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이의 고독

영이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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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5년 전 야간학교에 함께 다니던 친구를 찾습니다”
어디에도 없었고 어디에나 또 있던, 우리 안의 오랜 동무 이야기
“조용한 아이는 눈에 띄지 않고, 말이 없는 사람은 마음을 들키지 않는다. 양선미의 소설이 고집스럽고 끈질기게 파고드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소설가 김별아의 평에 걸맞게, 양선미의 소설 『영이의 고독』은 우리라는 영역 한구석에서 조용히 자신을 가리고 있던, 어떤 존재에 대해 다룬다.
그이, 또는 그것은 이재에 밝지도 욕망에 솔직하지도 못하다. 불의 앞에서 과감하거나 어떻게든 끈기 있게 버텨내는 유형과도 거리가 멀다. 이 가냘픈 생명으로 만든 이야기는 심장을 두들기는 투쟁기도, 배우와 관객을 모두 쓰러뜨리는 비극도, 주인공이 드문 성공을 움켜쥐는 영웅서사도 될 수 없다. 단지 사람들 누구에게나 드리워 있는 아픔과 고독을, 현대사회의 상흔을 품은 어느 가슴을 그려낼 뿐이다. 단지 그것으로써 “선량한 사람의 고독한 생(生)은, 과장 없이 소설이 된다”(소설가 오현종).
이 소설의 영이처럼 자신의 속내를 꺼내지 않고 자신을 어필하지 않는 타인에게서, 역시 평범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었을까. 하지만 『영이의 고독』은 우리가 늘 망각하는 사실을 세밀히 짚어나간다. 영이와 같은 이들이 우리 사회의 필수적인, 그래서 당연히 핵심적인 위치에서 우리를 늘 보살펴 왔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타자들의 모습이, 우리의 아주 내밀한 구석의 무엇과도 꼭 닮았음을 상기시킨다. 그렇게 우리는, “소설을 다 읽고 난 뒤 곁을 스쳐간 수많은 ‘영이들’을 떠올린다”(소설가 하성란).
저자

양선미

어렸을때부터책을좋아했다.어느날문득직접써보고싶다는생각을했고기적처럼1998년문화일보신춘문예에「차를타고안개속으로」가당선되었다.
소설쓰기에중독되어밤을낮처럼낮을밤처럼살았다.그결과장편소설『문주』와소설집『맛동산리시브』를세상에내보냈지만,소설쓰기의한계를느끼기시작했다.공부를더하면나아질까싶어대학원에들어갔으나길을찾지못하고우물쭈물하는사이박사가되고말았다.시간의속도에깜짝놀라발표한소설을묶어소설집『퀼트퀼트』를출간했고,이제야오랫동안구상했던장편『영이의고독』을출간하게되었다.

목차

작가의말007

1부
사격부원의시간011
2부
급사의시간073
3부
경리의시간129
4부
요양사의시간209

출판사 서평

하성란,김별아,오현종작가강력추천!

서정적이고절제된문체,세심한심리묘사와
그리울것없으면서왠지그립게만드는레트로체크무늬로완성된소설

평범함이일종의미덕이었던시대가있었다.우악스럽고,잔혹하고,추근거리고,술을진탕마셨건아니건서로의영역을침범하는것이평범하다고여겨졌던시대.직접다시돌아가라면그래서당연히사절이지만,그시대를겪어보지도못한젊은이들조차왠지모르게그리워진다는그시절로부터지금까지,‘삶’을이어온어느한여성의이야기,『영이의고독』이다.
『영이의고독』은영이라고이름붙여진한여성의생애사를다룬다.첫문장은이렇게시작한다.“영이는겁쟁이였다.”그는키는크지만,화약총이무서워달리기에서늘꼴찌를기록하는심약한중학교1학년이다.20세기의학교는폭력적이다.특히체육부는폭력적이다.장신이라는이유로사격부로차출된겁많은영이는가혹한환경에노출된다.상급생은선생을흉내내하급생에게구타를일삼는다.타인의말을잘듣는,착한아이였던영이는어쩌지도못하고적성에맞지않는운동부생활을계속한다.그렇게3년이지나,폭력과사격에간신히적응할무렵,그는사격부를자기도모르게그만두어버린다.그리고주간반과야간반으로나뉜상업고등학교의학생이라는,막연한처지에놓인자신을발견한다.

