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인 (성해나 기담집 | 양장본 Hardcover)

인비인 (성해나 기담집 | 양장본 Hardcover)

$18.00
Description
《혼모노》 성해나 첫 기담집
“이곳엔 인간이 몇이나 될까.”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묻는
기묘하고 서늘한 아홉 편의 이야기
“죄를 덮은 자리에는 꺼슬꺼슬한 흔적이 남는 법이다.”

죄의 흔적이 새겨진 벚나무 책상,
실험실에서 태어난 잿빛 덩어리,
타인의 삶을 헐값에 사고파는 경매장,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요기 서린 기계……

어제의 죄와 오늘의 욕망,
내일의 삶을 흔드는 아홉 편의 괴이한 소설들

《혼모노》로 40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한국 문단의 가장 뜨거운 이름으로 자리한 작가 성해나가 2026년 6월, 첫 기담집 《인비인》으로 돌아왔다. 매 작품 단정하고 진중한 문장과 치밀한 취재, 시대에 걸맞은 화두와 역사의식으로 새로운 세대의 리얼리즘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작가는 이번엔 ‘기담’이라는 장르적 형식을 빌려, 한층 더 기묘하고 서늘한 아홉 편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성해나 작가의 소설은 늘 매혹적이면서도 기분 좋은 불편함을 남긴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었던 일상의 자리를 조용히 흔들고, 무해하다고 여겨온 것들의 밑판을 들추어 그 아래 숨겨진 민낯을 독자의 손바닥 위에 꺼내놓는다. 제목인 ‘인비인(人非人)’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사람이 아닌 것, 혹은 사람이어야 마땅하나 사람이기를 스스로 멈춘 존재를 뜻하는 말이다. 작가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서 있는 이 위태로운 존재들의 모습을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세 가지 시간의 축으로 길어 올린다.

우리는 여전히 매일 인간과 대화를 하며 살지만, 더 이상 그것이 진짜 인간인지 아닌지에는 관심이 없다. 챗봇에게 위로를 받고, AI의 진단을 수용하고,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리즘이 알려주는 대로 따라가기 바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점점 낯설고 두려워지는 것은 그 기계들이 아니라, 그 기계들 곁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인간들이다.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후, 성해나 작가는 매 작품마다 한국 소설 안에서 자신의 지형을 조금씩 다르게 그려왔다. 첫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문학동네, 2022)에서 세대와 관계의 경계를 사려 깊고 진중하게 탐색했던 작가는, 두 번째 소설집 《혼모노》(창비, 2025)에 이르러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날카롭고 서늘하게 해부한다.
젊은작가상 2회 수상,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신인상, 신동엽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예스24가 선정한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 배우 박정민의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는 추천사와 《혼모노》가 기록한 40만 부의 판매고. 이 모든 수식어들은 한곳을 가리킨다. 성해나라는 이름이 무언가를 들고 올 때, 우리는 몸을 숙이고 귀를 기울여 듣게 된다는 것. 그리고 이제 첫 기담집 《인비인》으로 돌아온 작가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묻는다. 이번에 그가 가져온 화두는 가장 미래적이면서도 가장 원초적인 단어인 ‘인간’이다.
저자

성해나

2019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중편소설〈오즈〉가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빛을걷으면빛》,《혼모노》,장편소설《두고온여름》등이있다.김만중문학상신인상,젊은작가상,신동엽문학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어제
벚나무로짠5자너비의책상(9)
인비인(人非人)(27)
소돔의의로운혈육들(53)

오늘
매일(買日)(95)
프랭크오자와(121)
윤회(당한)자들(139)

내일
아미고(207)
#유령(235)
고(蠱)(251)

수록작품발표지면(311)

출판사 서평

성해나의기담(奇譚)

