진하게 묘사한다. 그렇다면 입시 제도가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일까? 주입식 교육과 시험만능주의 때문일까? 학벌을 따지는 문화 탓일까? 부모들의 욕망 때문일까? 정권에 따라 갈팡질팡하는 교육 정책과 이를 악용하는 사교육 탓은 아닐까? 정답은 알 수 없지만 이제 우리는 이러한 논점들을 외면하지 말고 하나하나 곡진히 들여다봐야 한다. “혼란스러운 질문들을 마주하는 것.” 《킬러 문항 킬러 킬러》는 바로 그러한 시선에, 우리가 함께 찾아내야 할 교육의 미래에 긴요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장강명(‘기획의 말’에서)
바로 지금, 한국의 교육 실태를 조망하는
소설가 14인의 첨예하고 애틋한 시선
대한민국 교육이 병들어가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킬러 문항 배제’ 논쟁은 현행 입시 제도를 둘러싼 각종 문제를 다시 한번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으로 공교육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면서, 교육 주체들의 불만과 성토가 일거에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쟁점들의 배경에는 승자 독식 사회를 고스란히 반영한 한국의 교육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학교와 학원, 가정 내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불화와 스트레스는 이제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모두의 문젯거리가 되었다.
《킬러 문항 킬러 킬러》는 2023년 8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작가 10인이 손잡고 〈한겨레〉에 연재한 소설과 이러한 취지에 공감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탠 ‘교육 소설 앤솔러지’이다. 첨예한 시선을 지닌 소설가들이 입시 경쟁과 학교폭력, 사교육 열풍, 부모와 자녀 간의 진로 갈등,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 등 한국 교육 현장의 이슈들을 폭넓게 조망한다. 그러므로 《킬러 문항 킬러 킬러》는 문학작품을 통해 오늘날의 교육 실태를 촘촘히 톺아볼 수 있는 계기이자 우리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의 실마리가 되어줄 것이다.
‘저희의 목표는 독자님들이 무언가를 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도로 정리해본다. 그 ‘무언가’가 뭐냐, 하고 물으신다면 아주 정확하게 꼬집어서 답하기는 어렵다.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 선생님들의 인간성을 억압하고 있는, 비인간적인 무언가다. 수십 년 동안 보아왔던 것 아니냐, 하고 또 물으신다면 2020년대의 모습은 또 다르다고 대답하고 싶다. _장강명, ‘기획의 말’에서
“규정을 다 지키며 사는 사람은 경쟁에서 점점 밀려나
나중에는 아예 게임에 끼질 못하게 돼”
모두를 피해자로 만드는 구조의 부조리함
《킬러 문항 킬러 킬러》의 첫 소설인 이기호의 〈학교를 사랑합니다: 자퇴 전날〉에서 성적이 좋지 않은 고등학생 ‘나’는 부모로부터 자퇴와 검정고시를 권유받는다. 검정고시 만점이 내신 2등급으로 반영되므로 자퇴가 입시에 더 유리하리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자 ‘나’를 대신하여 반대해주리라 믿었던 학교 측에서는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라며 자퇴를 적극 옹호한다. 학교가 학생의 대입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제 역할 수행마저 포기하는 교육 현실이 기이하다.
장강명의 〈킬러 문항 킬러 킬러〉에서는 수능 시험일 아침 한 소년이 부모로부터 수백만 원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집중력 강화제’를 건네받는다. 학생 변별을 위해 출제되던 킬러 문항이 수능에서 배제됨으로써 상대적으로 쉬운 문제를 빠르게 푸는 방식이 성공 전략으로 떠오른 탓이다. 긴장하면 덤벙대는 자식이 실수라도 할까 봐 불안한 부모와 반칙을 저지르면서까지 친구들과 경쟁하고 싶지 않은 소년의 대립은 끝내 생각지도 못한 반전으로 이어진다.
