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팡에 앉아서 (길에서 배운 기후와 지리)

쉼팡에 앉아서 (길에서 배운 기후와 지리)

$22.00
Description
평생 기후학과 지리를 연구해 온 지리학자의
삶과 사유를 담은 지리 인생에세이
제주의 바람과 들판에서 시작된 한 지리학자의 삶은 결국 세계의 기후와 사람을 향해 나아갔다. 『쉼팡에 앉아서』는 기후학을 연구해 온 이승호 교수가 평생 걸어온 길 위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저자는 제주도 중산간 마을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이후 서울에서 오랜 시간 학문과 교육의 길을 걸으며 30여 년 넘게 학생들에게 기후학을 가르쳐 왔다. 북극과 중앙아시아, 몽골 초원과 아프리카, 아일랜드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을 답사하며 만든 자료는 고등학교 교과서와 대학교 지리학과 전공 필수 도서인 『기후학』의 구석구석을 채워 주었고, 그때의 경험이 이 책 곳곳에 살아 숨 쉰다. 답사가 직업인 덕에 다닌 곳도 많은데, 제주에서 서울까지의 왕래도 만만치 않다. 장소가 많아 여행에세이 같기도 하지만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다. 왜 지리였는지에 대한 고백이자, 그로 인해 얻은 유의미한 결실을 담은 지리 인생에세이다. 나아가 자연과 인간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 기록이다.

풍요로웠다면 나 역시 시간을 우선순위로 두었겠지만, 항상 비용이 우선순위였다. 그런 덕에 서울과 제주를 잇는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볼 수 있었다. 용산역에서 완행열차에 자리를 잡고, 열 시간 넘게 시달린 후 목포역에 내렸다. 11시에 출항하는 안성호를 타기 위해 거의 몸무게의 절반이 넘는 배낭을 짊어지고 여객선 터미널로 내달렸다. 나를 태운 안성호가 다도해를 벗어나자마자 시작한 뱃멀미는 제주항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힘든 여정이 헛되이 시간만 낭비한 것은 아니었다. 배가 묶이기도 하고, 노령산맥에 눈이 내리면 고속버스가 거북이걸음을 하기도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호남지방과 제주도의 기후를 비교적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런 여정 덕이었다. _시작하면서 중에서


저자의 고향 마을에는 공동목장이 있었고, 그곳으로 가려면 급경사의 길을 올라야 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언덕에 올라설 즈음, 쉴 만한 곳이 마련되었다. 먼 길에 쉬어야 할 사람들이 편하게 앉아 숨을 고르며 그간의 안부를 묻고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곳, 쉼팡이다. ‘쉼팡’은 ‘쉼’과 ‘팡’이 합성된 제주도 말로 팡은 평평한 턱을 뜻한다.
가파른 길을 오르던 사람들이 잠시 앉아 숨을 고르고 안부를 나누던 장소처럼, 이 책 역시 독자에게 잠시 머물며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공간이 된다. 담담한 문체로 살아온 시간을 들려주는데 그 속에 기후와 지리, 인간과 환경이 있다.

제주도 중산간 마을에는 어디나 공동목장이 있었다. 마을은 대략 해발 150m 전후에 자리 잡았고, 공동목장은 해발 200~300m인 곳이었다. 겨우내 쇠막(외양간)을 지키던 가축은 봄에 새싹이 나오기 시작하면 공동목장으로 올라가 가을이 올 때까지 자유롭게 풀을 뜯었다. 주인이 가끔 목장을 찾아 확인하고, 필요한 약을 발라 주면 그만이었다. 공동목장은 거의 나무가 자라지 않는 광활한 초원이었고,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있어서 가축들을 불러 모았다.
(중략) 문제는 그 시기에 집집이 가축을 키울 여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먹고살 일을 해결해야 하니, 모두 밭으로 나가야 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번쇠(番소)’라는 공동 사육 제도를 운용하였다. 작은 동네 단위로 10~15가구를 한 묶음으로 하여 순번을 정해 놓고 하루씩 가축을 돌보았다. 결국 10~15일에 한 번꼴로 당번이 되어 50여 마리 소를 책임져야 했다. 일손이 하도 귀하니 학교가 끝난 시간부터는 아이들이 그 일을 담당하였다.
나에게도 그런 일을 맡아야 하는 날이 찾아왔다. 낮은 구름이 우중충하게 덮이고 바람이 불어 싸늘한 날이었다. 공동목장과 마을 중간쯤에 자리한 야산을 찾아 어머니로부터 풀을 뜯고 있는 가축들을 인계받았다. 따분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다. 돌담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졸고 있자니 날씨가 더욱 싸늘하게 느껴졌다. 그 기억 때문인지 오늘날에도 늦가을 우중충한 날씨를 보면 번쇠가 떠오른다. 가을걷이가 끝날 때까지 번쇠가 운영되어야 했으니 일 년에 두세 차례 당번이 돌아왔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상황에 잘 대응하는 제도였다. _가을 추위: 번쇠 이야기 중에서