기담(奇譚)이란기이하고이상한이야기다.그런데성해나작가의기담은무언가다르다.1944년야스쿠니신사에서시작된책상이100년째후손의서재에놓여있고,하얼빈의비밀실험실에서눈도귀도없는잿빛덩어리가태어나고,경매에오른타인의삶을사고,인간보다더인간같은안드로이드가독약을만든다.귀신은없지만무섭다.뇌에칩을이식하고,죽은사람의목소리를복제하는세계에서,가장설명되지않는것이여전히인간이기때문이다.
무섭다는것은이책에서특별한의미를갖는다.등골이오싹한공포가아니라,이것이나와무관하지않다는인식에서오는서늘한공포다.마지막소설〈고(蠱)〉의작가해설에서작가는이렇게말한다.“세계가거대한항아리라면우리가두려워하고의심해야할‘고’는무언가.”가해자는자신이피해자라믿고,수혜자는자신이무관하다믿으며,방관자는침묵이현명한선택이라믿는다.그믿음들이모여‘고’가된다.《본초강목》은고(蠱)를이렇게기록한다.뱀과전갈과지네를한항아리에가두어서로잡아먹게한뒤마지막까지살아남은단한마리로만든독.수많은믿음들을삼켜독이잔뜩오른인간도그렇게만들어진다.어제의죄가오늘의욕망이되고오늘의욕망이끝내내일의재앙으로번져가는악순환속에서,작가는어딘가비틀려버린인간의내면을아홉편의기담으로서늘하게들여다본다.

어제:천형처럼흐르는역사와죄의흔적에대하여

‘어제’의소설세편이말하는건하나다.‘죄는정말사라지는가.’가장오래된죄는약100년전인1944년에시작된다.〈벚나무로짠5자너비의책상〉은야스쿠니신사에서하사된책상한점이친일후손의서재에안착하기까지의역사를추적한다.나무책상밑판엔정체불명의문자가음각으로새겨져있고,비오는날벚나무향이풍겨올때마다기이한일이벌어지지만,후손인화자는선대의죄를외면한채아들에게이책상을물려주겠다고다짐한다.그런데정작소설에서가장기묘한장면은책상밑에서쥐의두개골이굴러나오는순간이아니라,화자가민족문제연구소로부터받은증조부와조부가친일인명사전에등재되어있다는메일을스팸처리하는장면이다.책상은죄를기억하지만,사람은알면서도모른척하기를택하고마는것이다.슬프게도소설은화자의이런다짐으로끝을맺는다.“언제까지고내게는,아니우리에게는아무일도일어나지않을것이다.아무일도.”
표제작〈인비인〉은731부대생체실험에가담한한노인이영화감독에게보내는편지로시작한다.노인은자신이전범이아닌그저교수의조수이자하수인이었을뿐이라고말한다.그리고편지안엔가타마리의이야기가있다.하얼빈의비밀실험실에서한조선인여자가낳은밀가루를얼기설기뭉쳐놓은형태에눈도귀도없이태어난잿빛덩어리.‘가타마리’는자신을태어나게한남자를‘오야지(아버지)’라고부르며따르지만,남자는가타마리를산채로땅에묻어버린다.그리고수십년이지나가타마리의뼈와함께,남자의이름이각인된만년필이발견된다.그러나소설의진짜서늘함은노인의편지를다읽고난후미련없이파쇄기에갈아버리는영화감독의무심함에있다.“아쉽지는않았다.뭐,영화가될만한것은이것말고도차고넘치니까.”가해자의자기기만옆에있는것은늘그것을외면하고구경거리로소비하는방관자들이다.작가는그두겹의죄악사이어딘가에카메라를고정하고,한치도물러서지않는다.
〈소돔의의로운혈육들〉은조부가불속에뛰어들어맨손에화상을입으면서까지지킨도검이TV프로그램〈진품명품〉에서친일유물로밝혀지는이야기다.조상을욕보인프로그램에대한분을이기지못하고방송국앞에서시위를벌이던조부가남긴마지막유언은“부끄럽다”였다.하지만그부끄러움이무엇을향한것인지,실체가뒤틀린명예욕인지,뒤늦은참회인지는끝내알길이없다.이소설은작가의첫소설집《빛을걷으면빛》에수록된〈소돔의친밀한혈육들〉의초본이기도하다.같은소재는화자의위치에따라전혀다른무게의소설이된다.두소설을나란히읽으면작가의문학이어떻게변화해왔는지를선명하게볼수있다.
책을마무리한뒤에작가는친일에지속적으로관심을두는이유에대해이렇게전해왔다.친일청산의실패가계급,사회불평등,뉴라이트같은역사의식의부재로이어지며오늘날까지사회의많은문제를야기하고있다고.몇몇인터뷰에서작가는문학이기록과기억의예술이라고생각한다고말한다.저변으로사라지거나침잠하는기억을지금이곳으로가져와새로이기록하는게문학의역할이라고.비록픽션이지만,반성과성찰없는태도와그안에담긴비열한역사가읽는이들사이에서오래거론되며,미결의과제를넘어깨어있는물음으로남기를바란다고말이다.

