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풍경화 : 공학자가 그려낸 유년 시절의 감성 스케치

오래된 풍경화 : 공학자가 그려낸 유년 시절의 감성 스케치

$17.00
Description
세월의 흔적으로 희미해진 풍경
그 조각들을 글과 그림으로 되살리다!

추억은 과거를 돌아보는 창
현재를 비추는 거울
미래를 위한 자양분이다!

정년 퇴임을 앞둔 공학자 정경훈이
따뜻한 감성으로 그려낸 추억의 풍경

이 책은 저자의 유년 시절과 이제는 점점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전라도의 옛 농촌 일상을 담아낸 소박하고도 따뜻한 기록이다. 저자가 글과 그림으로 풀어낸 삶의 풍경들은 공학자로 살아온 이성적인 삶과 대비되어, 어린 시절의 따뜻한 순간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소박한 풍경 속에 숨겨진 감성과 기억의 조각들은 독자의 마음을 훈훈하게 어루만지고 그리움의 정서로 가득차게 할 것이다.
책 속에 펼쳐진 이야기는 하얀 눈으로 덮인 겨울 마당, 봄비 내리는 날의 여운, 여름 장마 속 대나무 숲의 서늘함, 가을 들녘의 낙엽 냄새 그리고 따스한 화롯불 옆 가족과 같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이다. 당시 사용하던 단어와 사투리를 생생하게 살려, 독자로 하여금 반세기 전 시골 마을을 눈앞에 그릴 수 있게 하였다. 『오래된 풍경화』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감각과 추억을 일깨우는 따뜻한 선물이다.

저자

정경훈

저자:정경훈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근무하고있으며,정년퇴임을얼마남겨두지않은시점에서그동안만들고모아온그림과학회지에실었던글을가다듬고덧붙여한권으로묶어냈다.

목차

들어가는말

I빛바랜풍경화

눈이온날
겨울소경(小景)
동짓날
화롯불
이잡기
목욕
정월대보름
병아리
봄빛
봄날은간다
봄비
정적(靜寂)
보리타작
모내기
대나무
장마
여름밤
단수수
멱감기
소나기
모정(茅亭)
풍뎅이
엿과아이스께끼
백로(白露)무렵
가을날
가을운동회
나락거두기
바가지
깡통차기
메주
만화
입동(立冬)무렵
밤길242
겨울학교
강물

II기억의조각들

물고기
우리개‘에스’
홍수
강태공아저씨
집텃골
추석의기억

맺는말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어머니가아랫목벽에기대어솜이불속으로발을넣고뜨개질을합니다.우리들의발이이불속에서두더지처럼움직이자,애호박만한털실뭉치가이불위를돌돌구르다가이불고랑아래로실을풀어내며달아납니다.기다란대바늘과함께쉴새없이움직이는어머니의손가락리듬에맞춰,붉은색털조끼가마치물을머금은콩나물이자라듯점차커나갑니다.
50쪽

온집안에는정적이감돕니다.어른들은모두들일을하러나갔나봅니다.멀리서낮닭우는소리가바람결에실려옵니다.나무판자와통나무로걸쳐진똥통아래서부터똥오줌이썩는냄새가올라오고,쉬파리와벌처럼생긴날벌레들이왱왱거리며칙간여기저기를분주하게날아다닙니다.쌀튀밥같은하얀고자리들도(2)나름대로방향을잡고스프링처럼몸을늘였다줄였다를반복하면서꼬물꼬물똥통을따라열심히기어오르고,어딘가로끊임없이행진합니다.칙간구석에는쟁기와써레가흙이묻은채로놓여있고,그위로먼지가엉켜붙은거미줄이주렁주렁매달려있습니다.칙간의뒤쪽흙담벼락이무너져내려,수수깡과막대기가드러난구멍으로햇살이새어들어와칙간의한쪽을밝힙니다.그눈부신구멍으로선선한바람이들어와먼지먹은거미줄을흔듭니다.칙간을가리고있는거적때기에는낡은대바구니가걸려있고,그속에신문지와낡은노트를잘라만든휴지조각이들어있습니다.
100쪽