제주도에서 가장 추운 시기라는 말은, 달리 말하면 이사하기 좋은 날이 아니란 의미이다. 제주도에서 추운 날에는 눈이 내리기 마련이다. 날이 추우면 하다못해 진눈깨비라도 내린다. 요즘이야 모두 포장 이사를 하지만 괴나리봇짐 이사를 하려면 눈이든 진눈깨비이든 반가울 리 없었다. 제주도 사람들은 하필 그렇게 이동하기 불편한 날에 이삿짐을 옮겼다. 결혼식 날도 날씨가 중요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전통적으로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 결혼식 하객을 맞아야 했는데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 마당에서 손님 맞기가 좋을 리 없다. 반면, 궂은 날씨가 이어지면 야외의 일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일 년 내내 쉴 수 없었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한겨울조차도 죽어라 일을 해야 했다. 한창 일을 해야 할 시기에 동네잔치 차려놓는다면, 행여 생색내기로 오해받지는 않았을까? 동네 사람들에게 덜 미안하게 추워서 일하기 힘든 날에 결혼식 날을 잡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_겨울에 결혼하였다 중에서

낮은 구름이 깔린 가을날이면 고향의 번쇠를 떠올리는 저자 이승호는 TV 뉴스에서 기후를 다룰 때 가끔 인터뷰로 연결하는 전문가 중 하나이다. 『쉼팡에 앉아서』는 그런 그가 제자들과 차를 마시며 나누었던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세대는 다르지만 편안하게 앉아서 같은 학문을 사랑하는 동지끼리 삶을 이해하는 눈으로 자연과 일상을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세상의 풍경을 읽고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따뜻한 쉼팡 하나를 내어줄 것이다.
저자

이승호

제주도중산간마을에서태어나이웃마을초등학교를,제주시에서중·고등학교를다녔다.그후대학시절을포함하여인생대부분을서울에서보냈다.1994년에제주대학교지리교육과에서근무하였고,1995년부터건국대학교지리학과에서기후학관련과목을강의하고있다.북극에서남극까지를목표로지구를답사하고있다.중앙아시아실크로드,중국의서역,몽골과아프리카초원,북극등을제자들과혹은자녀와답사하였다.특히가족과함께아일랜드에서지내는1년동안7만km넘게운전하면서곳곳을둘러보았다.『기후학』,『한국의기후&문화산책』,『자연과의대화,한국』,『아일랜드여행지도』등을저술하였고,『우리의얼음이사라지고있다』,『완벽한빙하시대』등을공동으로번역하였다.

목차

머리말
시작하면서/가야했던길

1부세월이흐른다
모두그렇게살았다
버릴것이없었다
감이익어갈때면
첫도외(島外)여행
우황청심환의아픔
야속함을남긴첫해외여행
군입대도힘들었다
그날의고구마
잊을수없는할머니두분
강릉,그리고인연
서른다섯의믿음
명당사랑!
지구가참좁아요!
27년만에다시만난친구

2부삶에서지리를배우다
제주도고사리는누구나좋아한다
가을추위:번쇠이야기
몽곳놈의새끼
고구마에서귤로
보리밥이야기:감히쌀밥을?
답사가결혼을선물하였다
하나의길에서도단풍차이가
겨울에결혼하였다
김장맛은다양하다
호남선을달리던여름완행열차
오지를달리던꼬마기차
섬에선물이귀하지만
남녀칠세부동석은경상도에서
따불빽이싫다던염부아저씨
제주도옥돔과영광굴비

3부길에서지리를배우다1-우리의산야에서
지경동산과나의시력
구름도안개처럼
눈은언제나사람들을즐겁게한다
제주도와서울은눈도다르다
경험으로배운다
겨울철고향가는길
강릉에우데기가?
서울과제주는추위도다르다
참석하지못한고등학교졸업식
섬은묶여봐야맛을안다
겨울철배를타봐야
섬사람들은말이빠르다!
내가안다고남들도아는것은아니다1
내가안다고남들도아는것은아니다2

4부길에서지리를배우다2-먼나라들판에서
돌멩이하나도신성하다
해가기울었는데
안경을거부하는사람들
인연과넓은발
어디사람이장사를잘할까?
사막의사람들과도시사람
사막에선보이는것이다가아니다
여행중에는몸에맞는물을
알라의뜻으로
벌써저녁을달라고요?
술즐기는사람들
다시만나지못한인연
여행에는돌발상황이있기마련
아프리카첫여행에서
그들의눈으로그들을바라봐야!
왜이누이트만남을우려했을까?
가는날이똥푸는날?
북극에서술?
따뜻한이누이트

마무리하면서/흐르는강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