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소론찬요 21 (양장)

화엄경소론찬요 21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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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탄허 스님의 『신화엄경합론』을 잇는
우리 시대 또 하나의 『화엄경』 역경 대작불사!
“여러분은 화엄경이라는 경전에 대해서 귀가 따갑게 들으셨을 것입니다. 화엄경의 본래 모습이 무엇인가 하면, 저 차 소리, 기차 소리, 온갖 잡소리, 새소리, 벌레 소리, 산비탈의 물소리, 우주 전체가 화엄경 아닌 것이 없습니다. (중략) 그렇게 되면 전체가 화엄경입니다. 전체가 화엄경이라고 한다면 따로 들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부처를 따로 찾을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지옥을 피할 이유가 없으며, 천당을 구할 이유가 없습니다. 살았다고 좋아할 것이 없고, 죽는다고 서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화엄경 도리입니다.”
-탄허 스님, 『탄허 강설집』 중에서

‘불교 경전의 꽃’이라 불리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약칭 『화엄경』)은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의 세계를 보여주는 최상의 경전이다. 하지만 천상과 지상을 오가며 일곱 곳(7處) 아홉 차례(9會)에 걸쳐 설해진 『화엄경』의 내용이 워낙 깊고 오묘한 데다 그 분량 또한 방대하여, 불교에 해박한 사람들도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다.
이에 대강백 탄허(呑虛, 1913~1983) 스님이 『화엄경』 번역을 비롯해 중요 화엄학 관련서를 모두 집대성하고 현토역해(懸吐譯解)하여 『신화엄경합론(新華嚴經合論)』(전 47권)을 간행하였으니(1975년), 이는 한국 근대불교사에 획기적인 일로 평가받고 있다. 번역과 출판에 무려 17년이 걸렸으며, 원고 매수 62,000장에 이르는 대작불사였다. 이 책을 계기로 스님들을 비롯해 재가불자들도 불교 경전에 쉽게 다가가기 시작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점차 기복신앙이 주를 이루던 신행 풍토가 진리탐구의 수행 정진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신화엄경합론』이 간행된 지도 어느덧 40년을 훌쩍 넘는 세월이 흘렀다. 현대인의 안목으로는 방대하게 집대성한 화엄경의 요체를 쉽게 따라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춰 『화엄경』의 개요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좀더 간결하고 명확한 『화엄경』 강설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탄허 스님의 제자인 탄허기념박물관장 혜거 스님(금강선원 선원장)이 불교TV를 통해 『화엄경』 강좌를 열고, 이를 토대로 『화엄경』 역경의 또 다른 대작불사 원력을 세우게 되었다. 『화엄경소론찬요(華嚴經疏論纂要)』 120권을 현토(懸吐)하여 완역하는 지난한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저자

혜거

저자:혜거
1959년삼척영은사에서탄허스님을은사로득도,김제흥복사등에서수선안거했다.1988년금강선원을개원하였고,《한암대종사문집》과《탄허대화상문집》편찬위원장을역임했으며,2005년탄허불교문화재단제7대이사장으로취임했다.불교방송‘자비의전화’상담과경전강의,불교TV경전강의등을통해부처님의가르침을설파했다.현재금강선원선원장을비롯해동국역경원장,한국전통불교연구원원장,(사)아시아태평양공동체이사,대원정사회주,탄허기념박물관관장,대한불교조계종포교원청소년심성개발위원회위원장등을맡고있으며2018포교대상대상을수상하였다.

