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구름 잎사귀

흰 구름 잎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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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를 쓰는 일은 사람들 마음속에 씨앗 한 알 묻는 일.
나는 자연이 보낸 하루를 선물 받았어요. 리본을 풀며 정성껏 살아야지, 부스러기 남기지 않는 삶을 살아야지, 다시 누군가에게 배송될 리본을 묶으며 생각해요.
낯선 곳, 모르는 이여, 저희 숲속 창고에 쟁여놓은 맑은 바람과 푸른 고요를 띄워 보내요. 곁에 있어도 될까요? 그대가 다시 모든 것들을 키워내는 초록 들판이 되길 기원합니다. 우리 함께 초원의 빛으로 살아봐요. 낯선 곳, 모르는 이여, 깡마른 나무 같은 사람이 거칠지만 향기로운 풀 속에서 그대를 무작정 기다립니다.
저자

위난희

월간『시사문단』에서「순천의봄」(신인상)으로등단했으며한국시사문단작가협회,팔마문학회동인으로활동하고있다.생태환경을지키기위한20여년의영림일지경험을토대로쓴,첫시집(『나무가하는말,산책할까요』)으로제20회풀잎문학상대상을수상했다.오늘을사는모든사람들의마음이조금이나마가벼워지고가지런해지길소망한다.현재지속가능한노루숲을일구고있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내안에정원을가꾸다

꽃이하는말
강물냄새
선암매
야생속으로
와온바다
꽃밭
다시목련꽃
서어나무아래서
오월
맞춰보실래요,꽃이름
여름백합만개
엘리멘탈
나는엉겅퀴다
숲의시작
첫사랑
백합새순
겨울숲에서
순천만정원의꿈

제2부산밭에서일하다

자갈감자
풀섶메모
한겨울
시월단상
백로
칠월하루
잠깐소나기
무조림
늙은호박
오후의발견
하늘은나날이높아지고
소전(小田)
팥을털며
폭염,담백한피서
겨울소반
시절(時節)이빠르다
키부츠를꿈꾸며
산속부엌에서

제3부그한사람을만나다

오래된냄비
그녀는아름답다
시(詩)
외갓집
마음
모든삶은작고크다
옥잠화
집으로
한글
까치정비소
맑은눈빛
논물
부엌의마음
풀치조림
소원풀이집
고집
고향연가
푸른고요

제4부모든것은연결되어있다

뒤란
골목길
사랑을다시시작한다
마음에대하여
기분꽃같네
함박눈
봄은부풀어
마음이드러누울때
새벽밥
선택
여린것들은힘이세다
청춘일지
사랑에대하여
통과의례
다시봐도선암사
붙잡다
새벽숲은신이돌아다닌다
수수경단

제5부호모루덴스를꿈꾸다

아프리카춤을추자
여름밤
층층나무의비밀
땅을조금갖던날
어머니의장날
여름을씻다
상추쌈
동글동글
언제나봄은
행복지수
바위에앉아
비밀통로
높이헤엄쳐
잔소리
콘크리트에서냉이를캤다
흰구름잎사귀


해설

출판사 서평

이시집은시인이기전에한인간으로서,한인간이기전에아주작은자연의일부로서살아왔던삶의단편이자,자연과함께했던푸르디푸른순간들의기록이다.

시인의첫번째시집『나무가하는말,산책할까요』에서시인은바람에흔들리는나뭇가지들의말소리를알아듣는특별한귀를가지고있다.“당신이지나온겨울을알아요”라며불쑥손을내미는나무와함께시인은삶의여정을함께하면서독자를다정한연대를느낄수있는건강한에코토피아로초대했다.

두번째시집『흰구름잎사귀』에서는삶의어떤색깔속에서도자연속의인간본질을놓치지말라고신신당부한다.위난희시인은사람을너무나좋아하는사람이다.사람에대한그의관심은“그것을아시나요/세상제일재미있는사람여행을(「아프리카춤을추자」중에서)”이라는진술을통해드러나고,“사람을사랑한다는건/그마음에얹혀져/새털처럼가볍고포근해진다는것(「꽃이하는말」중에서)”이라는진술은사람에대한시인의깊은애정을잘보여준다.시인은삶의방향을놓치고울먹이는이들에게“떨어지는모든것들은언젠가부활했다/세상기슭어디에있을그대여/맑은눈빛은삶의결정적단서다(「맑은눈빛」중에서)”라고말한다.