물속에서한참을놀다보니귓구멍을막았던쑥범벅이물을먹고빠져나가고,물이귓구멍속으로들어가면귓속이둔탁한울림으로짓눌립니다.물이들어간쪽귀를아래로삐딱하게고개를젖혀모둠뜀뛰기를반복해보지만,여전히귓속이무거운것에눌린것같이답답하고머릿속이팅팅울리기만합니다.강가돌무더기에서납작한돌멩이를하나주워물이들어간귀에대면,햇볕에뜨겁게달궈진돌멩이의열기가귓바퀴로전해집니다.고개를다시젖히고모둠뜀뛰기를시도하던순간,갑자기따끈한한줄기의물이귓구멍을타고흘러나옵니다.머릿속에돌멩이라도박혀있는것같았던묵직한느낌이한순간에사라지면서귓속이개운해집니다.
150쪽

청군과백군으로나뉘어릴레이달리기가시작됩니다.네명의주자가바통을손에쥐고운동장트랙을힘차게내달립니다.발을내디딜때마다벌겋게달아오른아이들의볼때기가출렁이고,입을꾹다문채전력으로달리는아이들의진지한얼굴에땀이송골송골맺힙니다.운동장반대편에서같은팀의다음주자가초조한마음으로기다리며,앞으로튀어나갈자세로대기합니다.하지만어느순간,주자들이바통을주고받는과정에서실수로주자들이뒤엉킵니다.바통을운동장바닥에떨어뜨리면서순간적으로순위가바뀌고,응원석에서는아이들의기쁨의환호와아쉬움의탄성이뒤섞입니다.
200쪽

하루의수업이끝나면,뜨거웠던난로는열기를잃고안쪽에허옇게쌓인조개탄재만남아있습니다.주전자로난로안에물을뿌려남은온기마저식히고나서야교실을나섭니다.교사(校舍)입구복도에있는신발장에는운동장에서묻혀온진흙이여기저기묻어있습니다.시루떡고물처럼눈이뿌려진아침나절의운동장은학교건물의그림자가드리워져백색의영토를보존해주지만,햇살이머물다간오후의운동장은눈이녹아팥죽처럼질퍽해집니다.움푹진푹패인아이들의발자국들이운동장에어지럽게널려있습니다.아이들은벽돌로만든화단가장자리위를평균대위로걷듯이조심스레줄지어이동합니다.비틀거리면서도용케중심을잡으며교문쪽으로걸어나갑니다.눈이녹아질척한운동장흙을바짓가랑이에덜묻히려는심산입니다.
250쪽

집에돌아오자마자빈비닐비료포대를들고뒷산으로솔방울을따러갑니다.학교난로에쓸불쏘시개를마련하려는것입니다.산에서소나무를베는것은법으로금지되어있어,대신솔방울을모으는것입니다.솔방울이많이달린소나무가지를골라,기다란장대로밤을털듯솔방울을떨어뜨려비료포대에담습니다.왜솔나무에(3)달린솔방울은단단히붙어있어막대기로는쉽게털리지않습니다.큼직하고튼실하기는하지만솔방울가장자리에가시가있어손으로살며시붙잡고뱅뱅돌려야만따낼수있습니다.솔방울에서송진냄새가나고손에는투명하고끈적끈적한송진이달라붙습니다.재빨리소나무줄기에손을문질러송진을닦아내려애써보지만,손바닥에는여전히끈적한얼룩이남습니다.그리고소나무삭정이에붙은관솔도함께꺾어모읍니다.관솔은송진이붉게배어있어,불에오래타면서까만그을음을내기때문에불쏘시개뿐아니라불장난하기에도제격입니다.
3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