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영혼을 찾아서(하) (상상과 진실의 언어로 쓴 낭만주의 음악가들의 초상)

음악의 영혼을 찾아서(하) (상상과 진실의 언어로 쓴 낭만주의 음악가들의 초상)

$20.00
Description
음악은 인간의 영혼이 남긴 가장 뜨겁고 진실한 기록이다!

낭만주의 거장들의 고뇌와 영광, 그리고 내면의 울림을 따라
서양음악사의 숨결을 되살린 이야기 음악사

위대한 음악은 인간의 고통과 진실에서 태어나며
시대를 넘어, 인간을 위로하는 또 하나의 언어다!

베를리오즈에서 차이콥스키까지,
삶과 예술의 진실을 찾아 떠나는 감동의 여정

저자는 대학 강단에서 30여 년간 마주해 온 ‘서양 음악사의 상상과 진실’이라는 화두에 ‘이야기 음악사’라는 자신만의 해법을 제시한다. 이 책은 단순한 연대기적 기록을 넘어, 역사적 현실 속 음악가들의 행위와 그 음악의 상상적 세계 사이를 투시하려는 시도다.
저자는 베를리오즈의 문학적 감성, 쇼팽의 눈물, 슈만의 내면, 리스트의 영광과 이중성, 멘델스존의 오시안적 기질, 바그너의 민족주의, 베르디의 애국심, 푸치니의 베리스모, 그리고 차이콥스키와 러시아 5인조의 고뇌에 이르기까지, 낭만주의 시대를 관통한 거장들의 삶을 촘촘히 따라간다.
이 책의 백미는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작곡가의 영혼에 접속하는 방식이다. 어린 시절 겪은 홍수의 공포 , 남한산성 숲길에서의 사색 , 볼로냐 아레나 극장의 촛불 등 지극히 사적인 경험은 딱딱한 이론을 넘어 ‘살아 움직이는 과거의 삶’을 현재로 끄집어내는 통로가 된다.
『음악의 영혼을 찾아서』 하권은 교과서가 알려주지 않는 작곡가들의 맨얼굴과 그들의 ‘내재한 영혼의 모습’을 마주하게 한다. 위대한 예술이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자 고통의 산물임을 깨닫게 하는 이 책은,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진실한 감동과 위로를 선사할 것이다.
저자

송진범

저자:송진범
1953년충북영동심천에서태어나고성장했다.1975년서울대학교음악대학기악과를졸업,1984년동대학원교육학과를졸업하여교육학석사학위를취득했다.1987년빈F.슈베르트음악원에서음악교육학과기악을전공하여디플롬을취득했다.2002년단국대학교대학원교육학과에서로교육철학박사학위를취득했다.서울대학교음악대학,서울교육대학교음악교육학과,전남대학교음악대학음악교육학과등에서음악사,음악미학,음악교육학등을강의했다.1996년이후광주여자대학교음악과교수를역임하고2017년서원대학교사범대학음악교육학과교수를퇴직했다.연구논문으로「한국의민족주의사조가음악교육에미친영향」,「아도르노의사회비판적음악교육론연구」,「모차르트의혼과오케스트라를위한론도K.371에대한분석적연구」,「MMCP의한국적모델을위한제문제와방향모색에대한소고」,「아도르노의사회비판적음악교육론의현대적적용가능성에관한연구」,「현대사회에서요구되는음악교사의역할」「학생오케스트라의운영실태와발전방향에대한교육학적고찰」등다수가있다.저서로는「음악의도해」,「음악의진실과허구」,「음악교육학」,「구조와역사로본음악」,「음악의영혼을찾아서(상)(하)」,「음악의사회」가있다.

목차

프롤로그

문학을이야기한엑토르베를리오즈
눈물로노래한프레데릭쇼팽
낭만주의를수놓은로베르트슈만
오시안적낭만주의자멘델스존
프란츠리스트,그영광의이름
오페라와조아키노로시니
빈첸초벨리니
주세페프란체스코베르디
빌헬름리하르트바그너
지아코모푸치니
표트르차이콥스키
알렉산드르보로딘
모데스트페트로비치무소륵스키
세자르프랑크
니콜라이림스키-코르사코프
가브리엘포레
카미유생상스

