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들판 (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

비밀의 들판 (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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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70년대 휴스턴 교외 지역에서 거의 유일한 한국계 미국인 가족의 일원이던 저자 마거릿 주혜 리는 ‘너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는 타인의 질문, 지금보다 더 나은 어딘가를 향해 끊임없이 떠나고 싶은 충동,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을 안고 살아갔다. 전과자이자 집안의 수치인 할아버지. 가족은 그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고, 삶에서 필요한 것을 알기 위해 ‘나’가 누구인지 알아야 했던 마거릿의 질문과 의문에 대한 답은 번번이 침묵으로 돌아왔다. ‘침묵’이 가족의 유산으로 대물림되었다고 말하는 저자는 가족사의 공백이 자신이 겪어온 모호한 정체감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리라 예감하며 자랐다.
60여 년 만에 침묵이 깨진 건 성인이 된 마거릿의 청에 할머니가 응답하면서부터였다. 병에 걸려 할아버지에 관한 조사를 끝내지 못한 아버지의 작업을 언론학을 전공하고 기자가 된 마거릿이 이어받으며 시작된 인터뷰였다. 이후 마거릿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할아버지를 추적하는 데 몰두한다. 저자와 아버지의 노력으로 알아낸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최초 항일 동맹휴학을 이끌고 수차례 항일 시위를 조직한 1909년생 학생 운동가이자 공산주의 혁명에 뿌리를 둔 독립운동가, 또 사상가였다. 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 가입해 비밀결사 활동을 하다 투옥되었고, 빨치산 활동을 주도한 이현상의 동지였던 그는 손녀의 추적 끝에 사후 60여 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야기는 잊힌 독립운동가 한 사람의 삶을 복원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비밀만큼이나 저자와 ‘아버지’가 성장 과정에서 겪은 소외와 이름 붙일 수 없는 공허가, 남편의 삶을 숨기고 부정해온 할머니의 생애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분단 이후를 통과하며 한 가족의 기억에 무엇이 남고 무엇이 지워졌는지를 보게 하고, 묻어 둔 ‘비밀’과 ‘애도되지 못한 역사’는 사라지지 않은 채 끝없이 현재를 점유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저자

마거릿주혜리

캘리포니아주오클랜드를기반으로활동하는한국계미국인작가.《더네이션》의문학편집자로일했으며,《더네이션》,《뉴스데이》,《엘르》,《더럼퍼스》등에기사,비평,인터뷰를기고했다.하버드대학교래드클리프연구소의번팅연구펠로십과한국국제교류재단한국학연구펠로십에선정되어《비밀의들판》을집필했다.2020년에는할아버지인애국지사이철하의명예회복에기여한공로로,충청남도공주의상철문화복지재단에서'올해의인물'로선정되었다.

목차

저자의말

프롤로그:기원에관한이야기

유골
이장
유산

1.할머니와의첫번째인터뷰

얌전한소녀
소녀시절
사진
잃어버린역사
탈출
새출발
상처난조직
저항
우화
치료
결핵
독재
반체제인사

2.할머니와의두번째인터뷰

자유의맛
이주
신박사
잃어버린아이러니
단서

부역자
독방감금
기록
항거
제물

3.할머니와의세번째인터뷰

부화장
화양연화
영웅
생존
빈소
내용
종손

에필로그:천국의정원

참고자료
감사의말
추천의말

출판사 서평

“오랜시간추적한가족사이자일제하독립운동과사회주의운동을관통하는대한민국현대사”_정지아,《아버지의해방일지》작가
“기억과증거,가족사를능숙한솜씨와넘치는애정으로엮은장대한태피스트리”_한요셉,《핵가족》작가
“우리가어디에서왔는지아는것이어디로가는지를알아가는여정에힘이된다는사실을일깨운다”_수잔최,《신뢰연습》작가
“가족사에등장하는영웅이꼭우리가생각하는바로그사람이아닐수도있음을보여준다”_캐럴스미스CarolSmith,《강을건너며CrossingtheRiver》작가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2024년올해의책