다벗었다고생각했다
적절히잘벗는고수의
진면목과맞닥뜨리기전까지
비교하지말자다짐해도
저등성이의햇살과물이좋을까
미련스럽게자꾸거슬러
오르는법이궁금했다

세상길은끊임없이혼란스러워
겨울한가운데뻗어나간나뭇가지
절대고독과무거운침묵을생산해내는
너의우람한시간을목격하기전까지

다벗었다고생각했다
적절히잘벗는고수의
진면목과맞닥뜨리기전까지
뭇영혼을재워두고직면하는
정제된생명을만드는너의시간속에서
무조건적인사랑을받았던때가떠올랐다
다시돌아갈수없는곳에대한
그리움이환히만져졌다

눈의무게로찢어지는어깨의파열음
골짝을파헤치는물살의비수에
터진속살을내주면서도
속속들이안으로만갈고있는
너의굴곡을체험하기전까지
다벗었다고생각했다
적절히잘벗는고수의
진면목과맞닥뜨리기전까지
-「겨울숲에서」전문

‘겨울숲’은‘적절히잘벗는고수’다.온갖것들이얼어붙는겨울에도얼지않고흐르는‘계곡물’은,숲을오르는발걸음들을더높은상류로이끈다.겨울의한가운데로뻗은‘나뭇가지’가‘절대고독’으로서서‘무거운침묵’을생산하는동안,‘겨울숲’은수많은영혼들을품속에재우고봄에터져나올‘정제된생명’을잉태중이다.모든것을벗어버리고여린숨결을품는‘겨울숲’을통해시인은‘무조건적인사랑’을받았던옛날을떠올리고,다시돌아갈수없는시간과공간에대한그리움을환해진손길로더듬는다.모든것을내어주고더높고깊은곳을찾아거슬러오르는,‘적절히잘벗는고수’의‘진면목’과맞닥뜨린시인은무거운겸허를안은채숲을빠져나온다.
「숲의시작」에서‘숲’이치유와성숙을이끄는장소였다면,「겨울숲에서」의‘겨울숲’은절대고독의세계이자,여린숨결들을품는생명의원천이다.‘눈의무게’로찢어지는어깨의‘파열음’과‘골짝’을파헤치는‘물살의비수’는품속에잠든‘뭇영혼’들을위해모든것을벗어버린‘겨울숲’의희생을잘보여준다.이처럼시인이자연물을대상으로보여주는사유도결국에는사람을향해있다.훌훌다벗고,누군가에게온전한사랑이되는일,그사랑을위해단하나도남김없이‘나’를희생하는일.그것은시인이삶을살아가는이유이다.

어머니목수건을풀자
옥잠화흰대궁이피었다
늘기진한뒷덜미
받쳐주던흰옥양목을풀자
후드득떨어지던
남이볼라훔치던
새벽눈물일까
서러운저녁의사연일까

어머니목수건을풀자
옥잠화흰대궁이피었다
아무리곤란하더라도
대문을들어서면탈탈털어라
하루를공손하게정돈해라
어머니세수하려고목수건을풀면
옥잠화흰꽃대궁이희게흔들렸다
몸종을데리고시집을왔던
큰살림의친정을
한번도꺼내지않고
검불을모아일궈낸산수벌
소나기지나간푸른들판일하다
기진한여름한철
잠시목수건풀어거푸세수하시고일어섰다
옥잠화흰꽃대궁이따라일어섰다
-「옥잠화」전문

위난희시인이타자를인식하는방식은다분히시적인데,비유를통해대상을인식하는시인의이러한독특한지각방식은시인이자기인식을넘어세계를보다선명하게이해하고,자아와세계의적절한관계를수립하는데에일조한다.
「옥잠화」에서시인은‘어머니’를‘옥잠화’로인식한다.어머니가‘목수건’을풀고일어서자,‘옥잠화’가‘따라’일어섰다는표현은시적대상인어머니와보조관념인옥잠화의완전한합일을이루면서,어머니라는존재에대한그어떤자세한진술보다도더욱뚜렷하고선명한인상을남긴다.남이볼세라새벽에‘눈물’을훔치던여인,목에둘렀던‘수건’으로제몸을‘탈탈’털어서하루를정리하던여인.부유했던‘친정’의도움을조금도빌리지않고,‘검불’을모아일궈낸여인의살림.이렇듯정갈한삶을살아낸시인의어머니는그늘진곳에서조용히피어났다가,바람이불면‘탈탈’꽃가루를날려보내고,아침이되면수줍어꽃잎을오므리는‘옥잠화’를너무나닮아있다.저녁나절에피기시작해서밤에활짝꽃을피웠다가아침이되면수줍게꽃잎을살짝오므린다는이꽃덕분에독자들은시인의어머니를선명하고명징한실체로서받아들이게되는것이다.

