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과 무릎들 : 성기게 엉기는 남해살이 이야기

책방과 무릎들 : 성기게 엉기는 남해살이 이야기

$19.26
저자

김소민

저자 : 김소민
반려견 몽덕이와 산다. 개 친구도 좋지만 인간 친구를 사귀고 싶어 글을 쓴다(사실은 먹고살려고 쓴다). 한겨레신문사에서 13년간 기자로 근무하다, 독일과 부탄에서 3년여 산 뒤 국제구호 NGO 세이브더칠드런에서 1년 7개월 일했다. 어쩌다 직장을 그만 두고 5년간 글쓰기 일용직 노동자로 살다가, 현재는 독립 민간연구소 희망제작소에서 다닌다. 백수일 때는 월급생활자가 부럽더니, 직장인이 된 지 한 달도 안 돼 백수 시절이 그립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한결 쉬워지는 글쓰기 : 내 이야기 하나쯤’과 ‘집중 첨삭반’ 수업을 하며, 《한겨레》에 ‘김소민의 그.래.도’를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나의 아름답고 추한 몸에게》 《가끔 사는 게 창피하다》 《이해하거나 오해하거나》가 있다.

목차

프롤로그-해변의 시간


1부

성기게 엉길 수 있을까

‘신발달인’의 집

70년 도장 장인은 말했다, “생각이 없어지지”

나는 진돗개 순둥이를 구했을까

12시간이 1시간처럼, 새박사의 몰입

진수, 다금이, 귀남이 그리고 경숙

신뢰게임


2부

사랑은 노동을 부르고, 노동은 사랑을 부르고

소년 큐레이터와 책방지기가 된 손님

오징어의 맛

그날 밤의 도끼질과 포옹

달집태우기

5월의 상추 같은 밥


3부

와타나베는 왜 ‘맛없는 맥주’를 만들려고 하나

가끔 외로워지고 싶다

노부부 남해대전

열여덟 살 푸름이

웃음의 ○, 눈물의 ○, 동그라미 집

눈과 바람

안녕, 안녕

밀양의 혼령들과 울었던 날


4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매미와 노거수

애벌레 문신을 한 여자

그의 꽁꽁 언 손

손절은 어려워

그러니까, 그날부터였을까

아무도 모른다

몽덕이의 절친들

‘모두의 집’은 가능할까

지원은 집에 도착했을까

농부 김필주와 호위무사

걷는 인간, 주원

효도의 실상


에필로그-네 미지의 몸짓을 따라

추천의 말

미주

출판사 서평

“누구에게나 다른 존재의 무릎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이 남쪽 끝에서 애증의 ‘무릎’들을 만났다.”

사랑은 노동을 부르고, 노동은 다시 사랑을 부른다

책방을 사랑방 삼아 작가 주변으로 ‘모안대’ ‘콩풀’ ‘새박사’ ‘준’ 등 개성 넘치는 이웃들이 모여든다. ‘퍼머컬쳐’ 수업에서 농사일 하기, 이웃집에 모여 식사 나누기, 정월 대보름날 달집태우기 등 좌충우돌한 일상을 함께하며 어느새 낯설었던 마을 사람들과 가까워진다. 저자는 타인의 호의와 도움을 경험하며 서로의 독립성을 유지하되 필요할 때 기댈 수 있는 느슨한 공동체의 가능성을 조금씩 발견한다. 책방을 돌보고 사람들과 밥을 나누며 사랑이란 거창한 감정이 아니라 시간과 노동을 기꺼이 내어주는 구체적인 행동임을 깨닫는다.

““서운해!” 빵 선반을 나르느라 정신없는 콩풀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래, 그렇네. 내가 잘못했네.” 바로 사과하니 김이 샜다. 콩풀이 내 입에 빵을 넣어줬다. “다음엔 바로바로 말해 봐.” 나는 끄덕이며 빵을 씹었다. 그 뒤에도 나는 아홉을 모아 열에 폭발했고 콩풀은 열한 번째 빵을 내 입에 넣어줬다. 그 열한 번째 빵으로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는 것 같다.”(208쪽)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해서 내면의 고민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처음 남해에 내려와 책방지기로 일할 때 작가는 임금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현타’가 왔다. 적은 임금조차 책방 운영에는 큰 짐이 되는 게 걱정스러운 동시에 자신의 노동이 싸구려 취급당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매출은 성적표 같았다. 매달 북토크를 열며 자신과 동료를 닦달했다. 그 뒤에는 인정받지 못할 거란 불안이 웅크리고 있었다. 가장 괴로운 건 ‘왜 내가 짐을 져?’란 마음이고 가장 미운 건 곁의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남해의 하루 24시간은 자기의지를 가진 생물 같았다. 작가와 몽덕이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 저녁때 집에 패대기쳐 놓는 듯했다. 개를 산책시키다 콩풀과 커피를 마시고, 불쑥 찾아온 손님들까지 합류해 밥을 먹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었다. 그런 날엔 불안해졌다. ‘이렇게 시간이 황무지의 넝쿨처럼 흘러가도 될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닐까? 이게 내 삶인가?’ 문득문득 외로워지고 싶은 마음이 찾아들었다.