에필로그

참고문헌

색인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이러한발라드의개념은18세기낭만주의사조가문화사적흐름으로일반화할무렵피아노를비롯한기악곡의형태로발전하기시작합니다.그들은악기를통해시적인감정을표현하려했고이는자연스레악기를통해사랑이나민족적이야기를담아내려했던것입니다.
쇼팽의발라드는모두4곡만이남아있는데그스케일과성격적인특징으로하여금많은연주가로부터도전과사랑을받는음악입니다.물론그의발라드는문학적인이야기가있고그분위기를표현하려고한측면이강해서낭만주의적예술사조에가장어울리는작품이라할것입니다.쇼팽의발라드는폴란드의시인미츠키에비치(G.Mickiewicz)를빼곤말할수없습니다.쇼팽은자신의조국폴란드를사랑한나머지헝가리의전통적시인미츠키에비치를존경하고그의시를탐독했으며자신의음악속에시의문학적의미를표현하려했습니다.그러나그시의내용을그대로옮겼다기보다는자신이받은이미지를자신만의문학적틀로여과해표현하려했다는것이중요합니다.
쇼팽의발라드제1곡은G마이너로26세때인1836년미츠키에비치의시「콘라드발렌로드(KonradWallenrod)」를읽고난이후의작품으로서정적이고슬픈감정이내포된그래서쇼팽의내면세계가잘표현된점이특징입니다.쇼팽의발라드가가지는특징은고전주의음악이갖는형식적구조와는다르게주제의변형이다양하고주제는재현되기도하며반음계적인패시지를보이고있다는점일것입니다.
50쪽


1.멘델스존의낭만적기질
서양음악사에서멘델스존의존재는슈베르트와슈만과함께가장로맨틱한문학적기질을가진음악가로당시괴테를비롯한실러와하이네등의작품세계에가장적절하게호응했던작곡가로기록되고있습니다.20세가되면청년은청운의꿈을펼칠어떤환상에이끌리게되나봅니다.멘델스존역시그의오시안적기질을확인하고싶어하는욕구에끌려영국과스코틀랜드지역을여행하게됩니다.물론그여행은여러가지세세한목적을달성하기위한계획도포함되어있었습니다.그러나무엇보다도멘델스존은자신이북유럽의칙칙한하늘과끝없이이어진검고구부러진해안선을따라말을타고또걷는사색과힐링의여행을원했던것이지요.
서두에서언급한베르겐의피오르처럼고요하고어두컴컴한해안선을따라걷고그지역의민요를채집하면서멘델스존은이를음악적착상의기회로생각했습니다.
100쪽


그리고자신의작품에이러한새로운성향을도입하고도전하기위해노력했습니다.청중들이이러한시도를좋아하든좋아하지않든그것은문제가되지않았습니다.
리스트는제자들에게관대했지만그들로부터오해를받기도했습니다.그러나반격을할수없었던이유는그가독일태생이아니라는점과외국인으로살고있다는점들이작용한것같습니다.오히려리스트는이에굴하지않고열심히자신의음악을전파했습니다.그럴수록많은신진작곡가들을만나고그들을음악계에소개하는일을열심히했습니다.그중에후에역사에남은작곡가들은러시아작곡가보로딘,노르웨이작곡가그리그등입니다.그들을만나음악적인충고와작곡에관한토론을즐겼습니다.누구나인생을마감할때면주위로부터서서히잊히게마련입니다.활동도뜸해질뿐아니라자신이성취했던모든자산들이점차새로운시대의빛에가려지기때문입니다.리스트역시사람들로부터잊히고한물간작곡가로받아들여지는시대변화에심한모멸감을느끼기도합니다.그러나역사는또다른인물과사상을요구하고있었습니다.미래의음악즉인상주의음악이도래하고있었습니다.
리스트는이러한시대의변화를잘알고적응하며자신만의역할을마무리했습니다.
150쪽


이공연은대성공이었고그를인정하는많은귀족들과일자리들이기다리고있었습니다.무엇보다도밀라노필하모닉협회지휘자의역할이주어졌고카지노데노빌리광장에서재공연이이루어졌습니다.
이앙코르공연은베르디에게있어매우중요한계기가됩니다.
하나는밀라노의귀족사회에베르디라는음악천재의출현을알리는계기가되었고또하나는밀라노필하모닉지휘자피에트로마시니와관계가신뢰속에형성되었던일입니다.귀족사회와의연결은이당시로서는매우중요한일입니다.그들의관심과사랑이없다면음악가로서는사실상설땅이없는것과마찬가지였습니다.그들의음악에대한사랑은매우적극적이어서음악가의삶을좌우할수있는목줄과도같은것이었습니다.음악계의거장이었던마시니와의관계가정립되었음은베르디가그들최정상의음악가들무리속에서자리하고있음을알게하는지표이기도했습니다.그러나중요한것은마시니로하여금밀라노에서의음악활동을보장받는것이었습니다.마시니는자신의일거리중상당수를베르디에게할애했고결국베르디는적지않은수입을밀라노에서올릴수있었습니다.그러나밀라노에서의성공은베르디에게있어그리오래가지못했습니다.자신을후원해준바레치의권유로인해고향인부세토로돌아가야했던것입니다.
200쪽