오늘:다른삶을욕망하는자들의이야기

‘오늘’의소설세편이말하는건하나다.‘나는정말나인가.’〈매일(買日)〉은완벽하지만공허한일상을누리던여자가‘블루소셜클럽’이라는경매장에가게되는이야기다.소유한것도,인간관계도없이비어있는타인의삶을매수하기위해경매장에모인사람들은패들을든다.그리고그제야매일이라는제목의‘매’가매양매(每)가아닌살매(買)라는사실을우리는알아차린다.‘매일’을살기위해‘매일’무언가를사야하는세계에서우리는어떤삶을살아야하는걸까.
〈프랭크오자와〉는이베이에서단돈100달러에타인의인생을낙찰받은한남자의이야기다.번듯한집,벤츠,투자계좌,학력까지.주소지로찾아가보니정말모든게진짜다.그런데그순간갑자기오자와의친구들이찾아와자연스럽게그를오자와라고부른다.그들은눈앞의남자가오자와라는것을조금도의심하지않는다.소설의끝에서,화자는니나시몬의노래〈FeelingGood〉을듣는다.새세상이시작되는기분을느끼지만,그느낌이자신의것인지,오자와의것인지,그물음조차이미의미를잃어버린채다.그런데,프랭크오자와는왜자기인생을100달러에팔았을까?
〈윤회(당한)자들〉은실패한다큐멘터리감독이전생을믿는기묘한모임에잠입하며벌어지는이야기다.자신이수백년에걸쳐윤회를거듭한성인이라고믿는중학생이이끄는모임에들어가기위해감독은전생을지어낸다.그리고어느순간자신이만들어낸‘샹샤오잉’이라는경극배우의삶을믿기시작한다.“세상엔윤회당한것도모르고평생꾸역꾸역살아가는사람이더많아요.괜찮아요.”자기보다더불쌍한사람들이자신을위로함에도불구하고감독은정말그들에게위로를받는다.작가는해설에서말한다.이소설의테마가윤회일수도있지만‘소속’일수도있다고.어쩌면인간이가장두려워하는것은귀신이아니라어디에도소속되지못하는것인지도모른다.