목차

화엄경소론찬요제94권
이세간품제38-5

화엄경소론찬요제95권
이세간품제38-6

화엄경소론찬요제96권
이세간품제38-7

화엄경소론찬요제97권
이세간품제38-8
제7.끝맺으면서권면하는부분
제8.상서가나타난부분
제9.증명성취의부분
제10.게송부분

출판사 서평

『화엄경』은비로자나세존께서보리도량에서처음정각을성취하신후,일곱도량아홉차례의법문에서일진(一眞)의법계(法界)와제불의과원(果願)을보여주시어미묘한현지(玄旨)와그지없는종취(宗趣)를밝혀주신최상의경전이다.이처럼『화엄경』은법계와우주가둘이아닌하나로그광대함을말하면포괄하지않음이없고,그심오함을말하면갖춰있지않음이없어공간으로는법계에다하고시간으로는삼세에통하고있다.
이러한이유에서『화엄경』은근본법륜으로중국은물론동양각국에서높이받들며수많은주석서가간행되어왔다.그러나세상에널리알려진것은청량국사의『대방광불화엄경소초(大方廣佛華嚴經疏)』와통현장자의『대방광불화엄경론(大方廣佛華嚴經論)』이다.소초(疏)는철저한장구(章句)의분석으로본말을지극히밝혀주었고,논(論)은부처님의논지를널리논변하여자심(自心)으로회귀하고있는것이특징이다.이처럼청량소초와통현론은양대명저(名著)로모두수증(修證)하는데에지극한궤범(軌範)이었다.
탄허대종사께서는이러한점을토대로통현론을주(主)로하고청량소초를보(補)로하여번역하심으로써『화엄경』이동양에전해진이후동양최초의『화엄경』번역이라는쾌거를이룩하셨다.일찍이한국불교에침체된화엄사상은대종사의번역에힘입어다시온누리에화엄의꽃비가내려화엄의향기로불국정토를성취하여더할수없는,지극한법륜을설하셨다.
그러나대종사께서열반하신이후,불법은날로쇠퇴하고중생의근기는날로용렬하여방대한소초와논을열람하기에는역부족이었다.이에대종사의『화엄경』을다시한번밝히기위해서는또다른모색을필요로할시점에이르렀다.보다쉽게볼수있고간명한데에서심오한데로,물줄기에서본원을찾아갈수있는진량(津梁)을찾지않는다면대종사의평생정력을저버리게된다는절박한마음이없지않았다.
청대(代)도패(道)대사는청량의소초와통현의논가운데그정요(精要)만을뽑아『화엄경소론찬요(華嚴經疎論纂要)』를편집하였다.이는매우방대한소초와논을축약하여,가까이는청량국사와통현장자의심법을전수하였고멀리는비로자나불의묘체(妙諦)를밝혀주는오늘날최고의『화엄경』주석서이다.
이에『화엄경소론찬요』를대본으로하여,다시대종사의번역서를참고하면서현대인이보다쉽게이해할수있는번역서를간행하기에이르렀다.
이제돌이켜생각하면무상한세월속에감회가적지않다.내지난날출가입산하여겨우이레가되던날,처음접한경전이『화엄경』이었다.행자생활을시작한영은사는대종사께서오대산수도원이해산된후,이의연장선상에서3년결사(結社)를선포하시고『화엄경』번역이라는대작불사를시작하여강의하셨던,한국불교사에한획을그려준역사의도량이었다.
그당시대종사께서는행자인나에게『화엄경』을청강하라하시면서“설령알아듣지못할지라도들어두면글눈이생겨안들은것보다낫다.”고권면하셨다.이제생각해보면행자출가즉시『화엄경』공부자리에참여했다는것은전생의숙연(宿緣)이아니었으면어떻게그당시그법회에참석이나할수있었겠는가.이는행운중행운으로다겁의선근공덕이아닐까생각되며,아울러늦게나마대종사의영전에하나의향을올리는바이다.
처음『화엄경』설법을듣는순간,끝없는우주법계의장엄세계가황홀하고법계를맑혀주고무진보배를담고있는바다의불가사의한공덕이라는대종사의사자후가머릿속에쟁쟁하게울려왔을뿐,그도리를이해한다는것은나의근기로서는도저히불가능한일이었다.“쭉정이만도못하다.”고꾸지람을하시던대종사의방할(棒喝)을맞으며영은사에서의결사가끝난후,나는단한번도『화엄경』을펼쳐볼엄두를내지못했다.
그러던몇해전,무비스님께서범어사에서『화엄경』을강좌하시면서서울에서도『화엄경』강좌를열어보라고권할적만하더라도언감생심『화엄경』을강의하겠다는생각을하지못하였다.그러나씨앗을뿌려놓으면새싹이돋아나듯,반드시인연법은사라지지않는모양이다.영은사에서의『화엄경』인연이자곡동탄허기념박물관에화엄각건립불사를발원하게되었고,화엄각건립불사를위하여『화엄경』강좌를열기에이를줄은꿈에도생각지못하였다.
미력한소견으로강좌를열면서정리된강의자료를여러뜻있는이들과다시한번토론하고강마하면서〈세주묘엄품〉출간을시작으로연차적으로간행하고있다.
---「『화엄경소론찬요(華嚴經疎論纂要)』〈간행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