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시럽뿌리기,
따끔하지만조금은따듯할지도
말없이어린아들을데리고집을나간아버지(원영원,〈여름의갈래에서〉),15년만에이름과얼굴을바꾸고말기암환자가되어나타난엄마(김나은,〈좋은여자〉),통신장비가고장나세상으로부터잊히고사람이아닌물살이가된존재(이비,〈333〉)등『상처에시럽뿌리기』에는이해할수없게된것들,그래서어느시점에손을놓쳐버린것들이가득하다.누가먼저놓았든그단절의순간은상처로남았다.상처는시간을지나는동안에도아물지않고그림자처럼존재감을과시한다.여섯작가는그오래된상처를잠자코들여다보기를택한다.이책은그들여다봄을‘시럽뿌리기’라는행위로정의한다.
‘놓고온개’부터‘종일우는사람’까지
‘상처’와‘시럽’이라는다소엉뚱한조합은상상력을자극한다.곧바로따가운고통이연상되지만,이내끈적하고달콤한시럽이라면괜찮지않을까하는근거없는희망도품게된다.분명한것은어떤결과든상처에시럽을뿌리는일에는상처너머를바라보겠다는의지가담겨있다는것이다.골치아파질걸알면서도개를데리러가기로결심하고(이영주,〈모르는개산책〉),자꾸만어긋나는침대보를억지로맞춰보고(강다운,〈사각지대〉),보이지않는눈에끝까지랜턴을비춘다(신은솔,〈그림자밟기〉).여섯작가가한겹씩쌓아올린‘시럽’같은문장들은‘상처’를지나며비로소용기라는이름의발판이된다.
“더이상모르는게상책은아니었다.”
외면의상처를지나연대로흐르는분수령
이영주의〈모르는개산책〉은개산책아르바이트를하다가살인사건에휘말린가정주부의이야기다.‘모르는게상책’이라믿으며하루하루를살아온그는자신의믿음에금이가는순간을맞이한다.그리고마침내타인의일을더는‘모르는척’하지않기로마음먹으며조금아는개‘초코’를데리러집을나선다.
“내가아버지를끌어안는심정으로그여름날의기억을더듬어왔음을깨달을수있었다.”
지난여름을되짚는이해라는갈래길
원영원의〈여름의갈래에서〉는어느여름날어린아들을데리고집을나온아버지의여정을아들의시점에서되짚는다.조금씩어긋나는가족의모습을지켜보던아들은어떻게아버지를이해하게되었을까?아들은시간이한참지나아버지의만화가라는꿈과녹록지않은현실의괴리에서왔던절망을회상의방식으로톺아가고,마침내‘이해’라는이름으로그시절의아버지를있는그대로끌어안는다.
“모서리와모퉁이의이야기를찾을수있는곳이었으면”
저마다의단절감속연결을향한몸부림
강다운의시다섯편에서두드러지는건‘기다림’이다.술과담배가떨어진집에서집주인인피에르를기다리고(〈부러진문고리〉),추모공원에서매일기도하러오는수녀를기다린다(〈새가없는공원〉).강다운의시에등장하는인물들은늘어딘가어긋난형태로서로관계맺는데,그방식은마치아직태어나지않은천사의“사라진날개의흔적”(〈00〉)처럼희미하고불완전하다.아스팔트도로에서로드킬을당한“고양이의젖은영혼들이”(〈울지마,빌리〉)주인공빌리를응시하기도한다.시속존재들은저마다의단절감안에서미약하게나마연결되기위해끊임없이노래한다.
“난그사람이죽었으면좋겠는데.”
변해버린얼굴아래서서히떠오르는애증
김나은의〈좋은여자〉에서는연이끊어졌다생각했던엄마가이름과얼굴을바꿔딸‘재연’의삶에난입한다.암에걸려금방이라도죽을듯한엄마를바라보며재연은몰라볼정도로달라진엄마의모습과태도에낯섦을느낀다.청년계좌를신청하기위해,이제는모두에게‘좋은여자’라불리는엄마와관계가단절되었음을증명해야하는재연의처지가아이러니하게펼쳐진다.
“왜엄마의그림자를보는건항상나일까?”
