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입맞춤

잔인한 입맞춤

$18.50
Description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인간 예수와 유다의 관계,
이 책은 성경의 복음에서 가룟 유다를 이해했던
기존의 방식을 돌아보며,
그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있었던 일들의 의미를 새롭게 규명하고 있다.
이 책은 성서가 희극과 비극 사이를 넘나든 삶의 대서사시라는 점에서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의 사건을 다시금 되짚어본 나름의 결실이다. ‘누가 유다에게 배신자라는 누명을 씌웠는가’라는 부제가 전체적 의미를 함축하듯이, 신약성서에서 배신자로 인식된 가룟 유다의 내러티브를 기존의 이해방식과 달리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하고자 한 시도다. 그 핵심은 정말 유다가 예수를 배반했는가 하는 점이다. 설령 성서의 주장대로 유다가 예수를 배신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어쩌면 예수와 유다의 내밀한 합의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거나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복음서 저자들의 일방적인 견해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관점에서 성서 행간의 의미를 추적하고자 했다. 이로 인해 성서를 재맥락화해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글은 예수의 죽음 없이는 성립할 수 없었던 기독교가 어째서 유다를 배신자로 몰아가야만 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천착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유다와 관련된 4복음서의 내용을 성서에서 인용하는 것이 불가피했고, 이를 토대로 면밀하게 비교하고 검토하고 있다.
저자

박진희

저자는자신과신의관계를이율배반적이라고말한다.무신론자인저자의견해가옳다면신은존재하지않을것이고,그렇지않고신이존재한다면자신의견해야말로그저처량한자기만족에불과하다는이유에서다.신과자신의관계가이율배반적이지않길바라는신앙인의관점과는사뭇다를수밖에없다.하지만저자는무신론자이기에감지하지못한자신의편견이유신론자이기에감지하지못했을신앙인의선입견을들춰내는일에만몰입하려는열정을경계하고자한다.또한종교와아무런이해관계도없으니그의견해야말로객관적일것이라는자기합리화와모순으로부터도자유로워지길원한다.무신론자인작가가신이라는존재와그개념에이제껏꼼짝없이붙들려있는까닭일것이고,바야흐로이글이저자의이력에있어첫줄이길바라는이유이기도할것이다.성서가신앙의차원을넘어서서인류의유산으로생각하는저자는끊임없이성서의행간과공백을메워가는작업을시도하고있다.

목차

서문

1장유다,대제사장들에게예수를팔아넘기려고그들과만나다
유다는누구인가
배신자에대한정경복음서저자들의입장
히브리성서가예수의몸값에미친영향
마지막까지예수와함께한여성들과그후예들
오늘날까지부정적이기만한유다라는명칭
예수의족보와유다라는이름들
육신으로얽힌예수의가족
예수시대의대제사장들
예수가빌라도앞으로끌려가기전에

2장유다,최후의만찬자리에서슬그머니빠져나오다
최후의만찬에대한정경복음서저자들의입장
‘13’이라는불길한숫자와다락방
최후의만찬에대한사뭇다른관점
히브리성서에서차용했을유다의‘은돈삼십닢’
기도에대한예수의유산
예수에대한유다의배신은하나님의명령인가
예수가저주한무화과나무

3장죽지않았더라면유다,그날의일들을다르게전했을것이다
사본으로만구성된신약성서
제자들과함께라서더욱고독했을예수
진정한의미의십자가
세속적인,너무나세속적인교회의전통
무심코지나치지말아야할신약성서의이름들
히브리성서에서차용한또다른파편적서사들

4장유다,뜨거운감정을들키지않은채차디차게입맞추다
예수의마지막기도와얽힌정황들
공관복음서가전하는예수의가상사언
성서를근거로통용되는속설들
예수가사랑한제자요한이전하는그의가상삼언
예수와성가족
시편69편을바탕으로되살린예수의참된가르침
예수의일곱가지말이가상칠언인이유
잔인한입맞춤현장속에서놓치지말아야할사항들
유다의배신에대한바울의입장
유다의배신에관한새로운관점
예수의자의식
‘배신자’라는유다의역할에후새가미친영향
유다의시각으로예수를바라보고자한복음서
악마에대한기독교의입장
관계적일수밖에없는겸손과교만