한고집하는남자를사랑했네
대나무쪼개지는푸른파열음
다시세울수없는그남자를사랑했네
단단한아카시아나무못처럼징박아놓으면
흔들리지도부러지지도않는남자를사랑했네
매사견디는일에이력이붙은사람
사사건건내면의생채기가차올라도
어쩔수없다던답답한그속을따라걸었네

몇달며칠폭염에사납던노동에도
한번도마음을문밖에세워두지않던사람
자디잔조팝꽃일상을다들어주던사람
오늘도쇠가죽고집이정성껏밭을갈고있다
긴세월의언덕을넘어오고서야
나는그남자의푸른고집을
한없이지칠줄모르는
꿈쩍도않는한결같음을사랑했구나
그삶을따라온일이참으로잘했구나
청춘을다바친사람은내가아니라그대였음을
-「고집」전문

시인은자신이사랑한남자를‘대나무쪼개지는푸른파열음’,‘견디는일에이력이붙은사람’,‘한번도마음을문밖에세워두지않던사람’으로인식하고있다.시인은추상적일수밖에없는대상의내적측면을다양한감각을통해구체화하거나,감각의전이를통해이중적인요소들을통합하는방식으로제시하는데,이러한시인의‘보여주기’능력은너무나탁월해서독자들은대상이나장면을떠올리는과정에서심미적으로고양되는느낌을받게된다.
그렇다면,시인이대상과의거리를좁히는방식은어떨까?그것은시간이라는범주를통해대상의의미를규명하고,점점그본질에가까이다가가는모습으로나타난다.‘한고집하는남자’는시간이라는빛을통과하며‘푸른고집’이되고,‘푸른고집’은다시숙성의시간을거쳐‘꿈쩍도않는한결같음’으로변주된다.시인또한그러한시간의흐름을통해성숙한눈으로‘그대’를읽고,‘청춘을다바친사람이내가아니라그대였음을’깨닫게된다.

새벽에일어나면
별은늘단정히앉아서기다렸다
그별을닮고싶어서
어둠을개어정돈하고따라나섰다

순한흙냄새벌어진고랑마다
씨앗을품을테다
땅이하는소리를들었다
희게젖어있던새벽이었다
어두운것들이유순하게물러나며
대지에숨결을부어주자
두근두근고랑이부풀어벌어졌다
검게물든저녁이었다
버티고버티던마음을던져두고
몸을혹독하게부렸던날
허리를펼수도
다리를쪼그려앉을수도없이
벗겨진자리마다온갖통증이생겼다

보다못한별이다시일어나앉았다
나도따라서어둠을정돈하고일어섰다
순한흙냄새벌어진고랑마다
씨앗을품을테다
땅이하는소리를다시들었다
더이상통증따위는두렵지않다
붉은해가파도처럼부서졌다
섬광체가나를통과했다

새벽에일어나면
별은늘단정하게앉아서빛났다
나는별보다먼저일어나고싶다
진실을키울테다
처음으로몸과마음이만나
소리치는소리를들었다
-「땅을조금갖던날」전문

이번엔시인이‘땅’에대한욕심을좀낸모양이다.‘별’이닮고싶은시인은서둘러‘어둠’을개고‘별’을따라나선다.‘대지’는부푼‘숨결’로‘고랑’을벌리고,시인은그곳에‘씨앗을품을테다’하고단호하게외친다.씨앗하나를심는일이,우주하나를심는일이라고했던가.‘땅’과살붙이고살아가는일이결코쉬울리없다.땅에씨앗을심는동안벗겨진시인의‘자리’는여기저기‘통증’투성이다.‘허리’를펴지도‘쪼그려앉’지도못하는시인을다시일으켜세운것은다름아닌‘별’이다.시인은‘땅이하는소리’를듣고이번에는‘더이상통증따위는두렵지않다’고외친다.‘붉은해’가부서지고,‘섬광체’가온몸을통과하지만,별을꿈꾸는시인에서이제그러한고통은무력해보인다.시인은‘별’처럼‘진실’하게빛나게될날을꿈꾸면서,‘벌어진고랑’사이로다시‘씨앗’을심느라열중이다.

이처럼사람을사랑하는시인은,그러나그사랑만큼이나아프고깊은상처를입고,우연히‘숲’이라는공간을찾아든다.‘관계’가‘상처’로귀결되는현실과달리‘숲’은시인의아픔을치유하는공간이자,사람으로부터상처입은시인이다시넉넉한마음으로또다른누군가를사랑할수있도록이끄는,내면적성숙의공간이기도하다.우리는그녀가토해내는초록언어들을통과하여오늘하루를살아보는힘을얻을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