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깊고수관이너른고목같은책이다.나무를통해정치,사회,환경을폭넓게사유하고해결책을제시하려애쓴다.무엇보다나무한그루아래펼쳐진그늘의힘을되새기게한다.”_허태임(《식물분류학자허태임의나의초록목록》저자)
마을을지켜온수백,수천살수호신이
처치곤란애물단지가되기까지
다양한문화권에서예로부터나무는신성과연결되었다.우리나라에서도고대벽화의신단수,고려시대매향의식,고려-조선시대당산나무전통등‘나무신(신목)’을경외하는문화가오랫동안이어졌다.저자는커다란나무가마을을지켜준다는오랜믿음이마냥근거없는이야기가아니라고말한다.새들의집이되는수관,토양침식을막는촘촘한뿌리시스템,희귀동물의은신처가되는나무구멍,기온을낮추는그늘,탄소를저장하는잎사귀…현대과학의관점에서크고오래된나무한그루는그자체로커다란생태계이다.하늘과바다,땅을연결하고곤충과동물을함께살게한다.땔감이모자라겨울을나기어려운시기에도큰나무를베지않았던이유를단순히미신으로만치부할수없는까닭이다.
한때신이었던나무는근대화,산업화이후본격화된도시계획.토건사업에의해‘재료로서의나무’로그위상이크게변화한다.인간에게쓰이기위해,미관과편의를위해지체없이베이고옮겨진다.가만히두면수백~수천년도살던나무는이제30년만되어도‘노후림’으로취급되어처리대상이된다.철새도래지100년숲에건설되는신공항,가혹한환경에서도오래살기로유명하지만개발과무분별한채취로희귀수종이되어절벽끝에서만살게된향나무,‘명품하천’으로거듭나기위해훼손된버드나무수백그루,관광객유치,도로확장을우선시한도시행정기조아래베이는가로수와그로인해고통받는지역민,산을깎고골프장을지어서자연을살리겠다는개발업자와이를용인하는지자체,비전문가의눈대중으로지정되는‘위험수목’과마구잡이벌채등‘지금당장’의손익계산을우선하게된시대의나무는개발자원혹은애물단지의운명을피하기어렵다.이러한개발중심수목행정의결과는법정보호종동식물의멸종위기로,곤충대발생으로,토양온난화와빈번해진산불로,폭염과폭우로,식량공급망의위기로,아직인과관계가명확히규명되지않은각종위험으로드러나고있다.
베인나무를대신해대체서식처를만든다는건불가능한일이다.하나의생물이서식처를선택하는데엔셀수없는변수들이존재하고,인간은그변수를다계산할수없다.공사기간을단축하는데만몰두해있는토목건설업체들에는더더욱불가능한일이다.지금껏환경영향평가를통과하기위해무수한대체서식처가만들어졌지만성공한사례는단한건도없다.(10장〈대구왕버들숲〉중에서)
사라져가는세상의차양
노거수의기쁨과슬픔
우리나라에서법적보호를받는노거수는관리주체에따라‘천연기념물’‘기념물’‘보호수’등으로지정된다.역사,문화적가치,즉인간과의관련성이그평가기준이었는데,최근에는생태,환경적가치만으로도보호대상이되기도한다.그러나‘천연기념물’‘보호수’로지정되어도이권이나민원과관련될때는그가치가손쉽게무시되어베이고방치되는실정이다.이책은‘천연기념물’‘보호수’는물론제도적보호를받지않는노거수를포함한21개지역의수백,수천살고목을마을의당산나무(1부〈나무할아버지나무할머니〉),사람들과특별한사연으로얽힌나무(5부〈사람과나무〉),생육환경(2부〈길에선나무〉,3부〈물이좋은나무〉,4부〈숲에사는나무〉)별로분류해소개한다.