정진영의 〈덜 싸우고 덜 상처받는 전략〉은 뛰어난 작곡가가 되고 싶다는 아들에게 엄마가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진학을 권하는 이야기이다. 음악을 하고 싶다면 명문대에 꼭 들어가야 한다는, 그것이 음악으로 실패하더라도 든든한 보험이 되어주리라는 엄마의 말에는 일견 납득되는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작곡을 배우고 싶을 뿐” “내가 원하는 건 두리고와 서울대학교가 아냐”라는 아들의 항변에서 우리는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마음이 실제로는 일방적인 억압으로 작용할 뿐임을 여실히 볼 수 있다.
자녀의 성공적인 입시를 위해서라면 부정행위나 겁박마저 불사하는 부모들의 모습은 기실 누구보다 자식의 안위와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부모들의 심정을 과연 비난만 할 수 있을까. 《킬러 문항 킬러 킬러》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자녀에 대한 애정이 깊을수록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부모의 모순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실패자가 되지 않으려면 부조리한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그로 인해 모두가 피해자일 뿐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몇십 년 뒤에 이 문제를 바라볼
후대의 눈에는 정답이 선명하게 보일까?”
오늘날의 교육 현실을 소설로 쓰다
이서수의 〈구슬에 비치는〉에서는 과도한 학습에 지친 아이와 상담을 나눈 담임선생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 이야기가 나온다. 그 영상 속에서 담임은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으니까 무조건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 아이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른들이 이상한 짓을 하니까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라며 상기된 얼굴로 항변한다. 학생의 괴로움을 지켜보면서도 이를 도울 수 없는 교사의 무기력한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다.
주원규의 〈한 바퀴만 더〉는 엄마 ‘윤’이 학교폭력 피해자인 아들을 시골의 대안학교로 전학시켰다가 다시 대치동으로 돌아와서 겪게 되는 곤란을 다룬다. 소수 정예를 내세우는 학원들이 하나같이 외국어고등학교나 과학고등학교 출신만을 받아주기에 아들이 다닐 수 있는 학원이 한 곳도 없게 된 것이다. 엄마 때문에 자신은 ‘루저’가 될 거라는 아들의 비난에 ‘윤’은 혼란과 자책감을 느끼며 대치동 학원가를 돌고 또 돈다.
문경민의 〈지나간 일〉에서도 학교폭력은 당사자인 자녀뿐 아니라 부모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사건 당시 가해자 학생의 엄마와 피해자 학생의 엄마는 제 자식을 감싸느라 서로 날선 감정을 주고받았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매일 기도하는 심정으로 지낸다는 말에 “우리 애도 그쪽 애 때문에 힘들었어요”라고 응수하며 각자의 어려움만 토로한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우연히 다시 마주친 두 사람은 “무엇이라 명명할 수 없는 뒤엉킨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느낀다.
한편 박서련의 〈다른 아이〉는 영어 유치원에서 남자아이끼리 커플로 소꿉놀이를 하는 바람에 벌어진 소동을 다룬다. 외국인 교사가 뭘 모르고 저지른 일이라 여긴 엄마 ‘나’는 이에 항변하러 ‘마이클’을 찾아간다. “아직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은 아동들에게 그런 식으로 성소수자 역할을 맡기는 건 무책임하다고” 따져 묻는다. 그러자 마이클은 고개를 갸웃하며 알 수 없는 웃음만 지어 보인다. “난생처음 듣는 외국어처럼” 생경하게만 느껴지는 질문을 되돌려준다.
이렇듯 현재 한국문학 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소설가 14인이 써 내려간 이야기는 저마다 날카로운 시각과 뜨거운 쟁점을 내포하고 있다. 생동감 넘치는 인물과 구성으로 교육 현실의 풍경들을 핍진하게 묘사한다. 그렇다면 입시 제도가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일까? 주입식 교육과 시험만능주의 때문일까? 학벌을 따지는 문화 탓일까? 부모들의 욕망 때문일까? 정권에 따라 갈팡질팡하는 교육 정책과 이를 악용하는 사교육 탓은 아닐까? 정답은 알 수 없지만 이제 우리는 이러한 논점들을 외면하지 말고 하나하나 곡진히 들여다봐야 한다. “혼란스러운 질문들을 마주하는 것.” 《킬러 문항 킬러 킬러》는 바로 그러한 시선에, 우리가 함께 찾아내야 할 교육의 미래에 긴요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킬러 문항 킬러 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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