“그괴로운일을내가왜이야기하고싶겠니”
침묵은어떻게역사를드러내는가
비밀이된과거가끝없이현재로되돌아오는것에대하여

1970년대휴스턴교외지역에서거의유일한한국계미국인가족의일원이던저자마거릿주혜리는‘너는누구이며어디에서왔느냐’는타인의질문,지금보다더나은어딘가를향해끊임없이떠나고싶은충동,이유를설명할수없는공허를안고살아갔다.전과자이자집안의수치인할아버지.가족은그에대해철저히함구했고,내가누구인지알기위해자신의뿌리를궁금해했던저자마거릿주혜리의질문에대한답은번번이침묵으로돌아왔다.할머니에게서아버지로,아버지에게서자신에게로‘침묵’이가족의유산으로대물림되었다고말하는저자는가족사의공백이자신이겪어온모호한정체감과긴밀하게연결되어있으리라예감하며성장했다.
60여년만에침묵이흔들리기시작한것은성인이된마거릿의청에할머니가응답하면서부터였다.병에걸려할아버지에관한조사를끝내지못한아버지의작업을언론학을전공하고기자가된마거릿이이어받으며시작된인터뷰였다.이후마거릿은한번도만난적없는할아버지를추적하는데몰두한다.아버지와저자의노력으로알아낸할아버지는일제강점기충청남도공주최초항일동맹휴학을이끌고수차례항일시위를조직한1909년생학생운동가이자공산주의혁명에뿌리를둔독립운동가,또사상가였다.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가입해비밀결사활동을하다투옥되었고,빨치산활동을주도한이현상의동지였던그는손녀의추적끝에사후60여년만에독립유공자로인정받는다.
그러나이야기는잊힌독립운동가한사람의삶을복원하는것에머물지않는다.할아버지의비밀만큼이나저자와‘아버지’가성장과정에서겪은소외와이름붙일수없는공허가,남편의삶을숨기고부정해온할머니의생애가중요하게다뤄진다.일제강점기,한국전쟁,분단이후를통과하며한가족의기억에무엇을남고무엇이지워졌는지를보게한다.
저자는한번도만나지못한할아버지의비밀이자신이“누구이고어떤사람이될지”(387쪽)의문제와연결되어있다고느끼며“나는할아버지가어떤사람이었는지알아야겠다”(45쪽)고결심한다.개인의정체성이나소속감은가족사와공적역사를어떤서사로받아들이고해석하는가에따라달라진다는사실을이책은비추며,나아가사적인‘비밀’과‘애도되지못한역사’는사라지지않은채끝없이현재를점유한다는사실에대해서도생각하게한다.


“확실한건아무것도없어.특히전쟁중에는”
생존의조건으로서의할머니의기억삼키기

“우리가족은괴로운일을털어놓지않는다.그것을통째로삼켜대를넘어곪아터지게내버려둔다.두려움,공포,고통을삼키고는그대로영영사라지기를기대한다.더이상느껴지지않을때까지꾹꾹누른다.그것이할머니가,또아버지가살아남는방법이었다.”(311쪽)

할아버지의역사를복원하는일은동시에왜할머니는그역사를은폐하고침묵할수밖에없었는지를이해하는과정이기도했다.한국을떠난지오래였고아들인‘아버지’가‘할아버지’의이야기를듣기를강하게요구했음에도할머니는왜입을열지못했을까.저자는고통과기억과두려움을삼키는것이할머니에게는곧생존의조건이었음을알게된다.
공산주의자전과자의아내라는낙인은남편의죽음이후에도할머니를따라다녔다.재산을모두잃고재봉사와보육원일을전전하며두아들을키워야했던할머니는무엇보다살아남아야했다.할머니는“정치에는전혀관심이없었고조국이어떤길을걸을지궁금해한적도없다.다만먼저떠난남편의행적을다른이들이,가족이든당시의지배세력이든누군가가악용할수있다는것만알았다”(381쪽).북한군이공주에도착하기전날밤,할머니는수감관련서류와편지,정치이론에관한저술,신문기사,남편의책을모두불태운다.어떻게닥쳐올지모르는위험으로부터남은가족을보호하기위해치러야했던대가였다.북한군이남하하면남편의흔적이이들가족에게좋은지위를보장하리라기대한친척도있었다.그러나할머니는모든기록을불태우고땅에묻는다.더는불확실한상황에삶을맡길수없었다.할머니는차라리표백된과거를생존의조건으로받아들였다.더나아질수있는가능성을꿈꾸고셈하는것마저배제했다.

