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의진료실과고전이만나는자리
경희대학교한의과대학교수이자통합뇌질환학회회장인박성욱.그는30년가까이진료실과강의실에서수천명의환자와학생을만나왔다.그오랜시간동안그가일관되게붙들어온질문이있다.우리가마주하는세상에서의성공과삶에서의행복은왜같은방향을가리키지않는가.왜우리현대인은가진것이많아질수록오히려자기자신으로부터멀어지는가.그질문에대해30년에걸쳐숙고한대답,『나는살아가는사람인가』가출간되었다.
저자의이력은이책의무게를가늠하는데중요하다.한의학의임상경험,동서양고전에대한폭넓은독해,그리고인류지성연구소소장이자강단의선생님으로서삶의방향을잃은현대인들과나눠온깊은대화.이세가지가이책안에서하나의흐름으로합쳐진다.이것은어느하나만으로는쓸수없는책이다.
이책의가장두드러진역량은저자의방대한지적자원을독자에게가장가까운언어로번역해낸다는점에있다.『황제내경』의정기신(精氣神)이론과칠정론(七情論)이현대인의감정과신체증상으로생생하게해석되고,『도덕경』의무위사상은경쟁과분열로가득한현대사회를비추는거울이된다.여기에스피노자의자유론,에리히프롬의존재와소유개념,브레네브라운의연결이론,아프리카우분투철학까지고전의통찰에자연스럽게합류한다.저자는동서양을가로지르는이거대한지적유산들이결국같은방향을가리키고있음을조용하면서도단단한어조로보여준다.
한의학의심신(心身)이론을현대언어로풀어낸대목들은저자만이줄수있는독보적인가치라고평할만하다.분노가기를머리로치솟게하고,깊은슬픔이폐의기운을소모하며,끊임없는생각이기를뭉치게한다는『황제내경』의통찰은단순한고전의인용으로만머무르지않는다.진료실에서수천명의환자를통해직접확인한임상경험과맞닿아있기에,독자는이오래된지혜를자기몸의언어로받아들이게된다.만성적인소화불량이멈추지않는생각(思)의결과물일수있다는것,한숨과무기력이가슴속슬픔(悲)이생명에너지를소진한다는것,이런대목에서고전의맥락들은어렵고난해한옛이야기에서벗어나독자자신의‘몸’의이야기로사뭇다르게읽힌다.철학자의관점에서쓰면단지관념의이야기가되고,의사의관점에서쓰면처방이되지만,그드문교차점을찍는데이책은성공한것이다.
철학에서몸으로,고전에서삶으로
이책에서특히인상적인대목으로는3장,‘안목’을꼽을수있겠다.저자는여기서『도덕경』의한구절을들어우리시대를해부한다.“육친이화목하지못하기에효도와자애로움이있게되고,국가가혼란하기에충신이있게된다.”어떤가치가반복적으로강조된다는것은,그가치가이미현실에서사라지고있다는증거라는이야기다.‘공정’이구호가된사회는공정하지않은사회이고,‘사랑’이설교가된공동체는사랑이메마른공동체인셈이다.저자는이것을사회비판으로공허하게소비하는대신우리가가져야할삶의원칙으로정립하려고한다.세상이강조하는결핍의구조를꿰뚫어보는것,그것이안목이라는이야기다.
왕양명의지행합일(知行合一),『도덕경』의“크게정교한것은서툰것처럼보이고,크게말을잘하는사람은어눌한것처럼보인다”는통찰역시현대인들이안목을가다듬는데도움이된다,화려함과강조뒤에숨은결핍을가려내고,평범하고담백한것속에서진실을알아보는힘이바로안목임을자연스럽게깨닫게되는구절이다.
단순히고전을‘배우는’것에그치면절반만읽는셈이다.반면이처럼세상을읽는새로운눈을얻는공부만이비로소고전을100%활용하는공부라고할수있다.
이책의또다른깊이는철학적논의가반드시몸으로귀결된다는점이다.4장‘섭생’은그정점에해당한다.저자는부드러움·자연의순리·우주와연결된몸이라는개념을통해,몸을돌본다는것이단순한건강관리가아니라자기다운삶을유지하는근본조건임을보여준다.『황제내경』이“성인은도를몸소행하지만,어리석은자는그저장신구처럼차고다닐뿐이다”라고말했듯,저자는안다는것과산다는것사이의간극을반복해서건드리며,그간극을좁히는것이야말로이책이독자에게요청하는유일한실천임을분명히한다.
그실천의방법으로저자가제안하는것은거창하지않다.명상,필사,차마시기,산책.그러나이소박한제안들이깊은설득력을갖는것은,유행하는웰니스콘텐츠의어법이아니라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수천년의자기수양전통에뿌리를두고있기때문이다.고전을몸으로살아낸사람들이적립해온,지혜의언어라고할만하다.
지식인의책임과부모의마음을함께담아
로세토효과라는것이있다.이탈리아이민자들로구성된펜실베이니아의작은마을이건강하지않은식습관과고된노동에도불구하고중년남성심장질환사망률이0%에가까웠다.이유는무엇이었을까.강한공동체문화덕분이었다.저자는이것을소개하며,가장강력한섭생에대해운을띄운다.‘섭생’이라고하면단순히먹고마시는것을떠올리기쉽지만,그것은단지일부일뿐이다.로세토는바로함께살아가는것이야말로가장중요한섭생의비결임을이야기하다.책은고전과이론을차례차례소개하면서,순리에따라더불어사는삶이자기를희생하는것이아니라자기다움을이루는가장현명한방식임을증명한다.
청년들의자발적고립은우리사회에경종을울리는것이아닐까.공동체를회복할수있는마지막시점에우리가서있을지모른다는절박함은이책의마지막을이루는중심기조중하나다.관찰자의언어대신참여자의언어를택한귀결이다,
저자는책머리에서이책을“학생들을가르치는선생이자한의사라는치료자의습관이면서도,어느새훌쩍커서세상을살기시작한자식들이인생의길을찾는자기고유의나침반을지니길바라는부모의마음으로썼다”고밝힌다.저자가리영희선생의문장,“글을쓰는유일한목적은‘진실’을추구하는오직그것에서시작하고그것에서그친다”를책머리에인용하는것도같은맥락이다.오래생각해온것을가장정직하게꺼내놓으려는책이다.
혹시세상에서의성공과삶의행복사이에서길을잃었는가.치열하게달려왔는데왜공허한지모르겠는가.자식에게무엇을물려주어야할지고민되는가.그리고오랜고전의지혜가지금자신의삶에어떻게살아숨쉬는지확인하고싶지만,고전은어려워엄두를못내고있는가.그런고민을하는이들에게,이책은30년의공부와진료와삶을한권으로농축해담은드문선물이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