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Description
《인형의 집》은 1879년 초연 이후 격한 논란에 휩싸임과 동시에 페미니즘 문학의 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쥔다. 입센은 이 작품으로 세계적 작가로 부상했다. 1925년 한국 초연 이후 100년간 수없이 번역, 공연되었던 작품을 다시 번역하면서 무엇보다 원전에 충실하고자 했다. 크고 작은 오류와 왜곡을 바로잡고 마주한 《인형의 집》으로부터 고전의 진짜 힘과 가치를 온전히 실감하게 될 것이다.
저자

핸리크입센

헨리크입센(HenrikJ.Ibsen,1828∼1906)
1828년3월20일노르웨이의수도크리스티아니아(지금의오슬로)에서남서쪽으로100마일떨어진작은항구도시시엔에서태어났다.여덟살때집이파산해열다섯살까지약방에서도제로일했다.독학으로대학진학을위한수험준비를하는한편,신문에만화와시를기고했다.희곡<카틸리나>(1848)를출판했으나주목받지못하고그후<전사의무덤>(1850)상연을계기로대학진학을단념하고작가로나설것을결심했다.1851년국민극장상임작가겸무대감독으로초청되었는데,이때무대기교를연구한것이훗날극작가로대성하는데밑거름이되었다.1857년에노르웨이극장으로적을옮긴뒤최초의현대극<사랑의희극>(1866)과<왕위를노리는자>를발표했으나인정받지못했다.이탈리아에서목사브란을주인공으로한대작<브랑>(1866)을발표하여명성을쌓았다.이후<페르귄트>(1867),<황제와갈릴리사람>(1873)등에서사상적입장을확고하게굳혔다.이어사회극<사회의기둥>(1877),<인형의집>(1879)등을발표했다.특히<인형의집>은여주인공노라가남성에종속된여성으로서의삶을거부하고,한인간으로서독립하려는과정을묘사해여성해방운동에큰영향을주었다.1900년뇌출혈로첫발작을일으킨이후병세가악화되어1906년78세로사망했다.

목차

나오는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해설
지은이에대해
지은이연보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현대연극사와사상사에〈인형의집〉만큼지대한영향을미친희곡은드물다.발표즉시논란을불러일으켰지만세계적반향을동반하며입센의위상을끌어올렸다.입센의대표작이라는데이견이없으며,페미니즘문학의시초로보기도한다.
〈인형의집〉이초연된1879년,작품의배경이되는노르웨이를비롯해전세계여성의가정내지위는종속적이었다.결혼전엔아버지,결혼후엔남편에게삶전체가맡겨져있었다.어머니로서,딸로서,아내로서가정에서여성이해야할것,할수있는것은제한적이었다.‘노라’는누구보다도가부장제관습을잘체화한평범한딸,어머니,아내였다.남편에게사랑받는‘종달새’,‘다람쥐’였던노라가어떻게페미니즘운동의선봉에서자유와평등을외치는전세계여성의등불이되었을까?
변호사였던토르발헬메르는은행에영향력을행사할수있는지역사회의중요인사로부상한다.형편도크게나아져크리스마스를하루앞두고트리를장식하는헬메르의아내노라는마음껏행복감에빠져든다.사실노라를기쁘게한것은따로있다.생계를위협하는심각한위기로부터가족을구한것이다름아닌노라자신이었기때문이다.기지를발휘해큰돈을융통했지만여성의경제권이인정되지않는사회분위기속에서이를비밀로간직해야했던노라는이제곧채무를상환하고비밀에서자유로워진뒤아내로서,어머니로서온전히가정에충실할수있으리란생각에들떴다.하지만예상치못한손님의방문으로노라의기대는산산히부서진다.채권자크로그스타가노라에게비밀을폭로하겠다며협박을시작한것.그날부터노라는남편에게비밀이탄로날까봐불안에떨며어떻게든크로그스타의폭로를막고자고군분투한다.
이때까지도노라는남편의신의와사랑을잃을까노심초사하는가련한‘종달새’였다.반전은노라의비밀이밝혀졌음에도남편헬메르가“당신을용서했다”며다시그녀를“비둘기”라부른순간에일어난다.헬메르는크로그스타의협박이무용지물이되기전까지노라에게불같이화를내며그녀를몰아붙이고있었다.헬메르의태세전환으로노라는깨닫는다.딸일때도아내일때도자신은그저‘인형’에불과했다는것을.

“당신자신이맞닥뜨릴지도모를일에대한두려움과위험이모두사라지자마자…마치아무일도없었던것처럼돼버렸네요.난다시예전처럼당신의작은종달새,당신의인형이됐군요.이제당신은두배로조심스럽게다루시겠죠,부서지기쉽고너무나연약했으니까.”

노라가헬메르의간청을뿌리치고짐가방을싸서홀로집을떠나는극의결말은오랫동안논란이되었다.노라가떠나지않는결말로꾸민각색버전이공연되곤했다.하지만이런시도가오히려작품의메시지를강화했다.곧페미니즘운동을주도할전세계여성이‘노라’로부터영감을얻었다.노라는연극사뿐아니라사회문화사에지워지지않을족적을남긴채성공적으로‘인형의집’을떠났다.
2001년유네스코는〈인형의집〉초판본을세계기록유산으로지정했다.초고의메모에는입센의문제의식이직접적이고분명하게표현되어있었다.〈인형의집〉을쓴직후입센은노르웨이의여성권리운동에지지를표명하고그로부터몇년뒤인1898년5월26일현재의오슬로에서개최된여성권리연맹행사에서다음과같이연설한다.

“여성권리운동을위해의식적으로일했다는영광은포기하겠습니다.저는이여성권리운동이실제로무엇인지잘모릅니다.제겐그것이인류전체의문제로보였거든요.제작품을주의깊게읽어보신다면이점을이해하실겁니다.물론여성문제를다른모든문제와함께해결하는것이바람직하겠지만,그것이전부는아니었어요.제과제는인간을묘사하는것이었습니다.그런묘사가상당히사실이라고느껴질때마다독자는시인의작품에서자신의감정과감상을읽어낼겁니다.”

한국초연은1925년9월조선배우학교에서현철연출로이루어졌다.복혜숙이주인공노라를연기했다.그로부터100년이흘렀다.그사이여러번번역되었지만군데군데오류와왜곡이쌓여만갔다.원전에충실하게우리말로옮기며굳어진번역에서달라진부분에주석을달았다.무대화를위한최신연구자료로작품에대한이해를도왔다.100년만에〈인형의집〉을“바로”읽을수있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