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프랑켄슈타인』의괴물부터『시녀이야기』속여성들까지
이름은어떻게인간을
만들고,지우고,연결하는가
1부‘무명의존재들’에서는이름을부여받지못한이들이어떻게폭력적인구조에놓이고인간성을박탈당하는지다룬다.예컨대저자는영화〈송곳니〉를통해이름의부재가독립적인자아의인식과형성을막는다는점을보여준다.외부와철저히단절된채살아가는영화속세자녀는아버지가설계한폐쇄적질서안에서서로를구별하는이름도,사회를이해할언어체계도없이성장한다.이름을갖지못한존재는자신을독립적인‘나’로상상할수없고,타인과경계를세워자신만의세계를확장하거나사회로나아갈좌표역시잃는다.저자는이러한구조속에서큰딸이우연한계기로‘이름’의부재를자각하고스스로이름을붙이는장면에주목한다.자기삶의주체로다시태어나는순간,저자는이장면을통해이름이인간이자신만의세계를구축하고자아를형성하며자주적인개인으로살아가기위한가장우선적인토대임을이야기한다.
창조주가피조물에게해줘야하는첫번째의일,가장기본이되는이름조차지어주지않았다.크리처가괴물이될수밖에,다른도리가없잖은가.(…)나는환대는커녕적대만가득했던크리처의삶의편에설수밖에없었다._40쪽
이어2부‘호명하는사랑’에서는서로이름을부르며연결되는,지극히‘인간적인’행위에담긴의미를한겹씩떼어본다.저자는『늦가을무민골짜기』속스너프킨이이름없는존재에게이름을건네는장면,영화〈콜미바이유어네임〉과〈윤희에게〉속인물들이사랑하는사람의이름을거듭부르는순간들에주목한다.상대의이름을부른다는것은수많은타인중한존재를특별한‘너’로구별해자신의세계곁으로들이는일이며,애정과욕망,그리움과소유의감각을건네는가장오래된인간적방식이다.저자는그섬세한순간들을따라가며,인간이왜사랑하는사람의이름을끝없이불러보고싶어하는지를이야기하고그안에담긴상대를향한깊은애정과투명한욕망을건져올린다.
내존재를일컫는고유명사인이름을서로바꿔불러준다는것은어떤걸까.(…)한존재를내속으로받아들이는엄청난일,나를한존재의속으로온전히들이미는일._99~100쪽
3부‘죽음너머의이름’에서저자는무(無)로돌아가도영원히사라지지않고남는망자의이름을하나씩줍는다.이름은살아있는동안한존재를세상에붙들어두는표식이지만,누군가떠난뒤에는남겨진사람들이상실을견디는마지막언어가되기도한다.저자는김소월의시〈초혼〉속“부르다가내가죽을이름이여”라는시구와마을의장례식에서상여소리를처음들은자신의어린시절경험을겹쳐보며죽은자의이름을그저부르며살수밖에없는애달픈마음을떠올린다.죽음이후에도인간은이름을통해관계를지속한다.
어느새나는곳집이다.(…)애달픈곡소리가들려온다.산자와죽은자사이의간극을두고이름을외치는소리가발걸음사이로흩어지고메운다.산자는죽은이의이름을‘설움에겹도록부를’뿐이다.부르다가죽을이름을,어쩌면부르다가,부르다가내가살이름을._138~139쪽
내가떠나온이름,선택한이름,돌아온이름…
스스로규명하며‘나’의자리를찾는다는것
4부‘나의이름,나의근원’에서는이름에깃든나의정체성과뿌리에초점을맞춘다.덴마크의한국계입양인으로서자전적경험을풀어낸마야리랑그바드의에세이『그여자는화가난다』는모든문장의주어가‘여자는’으로되어있다.저자는애정없이지어진자신의한국이름과무심하게자신을버린친부모에대한마야리랑그바드의분노,주어진이름을기꺼이스스로떠난그녀의마음과공명한다.이름의근원을찾는그녀의여정은‘나는어디에서왔는가’라는근원적물음과맞닿아있다.또소설『이름뒤에숨은사랑』에서아버지가애정을담아아들에게이름을물려주지만정작아들은그이름을벗어나고싶어하는이야기를통해,저자는누군가의이름을지어주던순간에담겼을부모의사랑과기대를헤아리며한평생크게애정하지않았던자신의이름을다시마주하게된다.저자는타인이건네준이름의맥락을이해하고마침내자신의이름으로살아간다는것이어떤의미인가하는질문을확장해나간다.
이름을바꾼다면개명이,운명을바꿔줄까?맺거나끊거나이어온관계들이새롭게바뀔까?누가바뀐이름으로불러줄까?옛이름으로나를기억하고새이름으로나를알게될사람들이혼재하는시간이지나고나면,이전의지나간날과남은인생의나는어떻게살다가가게되려는지._185쪽
확장된주제의식은마지막5부‘그이름으로산다는것’로이어진다.영화〈허공에의질주〉에서저자는정치적도피생활속에서가명으로삶을이어온주인공이끝내자신의진짜이름으로살아갈결심을하는장면에주목한다.이름과존재가일치한‘나’로살아간다는것은단지자기정체성을찾는일이아니라,자신을있는그대로받아들이고삶의책임과사랑을기꺼이감당하는일에가깝다고저자는말한다.이름과존재가일치한‘나’로살아갈때나자신과도,내가사랑하고나를아끼는주변사람들과도진정으로잘지낼수있을것이다.
“한사람을이세상에발붙이게하는,이름의점성”
우리를구하는호명의관계학
외로움과고립이사회적화두가된시대,인간은왜여전히누군가에게불리고싶어하고,누군가의응답을필요로할까.분열과단절,혼란이심해지는만큼거꾸로진정한소통과이해를갈구하게된다.사람들은점점더자주인공지능이자신을분석해주는콘텐츠에열광하며,인공지능에게마음을털어놓고위로와응답을구한다.저자는호명되고스스로규정하며‘나’를찾아가는존재들의이야기를통해인간존재의오래된갈망을비춘다.누군가에게불리고,기억되고,이세계에속해있다고느끼고싶은마음을발견한다.
우리는태어나며이름을얻지만,어쩌면평생에걸쳐자신의이름에가까워지는존재인지도모른다.이름은존재를확인하는자리이자,인간을만들고지우고다시태어나게하는자리다.『이름의빈자리에』는이름뒤에붙은다양한욕망과감정을통해우리에게‘무엇이사람과사람을닿게만들까?’‘우리는어떻게삶을붙들수있을까?’하는질문을던지며,결국한존재를그자신과세상에붙들어두는“이름의점성”을보여준다.책장을덮은당신이당신의이름을호명해본다면좋겠다.
추천사
이책을읽는내내이름에붙은것들이스쳐갔다.뭐라도붙잡으려던날들과어떻게든붙잡히고싶던날들,그무엇도나를붙잡지않길바랐던날들이떠올랐다.뱉어지거나삼켜진숱한이름들로목구멍이뜨거워오는채,《이름의빈자리에》가끝내품어온질문들을따라가본다.무엇이사람과사람을닿게만들까?우리는어떻게삶을붙들수있을까?귀를기울이면지상어딘가에서허공으로교신을보내듯이름을부르고또부르는목소리가들리는것만같다.긴시간이름들을만지작거려온권혁란작가가발견한것처럼,한사람을이세상에발붙이게하는건이름의점성인지모른다.
-임지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