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역에 남은 사람들

기수역에 남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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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잊힌 자리에서 피어오르는, 가장 조용한 인간의 목소리

기억의 그늘에서, 우리는 비로소 인간을 이해하게 된다!

삶의 일부분은 늘 말하지 못하고 삼켜버린 이야기, 전하지 못한 이야기로 이뤄진다.
최순희의 소설집은 그 침묵의 자리에 오래 놓여 있던 사람들을 다시 불러세운다.
지리산 골짜기에서 화해하지 못한 역사의 상처를 안고 살아낸 가족, 낙동강 기수역에서 철거 앞에 선 마지막 주민들, 속을 드러내지 못한 채 세월을 건너온 친구들 등.
작가는 이 잊힌 존재들에게 섬세한 시선을 건네며 “한 개인의 삶은 어떻게 시대와 자연, 사회적 폭력 속에서 흔들리고 버텨왔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 놓는다.
『기수역에 남은 사람들』의 아홉 편은 각기 다른 인물의 서사처럼 보이지만 결국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에 대한 한 편의 긴 사유로 이어진다.
세대를 거쳐 남겨진 트라우마, 말하지 못한 역사, 사라져가는 마을의 시간과 그곳을 품었던 자연, 그리고 “누군가에게 닿지 못한 마음”들이 미세한 결을 이루며 흐른다.
거창한 영웅담도, 극적인 구원도 없는 대신 고요하지만 강인한 인간의 존엄이 있다. 낙동강의 윤슬처럼 잔잔히 흔들리며 남아 있는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고 나면, 우리는 자신이 살아온 자리를 다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저자

최순희

저자:최순희
한국방송통신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한뒤,그는여러문학단체에서활동하며꾸준히창작을이어왔다.

「미인이되고싶은여자」,「가덕도에부는바람」,「캥거루들의행진」등단편을발표했고,장편『은하』와시나리오『우리다시만나는날』을통해서사의폭을넓혔다.문예빛단문학대상과낙동강문학상을수상했으며,한국예술인복지재단창작지원금에도세차례선정되었다.

목차

작가의말

울지못하는새
기수역汽水域에남은사람들
뻐꾸기둥지
그믐달
이웃집여자
제사의전설
사랑을위하여
바람의노래
느티나무가있는마을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전부터시험만끝나면꼭한번가고싶은버킷리스트1호라고했다.여행!작은설렘이32살내가슴을파고들었다.그래떠나자.고래찾아떠나자.주검처럼시퍼런고래바다로가보자.고래바다여행선에서정말재수좋아야만난다는고래떼!동남아여행지에서본돌고래쇼말고망망대해바다에서떼거리로몰려다니며펄쩍펄쩍뛰는커다란고래를운좋게만난다면나는즐거울까?즐거운마음일까.
갑자기고래를만난다는기대로내심장이툭툭뛰고가슴이부풀었다.이래도되는걸까?이런기분얼마만인가.아나에겐이런설렘과감동이필요해.내일당장예약하겠다
고말하는기동인얼굴에도달뜬풋풋함이살아났다.옆에서듣고있던낙동아주머니가긴한숨을내쉬었다.
“좋을때여.어디를못갈까날아서라도가야지.”
보름뒤,울산고래바다여행선타는날을기동민도나도초등학교소풍날처럼들떠서손가락을꼽으며하루하루를기다리는심사가되었다.
기동민이떠났다.그는아주기분좋게웃으며훌훌히기수역을떠났다.그는나에게평생잊지못할바다돌고래쇼추억을안겨주고떠난남자다.
-50쪽


“야,남광수!뭐,이집을넘기라고?누워서팔십노모밥받아먹는주제에집까지넘보냐?간덩이가부었네.”
“출가외인이어째말이많네.썩꺼지라고?”
“만날백수주제에엄마기초연금도다빼먹고,엄마는주머니에돈한푼없이살고.너는누워서밥받아먹고.참잘하는짓이다!”
영자할매밥먹다울상이다.
“니는오랜만에친정와서와시끄럽게하노?내가빨리죽어야이꼴저꼴안볼낀데!”
광수가숟가락탁던지고발딱일어나빽소리친다.
“뭐형님누나?하나있는동생이오십이넘도록장가를못가도본체만체하지.집에만오면맨날한다는소리가왜일안갔냐?몇신데누워있냐,온갖잔소리다하고서.내
가누워있고싶어누웠냐?돈벌기싫어안버냐고?나한테해준게뭐있냐고?더럽게난리야.”
“야남광수,누군입이없어가만있냐?치킨집차렸다때려엎고오토바이사고내고,일한다고중고트럭사교통사고내어폐차시키고,우리한테미안하지도않냐?”
-100쪽


젊은날친구들부부여행에사정사정해서가도남편은혼자돌았다.자기혼자구경하고는입구에서기다리고있었다.해외여행에서도일행과도무지어울리지않아자영은부부동반여행은포기하고친구들과가니남편신경안써너무좋았다.세월이흘러남편은부장으로근무하다정년퇴직했다.친구들말이바뀌었다.
“쯧쯧!자영아온종일집에서둘이얼굴맞대고어찌사냐?”
“남자들은한나절이래도나가야지.세끼밥상차리기도보통아니야.”
“울남편퇴직하고집순이되니알겠더라.땡하며집,자영이수고많았어.”
“전생에나라를구했냐,날마다신랑업어주라며?이젠내속알겠냐.”
“그래그래.너마음열번이해한다.이젠업어주지마라.”
-150쪽


“일안해도입에밥들어오고,맨날술퍼묵고노름하니팔자는상팔자여!”
끝자큰언니수자가결혼할남자를데리고왔다고동네가발칵뒤집혔다.군인이라고했다.동네서연애란아주금기였는데,결혼도안한남자를집에데리고오는일은동네
큰사건이라다들끝자네집만바라보았다.끝자아버지는느티나무그늘에서자랑이늘어졌다.예비사위가비싼담배몇보루나가져오고미제담배도가져왔단다.미제담배
는맛도희한하다고자랑했다.소주아닌미제깡통술도가져왔다며입이귀에걸렸다.아재들은생전구경도못한미제담배맛보고싶어끝자아버지기분맞춰주기바빴다.
아재들은또갑이아재를속으로부러워도하였다.
“딸자식키우기아름이지.촌구석에붙잡고있으면배만골리고등신되어.”
-2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