어쨌든그해여름바그너는이오페라의1막을완성했고후원자이자연정의대상이었던마틸데에게작품의일부를선보이기도합니다.그리고오스트리아속국이었던베네치아로여행을떠납니다.타국에서의외로움은바그너에게마틸데에대한그리움이되어돌아왔습니다.2막에서바그너는이러한연정을이렇게표현합니다.
“몸과마음을던져마침내신들과같은죽음을기다린다.”
그는이룰수없는사랑을이오페라를통해전에없던새로운기법으로정신세계의미묘함을그려내고있습니다.
250쪽


1.차이콥스키의따스한인간미
1870년대프랑스와이탈리아를중심으로한유럽의오페라계는소위베리스모운동에따른매우격정적인음악이유행했습니다.
이런오페라의선호현상은당시계몽주의사조에따른인간존중사상과일치합니다.정치적탄압과사회적불평등,이를극복하기위한젊은지성들의반정부활동들이문학이나예술적이미지를통해시민들에게자연스럽게파고들었던것이지요.사실차이콥스키는이러한유럽의인권운동이나반봉건적정치체제에대해별흥미가없었지만1876년친구인바이올린연주자페르디난트라우프의장례식참석하기위해파리를방문하면서그곳의인권운동에관심을갖게되었습니다.여기서차이콥스키는비제의오페라〈카르멘〉을감상한후인간의존엄성과인종적차별에대한여러가지생각을하게됩니다.
300쪽


1848년아버지의반대에도불구하고자신의피아노제자였던데보펠리시테와결혼해안정된생활을시작했습니다.이때발표된오페라〈농장의사내들(Levaletdeferme)〉이었는데이역시가사와선율간의결합이원활하지못하고극적인연출도부족해흥행에실패하게됩니다.이제결혼생활을시작한프랑크에게흥행실패는매우큰좌절을안겨주었습니다.그러나신앙생활을통해심리적안정을찾고교회안에서필요한오르간곡을쓰면서작곡가로서,또연주가로서의바쁜삶을살았습니다.이때만들어진작품들이3개의마리아찬양,6개의오르간소품입니다.이6개의오르간소품은〈환상곡C장조〉를비롯한〈교향적작품〉,〈프렐루드;푸가와변주〉,〈페스토랄〉,〈기도〉,〈피날레〉로구성되어있는데,오르간의교과서라할수있는바흐의토카타와푸가와같은대위법적전개와는확연하게다른모습이었습니다.이작품의특징은관현악적색채를강조하고있으며각소제목에서알수있는주제의성격을나타냄으로써리스트의교향시에서얻을수있는낭만주의적의도를엿볼수있게합니다.
350쪽


독일낭만주의의대가들이생상스의젊은시절음악적모티브를자극했고이탈리아의오페라와명연주가들이극장을환희의도가니로장식하던시기였습니다.이런파리의음악소비적사회는창작이나재현이나수요나말그대로음악의활화산이라고볼수있을것입니다.이런환경속에서생상스는12세의나이로파리국립음악원에입학하는행운을얻게됩니다.물론그의음악적재능과연주능력이이를가능하게한것이겠지요.그는이미1년여전10세때이미파리의유명연주장이었던살플레이엘에서데뷔음악회를가질정도로재능이뛰어났고
알레비라는학교작곡과교수의도움으로오페라와교향곡의작곡법을익혔습니다.생상스는매우지성적이었지만한편내성적이고독특한성격으로주위사람들을놀라게합니다.그는음악원의도서관이나빈강의실을찾아그공간이주는묘한분위기와경험들을간직했습니다.그리곤그기분을음악으로그려내기도했습니다.음악대학의강의실이란묘한느낌이있습니다.소리와음향의생산기지역할을하는그공간은여러가지소리의역학관계를만들어내기좋은분위기였을것입니다.실제로생상스는이공간에서음악적영감을얻곤했으며16세의나이로음악원최고의오르간부문1등상을받기도합니다.그경력덕분에생상스는젊은나이에교회음악교육기관이었던니데르메예르의강사로근무하기도했습니다.여기서그는포레를제자로만났고그와는오랫동안사제간이자친구사이로서로돕는음악적동반자로지내게됩니다.
4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