오해와이해사이짙디짙은그림자
신은솔의〈그림자밟기〉는다정하면서도어딘가불안해보였던‘두정언니’와외로운청소년이던‘나’의우정을그렸다.동생의지병으로부모님이집을비우는시간이잦아지자‘나’는이웃집두정언니에게차츰의지하게된다.그러나끝내두정언니를떠나보내며가까운이의죽음을목도한‘나’는오랫동안이해하지못했던엄마의그림자를비로소바라보게된다.
“나는나의상주가되어야지”
세계를살리는빛으로탈바꿈하는고유한언어
이비의시다섯편은그개인이속한사회에초점을맞추며관점을확장시킨다.구체적인사회적연대의장면이드러나면서도,“합의공장에근로자위원도국선노무사도내편은아니고”(〈입〉),“목소리가돼보라더니입을뺏는”(〈또〉)과같이연대의과정에서필연적인갈등도선명하다.“그러면나는나의상주가되어야지”(〈333〉)하고체념하다가도결국이렇게된것은“사람하고아무것도하고싶지않을만큼무엇을해버린사람들”(〈몸으로들어가기〉)이기때문이므로,함께하기를영영포기하지는않는다.
후회의그을음과달콤쌉싸름한물음
우리는살면서끊임없이상처를주고받는다.개중에는영영낫지않을상처도있고,이미나아자취를감춘상처도있을테다.이책의인물들처럼,교제폭력이나우울처럼여전히반복되는상처가우리곁에있다.어떤사람들은스스로의우울감을이기지못한채문드러진다.세상의한편에서는노동계급이싸우고있고,타인과의관계속에서받은상처를끝내치유하지못하는이도있다.영영낫지않을‘상처’에약도,소금도아닌‘시럽’을뿌려보는이들의마음은무얼까.시럽은굳어잠시간상처를보호하지만,고름은아니기에딱지가되지못한다.이이야기들은완전한치유법이되지는않지만잠시움츠리는법을일러준다.
우리는서로의고통을온전히끌어안을수있을까.그답은이책을덮은뒤,독자각자의자리에남는다.
책속으로
범인이죽은여자의남자친구였다는사실까지밝혀지자댓글난은그야말로들끓었다.이곳으로오면여자의얼굴사진을볼수있다는링크가첨부된댓글과범인신상공개를해야한다고분노하는댓글이많았다.‘의외로남자완전멀쩡하게생겼을듯무섭다.’‘왜가해자신상공개를안하냐?이정도면알아야피하는데.’‘우리나라는가해자보호를너무좋아함.’그러다한댓글에서내시선이멈추었다.‘남친얼굴아는사람없냐?실제지인등판해줬으면.’
---「모르는개산책」중에서
남자와어머니가가까워질기회가없었더라면,아버지가만화가로성공했더라면,아니처음부터그팀을떠나지않았다면…….그러나슬픈일을바로잡기위한상상은결국그슬픔을더선명하게만들뿐이었다.
---「여름의갈래에서」중에서
한참을모퉁이에서서
주인을같이기다려주는일
내가할수있는일입니다
이것은어떤이야기입니까?
서로의말을들어줄수없다는것은
매트리스모서리에서
자꾸만어긋나는침대보를
억지로맞춰봅니다
---「사각지대」중에서
조금만기다리면단절사유서를작성할필요가없어질지도모른다.접수마감기한이보름남았다.보름안에은혜가세상을떠나줄까?어떻게되든재연은단절사유서만은완성해복지부에제출할생각이었다.은혜가죽지않더라도,아프지않았더라도그와엄마는끊어진사이였으니까.칼로잘린것처럼확실하게.재연은자신에게선명한사실을설명하기위해이렇게많은글자와시간이필요하다는게믿기어려웠다.
---「좋은여자」중에서
“어른이되면귀신같은건안무섭죠?”
“무서워하는사람도있을걸?그런데나는안무서워.”
“언니는뭐가제일무서워요?”
“살아야하는거.그럼에도살아내야하는거.”
---「그림자밟기」중에서
지하철에가슴을치며제외계와싸우는사람들어있어
학교앞문방구가차례로문을닫고부쩍
한산한평상에골똘한등이놓여있어
가로수검은눈알에목젖을비벼대는묵음있어
사람하고아무것도하고싶지않은사람들
사람하고아무것도하고싶지않을만큼무엇을해버린사람들
---「몸으로들어가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