“두차례에걸쳐봉기해서동학이어떻게되었는지보렴.그들은자신들이들고일어난결과중국과일본이전쟁을벌일줄은몰랐어.무슨일이일어날지모르는거야.역사가그증거다.”(269쪽)

과거를지우기로한단호한결정에대해어떻게그럴수있었는지묻자,할머니는동학농민운동을떠올렸다.할아버지의집안과같은양반지주층과외세에저항하며시작된이토착사회운동을막기위해조정은청나라에파병을요청했다.이에일본은톈진조약위반이라며자국군을개입시켰고이것이1894년청일전쟁으로비화하여결국조선은식민지의길로들어섰다.할아버지의집은당시동학농민들이점거해사용하던항쟁본부였다.할머니는그들이남기고간창두자루를오래바라보던순간을들려준다.동학농민운동에서부터일제강점기로,다시해방과분단으로이어지는역사는할머니에게인간의의지나신념으로통제할수있는것이아니었다.
그런할머니를통해할아버지의삶을복원하는과정은무엇이밝혀지는가만큼무엇이사라졌는가를보게하는여정이된다.그리고이는할아버지에대한결정적자료를발견하는국면에서도되풀이된다.자료소장자에게왜이처럼중요한기록이제대로보존되지않았는지를묻자,“감당할사람이아무도없었으니까요”(292쪽)라는답이돌아온다.
무엇이기록되었는지가아니라무엇이기록될수없었는지를집요하게따라가는이야기속에서사적인침묵과공적인망각은별개의현상이아니다.공적역사의공백은가족안의비밀이되었고,가족이삼킨비밀은공적역사에서다시하나의결락으로남았다.저자가복원하는것은어느독립운동가의전기만이아니라,한사람의삶이역사에서사라지는과정자체다.그리고그과정을더듬는끝에서저자는비로소자신이오래도록설명할수없었던공허와모호한정체감이개인의문제가아니라,세대를건너이어진역사적침묵의유산이었음을이해하게된다.


“나에게집이란장소가아니다.존재의상태다”
내가누구인지는과거와연결되어있다는것

긴추적끝에저자는범죄자였던할아버지가사후60여년만에독립유공자로추서되어국립현충원으로이장되는순간을맞이한다.아버지에게상속된줄조차모르고있던토지를정리해,일제에저항하는학생운동에참여했다는이유로퇴학당했던공주고등학교에할아버지의이름으로기부한다.그리고공주고등학교로부터할아버지의명예졸업장을받는다.마거릿은자신의아이에게할아버지의호인‘성야星野’라는이름을붙여준다.지워졌던이름이다시쓰이고,가족은잃어버린역사를회복한다.
나아가이야기는한독립운동가의명예뿐아니라,저자가자신을현재의자신으로존재하게만든시간을되찾는데로뻗어간다.저자에게‘나는누구인가’라는질문의답은현재가아니라과거에있는것이었다.할머니에게과거를지우는일이살아남기위한조건이었다면,손녀에게는그과거를되찾는일이비로소살아갈수있는조건이되었다.잊힌역사를되찾고,할머니의오랜침묵이어떠한시대적조건속에서만들어진언어였는지를이해하면서저자는비로소“집에온기분”(389쪽)을느낀다.여기서집은물리적장소가아니라과거와현재가단절되지않은상태,자신이누구이며어디에서왔는지를설명할수있게된존재의상태다.
이책의한국어판이출간되며독립운동가이철하와그가족의역사가그역사가시작된이곳의‘집’으로찾아온지금,우리는이이야기를어떻게읽어야할까.말해지지않은것은없거나사라진것이아님을상기하며무엇을응시하고무엇을말해야할까.

“그괴로운일을내가왜이야기하고싶겠니?
나는할머니가감옥에서돌아온남편에게그간의일을물었던질문과,내가인터뷰를시작하면서할머니에게던진질문에비슷한응답이돌아왔다는점을마음에새겨둔다.”(314쪽)

“너희는알았으면해.너희가누구이고어떤사람이될지는과거와연결되어있다는사실을.”(3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