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땅의통일,사람의통일을넘어“치유의통일”로―
2011년9월10일,미국북부한도시의날씨는맑았다.그곳의한호텔에서열렸던의과대학미주동창회연례모임은무사히끝났고,학장단의일원으로그모임에참석하였던필자는한국으로돌아가기위하여호텔로비직원에게택시를불러달라고부탁하였다.잠시후택시가도착하였다.나는트렁크에가방을싣고뒷좌석에앉았다.그러자흑인택시기사가나에게말하였다.“안녕하세요.”정확한한국어발음이었다.“어!한국말하실줄아세요?”“예,저,한국에서태어나자랐습니다.”그러고보니택시안에는한국어로하는기독교라디오방송이틀어져있었다.그렇게하여호텔에서공항까지가는50분동안,그와의대화가시작되었다.
그는1952년생이라하였다.인천상륙작전으로들어온미군흑인병사가○○에서○○으로넘어가는까치고개에서당시22세였던한국인처녀를강간하였다.그리고처녀의배는불러오기시작하였다.까만피부의큼지막한남자아이가태어났다.“강간에의한임신출산이었고,피부색이달랐음에도,어머니는나를죽이거나버리지않았어요.”엄마와외할머니는8살이될때까지그를키웠다.그러다가마침내엄마는강원도○○으로결혼을하며떠나게되었고,그는강원도○○에있는기독교계통에서하는고아원으로들어가게되었다.거기서그는고아원아이들과함께“완벽한한국아이”로자라나게된다.고아원에보내졌어도엄마가너무보고싶었기에,할머니와같이엄마를몇번찾아가기도하였다.그러다가14살이되는해,그때는엄마를혼자서찾아갔다고하였다.그런데엄마는자신을어린아기대하듯이하고자기를옆에눕히고하여서,(사춘기아이마음에)그런취급을받는것이너무싫어서결국뛰쳐나왔고,그이후에다시는어머니를찾아가지않았다고하였다.고아원에서든,중학교에서든,고등학교에서든,자신은항상그안에서몸집도가장크고주먹도가장셌기에,어디서나인정받고군림하며잘살았었다고하였다.
그렇게고아원에서10년의세월을보냈고18살이되자규정에따라고아원을나와야만하였다.그런데같이고아원에있었던동갑내기남자아이들은모두다징집명령서를받고군대에입대하게되었는데,혼혈아였던자신에게는그입대영장이나오지않았다는것이었다.그것은그에게거대한충격이었다.자신은한국에서태어나자라났고,학교도다한국에서다녔고,말도한국말밖에할줄모르는,그야말로당연한대한민국국민이라고생각하며살아왔는데,정작그대한민국의군대는자신을받아주지않았다는것이었다.
그러면서그는미군부대주변지역등지를여기저기떠돌아다니며살다가우연히용접하는일을배우게되었고,지방어느도시병원의용접공으로취직을하게되었다.그러다가“자기보다더껄렁거리는”한남자친구를만났고,결국그친구의여동생을임신시키게되었다.그즈음,자신과같은혼혈아출신들을미국이이민으로받아준다는소식을듣게되었고,그는조금도망설이지않고바로행정신청을하였다고하였다.그런데이행정절차에서가장중요하게요구된것은‘어머니의증언’이었다.그래서그는정말십수년만에어머니에게연락을하였고,어머니는관련행정기관에나와서자신이수십년전에겪었던그일을서류에쓰고담당자와면담을하였다고하였다.하지만정작어머니를불러다놓은자신은그어머니얼굴이보기싫어서임신한자기여자친구를대신보내어머니를만나고행정처리를하게하였다고하였다.어머니가증언하였던당일그현장지역에정말로미군부대가주둔하였다가이동하였다는사실이확인되면서절차는한순간에빠르게진행되었고그는별어려움없이미국입국허가증을받을수있었다.그러면서출산을한여자와의혼인신고를마치고아이까지셋이서함께미국으로들어왔다고하였다.
