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과 삶 사이에서

앎과 삶 사이에서

$20.00
Description
정규직 교수를 사직하고 ‘동네 사회학자’를 자처하며 삶에 기반한 앎을 지향해온 저자 조형근이 2019년부터 2025년까지 신문 등에 발표했거나 개인 소셜미디어에 기록한 글 가운데 ‘지금 여기’에서 다시 새기고 돌아보면 좋을 내용을 선별해 묶었다. 12.3 계엄과 타국의 내전, 참사와 재난, 산재 사망사고와 같은 거대한 사건부터 집과 이웃, 마을, 동료를 둘러싼 저자의 사적인 일화들까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함께 겪은 정치?사회적 국면과 두루 공감할 만한 삶의 장면들이 그 배경이다.
차별과 불평등 문제, 기득권 정치에 대한 비판, 중산층의 욕망에 대한 자기 성찰을 핵심 주제로 다루고 있는 이 책은 거악을 지목하고 구조를 비판하기보다는, “법을 지키면서 자기 이해를 추구할 뿐”인 소박하고 무해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앎과 삶의 긴장을 의식하지 않으려 할 때 소리 없이 악화하는 것에 주목한다. ‘86세대’로서 한때 ‘독재’와 ‘자본’에 맞서 싸우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치열하게 목소리를 내었으나, 이제는 집값 상승에 안도하는 범속한 중산층이 되었음을 토로하는 저자의 솔직하고 치밀한 성찰의 태도에 기반해 쓰였다.
저자

조형근

대학을사직하고파주교하의동네에서이웃과살고있는동네사회학자.동네협동조합책방의조합원이유일한직함이다.불평등과민주주의,동네와세상사이의관계,제국과식민지의역사가남긴상처등여러주제를오가며글을쓰고강연한다.나는바뀌지않은채세상만바꾸자고말할수없다고생각하지만,생각대로살지못한다.《한겨레》에‘조형근의낮은목소리’라는제목으로칼럼을연재하고있다.쓴책으로《콰이강의다리위에조선인이있었네》,《키워드로읽는불평등사회》,《우리안의친일》,《나는글을쓸때만정의롭다》등이있다.

목차

들어가며_어중간하게살아온당신과나에게

1.내안의타자와마주하기
함께라서즐거운인생
십자가는못지더라도
동정도숭배도없이존엄하게
갈수있는유토피아
가장약한자가떠받치는나라
언니에게업혀서여기까지
우리시대의마지막가부장들
내아버지,니로샨,사랑의말
일본으로부터절대배우지말아야할것
중국인을미워하지않는방법
죽어가는것은사람이다
우리끼리드는촛불도힘이될까
봄의혁명에서봄의연대로
미얀마민주주의를지지한다면우리가해야할일
동물은물건이아니다
야성의부름을넘어

2.불평등에서자유로운사람은없다
〈기생충〉과〈어느가족〉,그섬뜩한유사성
어느계급투쟁의기억
기도하겠다,사람의일을하겠다
나의이중언어생활고백기
새만금에돌을던져라,하지만
800원대50억원의정의론
수능시즌의라떼생각
차라리저출생대책을없애자
러스트벨트의엘레지는한국에서도울릴까?
이제는버리자,상승의사다리를
불평등축소의묘수는어디에?

3.냉소를넘어,꿈꾸는약자들의정치
죽은스탈린,살아있는진영론
깃발든보수,불행한공동체
인민의자격,정치의자세
위선,악이선에바치는경배
법치가괴물이되어갈때
노태우의죽음,이체제의죽음
꿈이없으면리얼리스트도아니다
2.5퍼센트의뇌구조는어떤걸까?
윤석열일당을체포하라
87년체제의파국,응원봉이내는길
음모론과민주주의의기초체력
압도적승리는21세기체공녀를구할까?

4.중산층의욕망,그범속함을성찰하기
이기적인2기신도시주민?
지상의달팽이집한칸
저낮은민주주의를기다리며
중산층의집짓기,로망과욕망
코스피4000시대,투자자의마음이잊은것
기득권이된86세대에게남은윤리
좌파아닌강남좌파
그대학생들은다어디로갔을까?
이토록기묘한‘서민’의식
교육을통해생각하는기회평등론의허구성

5.끝나지않는질문,어떻게살아야할까?
대학을떠나며
마을로돌아와서
코로나시대의지식날품팔이
나를가르치고응원해주는사람들
독립연구자는무엇으로사는가?
세상을움직이는‘보이지않는손’
고작설거지한번을하고서
내마음속의부활절기도
우리는기억하겠다
밥벌이의준엄함,삶의엄연함
우리가돈이없지,가치가없을까
내반제품인생이품은질문들
아모르파티,작은것에깃들다
이처럼사소한것들

출판사 서평

“불편한말,위험한정치가필요한데,집이너무편안하다”