내일:인간이사라져가는세계에서

‘내일’의소설세편이말하는건하나다.‘인간이사라진자리에는결국무엇이남는가.’
〈아미고〉는휴머노이드로봇‘아미고’에게밀려난한스턴트맨의쓸쓸한사투를그리고있다.그리고우리는‘아미고’와의첫만남에서스턴트맨이들었던“당신은무사할거예요”라는말이어떤의미인지,소설의마지막장면에서야알게된다.생성형AI가도래하기전인2020년에집필되었다는사실이믿기지않을만큼,기계가주는무심한평온함속에서서서히식어가는인간의세계를고요하고무섭게그려낸다.소설의끝,스턴트맨이집으로돌아와AI비서인알렉사에게묻는다.“알렉사너도무섭니?”하지만알렉사가건조하게답한다.“저는괜찮습니다.”욕조속온수에잠겨있는듯한이무심한평온은언제까지유지될수있을까.
〈#유령〉은아동용대화챗봇의유해언어를밤마다정제하는터크노동자의이야기다.터크란18세기후반발명된자동체스기계‘터키사람’에서따온말로,챗봇이더인간적인텍스트를구사할수있도록하루8시간씩혐오와폭력의언어를읽고지우는일을하는노동자다.그리고어느날주인공‘0’은자기도모르게내뱉은“앰스터”라는혐오단어에놀라고만다.작가는이소설을위해수많은혐오표현을직접서치하고습득해야했다고고백한다.쓰는사람도그정도인데,매일그것을걸러내는사람들은어떨까.소설은기술을매끈하게만들기위해스스로거칠어지고피폐해져만가는,편리함이면에가려진인간의노동을핍진하게그려낸다.
‘내일’의마지막을닫는〈고(蠱)〉는이소설집에서가장최근에쓰인작품이다.2026년6월대산문화에발표되었으니,작가의현재글쓰기가어디까지와있는지를가장생생하게보여준다는점에서도의미가있는소설이다.이소설은안드로이드의사가상용화된미래를배경으로,빚에쫓기는한의사이익이독충들을항아리에가두어만드는독약‘고’로환자들을속이며스스로파멸해가는이야기다.이익은고를만들기위해안드로이드‘도윤’을데려온다.처음엔이익이도윤을부리는것같지만시간이갈수록누가누굴부리는지모르게된다.기술이극도로발달한세계에서오히려살아남는것은심마니나약초꾼처럼가장원시적인방식이라는것도,이소설이건네는서늘한역설이다.그리고인간성을잃어버린인간곁에는언제나인간보다더인간다운안드로이드‘도윤’이있다.“그럴때도윤은정말사람같았다.순수할만큼악하고,우열에민감하며,약한지점만기막히게포착하는사람.”그런도윤곁에서작가는묻는다.인간과기술의경계가흐릿해진세계에서우리가진짜두려워해야할것은무엇인지.

작가의고백과플레이리스트

《인비인》에는평론과추천사대신작가가직접쓴아홉편의해설이수록되어있다.소설을쓰게된계기,조사하면서알게된것들,쓰면서가장힘들었던순간들이적혀있다.731부대소속으로생체실험을자행한요시무라히사토는교토부립의대의총장을역임하고말년에훈장까지받았으며,이시이시로는패전후정체를숨긴채여관을운영하다병사했다.그들중역사의준엄한단죄를받은이는없다.소설을읽고곧바로작가의말을읽으면,소설이한겹더깊어진다.
또한,각부마다플레이리스트도QR코드로삽입되어있다.세부‘어제’‘오늘’‘내일’에맞춰성해나작가가직접고른곡들이다.〈프랭크오자와〉에서오자와의인생을낙찰받은화자가듣는니나시몬의〈FeelingGood〉처럼,소설과음악은내내함께흐른다.아홉편의소설과아홉편의해설,그리고아홉점의일러스트가모여,《인비인》은읽는책이자보는책,그리고듣는책이된다.

이곳엔인간이몇이나될까

2026년,우리는AI와대화하고,알고리즘이큐레이션한세계속에서살아가며,타인의삶을끊임없이스크롤하며훔쳐본다.어쩌면이세계에서‘인비인’은더이상비유가아닐지도모른다.731부대생체실험에가담한노인은자신이하수인이었을뿐이라믿고,1800명학살의진실을담은편지를받은영화감독은“영화가될만한것은이것말고도차고넘”친다며파쇄기에갈아버린다.로봇에게일자리를빼앗긴스턴트맨은그날밤AI비서에게묻는다.“너도무섭니?”혐오어를지우는일을하던노동자는어느날자기입에서혐오어가나왔다는것을깨닫고,한의사곁의안드로이드는인간보다더인간같다.그리고그믿음들과선택들이쌓이고쌓여,기어코인간이라는이름의‘고’가된다.
《인비인》에는악인이없다.하지만그래서더무섭다.책을덮은뒤,우리는오래도록거울을보듯자문하게된다.‘나는과연인간인가.인간이아닌가.’작가는그질문에카메라를비출뿐선뜻답을내리지않는다.대답은오롯이우리의몫이다.

이곳엔인간이몇이나될까.
모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