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기분 (한문학자가 빚어낸 한 글자 마음사전)

한자의 기분 (한문학자가 빚어낸 한 글자 마음사전)

$18.00
Description
“살아 있다는 기분·색깔의 기분·얼룩을 닦는 기분·
집에 온 기분·계절의 기분…”

한자의 표정을 빌려
나의 기분을 말해보는 일의 반가움과 기쁨
한자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소재로 매력적인 글을 써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한문학자 최다정의 신작 《한자의 기분》이 출간됐다. 전작 《한자 줍기》에서 한자가 지닌 다정다감함을 풀어냈다면 이번에는 우리의 기분을 말해주는 정확한 언어로서의 한자 120개를 독자들에게 선물한다. 이 한자들은 저자가 자료를 번역하거나 논문을 쓰다가, 한자 자전이나 경서를 읽다가, 여행지의 낯선 간판들을 구경하다가 길어 올린 것이다.
작가는 매일 채집한 글자들을 골라 ‘살아 있는 기분’ ‘색깔의 기분’ ‘계절의 기분’ ‘얼룩을 닦는 기분’ ‘집에 온 기분’ ‘헤아리는 기분’ 등 열두 가지 테마로 분류해 글을 써내려간다. 책의 부제처럼 이 책은 한문학자가 자신의 삶 속에서 빚어낸 한 글자 마음사전이라 할 수 있다.

“기분을 말해줄 정확한 언어를 찾는 것만으로 덜 외로울 수 있다. (…) 여러 방향으로 가지를 뻗은 획들이 반듯한 네모 안에 모여든 채 긴 의미를 함축하는 한자. 한자가 짓는 표정의 기분을 읽어 나가다 보면 내 마음의 궁색한 어느 구석이 소환되었고, 비로소 그늘진 마음의 목소리를 명쾌하게 들어볼 수 있었다.”(10쪽)

저자

최다정

저자:최다정
한문학자.오래된문자를단서삼아옛날을탐구한다.특히한문경서를만주어로번역한청나라시대의문헌을발굴해연구하고있다.고전을공부하며줍는과거의찬란한조각들을문학의언어로나누고싶어산문을쓴다.산문집《한자줍기》《시가된미래에서》《우리같은방》(공저)을펴냈다.현재독일뮌헨대학교에서중국학박사과정을밟고있다.

목차

프롤로그-한자의기분

1부살아있다는기분
名[명]이름
朝[조]아침
尖[첨]뾰족하다
嵌[감]산골짜기
坐[좌]앉다
梢[초]나무의끝
看[간]보다
學[학]배우다
生[생]태어나다
來[래]오다

2부색깔의기분
綠[록]나뭇잎의색
黃[황]땅의색
霜[상]서리
虹[홍]무지개
灰[회]회색
夜[야]밤
素[소]하양
晝[주]낮
墨[묵]먹
軟[연]연하다

3부얼룩을닦는기분
文[문]무늬
蓋[개]덮다
洗[세]씻다
捨[사]버리다
明[명]밝다
痕[흔]흔적
泡[포]거품
眉[미]눈썹
染[염]물들다
點[점]점

4부떠나는기분
散[산]흩어지다
行[행]다니다
睡[수]잠
緖[서]실마리
老[로]늙다
髮[발]머리카락
別[별]나누다
向[향]향하다
海[해]바다
初[초]시작

5부잊고싶은기분
雪[설]눈
[위]한숨쉬다
忘[망]잊다
哭[곡]우는소리
痛[통]아프다
怨[원]원망하다
[염]불꽃
石[석]돌
旬[순]열흘
溶[용]녹다

6부집에온기분
至[지]이르다
物[물]만물
適[적]가다
困[곤]곤란하다
休[휴]쉬다
閉[폐]닫다
鳴[명]울다
果[과]열매
窓[창]창
家[가]집

7부계절의기분
靄[애]안개
雨[우]비
稀[희]성기다
濕[습]물에젖다
鬱[울]울창하다
暴[폭]햇볕에말리다
立[입]멈추어서다
[시]감나무
霰[산]싸라기눈
凝[응]얼어붙다

8부쓰는기분
煙[연]연기
奏[주]연주하다
論[논]논하다
蕩[탕]씻어버리다
獺[달]수달
淸[청]맑다
多[다]많다
責[책]꾸짖다
字[자]문자
銘[명]새기다

9부옮기는기분
層[층]층
運[운]옮기다
人[인]사람
問[문]묻다
愛[애]사랑
晶[정]밝다
古[고]옛날
集[집]모이다
貝[패]조개
毫[호]가느다란털

10부읽는기분
前[전]앞
螢[형]반딧불
回[회]돌다
蝕[식]좀먹다
紙[지]종이
餘[여]남다
習[습]익히다
冊[책]책
印[인]도장
箴[잠]바늘

11부헤아리는기분
一[일]하나
二[이]둘
三[삼]셋
四[사]넷
五[오]다섯
六[육]여섯
七[칠]일곱
八[팔]여덟
九[구]아홉
十[십]열

12부살고싶다는기분
改[개]고치다
甘[감]달다
倦[권]게으르다
相[상]서로
消[소]사라지다
美[미]아름답다
笑[소]웃음
里[리]마을
又[우]또
智[지]지혜

에필로그-기분의뿌리

출판사 서평

“막연하게두려워외면하던대상의뿌리를
자세히보고나면덜두려울수있다고믿는다”