아는것과사는것,그긴장과균열
자꾸만화해하려는마음에대하여

“어중간한사람들”(5쪽)은책임의주체로호명되기어렵다.이들은대단히큰잘못은저지르지않으며,주로는선하고무해한선택을한다.“법을지키면서자기이해를추구할뿐”(7쪽)이다.세상에는이런이들이절대다수다.‘어중간한주체’는할말도궁색하다.한편에는모든것은구조의문제이니개인이할수있는건없다는무력감과합리화가,다른한편에는이미범속한욕망에물든인간으로서비판적목소리를낼자격을잃었다는옅은자괴감이따르기때문이다.한때‘독재’와‘자본’에맞서싸우고,‘민주주의’를수호하기위해가장치열하게목소리를내던이들(86세대)은이제아는대로살고싶어도그럴수없고,“행여진짜그렇게살게될까두렵기도하다”(5쪽).자녀교육과부동산,세금문제등의온갖세속적국면에서“정의로운평등주의자들의이중성이폭로될때”면“위선적인도덕가보다는차라리솔직한악당이낫다고여기게도된다”(176쪽).누구나아는것과사는것사이의긴장과균열을의식하더라도,이를더분별있게인지하며아는대로살고자노력하기보다는죄책감을동반하는불편한마음과화해하려는쪽으로마음이쉽게기우는까닭이다.
이책은학력,자산,사회적관계등의자원을둘러싼저자자신의위치성을가감없이성찰하며‘노력하여성취하는삶’에복무해왔을뿐인‘어중간한소시민들’을정치적책임의주체로호명한다.다름아닌이‘작은개인들’의행위로인해“독일에서는나치파시즘”이탄생했고,“1987년한국에서는군부독재가뒤집”혔으며,“2024년의내란도막”(6쪽)을수있었기때문이다.존재하는많은부정의는거악과구조의탓이지만,소시민들개개인이야말로그구조와상호작용하는개별행위자라는사실을비추며이책은책임의경중을섬세히분별하는‘작은사람들’의윤리감각이어떻게“세상을바꾸”(319쪽)는지보인다.

세상에는왜악,고통,부정의가만연할까?소수의권력자,힘센이들에게서악이연원한다는설명이있다.선명한말이지만과연그소수만사라지면좋은세상이올까갸우뚱하게된다.우리모두에게책임이있다는설명도있다.윤리적으로들리지만,모두가문제라면어느누구의문제도아니다.결국두측면모두를직시해야한다.힘센소수의잘못을엄하게따지되,보통사람이져야할책임도외면해선안된다.이책에실린글들은그런책임의경중을고민하며세상을비판하고우리를돌아본흔적들이다._〈들어가며:어중간하게살아온당신과나에게〉중에서


“거악은나쁘지만,세상의고통이모두그탓인것만은아니다.
어떤슬픔들은당신들에게서나온다.지지하거나묵인하는우리의응원을받으며”

