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일가

무대일가

$19.46
저자

양신호

저자:양산호
지금까지그래왔던것처럼낮에는직장에다니고틈나는대로글을쓰고있습니다.다음생에다시오고싶지않지만,다시온다면,역시책을읽고글을쓰고꽃을키우고노래부르고있을것같습니다.
소설가.2001년《문학세계》에「매직을훔친아이」가,《문학과창작》에서신인문학상에「리오그란데를찾아서」가당선되면서문학활동을시작했다.수필집으로『지금은별을보며한걸음내디딜때』,소설집으로『장례식에의초대』,『슬픈레이먼드카버』가있다.논쟁소설『나의공방일지』,자전소설『내비도선생』을집필했다.현재한국문인협회회원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제5부
제6부
제7부
제8부

작가후기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물을길러온사람들대신빨래를하는아낙들이앉아있다.그곳을지나치자,마을에서유일하게소2마리를키우는세동이네집이나온다.그는아직한마리의소도없다.그다음처가소유의‘점뚱’이보인다.그곳에는아름드리호두나무수십그루가자라고있다.올가을에도그는호두를따기위해아이들을데리고와야할것이다.매년몇십가마니의호두를생산해내는아름드리나무를보자,동섭은태어난후과수를한그루도심은적이없다는것을깨달았다.난죽기전에아무것도남길게없군.
민자라불리는약간모자라는여자아이가사는집을빙둘러싸고있는것은돌을얼기설기얽어놓아구멍이숭숭뚫려있는보기힘든담이다.다들돌과돌사이에자갈을넣거나진흙을바르고그것도모자라담꼭대기에기왓장을입혀담을세우고있다.그곳을지나자,수십개의계단위에서있는한채의슬레이트집이나타난다.몇해전부엉댁이이사해사는집이다.
계단을거의다올랐을무렵동섭은갑자기배가아파오는것을느꼈다.너무많이먹었나?하지만곧그것이아니라는생각이들었다.원인은영수가돼지뒷발톱처럼틀어지기시작한이후매일마신막걸리때문이다.그러면서복부가차가워지기시작한것이다.좋은징조라고할수없었다.죽음이코앞에다가온느낌이들었다.
-p.100

둘은마을어귀에이르자,통과해야할지몇번을망설인다.멸시를받는사람들이란배타적이어서외부인을고운눈초리로보지않을것이분명했다.어떤해코지를할지도몰랐다.창수는경수에게주의하라는신호를한다.둘은마을을지나는동안숨을죽이며걷는다.둘은골목길을가다가‘점’마을사람이라도만나게되면뒤도돌아보지말고건너마을을향해뛰기로미리약속을해두었다.마을을통과하는동안창수는문둥이에게잡혀간을빼앗길까봐잔뜩겁을집어먹고산길을서둘러달리던때를떠올린다.왜이런일이생겨난것일까.한쪽이멸시하기때문에다른한쪽은하는수없이증오심을가지게된것일까.아니면대화라는것을해본적이없기때문에지나칠정도로서로에대해모르고있어서상대를괴물로여기게된것일까.
간신히마을안길을빠져나온두사람은논두렁길을걸어간다.다행히아무도만나지않았다.
“괜히겁을집어먹었군.”
창수는경수의얼굴을본다.아직도경계심을풀지않아표정이굳어있다.외나무다리앞에이르자,경수의표정이바뀐다.
-p.250

구판장에도착해서동섭은댓돌위에놓인송수화기를집어든다.
“여보시요?”
저편에서숙자의울먹이는목소리가들려온다.
“오빠,나요.우리시아부지가죽었소.”
“언제?”
사돈이죽었다고?그는가볍게속으로묻는다.여동생의말을듣는동안동섭은아버지가죽었을때숙자의옷차림을떠올린다.하얀소복차림의여동생은내내손수건을들고살았다.
“그래,알았다.”
그는짧게통화를끝낸다.사실이런일이아니면두사람은서로연락을취하지않았다.
“정자성기네즈그아부지가죽었다는구만그래.”
방문을열자마자그는태연하게전주댁에게말한다.놀랄만한일이생겼을때그가취할수있는가장마음에드는자세다.
“아니,얼매전까지만해도생생한양반이왜돌아가싰으까,잉!”
전주댁은약간놀라면서도그저평범하게반응하고있다.만약장모가죽었다고말하면아내는어떤반응을보일까.시커먼먹구름이비를내리듯눈물을흘리고폭풍에떠는나뭇잎처럼온몸을부들부들떨어댈까.문득동섭은그장면이보고싶다.
-p.340

“어떻게말이여?”
동섭은숙자가바보같은짓을하고있다싶었다.의리고인정이지금무슨소용이있어.같이가지남기는왜남아가지고지랄이지.바보같이.
“나도잘모르겄지만,어쨌든저좀살려주세요.금방이라도심장이벌름거려서죽을거겉애요.”
동섭은즉시그말뜻을알아들었다.그것은빚갚을때까지보증을서달라는말에다름아니었다.그는고개를젓는다.보증서는일은집안망하는일이라고믿고있었던그는그때까지누구에게도보증을선일이없었다.
“내가지금당장너를도와준다고해도그것은밑빠진독에물붓기여.긍께아무소리말고참는대로참아봐.그러다보먼눈이까뒤집힌동네사람들도차츰마음이약해져서그냥흐지부지허고말건게.”
“오빠,그래도…….”
여동생이두손을맞대고빌고있었지만,동섭은두번다시입을열지않았다.결국한숙자는눈물을글썽거리며자리에서일어난다.
-p.410

“아이구,불쌍한동상,어찌이렇게죽었는가?”
동섭은동생의사진을잠시본다.과거자신을죽일듯노려보고경멸의웃음을띄우던입술이거기있다.언젠가불우한처지를비관하며하늘을올려다보던눈도있다.하지만그것은동섭의생각에지나지않는다.동휘는얼음속에든꽃처럼냉랭하고파리한형상으로누워있다.동섭은빈소에향을피운후밖으로나온다.
동섭이담배를피우는동안,누군가한쪽손을잡는다.깜짝놀란동섭은손을잡은자를본다.동규다.그는감히손을빼지못하고동규를따라간다.무슨일이벌어질것처럼동섭은두려워진다.동규는영안실문을들어서면서손을놓는다.
시립병원영안실은본건물과는떨어진곳에있는아주큰창고같은건물이다.이곳은다른병동과달리거대한냉동창고를갖추고있다.두사람이오는것을보자,영안실을지키던머리가벗겨진오십대남자는책상에앉아있다가자리에서일어난다.남자는무엇을묻는듯동규의얼굴을한번쳐다본다.동규가고개를끄덕거리자,남자는무덤덤한표정으로책상서랍에서일회용비닐장갑을꺼내양손에낀다.
-p.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