그러나문제는자신이겉모습만흑인이었지,영어는그야말로한마디도할줄모른다는것이었다.거기에다가흑인이라고인종차별도받으면서공부도,취업도모든것이너무도힘들었다고하였다.그러다가자식들이8살,6살이었을때그는결국아내와이혼을하였다.그리고는여기저기로흘러다니다가어떤백인여자를만나같이살기도하였고,그여자와도결국은이혼하였다고하였다.자신은한국식으로엄한아버지가되는것이좋은아버지가되는방법이라생각하였고,그래서이혼후에도자신의자녀들에게무엇이든엄하게하려하였는데,그결과로점차장성해간자녀들과의관계도다깨졌다고하였다.그래서이제는36살이된딸과아무런연락도나누지도못하고살아가고있었다.다만그딸이결혼하여아들하나,딸하나를두었다는소식만멀리서들었다고하였다.
“이도시에와서처음으로신앙을가지게되었습니다.그리고이제는한국생각이많이나네요.저는하나님께기도드리고있습니다.어머니를위하여...제가철이없어서어머니에게함부로대하였던것이가장후회가됩니다.나도이제나이가육십이되었습니다.어머니는이제여든두살이되셨지요.미국떠나고30년넘게한국에는한번도간적이없습니다.”
그러면서택시는공항에도착하였다.나는택시에서내리며그와인사를나누었다.순간,그에게그래도한번은한국에가서어머니를만나보면어떠하겠냐는말을,내가하여야하나말아야하나하는생각에망설였다.이깊은심연과같은아픔의삶들에내가무슨말을그리쉽고도간단하게던질수있는것인지에대한자신이없었다.
분단과한국전쟁은우리가알고모르는수많은아픔과트라우마를이땅곳곳에너무도다양한모습으로만들어놓았다.일제강점기동안전세계는이미공산진영과민주진영으로나뉘었고,그것은해방된한반도에도그대로적용되고말았다.가장이상주의적이면서도가장잔혹한“사상우월주의”가인간이라는존재자체를짓밟는일들이해방후적나라하게나타났다.분단의아픔이었다.북한에서태어난청년들은어느날인민군으로징집되었고,남한에서태어난청년들은국군으로징집되어,이름도모르는수많은산과골짜기에서그들의젊은목숨을끝내야했다.그리고가족들은그들의생사조차모르며긴세월을보내거나어느날그들의전사소식을받아들어야했다.분단의아픔이었다.한국전쟁당시한국인들이경험한이야기들은다양한회고록,소설,연구물등으로남아있다.그중한가지는다양한한국전쟁경험자들을대상으로한직접면담을통하여만든구연자료집으로신동흔등이쓴총10권으로된<한국전쟁이야기집성>(박이정,2007)이있다.내용을보면1권은특정지역의전쟁경험을여러제보자가다양한각도로이야기한것등이고,2권은다양한참전경험담을모았다.3권은피난,피난수용소이야기를모았다.4권은이념의틈바구니속을살았던사람들의이야기를,5권은억울한죽음의피해등을,6권은특히여성들의전쟁기간중의고난이야기를,7권은여성빨치산,인민군으로참전하였다가포로된자등특별한상황을바탕으로한경험,8권은전쟁의와중에도서로를돕거나살린미담,9권은전쟁중겪은놀랍고기막힌사연과설화적요소를,10권은전쟁에대한분석과논평을한진술과전쟁후의사연들을모았다.
남한과북한양쪽후방에있던민간인들은목숨을건피난과그로인한가난으로큰고통을겪었다.수대에걸쳐함께살아온고향마을내에서의아는사람들끼리도사상이나또는다양한여러이유등으로서로를학살하는일들이마을마다있었다.분단이만든아픔이었다.이러한내용을잘정리한책으로는박찬승의<마을로간한국전쟁?한국전쟁기마을에서벌어진작은전쟁들>(2010,돌베게)이있다.