1부〈나무할아버지나무할머니〉에서는수백년간마을을지켜온아름드리나무의지금을소개한다.개발압력으로이식된700살안동은행나무,이식작업을하다용접불꽃에타버린500살부산회화나무,벼락을맞고도살아남아나무가득흰꽃을피우는신령한영암이팝나무,둑건설로마을이수장되는바람에물에잠긴채100여년을산의령느티나무가그주인공이다.마을의수호신으로오랜기간사랑받고,각별한보호를받던나무들이어떤이유로살던자리를떠나고방치되며훼손되었는지각각의사연을들어본다.
이‘터줏대감나무’의귀향첫날인2022년2월28일,뿌리를지탱하던철제틀을해체하는과정에서용접불똥이몸뚱이에옮겨붙었다.소방장비도없어나무는10여분간속수무책으로타들어갔다.‘환영행사’때문에왔던촬영카메라에이장면이담겼고,행사는취소됐다.
이후이나무는죽은것도산것도아닌상태다.이식과정에서뿌리를지나치게많이잘라냈다.굵은줄기까지도몽땅잘라냈다.무게가가벼워야옮기는비용도덜나온다.수목관련책에는수간직경의4배이상넓이의뿌리는남겨야한다고돼있지만,세상법에는얼마나잘라내야하는지기준이없다.그러니돈이법전이고감독관이다.(3장〈부산회화나무〉에서)
2부〈길에선나무〉에서는녹음을만들어기온을낮추고,탄소포집능력으로대기를정화하고,도시를아름답게하기위해조성된가로수들이‘전깃줄에걸려서’‘꽃가루를날려서’‘열매의촉감과향이좋지않아서’‘간판을가려서’‘도로를넓히기위해’‘공항건설을위해서’잘려나간사연을살펴본다.청주플라타너스가로수길과제주시가‘걷고싶은아름다운가로수길’로선정했던구실잣밤나무길이등장하고‘전국에서가장아름다운도로’로선정된비자림로삼나무숲길에서2년간3400그루가베인사연이소개된다.
특히,‘숲가꾸기사업’의허울과딜레마를지적한9장〈제주비자림로삼나무숲길〉은근시안적인수목행정이돌이킬수없는피해로이어지는과정을생생히보여준다.‘크고똑바로자라는좋은나무’를제외한작은나무와풀을‘탈것’이라며제거하고,소방차가잘들어갈수있도록산에도로(임도)를내어산불을예방하겠다는산림청의논리는언뜻그럴듯하게들린다.그러나숲의사정은다르다.사람과장비가숲속을헤집고다니는과정에서축축한부식토가사라지고,나무,이끼,지의류등의식생이파괴된다.그늘진깊은숲이벌목과가지치기로구석구석까지햇볕이들어오는메마른공간이된다.건조해진숲으로불이잘옮겨붙게되고,‘가꿔놓은’임도가그속도를가속화한다.베어낸줄기와가지가바싹말라‘탈것’이된다.물을잔뜩머금은살아있는숲이야말로오히려산불이퍼지는것을막아주고있던것이다.무엇이‘탈것’이고‘가꾸는것’이며‘깨끗한것’인지생각해보게하고,숲을죽여서숲을살린다는것의딜레마를바라보게하는대목이다.이외에도개발업자가수행한엉터리환경영향평가에손쉽게도장을찍어주는환경부와,공사과정에서멸종위기종이발견되어도저감대책을세우면공사를허가하는개발위주의수목행정속에서우리가잃어가는것들을헤아린다.
3부〈물이좋은나무〉에서는습지에서잘자라는나무를소개한다.수리부엉이,담비,수달,삵등희귀야생동식물의‘숨은서식처’로풍부한생물다양성을자랑하는대구왕버들숲과,‘명품하천’으로거듭나기위해잘려나간전주천의버드나무수백그루,혹독한환경에서도오래사는것이특징인향나무가자생지멸종위기에처해동해안절벽끝에매달리게된사연,미군기지의탄약고확장으로섬마을이바다로부터멀어지고생업을잃은이들이모두떠난곳에홀로서있게된600살팽나무의사연이펼쳐진다.