“나는 뭐가 그렇게 두려운가? 모멸이 무섭다. 존중받지 못할까, 사랑받지 못할까 두렵다. 그 결핍은 너무 뜨거워 되레 사람들을 쫓아버린다. 방심하면 세상이 언제든 날 지르밟을 것 같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자아를 지키는 보초병으로 자신을 세운다. 세상을 향한 의심의 찌꺼기가 쌓인다. 자아는 똥덩이처럼 좁은 장안에서 굳어가고 나는 고립의 복통을 앓는다.”(20~21쪽)

결국 작가는 과중한 노동과 인정받고 싶은 내면의 욕구가 폭발하여 ‘인간AI’와 손절한 뒤 책방을 떠난다. 이후 늘 열 번 거절해도 열한 번째 사랑을 내준 ‘콩풀’과의 관계를 돌아보며 자신 역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임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다시 자신들의 자금을 투자해 마을에 공유공간 ‘옆’을 만드는 실험을 통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차이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갈 가능성을 모색한다.

““콩풀이랑 엮이면 정신이 없다고, 시간 블랙홀이라고. 그런 말 들으면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텃밭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야. 자기가 배우고 싶다고 해서 같이 하자고 한 거지. 식물들은 돌봐줘야 한다고. 돌봐주지 않으면 자라지 못해.” 맞다. “회색괴동”이네 “빵집은 시간의 버뮤다 삼각지네” 내가 그랬다. 나는 콩풀이 그 말들을 견디고 있는 줄 몰랐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우리는 아무런 노력하지 않는 듯한데도 존중받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연신 “부럽다, 부럽다” 했다. 이 활달한 여자도 나랑 비슷한 두려움이 있다는 걸 그때에서야 알았다.”(229~230쪽)

“그래서 나는 사람을 신뢰하게 됐느냐면, 천만의 말씀이다. 아직도 모멸이 언제 튀어 오를지 모르는 두더지 게임기 앞에 뿅망치를 들고 서 있다. 이 게임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아스라한 안개 속에서 아리송한 모욕의 그림자를 낚아채고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이것 보라고.’ 나는 내게 무엇을 증명하려고 하는 걸까? 어쩌면, 나는 수치를 확인하려는 것 같다. (…) 나는 그 수치의 냄새로 내가 여기 있다는 걸 확인하는지도 모른다. 이 게임은 질 수밖에 없다. 나를 확인하면 나는 더러워지고, 내가 더러워지지 않으면 나는 내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가 없다”(70쪽)

“이곳엔 성기게 엉기며 나를 먹이는 사람들이 있다”

각자의 외로움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서로의 곁에 머무는 법

《책방과 무릎들》은 관계가 모든 외로움을 해결해준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도 외로울 수 있고, 가까워진 뒤에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때로는 혼자 있고 싶고, 관계에서 도망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 모든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타인과의 연결을 포기하지 않는다.

상대의 마음을 완전히 알지 못해도 그의 몸짓을 따라 해보고, 내민 손을 맞잡고, 함께하는 놀이를 멈추지 않는 것. 이 책이 발견한 사랑은 거창한 헌신이나 완벽한 이해보다 그런 작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성기게 엉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외롭지 않으려고 떠난 남해에서 저자는 사람 때문에 더 자주 화를 내고, 더 많이 웃고, 더 깊이 흔들린다. 그렇게 자신이 알지 못했던 타인의 세계를 만나고, 새로운 자신의 모습도 발견한다. 《책방과 무릎들》은 혼자이고 싶지만 혼자이고 싶지만은 않은 우리에게, 서로의 외로움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건넨다.