그사이에,남과북양쪽에외국의수많은젊은이들이군인들로밀려들어왔고,그들의피가이땅에뿌려짐으로써,한반도는2차세계대전이후처음이자마지막의강대국들과많은국가들이직접참전하여싸운국제전이되어,인류의비극을만들었다.이역시분단이만든아픔이었다.저자의아버님은1931년생으로19세인대학교1학년때6.25를맞이하였다.그는홀로부산으로피난을내려갔다가거기서유엔군카츄사모집에응하여1950년8월15일유엔군소속부대카투사이등병으로입대하였다.그리고미국7사단31연대중포대(HeavyMotorCo.)통역병으로배치된다.일본으로가서2주간훈련을받은후미7사단소속으로인천상륙작전에투입된다.미7사단은남하하면서수원비행장탈환작전,오산,평택전투등을치렀고계속남하하여경상북도영천에주둔하다가부산으로내려가부대를재정비한후배를타고북한의흥남에상륙하게된다.미해병1사단과함께큰어려움없이장진호부근까지진출하였다가마침내중공군을만나면서,중국의영화<장진호>로도유명한그“장진호전투”를치르게된다.중공군에의하여포위를당한어려움속에사단병력은큰피해를당하였고후퇴명령에따라영하30도의추위를뚫고가까스로탈출하는데성공한소수의무리속에아버님이계셨다.그과정에서그는수많은미군병사들과중공군병사들의죽음을본다.모두외국의젊은이들이었다.부산으로돌아온미7사단은다시재정비를한후영월에서치열한전투를치렀고그것은다시화천에서의전투로이어진다.그화천전투에서아버님은중공군의포탄파편에두개골측두부골절상을입어후송되었고수술을받아야하였다.그리고1952년5월17일그는제대한다.(전의철,김광신.나의갈길다가도록.햇빛과단비기획.2013.pp.46-61)
전국토의거의모든것이파괴되었고,극도의가난속에서전세계의동정과도움에의존하여야하는나라가되었다.그리고그런아픔은그당사자들에게뿐만아니라,그다음세대들에게도전달되었다.내가미국의한도시에서만났던그분은출생자체가,그리고살아온삶전체가분단에의한아픔을온몸으로보여주고있었다.그리고분단의아픔은전쟁을직접겪은세대뿐만아니라,그다음세대,그리고다시그다음의다음세대에이르기까지이어짐을보여주고있었다.
사실,분단의아픔은전쟁시기만으로끝나지않았다.천만명이넘는이산가족들은,아주특별히예외적으로이산가족상봉기회를가질수있었던사람들을제외하고는,거의모두가남과북으로헤어진가족들과평생한번만나기는커녕,편지한장주고받을수도없었고,무엇보다도죽었는지살았는지생사자체도모르는가운데수십년씩을살다가한분씩다죽어갔다.우리는그것을어쩔수없었던상황으로체념하며익숙하게받아들이지만,이런사례는그야말로인류사에서보기힘든그런피눈물나는“절대단절”의아픔이었다.전쟁후북한은일인독재국가가되어최악의인권탄압이이루어지는나라가되었다.그땅에서태어나고자라고살다가죽어간사람들의그비참한운명은지금도계속이어지고있다.분단이만든아픔이다.그러면서1990년대중반부터있었던소위고난의행군시대를거치고수많은아사자들이발생하면서,탈북의행렬이이어졌다.그과정에서죽기도하고,중국을헤매다가중국공안에체포되어다시북한으로송환된사람들의삶이지금도진행되고있다.천신만고끝에남한에입국하였어도,북에두고온가족들로인하여눈물로세월을보내며힘겹게살아남으려노력하는삶들이지금도진행중에있다.분단이만든아픔이다.전쟁후남한에서도,분단은전쟁시기부역자문제에서부터시작하여연좌제에이르기까지수많은내부의이념적갈등을만들어냈고,지속된분단및북한과의적대적대립상황은남한의민주화와경제발전,인권개선에가장큰장애물로존재하였다.분단이만든아픔이었다.더큰어려움도있다.과거에있었던분단과전쟁으로인한트라우마가지금까지도치유되지못하여,자신과생각이다른사람들을의심하고증오하고,그래서말살하려하는그무거운의식의굴레가지금까지도남과북의사람들속에그대로지금도강력하게존재하고있는것이다.이것이남한사람들과북한사람들의내면세계,그근본바탕을이루고있다.이모든것은한반도에분단이지속되고,그래서분단에의한분단트라우마가아직도“치유”되지못하여나타난결과들이다.이러한내용을깊이있게다룬책들이있어소개한다.감희.<북한사람이해하기>.한울.2021;감희.<북한여자로살기>.한울.2023;전순영.<한반도의기억>.한울.2025;신보경.<집단트라우마와치유-상처와회복의통합적탐구>.박영스토리.2025.
자신의오빠가일시적좌익활동을하다가고통속에죽어가야했고,그자신도굴곡진세월을보내었기에그내용들을그의작품속에담아왔던소설가박완서는전쟁이끝나고50년이되던즈음에있었던2002년한일월드컵때“붉은”악마로서의응원경험을가지고그의글에서다음과같이썼었다.박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