‘내게피해를주지않는선에서만진보적’인소박하고무해한삶을둘러싼성찰

이책은저자가정규직교수를사직하고‘동네사회학자’를자처하며삶에기반한앎을지향해온2019년부터2025년까지매체에발표했거나개인소셜미디어에기록한글을선별한산문집이다.12.3계엄과미얀마내전,코로나19팬데믹,세월호와이태원참사,아리셀공장과SPL제빵공장에서의산재사망사고와같은비극적인사건부터저자의집과가족,이웃과마을,동료와친구를둘러싼사적인일화들까지동시대를살아가는이들이함께겪은정치?사회적국면들과다수가공감할만한일상적장면에대해이야기한다.다만거악을지목하고구조를비판하기보다는각각의사안과이에얽힌사회구조속‘작은개인들’의책임을분별하고발견한흔적이주로담겼다.누구보다저자스스로가가장먼저날카로운성찰의대상을자처한다는점에서독자들은보다이완된마음으로저자의시선에자신의삶을포개보게된다.
1부‘내안의타자와마주하기’에서는‘우리’와‘타자’의경계를사유한다.성소수자,여성노인,장애인,난민,이주노동자,불안정노동자,중국인,내전을겪는미얀마인,동물들의사회적위상과그에따른자원의배분,차별문제에대해이야기하고이들과‘나’와의거리,관계에대해서생각한다.2부‘불평등에서자유로운사람은없다’에서는자산,지역,언어,학력,고용형태등을축으로한불평등양상이일상을좌표로어떻게재생산되는지돌아본다.‘법을지키며이해를추구’할뿐인행동이누군가의슬픔과닿아있는일,매력에이끌리는일이위력을지지하게되는일,“공정하게경쟁”(253쪽)할수록불평등을심화하는일,“침묵으로강자를편”(130쪽)들게되는일에대해생각하고,“기울어진현실”(132쪽)에서사유해야할정의감각에대해논한다.3부‘냉소를넘어,꿈꾸는약자들의정치’에서는“정치란결국진영간의전쟁”(164쪽)이라는오랜믿음에서벗어나‘작은사람들’의정치적가능성에주목하기를제안한다.선거용위성정당의난립,진영을막론한음모론과부정선거론,두거대정당의“내로남불”(178쪽)과“최악의극우를피해,그보다는좀덜나쁜강경보수가노동자와힘없는약자들에게베푸는약간의호의를기대하”(198쪽)는정도에머무르게된민주화이후한국정치의현실에대해돌아보고,과거시민운동과정당정치가결행했던불평등축소의시도들,정치적기울기의교정을요청하는내란이후광장의목소리를떠올리며이후의가능성을살핀다.
4부‘중산층의욕망,그범속함을성찰하기’에서는교육의기회,부동산과투자의기회를놓치고싶지않은무해하고성실하고범속한‘우리’들의삶과욕망을들여다보며‘중산층이되고자하는욕망’과이를추동하고부응하며“중산층자산만들어주기에올인하는”(232쪽)역대정부의일관된정책기조를비판적으로돌아본다.셋방을전전하다“글로는옮기기힘든행운들이겹쳐”(239쪽)마련한자가,수도권지역분양과재개발소식에절로솔깃해지는귀,빈민추방의역사와맞닿은서울의발전서사,공공임대주택정책의실패와옥탑방,반지하,쪽방,고시원,비닐하우스의거주자들의삶을겹쳐생각하며‘남들만큼누리고픈’소박하고온화한욕망이그러한꿈에서조차배제된이들의삶과어떻게연결되어있는지,“내게피해를주지않는선에서만진보적”(261쪽)인태도가방치된문제를어떻게심화하는지짚는다.5부‘끝나지않는질문,어떻게살아야할까?’에서는앞서나눈고민을바탕으로‘우리’의경계를넓히는,좀더나은삶을모색하기위한크고작은실천에대해이야기한다.


“이런세상을만든데나의기여분이있기때문이다”

슬픔을반복하는구조속에서우리각자는어떤위치에있는가?
변화의주체로호명된‘어중간한사람들’의책임론

코로나19팬데믹이후전세계적으로구조적불평등이심화되면서사회구성원개개인의책임논리는약화해왔다는분석이있다.‘소시민’으로서는나와직접적인연관이없다고여겨지는사안들에관해특정한입장을갖기가난망해진때다.이러한소시민들에게이책은‘구조적부정의’라는개념을사유하기를제안한다.‘구조적부정의’란“누가잘못했는가?”“위법이있었는가?”의질문만으로는설명되지않는부정의를말한다.이를테면기업은비용절감과유연성추구라는합리적인판단에의해합법적으로비정규?파견인력을양산하고,그결과소비자는빠르고저렴한서비스의이용이라는경제적합리를누린다.이과정에서누구도법을어기지않았지만,위험,저임금,불안정노동이특정집단(청년,노인,여성,이주노동자등)에게집중되었고,산재,해고,노후불안이개인의부담으로전가되었다.“수백,수천만명개인들의평범한욕망”이“특유의제도”(7쪽)와뒤섞이며누구한명을탓할수없는조용한불의를빚었다.

사실성숙한산업자본주의사회에서발생하는고통중상당수는구조적부정의라는틀을빼고는설명하기어렵다.이를테면기후위기,성별,지역,인종사이의차별,불평등같은문제도그렇다.기후를망치겠다거나특정한사람들을차별하겠다는‘의도’를가지고행동하는악인이흔할까?‘지방’이못살기를바라는서울사람이있을까?그저편리한것이좋고,친숙한사람들과일하고교류하고싶다는평범한욕망이모여풀기어려운부정의를만드는것이다._〈들어가며:어중간하게살아온당신과나에게〉중에서

고요히반복되는부정의앞에서이책은“어떠한사회구조가이러한슬픔들을계속만들어내는가?”,“그구조속에서우리각자는어떤위치에있는가?”로질문을바꿀때보이는것들에주목한다.이러한질문아래서는나와직접적으로연결된사안이아닐지라도,특정한구조가유지됨으로써내가모종의이익을얻고있고,그구조를유지하는데에나의일상이연결되어있다면‘나’는정치적책임의주체가된다.“이런세상을만든데나의기여분이있기때문이다.”(7쪽)윤석열전대통령이“없는사람들이부정식품이라도먹을수있게해야한다”(319쪽)고말했을때일었던대중적분노와1987년군부독재를뒤집고2024년의내란을막아낸집단행동등이‘어중간한사람들’이사회전체의윤리감각을조정하고바꿔온과정을상기하며,‘소시민의책임’에관한이책의강조는죄책감을가지라는질책이기보다변화의여지를잃지말자는제안으로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