4부〈숲에사는나무〉에서는나무를베고생태균형을깨뜨려곤충대발생을불러일으킨서울은평구봉산의사연,산을깎고골프장을지어자연을살리겠다는녹지사업안을승인한고양시의사례를다룬다.또,온난화와답압현상(사람들이밟아땅이단단해지며황폐해지는현상)으로멸종위기에처한지리산노고단의침엽수와가덕도신공항개발로수장위기에처한100년숲을만난다.
특별한사연으로얽힌사람과나무를소개하는5부에서는배설물과소음문제를해결하기위해백로의서식처인나무를베고나서야‘백로의집을우리가침범한것은아닌지’질문하게된대학생들의이야기,‘우리가심은나무앞에서20년후에다시만나자’는약속을두번에걸쳐지킨1964년광주수피아여고졸업생들의사연,신라가삼국을통일할즈음뿌리를내려한국전쟁중에고사한1200살팽나무,이웃과함께나무내음을맡기위해꼬박6개월에걸쳐궁산의나무지도를만든두사람의이야기가소개된다.
나무가품은수백,수천년의역사와이를거스르는개발관행사이에서심정이복잡해지지만,“숲을지키기위해뭐라도하는시민들”의모임,아이들등하교를함께하다그길에서만나는나무를지키게된엄마들의결의,방치된노거수에마음을뺏겨사는곳으로고이모셔온어느소유주,나무한그루를지키는일과평화운동을연결하며폭력에맞서는이들의목소리가마음을울린다.제도와행정이소외한것을지키고되돌아보는선의에서새로운환경정의의실마리를발견하게된다.
나무를섬세하게읽고
나무와새롭게관계맺는법
노거수의자취를따라전국방방곡곡을방문하다보면,어느새나무읽는법을익히게된다.나무껍질(수피)의모양으로가문비나무와구상나무를구분하게되고,수형(나무의모양새)의균형과수관(나무의상층부)의형상으로나무와주변생태계의건강을가늠하게된다.나무에서돋아난도장지(몹시연약한가지)는생명이움트는과정이아니라죽음의비명이라는것을알게되고,우듬지(나무꼭대기에돋아난가지)의기울기로나무의목마름정도를알게된다.잎사귀가도톰하고반들반들한조엽수림이난대림지역에많이산다는것을이해하며제주의반짝임이윤슬에서만비롯된것이아님을깨닫는다.
각장마다수록된부록도나무에관한생태학적,사회,문화,역사적지식을풍부하게한다.특히,시대마다,지역마다나무의이름이제각기다름을알려주는내용이인상적이다.은행나무의또다른이름으로압각수(鴨脚樹,잎모양이오리발을닮아붙여진이름)와공손수(公孫樹,할머니,할아버지가심어손주대에이르러종자를얻는나무라는의미)를소개하고,특유의수피모양으로우리나라에선버즘나무로불리는플라타너스가외국에서는‘방울나무’로불리고있다는사실을들려준다.변변하지못하다는뜻으로한때개죽나무로불렸던가죽나무의영어이름이천국의나무(treeofheaven)라는사실도새롭다.이름에는대상에대한인식과태도가담기기에,나무이름풀이는나무와의관계를새롭게비추고조정하는통로가된다.또한,책의뒷장에는앞에서만난나무할머니,나무할아버지의모습을오려서간직할수있는도판페이지를실어노거수답사의여운을길게느낄수있도록했다.
독자들이이책을통해“집앞에서있는20~30살된가로수한그루가제명대로살아수백살짜리나무로커갈수있도록”살피는계기를마련했으면한다는저자의바람처럼주변의나무한그루를유심히바라보게하는책이다.나무한그루에서뻗어나가는생명의연쇄가궁금한사람들,나무와관련한현안과쟁점에관심이있는사람들,노거수가사는지역을탐방해보려는사람들에게반갑게다가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