5장유다,배신자라는오명을벗고이책에서안식을찾다
예수의웃음에담긴첫번째의미
예수의웃음에담긴두번째의미
예수의웃음에담긴세번째의미
예수의웃음에담긴네번째의미

출판사 서평

우리가미처못본유다를둘러싼이야기
그안에정경복음서의미스테리가숨어있다

오늘날까지도유다의배신은잔인한입맞춤이라는비정한수식어가따라붙어다닐만큼그야말로충격적인사건이다.공관복음서의마가복음과마태복음만하더라도유다의배신을다룰때는사탄을언급하지않는다.마태복음은마가복음보다유다를훨씬더야비하게묘사하는데,마가복음에서확실하게제시하지못한배반의동기를예수의몸값이많든적든이를노린자의소행으로몰아가고싶어한다.누가복음은유다의이야기에훨씬더가혹한요소를가미했다.누가는사탄이가룟유다를배신으로끌어들였다고말한다.요한복음은유다를두고직접적으로악마라고까지하는데,요한의입장에서는이런유다라면삼백데나리온씩이나하는아까운향유를예수의발에다붓는광경을차마지켜만볼수없었기에위선을떨었다고이해한다.요한에게유다라는작자는타고나기를사탄(누가복음에서얻은영감일테지만),즉태생적으로악마였다.마가복음,그리고마태복음과누가복음을통해서는최후의만찬직후가룟유다가한동안그자리에서꾸물거렸는지아니면그자리를박차고나왔는지조차알수없다.그래서유독요한복음의다음과같은구절이눈길을사로잡았을것이다.“유다는그빵조각을받고나서,곧나갔다.때는밤이었다.”이것이13이라는숫자에불길한기운을불어넣었을믿음의강요였던셈이다.그리고이러한믿음이점차집단적인신앙으로자리잡으면서낮보다밤이,빛보다어둠이,사랑보다증오가,자비보다분노가,축복보다저주가오직한사람,바로가룟유다에게만퍼부어졌다.

하지만전체신약성서에서의아한점도있다.바울은기독교선교에서결정적인인물인데,왜바울은가룟유다의배신이야기라든지빈무덤이야기라든지예수부활에대한여인들의증언이든지간에이를그들에게들었을법도한데왜그가작성했다고인정되는서신,즉데살로니가전서,갈라디아서,고린도전·후서,빌립보서,빌레몬서,로마서등에서이를함구했을까?만일유다가예수의부활을선포하는데주도적역할을담당했다는전승이떠돌았다면,누가가왜그토록유다의최후를처참하게전했는지도짐작할수있게된다.누가는자신이열렬히믿고자한예수의부활을전적으로유다에게맡기지않으려고했을것이다.그게아니라면마가가유다의최후와예수의부활을동시에다루지않았던이유는무엇인지앞으로도알수없으리라.하지만만일당신이이제까지붙들었던당신의믿음을돌아보고자한다면,당신은마가가유다의최후와예수의부활을함부로전하지않았던이유에한걸음정도는가까이다가설수있다.

유다복음,우리가미처몰랐던유다에관한또다른목소리

초기교권주의자들은유다의희생을전하는문서와함께다양한복음서를금서목록으로지정하고삼엄하게감시했다.그럼에도뒤로빼돌려진몇몇필사본이존재한다는풍문은20세기에이르기까지줄기차게떠돌아다녔다.그가운데유다복음이있다는소문도무성했다.실제로유다복음은존재했다.미국의성서학자바트어만은유다복음에관해이렇게말한다.“이복음에따르면유다는예수를배반한것이아니라예수가원하는일을했습니다.예수가전하려고한진리를유다한사람만알고있었기때문입니다.”로버트프라이스도이렇게말했다.“유다는자신의행위가배신으로보일지라도예수를배반하기위해모든노력을기울였다.이를통해유다는우리의구원을위해뜻깊은일을완수했다.우리는유다를존경하고칭송해야한다.왜냐하면유다를통해십자가의구원이우리를위해준비되었으며하늘로부터내려온계시가이로써이루어졌기때문이다.”

그런데놀랄만한점은유다복음전에도이러한목소리가있었다.니코스카잔차키스그리고발터옌스같은소설가들도자신들의영감을유다복음에빚졌던게아니라자신들의견해가틀리지않았다는점을사후의찬사로써유다복음을통해확인받았다.가룟유다의배신을새롭게조망하는이러한견해는믿음의강요라는선택지가두개뿐인이분법적인신앙관과결코어우러질수는없다.앞으로도대다수기독교인은끊임없이유다가저주받았다며멸시하길원할것이기때문이다.

유다를위한변명,배신자라는오명을벗고이책에서안식을찾다

예수가마리아에게서태어났을지라도그리스도는무덤에서태어났다면,예수가인류의죄를대속하려고십자가에못박혀최후를맞이했다는믿음이야말로그의죽음을더욱숭고하고장엄하게만든유다의고발없이는불완전할수밖에없었을것이다.그러니까예수의죽음은유다의잔인한배신의입맞춤없이는인류의극소수가감당하기도하는위대한희생과별로다르지않았을것같다.저자는다른무형의십자가를짊어졌던가룟유다가이제라도억울함을풀고고이잠들길진심으로기원한다.이책은이러한관점에서가룟유다를이해해왔던기존의전통적방식부터살펴보고,다윗의요청으로그를배신한척행동했던‘후새’라고하는인물과예수의사람이었던유다를겹쳐봄으로써그날겟세마네동산에서있었던일들의의미를새롭게규명하고있다.여기에는앞으로도성서가인류의찬란한문화유산으로남길간절히바라는마음이담겨있다.성서는진리의세계가아니라가치의세계다.가치의세계에서는다양한진리가혼재해있기마련이다.그다양한진리가운데서이세계와소통가능한가치만이성서의진리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