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무언가를끊임없이채워넣고쌓아올리는축적이아니라,
불필요한것들을깎아내어투명해지는과정이다”
균열·해체와붕괴·유예·재구성
문학은나를설명하는것을넘어삶을다시쓰는힘
1부‘균열의발견’에서는‘고독’‘부조리’‘침묵’‘내면의여백’처럼한사람의세계에균열을일으키는감각들을살펴본다.대표적으로사랑과관계의파국을외면하지않고기울어진세계한복판으로걸어들어가는뒤라스의문학속여성상과삶의끝없는고통속에서도태양아래부조리를정면으로마주하고자했던카뮈의문학을들여다본다.또한나자신과타자를감쌀만큼온기가가득했던사강의포근한스웨터와,낯선곳에서익명의존재가되기위해안개가되기를선택했던그르니에의이미지들을따라문학이익숙한삶의표면아래감춰진질문들을어떻게드러내는지보여준다.
2부‘해체와붕괴’에서는아고타크리스토프,아니에르노와에두아르루이,다니엘페나크,가엘파유를통해‘언어’‘계급’‘몸’‘기억’의문제를탐구한다.크리스토프가이민자로서겪은적어와모어사이의긴장,어린시절로부터비롯된세계와현재세계가한사람안에서충돌하는에르노의세월의기록,몸에새겨진시간을촘촘히새긴페나크의일기,르완다집단학살을잊지않고자저항하는파유의기억은우리가‘나’라고믿어온정체성이결코단단한하나가아님을드러낸다.작가는자아가무너지는순간을실패가아니라자신을다시읽기위한출발점으로바라본다.
“자신이속했던세계의말투와몸짓,취향이낯설어지고,새로배운것들은완전히그의것이되지않는다.한사람의몸안에서두개의세계가서로를밀어내며수치심과혼란을일으킨다.아비투스의충돌이다.아니에르노는이경험을사적인고백에머물게하지않고사회적·역사적맥락안에서해석한다.그의‘나’는결코고립된개인이아니라,하나의삶을통과한목소리이면서동시에같은조건을살아온익명의다수와연결된존재다.”(78쪽)
3부‘유예의순간’에서는밀란쿤데라,레일라슬리마니,장뤽라가르스,카멜다우드를지나며‘창작’‘욕망’‘실패’‘응답’의문제를다룬다.쿤데라의소설을쓰는일,슬라마니의글을통해내안의불씨를확인하는일,라가르스의실패와동행하는일,다우드의이미쓰인고전의침묵에다시말을거는일은모두쉽게결론에도착하지않는유예의시간속에서이루어진다.이는무너진자아가흔들림과질문속에머물며다른가능성을준비하게된다는사실을보여준다.
4부‘자아의재구성’에서는조르주페렉,엘렌식수,카미유로랑스,바바라몰리나르를통해‘나’라는거울을깨고타자를품으며삶을다시쓰는방식으로자기자신이되는과정을따라간다.페렉이응시하는보통이하의사물들,식수의여성명사들,로랑스의오토픽션실험실,몰리나르의악몽과매혹의기록은모두부서진자아를다시조립하는방식이된다.이마지막여정에서문학은‘나’를설명하는데그치지않고,새롭게구성하는힘이된다.
“쿤데라의무기는‘아이러니’이다.구조가세운의미를끊임없이흔드는것.그의마지막작품,《무의미의축제》에서작가는무의미한대화,농담,상상으로본질적인것을드러낸다.이를테면,평소에거의인식하지않는신체부위,‘배꼽’으로삶의근원을묻는다.철학이나신화가아닌배꼽에서시작되는이야기.작고우습지만,그것이야말로인간의근원이자지워지지않는흔적이아닌가.”(117쪽)
“그는승리와해방의언어가아닌,가장가까운이들앞에서도실패하는언어를선택한다.하지만이실패는단순히포기의선언이나무력함이아니다.그것은이미어긋난관계와선택에대해최소한의책임을지려는시도이며,지나간시간을무효로만들지않으려는몸짓에가깝다.(…)그의인물들은계속해서실패하며그저끝을유예할뿐이다.실패하지만계속하는것,저멀리끝이보이지만가능한한돌아가는것,불이꺼질테지만여기무대에남아있는것,생을조금더살아보는것.이것이‘죽음’이라는결말을필연적으로안고사는존재들이할수있는가장근사한사랑이아닐까.”(139쪽)
《나를균열내기》는작가들의문장을해석하는데머물지않고,그문장들이우리각자의삶속에서어떻게다시살아움직일수있는지응시한다.그러므로이책이말하는‘균열’은파괴가아니라가능성에가깝다.
이책이끝내도착하는곳은완성된자아나선명한해답이아니다.작가는독자들에게‘내가나라고믿어온것들’이어떤언어와기억,몸의감각,계급의흔적,수치심과욕망,실패와침묵으로이루어져있는지들여다보게한다.내가쓰는말은어디에서왔는지,나를부끄럽게만든감각은누구의기준에서비롯된것인지,오래붙들어온기억과욕망은지금의나를어떻게살게하는지묻는다.그리고그중무엇을덜어내고무엇을붙들며무엇에새이름을붙일것인지생각하게한다.이때문학을읽는일은뒤라스의파수프재료들처럼단순한이해나위로를넘어자기삶을이루는재료들을다시살피는일이된다.《나를균열내기》는문학읽기를통해불필요한것들을깎아내고투명해지는과정을거쳐자기삶을다시선택하게하는여정으로독자들을이끌어줄것이다.
“몰리나르가그랬듯이악몽에서나를구할수있는것은나자신뿐이다.그꿈속에서무언가를길어올릴수있다면,이미나는그악몽에서벗어난것이리라.그러기위해서는공포와매혹을온전히수락하는용기가필요하다는것을안다.어쩌면그이야기는나를통과하여,또나와한몸이되어어떤‘있음’을증명하려하는지도모른다.아무것도아닌것으로되돌아가려는본성과싸워이기는일이쓰는자의몫이니까.어째서이러한수고가필요한지를묻는다면,몰리나르의말로답을대신하겠다.다만,내가되기위해.”(199쪽)
추천사
백은선(시인)
세계는매끈하지않다.사건과현상은교묘히덧대어져있기도하고벌어진채공허하게입벌리고있기도하다.그틈을보는사람들이있다.나는그들이작가라오래전부터믿어왔다.이세계가만들어낸틈을응시하는자이기때문이다.우리의언어속에는벌어진상처처럼틈새가있다.무엇으로도그것을다매울수는없겠지만,그응시속에서발생하는것이문학이라면,문학속에서만나는것이미처알지못했던나자신을다시한번타자로서겪어내는일이라면,문학이라는거울속눈코입은어떤모양을하고있을까.
자기자신이되기위해오히려스스로를떠나는일이그것이라면,존재의재발견과존재의새로운발명은어떻게사람을파고드는가.신유진은알고있는사람처럼보인다.그걸세계의비밀이라부를수있다면,그는비밀에멜로디를붙이는사람인것만같다.
그렇게문학의길고긴터널을지나다시나에게로당도하는여정.‘자기되기’를통해재탄생을실천하는것.그것이그가번역을통해,글쓰기를통해걷고있는경로가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