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주의자였던 사람이 쓴 성인의 초상
‘브라운 신부’ 시리즈로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체스터턴은 시와 희곡, 문예 평론과 사회 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다작한 작가로, 20세기 초반 영국문학을 대표하는 문인으로 평가받는다. 체스터턴은 젊은 시절 종교적으로 회의주의자였다가 중년이 되어 신앙으로 돌아섰는데, 이후 종교 관련 저서들 역시 여럿 출간했다.
체스터턴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야기를 쓰며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자신이 오랫동안 저 회의적인 독자의 자리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앙인이 쓴 책이지만, 신앙인들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신앙의 안쪽에 발걸음을 들인 사람이, 바깥에 선 독자를 향해 길을 놓아 주는 책으로 체스터턴 자신이 정의한다.
체스터턴은 처음부터 이 책을 연대기적 전기로 구성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의 중심을 이루는 몇 개의 결정적 장면을 고른다. 젊은 시절 미술학교에서 그림을 배운 체스터턴답게, 그는 한 인물의 삶을 한 장의 ‘소묘’로 그린 듯 묘사한다.
800년 동안 사랑받은 성인
프란치스코만큼 널리 사랑받는 성인은 드물다. 가톨릭에서 그가 성인들 중 가장 인기 있는 인물임은 분명하다. 가깝게만 보아도 그 이름 프란치스코를 딴 교황이 바로 전임으로 있었고, 그의 노래 첫 구절은 교황청에서 내린 생태 회칙의 제목이 되었다. 새를 어깨에 얹은 프란치스코의 모습은 회화와 조각에서 즐겨 묘사되는 주제다.
한편 19세기의 지성들 역시 프란치스코를 르네상스를 앞서 연 인문주의자로, 자연을 노래한 시인으로 기렸다. 그런데 합리주의자들은 그들의 관점에서는 기행에 가까운 프란치스코의 고행, 그리고 그를 둘러싼 기적은 쉽게 무시해 버린다. 매슈 아널드와 르낭 같은 문필가들은 프란치스코가 오상을 받는 지점에서 “더는 그와 함께 걷지 않았다”고 체스터턴은 평한다. 곧 마음에 드는 대목만 골라 흠모하는 방식으로는 한 사람을 끝내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체스터턴은 성인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가 멈춘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프란치스코와 함께 ‘걷기’ 시작한다. 해를 형제라 부른 시인이 왜 어두운 동굴에 숨었는지, 늑대에게는 그토록 다정했던 사람이 왜 자기 몸만은 ‘당나귀 형제’라 부르며 모질게 다루었는지, 불의 힘과 즐거움을 노래한 사람이 왜 스스로 눈밭에 몸을 굴렸는지. 체스터턴은 이 괴리들을 하나씩 짚어 가며, 그것이 모순이 아니라 하나의 성격이 지닌 일관성임을 보여 준다.
기사를 꿈꾼 청년에서 하느님의 어릿광대로
책은 열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두 장은 프란치스코가 등장하기 전의 세계를 그린다. 이교 세계가 스스로를 정화하던 긴 겨울이 끝나고, 세상이 다시 사랑받을 준비를 마친 순간에 그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장들은 청년 프란치스코를 따라간다. 화려한 옷을 즐기던 의류상의 아들, 기사가 되어 전장에 나서려던 청년, 무너진 성당을 다시 지으려다 아버지와 등을 진 아들. 아시시 광장에서 아버지가 준 옷을 벗어 돌려주던 장면은 이 책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 가운데 하나다.
책의 중심은 다섯째 장이다. 세속의 벗들과 어울리던 시절 그는 스스로를 음유시인이라 불렀다. 그러나 회심 뒤 그가 동료들에게 붙인 이름은 ‘하느님의 어릿광대’였다. 여기서 고귀한 사랑을 노래하던 시인의 이미지는 성모 앞에서 물구나무를 서던 광대의 이미지로 전환된다. 체스터턴은 이 전환 안에 프란치스코의 진실이 숨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임해야만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는 역설이다.
뒤의 장들은 그 사랑이 세상으로 번져 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것은 ‘인류’라는 추상적 대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람 하나하나를 향했던 그의 다정함의 결과물이다. 이는 작은 형제회와 클라라의 수녀회와 재속회라는 세 수도회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역설로 쓴 성인전
책에서는 저 유명한 체스터턴의 문장을 만날 수 있다. 역설의 대가로 불리던 그는 시종일관 통념을 뒤집고, 뒤집은 것을 다시 뒤집는다. 그에 따르면 하느님 없이 성인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난센의 생애를 쓰면서 북극은 언급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에 따르면 프란치스코는 인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사랑했으며, 그리스도교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사랑했다. 엄숙한 성인전에 익숙한 독자라면, 말장난과 농담이 이어지는 이 책이 낯설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체스터턴이 말하는 프란치스코의 정신, 곧 고행하되 결코 우울하지 않았던 정신에 가장 가까운 길이다.
함께 펴내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체스터턴이 10년 뒤에 쓴 짝이다. 그는 거리의 성인 프란치스코와 서재의 성인 토마스를 두고, 생김새도 기질도 정반대였던 두 사람이 같은 위대한 일을 했다고 썼다. 하느님을 다시 땅으로 모셔 왔다는 것이다. 두 권을 함께 읽으면 그 말의 뜻이 온전히 드러난다. 두 권 모두 최대환 신부가 추천의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