소설이그리는영이의수십년의시간동안,영이는거의언제나소극적이고,세상의도전을제대로헤쳐나갈준비가되어있지못하다.자기어필을잘하거나사교적으로뛰어난인물도아니다.아니,그정반대다.당연히사회적성공과는동떨어진위치에서맴돈다.지혜롭다고보기도애매하고무슨영성적마력이있는유형도아니다.착하다는게장점으로제시되긴하지만,소설이암시하는그것의결정적계기는『캔디캔디』같은어린시절의책들이제안하는관념,즉‘착하게살면기적이올거야’라고요약할수있는,일종의동화적세계관이다.
현실은동화가아니다.따라서진지한소설의세계역시동화적일수없다.영이의소망은늘깨지고엇나간다.그렇게그는상처를안고안은채점점고독해져만간다.
언뜻세상과제대로대결하지못하는,늘제대로싸워보지도못한채애매한패배로만사건을마무리짓는,그래서소설의주인공으로서어느면에서나결격으로만보이는이영이를작가는왜선택했을까.‘저자의말’에나오듯,단지자기의어린시절모습과닮아서일까.

『영이의고독』은주인공영이가세상과자기나름으로조화하고불화하는이야기다.영이가마주하는,학교와가정에서,대학과직장에서비슷하게변주되는폭력들은일종의병영국가였던한국의개성을잘드러낸다.체육교사는(명시적으로드러나지는않지만)군대에서배워온조직통제기법을작은병영인사격장에그대로실행한다.학생들은교사가가르치는폭력을사격만큼이나열심히학습한다.영이가사격부를그만두는광경은소설에서언뜻충동적으로만그려지지만,그것은영이자신이사격부라는가학-기구에마침내적절히적응했다고자각하는시점이다.좋은기록을거두고나서야영이는비로소자신이마주한폭력을공포없이객관적으로바라볼수있었다.그시점에서사회화,폭력의체화,영이의미래,대학,사회적성공은분간할수없는것으로드러난다.그것들을쟁취하기위해직진할것인가,아니면물러서서그것들을부정할것인가의윤리적기로에서영이는후자를택한다.
역시영이의다른충동으로그려지는남자와의이별장면에서도비슷한기제가읽힌다.영이의첫경험–키스,포옹,그리고어쩌면섹스–는성폭력의역겨운맛으로기억된다.영이는폭력이후에도폭력을경험한장소인대학에급사로계속출근해야했고,자신이비난받을것이뻔했기에누구에게도그사실을토로하지못했다.성인이되어사귄남자와의모텔행직전,돌발적인만남과우연한대화들이앞서의사건을강력히상기시킨다.그래서영이는좋은남자의아내라는행운을,역시자신의판단근거를명확히포착하지못한상태로거부하고만다.

영이는기적을바라지만,기적으로포장된것안에면면히흐르는현실을지각하는인물이며,가학적체제를은폐하려는행운의‘이물감’을누구보다도잘느끼는사람이기도하다.즉‘기적은더이상착하지않다’.그렇게그는스스로선택한불행속에서말없이눈물을흘리거나,소화불량에시달리거나하지만,그럼에도꿋꿋이자신의자리를찾아나간다.
급사라고불리는보조사무원,경리,요양보호사,우리사회의한축을담당하고있었거나현재그러고있는직군들이다.사회적성공을부여받지는못했지만,그럼에도그역할을하는사람들이없으면사회는존재의동력을상실한다.물론세상에는그노고의정당한대접을받지못하는직업들이수도없이많다.그럼에도버스안내양같은어떤직업들은가끔씩추억의‘대상’으로나소환될뿐,〈전국노래자랑〉의오프닝멘트에등장할자격을얻지도,〈국제시장〉의주연으로도등장하지못한다.영이는이렇게타자화된많은‘영이’들의분신으로서,그들의일상과묵묵히함께하며,그들의고독을역설적으로공유한다.

그런직업들은대부분여성들이종사하는특징을지녔기에,『영이의고독』은여성서사로서도그담론적의미가충분하다.어떻게생각하면영이의개성은여성성의전형으로읽히고,어쩌면그렇기때문에사회에서열등한것으로치부되고있는것이지만,자본주의사회의평가야어떻든그런개성의의미는낮추어볼수없다.세상이특별함을요구하면할수록누군가는조용히묵묵해야하고,세상이금전적성공을노래할때누군가는돈이안되는영역에서여전히돌봄을감당해야하는것이다.
어쩌면우리가80,90년대의억척스러움과소란스러움을추억하는순간에도우리는그많은영이를잊고있었던것이아닐까.실제로는그들덕분에그레트로의세상도돌아가고있었던것이니까.『영이의고독』은그런영이들을호명하며,삶에서역시열등한것으로치부하기쉬운우리안의그런개성들을또한주목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