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우리가족의역사에서지워진사람이야.
그래서내이야기를직접써야해.”
디아스포라·퀴어문학의정점리랑그바드의대표작
소외된존재를포착하고그자리를만들어주는것은문학이오래도록붙잡아온역할이다.한국의역사적상흔을경험한재일조선인이나이민자1~3세대,탈북민등다양한디아스포라서사가최근몇년간꾸준히주목받은것도그연장선에있다.《나의통역사》는그중상대적으로공백으로남아있는해외입양인여성의이야기를담아냈다.어린시절덴마크로입양된주인공이원가족을만나기위해수년간한국을방문한다.친부모의언어를말할수도,알아들을수도없는그는함께한국에온한국계덴마크인통역사에게의지하며가족과만남을이어나간다.‘어느삼계탕집’에서‘어느피자헛’으로,‘큰언니집’에서‘부모님댁’으로장소가전환되며이어지는대화는이방인의시선속‘동시대한국’이라는배경위에서섬세하게펼쳐진다.
전작《그여자는화가난다》를통해입양인이자퀴어라는이중의소수성을다룬바있는작가리랑그바드는《나의통역사》에서이를한층날카롭게그려내며“입양인이나퀴어로살아가는문제를다룰때가장뛰어난‘번역자’”라는호평을받았다.수년간만남을이어왔지만여전히통역없이는소통이불가능하고,말해지는것보다숨기는것이더욱많은가족과의대화.주인공은회의감과함께문득자신이레즈비언이며통역사는여자친구임을밝히고싶다는생각에사로잡힌다.하지만딸이라는이유로타국으로입양되었던그녀가,언니들의남편과조카들에게는여전히존재하지않는사람인그녀가이비밀을말할때,가족들은만남을지속하려할까?
작가의자전적요소가강한이소설은가족,언어,문화를잃었지만자신의뿌리와다시연결되고자하는주인공의여정과그내면의분투를아프지만따뜻하게그려냈다.사랑하는사람에게있는그대로받아들여지고싶다는욕망과내쳐질지모른다는불안을교차시키며,소설은입양인이자퀴어라는특수한경험을보편의감각으로까지열어놓는다.자신의존재를끊임없이통역하고해명해야했던이들의마음에오래도록남을소설이다.
“그말은내가통역하지않을게.”
대사와공백으로빚어내는
연결과단절이라는문학적경험
《나의통역사》에는인물간대화가대사와지문으로직접적으로구현되어있다.장황한설명이나불필요한묘사는없다.쉽고빠르게읽을수있는소설이다.동시에,특정한순간에오래머물게되는소설이기도하다.재미와여운때문이기도하지만,언어의장벽에서오는깊은슬픔이가장큰이유일것이다.혈연으로맺어진가족임에도통역되기전까지는아주사소한말도나눌수없다.표정,행동,어조같은비언어적소통을동원해도마찬가지다.리랑그바드는한국어라는미지의공간을‘공백’으로남겨두며,언어의장벽뿐아니라감정적인거리감마저고스란히드러낸다.이거리감을일시적으로완화해주는것이바로통역사다.
문학평론가전승민은통역사를“당신과세계를동시에경험하고공유하는특별한반려자”라고표현했다.한국계덴마크인이자그의여자친구인통역사는언어를변환해주며가족의연결고리가되어준다.그뿐아니라관계에서오가는말을조율하고,대화중흐르는감정을함께공유한다.‘나’-통역사-가족이라는흥미로운삼각구도에서언뜻중립적으로보이지만,주인공에게세계를받아들이는틀을제공하고그들관계로부터영향을받기도한다.이는주인공이친부를내내북한출신으로알아왔으나그가죽은후에야이것이통역의오류로인한오해였음을알게되는장면이나,통역사가가족의반응을두려워하며주인공의커밍아웃을통역하지않겠다고거부하는장면등을통해분명하게나타난다.
이로써그간언어에덧씌워져있던환상이벗겨진다.언어가나를설명하고상대를알아가게하며우리를연결시키리라는환상.《나의통역사》는언어가만들어내는단절,그리고통역할수없는감정을행간에서은근하게드러내며때로는침묵이언어보다더욱무겁고진실하다는사실을내비친다.
“트라우마를넘어
서로를포기하지않고
관계를회복하고치유하는이야기”
시와소설을비롯한여러예술형식을가로지르며입양,퀴어,인종차별에대해이야기해온리랑그바드는《나의통역사》에서마침내기존언어의한계를뛰어넘는새로운언어를구축해냈다.바로‘침묵의언어’다.작품의주인공처럼한국에서태어났으나어린시절덴마크로입양된그는덴마크어,영어,한국어로이작품을쓰려했으나실패했다.두개의가족,문화,역사를안고있음에도이중언어사용자가아니었기때문이다.그럼에도“우리의원래언어,우리자신의입양서류,그리고우리가왜입양됐는지에대한진실”이라는‘공백’을이야기하기위해그는기존의방식을버리고“디아스포라에사는우리모두를위한언어”,침묵의언어로이작품을써내려갔다.이는《딸에대하여》작가김혜진이추천사에서말하듯“디아스포라의영토안에서자신만의언어를발견해나가는서글프고완강한투쟁”이다.
말할수없는것을말하고자하는시도,닿을수없는것에닿고자하는이시도는작품속주인공과도겹쳐진다.그는이해할수없는것을이해하고자한다.어렸을적이별했으나재회하게된자신의존재를언니들이왜남편과조카들에게알리지않는지,어째서자신을입양보내게했던가부장적인구조가지금까지반복되는지,왜어떤말은할수있고어떤말은할수없는지.문학평론가전승민은“사랑이란(중략)온전히이해하는일이불가능에가까운당신의세계를기어코알고자하는열망의몸짓”임을짚으며주인공의여정을‘사랑’으로해석해낸다.
한국전쟁을경험한부모세대와그들의딸들,그리고조카로이어지는가족3대와해외입양인여성‘나’의재결합을그린이소설에서인물들의간극은결코좁혀지지않는다.다만리랑그바드는결말을희망의방향으로열어놓는다.《나의통역사》는“언어의장벽,문화적차이,세대간격차,그리고트라우마를넘어서로를포기하지않고회복하고치유하는이야기”이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