“어쩌면 이해야 할 유일한 것은 타인이 조망할 수 없는 미궁이라는 것뿐이고, 멈추지 말아야 할 책임은 질문일지도 모른다. 다만, 네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골똘히 보고 내가 어정쩡하게 따라 하고, 네가 검은 손톱의 손을 내밀면 내 검은 손톱의 손이 맞잡는 것. 의미 따위야 알 수 없더라도, 애초에 의미 따위는 없더라도. 그 놀이를 어떻게든 멈추지 않는 것이 나를 나 밖으로 구원해줄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타인을 따라 하며 말을 배우듯, 네 미지의 몸짓을 따라 내가 모르는 세상으로 나간다.”(286~287쪽)


책 속에서

나는 뭐가 그렇게 두려운가? 모멸이 무섭다. 존중받지 못할까, 사랑받지 못할까 두렵다. 그 결핍은 너무 뜨거워 되레 사람들을 쫓아버린다. 방심하면 세상이 언제든 날 지르밟을 것 같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자아를 지키는 보초병으로 자신을 세운다. 세상을 향한 의심의 찌꺼기가 쌓인다. 자아는 똥덩이처럼 좁은 장안에서 굳어가고 나는 고립의 복통을 앓는다. 마치 양면이 거울인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에 비친 나를 골똘히 바라보는 것 같다.
---pp.20-21

그때까지 나는 자연이 내 마음에 평화를 가져오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편의점이 안식처였다. 도시 불빛 속에서만 잠들었던 내게 까만 밤은 각성제다. 해변 근처 단독주택에 딸린 원룸엔 밤에 들어가다가 논두렁에 처박힐 것 같았다. 이판사판 큰맘 먹고 월세를 60만 원으로 올려 찾아봤다. (…) ‘좋다’ 싶으면, 그러니까 누수가 없고 단열이 돼 있는 한 줌밖에 안 되는 집이면, 한달살이용이라 월세가 100만 원까지 올라갔다. 그나마 반려견은 안 된다고 하니 돈 있어도 못 들어간다.
---p.27

미국에서 트럼프는 SNS에 흑인인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를 원숭이로 그린 영상을 올려 조롱했고,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항문을 에어건에 쏘이고, 지게차에 비닐로 결박당했다. 여성, 유색인, 빈민, 장애인은 ‘덜’ 이성적이며 ‘더’ 동물에 가까운 존재로 여겨져왔고 그렇게 차별과 착취가 합리화된다. 자기 서식지를 파괴하는 걸 보면 이성이 인간의 역량인지 의심스럽지만, 그렇다고 쳐도 이성이 개, 닭, 돼지, 돌고래, 참새의 역량보다 더 높이 평가받아야 할 근거는 없다.
---p.44

그래서 나는 사람을 신뢰하게 됐느냐면, 천만의 말씀이다. 아직도 모멸이 언제 튀어 오를지 모르는 두더지 게임기 앞에 뿅망치를 들고 서 있다. 이 게임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아스라한 안개 속에서 아리송한 모욕의 그림자를 낚아채고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이것 보라고.’ 나는 내게 무엇을 증명하려고 하는 걸까? 어쩌면, 나는 수치를 확인하려는 것 같다. (…) 나는 그 수치의 냄새로 내가 여기 있다는 걸 확인하는지도 모른다. 이 게임은 질 수밖에 없다. 나를 확인하면 나는 더러워지고, 내가 더러워지지 않으면 나는 내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가 없다
---p.70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 타인의 인정으로 세상에서 내 좌표를 확인하려고 발을 동동 굴러왔는데 그럴수록 점점 더 분노가 쌓였다. 나조차도 나를 물건 취급한 꼴이었으니까. 그런데 만약,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내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면? 다만 뚱땡이 몽덕이가 행복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오줌을 누이고 밥을 먹이는 것처럼, 다만 책방이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곰팡이를 닦고 책을 채워 넣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으로 나를 확인할 수 있다면?
---pp.77-78

그런데, 희한한 사람들이 있었다. 발품 팔고 기다리며 더 비싼 값으로 책을 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이단아들이 존재했다. 신발달인은 영어 공부 책을 책방에 주문해 며칠을 기다리고 할인 없이 샀다. 동네 돼지갈빗집 사장님의 관심사는 재테크이고 책방엔 돈 버는 법과 관련된 책은 한 권도 없는데 굳이 이 책방에 주문하고 기다린다. 정가로 책을 사는 것도 모자라 바리바리 먹을 걸 가져다주는 손님들도 있다.
---p.91

부추가 잘게 부서져 내 미뢰 속으로 침투한다. 시간을 타고 부추는 내 입속에서 쌉쌀했다가 구수했다가 비릿하고 까끌까끌하며 부드럽게 바뀌다 사라진다. 시시각각 다른 향과 맛의 결을 풀어내며 나와 섞인다. 시각과 달리 촉각이나 미각은 대상과 경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