한자의자원(字源)을따라빚어낸한글자마음사전

작가는열두가지기분에따라한글자한자들을사전형식으로섬세하게직조하며마음의근원을알려준다.이를테면1부‘살아있다는기분’에서는‘嵌’(산골짜기감)자를길어올린다.해가막떨어지기시작한여름의초저녁두사람이동네뒷산을산책하러갔다가생각보다깊고캄캄한산길을마주한다.길양쪽끝에는헝클어진나무와나뭇가지들이빼곡했는데,그순간둘뿐이었던산골짜기[嵌]는더공활하게느껴졌다.이커다랗고어두운동굴속에둘만이빠져있는듯한기분을느끼며작가는일상과다른장소에서우리도모르게계속존재하던세계를발견한기분이드는순간,불쑥삶은오래살아볼만하다는생각이샘솟았다고말한다.
2부‘색깔의기분’에서는‘灰’(회색회)자를두고활활타오르던불이꺼지고난뒤의잿빛불을떠올린다.작가는인간이란무언가를해낸뒤느끼는성취감이나안도감보다아슬아슬한과정의시간동안느끼는불확실한희망에기대어사는것같다고말한다.그리고전력을다해불사르고난의재로남은시간을만지고되새김질하며또다시시도와굴곡을거듭해자신이가장편안해지는곳을찾아가고있다고믿는다.
7부‘계절의기분’에서는‘靄’(안개애)자를꺼내어보여주는데,봄으로한참걸어왔다고생각했던어느이른아침들판에서리가내려앉은모습을보고작가는생각에빠진다.열띤봄기운에아지랑이가피어올랐던시간을빠져나와모든게천천히식어버린기분.기척없이피어올랐다가금세또흩어지는이봄날의안개가끼는새로운상황에놓인그때,작가는내일의날씨를예견하는감각이자신을구하고,살게했음을위안으로삼는다.
10부‘읽는기분’에서는‘餘’(남을여)자로이야기를풀어간다.옛글에선겨울·밤·장마의시간을아울러‘삼여(三餘)’라고썼다는데,이세종류의시간에는여유롭게독서에만몰두하기좋다는의미를담은것이라고한다.눈내리는겨울,세상이잠시멈춘밤,비가쏟아지는여름은모두소란한세상의반대편에마련된비밀기지와같고,불완전한시공간의방에서잠시불을꺼두고웅크리며숨어있다보면완전히안온하다는기분이찾아와주기도한다는것이다.

“‘箴’자의본래뜻은바늘이다.흐트러져갈피잃은나를따끔하게찔러제자리로돌아오도록해주는바늘같은글이곧‘箴’인것이다.스스로지어둔엄격한‘箴’은,길고짧은방황끝에도결국에는다시나를나와가장잘어울리는자리로되돌려놓아주는역할을한다.나의‘箴’제목은평정잠(平靜箴)이다.쉽게초조해지는마음을단속해평정심을불러주는나만의잠언.”(224~225쪽)

“애초에달다는뜻의‘甘’자는입[口]속에맛있는음식[一]을머금고있는모양으로되어있었다.날이밝고좋아하는카페에찾아가앉아달콤한레몬케이크를한입베어물면마음은금세또밝은자리를찾아가리라고,풀죽은밤의기분을다독인다.”(249쪽)

“기분이엉망인순간에숨어들어가웅크리고울수있는곳이
이작은,하나의한자(漢字)안이었으면좋겠다”

마음에획을긋는한문학자의언어세계

20세기초,미국의언어학자에드워드사피어와벤저민리워프는인간이어떤언어를사용하느냐에따라사고방식의체계가달라진다고이야기했다.언어가단순한의사소통도구를넘어사용자의세계관과인지적·정서적영역에큰영향을준다.우리가사용하는한글이라는문자는고유의언어체계이지만,많은단어가한자어로이루어져있으며동아시아의문자체계와한자문화권의철학이긴밀하게연결되어있다.작가가마르고찢겨얼룩진글자들의오랜흔적을바라보는이유도여기에있다.

“한자의세계는방대하고유서깊다.저마다의한자들은수천년세월을거듭하는동안사람들이울고웃으며생활한긴서사를그안에응집하고있다.그래서설명할수없는아득한기분이들때한자자전(字典)을펼치면반드시어떤글자하나는나를언어화해줄수있다.(…)한자문화권에뿌리내린우리는한자를통해자신의오래된성정과조우하며자신이존재하는양상을충분히이해받는듯한느낌을받을수있다.”(10~11쪽)

온기어린옛글에기대어지나온날들을끈질기게기억하고과거와현재를정갈하게연결짓는일은작가가현실에발붙인채살아내기위한시도였으며,한자에기대어마음을나누며형성해온하나의세계였다.스스로의상태를인지하고단어로규정할때비로소자신의심리를정확하게깨닫게되는것처럼,작가는“기분을맡길한자를고르고그뿌리를찾아한자의기분을빌려자신의기분을말해보는일의반가움과기쁨을독자들과나누고싶었다”고말한다.이처럼평소에자신이즐겨썼던단어들이어떤의미를품었는지그근원을쫓아한자의표정을한획한획읽어나가다보면막연하게두려워외면하던대상의뿌리를마주하게되고자신도몰랐던마음이명료해질것이다.일상에서점점멀어지는한자를붙잡아기분을말해보는일만으로도삶이얼마나풍성해질수있는지이책은보여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