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카도

아보카도

$18.80
Description
관계가 끝난 자리에서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들, 『아보카도』
제15회 동서문학상으로 문단에 발을 딛은 김혜영의 첫 단편집, 『아보카도』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끝나버린 관계, 지나가 버린 시간, 되돌릴 수 없는 선택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무엇이 지나간 자리에서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용히 따라가며 그들의 선택을 지지한다. 어디선가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들,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감정들이 조용하지만 단단한 문장으로 되살아난다.
『아보카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회복이나 극복보다는 ‘지속’을 선택한다. 무너진 관계를 다시 설명하지 않고, 떠난 이의 부재를 크게 외치지 않는다. 「공가」의 인물은 추락한 삶의 조건 안에서 무기력과 딸에 대한 책임 사이를 오가고, 「박수기정 노을」의 주인공은 친구의 죽음을 뒤늦게 전해 듣고 나서야 애도를 시작한다. “억지로 참지 마. 우리는 충분한 애도를 해야 해.”라는 문장처럼 이들은 참고 참다가 뒤늦은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여덟 편의 소설은 설명보다 관찰을 택하며 관계의 여백과 감정의 밀도를 조금씩 쌓아 나간다.
특별한 장치 없이도 읽는 이를 붙드는 힘을 가진 책이다. 감정을 부풀리거나 사건을 과장하지 않고 일상의 곁을 따라가며 삶의 수많은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어떤 미결의 감정들은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방식과 닮아있듯, 이 책은 단편소설이 지금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정직하게 보여준다. 드러나지 않는 감정과 말할 수 없는 관계에 주목하는 이 소설집은 그야말로 동시대 서사에서 주목할 만한 첫걸음을 내딛는다.
저자

김혜영

저자:김혜영
충남태안에서성장기를보냈다.일본도쿄와치바,안산,완주,대전,시흥을거쳐안양에살고있다.제15회삶의향기동서문학상에서대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제주를너무사랑했고,그에대한보답으로제주배경의소설을써당선되기도했다.머릿속의많은부분이소설로채워져있어다른일에는매우서투르다.
저서로는수필집『철학한잔을마시다』와『더듬듯이』가있다.

목차


박수기정노을
대추
공가
자염
아보카도
지연
BABYINCAR
너의찰스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소설가김홍신강력추천!

“억지로참지마,우리는모두충분한애도를해야해.”

부드럽고단단한마음을이해하며살아가는우리의일상에게
기꺼이곁을내어주는여덟편의이야기!

모든것이지나간자리,감정은아직끝나지않았다

김혜영작가의첫소설집『아보카도』는감정의소용돌이속이아니라그여운을따라가는책이다.이책의이야기들은명확한사건중심의구조를따르지않는다.누군가죽거나,떠나보내거나,어떤관계들이끝나지만,그건소설의시작일뿐이다.이책은‘어떤일이있었는가?’보다‘그일이있고난후어떤감정이남았는가?’에훨씬더큰관심을가진다.각소설에등장하는인물들은아주격렬하게슬퍼하거나분노하지않는다.오히려그감정을어디에두어야할지몰라망설이고,조금씩그것을정리해나간다.김혜영작가의소설은이처럼다말하지않음으로써더많은것을남긴다.우리는끝나지않은소설속감정의밀도를읽으며,언뜻고요하지만끝내깊이흔들리는서사를몸소경험하게된다.

이책의인물들은감정을명료하게정리하거나외부로드러내는데익숙하지않다.대체로침묵하거나회피하고,혹은일상에감정을묻은채살아가기도한다.「박수기정노을」의미현은친구의죽음을뒤늦게전해듣고늦은애도를시작한다.「지연」의지연은비로소알게된가족의진실너머에서성장과정속슬픔을본다.“억지로참지마,우리는모두충분한애도를해야해”(42쪽)라는문장처럼,인물들은감정을정확히표현하거나끝맺지않고지나간일들에마음으로써다가가고자노력한다.이문장속에는감정을억누르지말라는권유가있지만,동시에그감정을회피하지않고직시해야한다는의미가담겨있다.김혜영작가는그모호함을회피하지않고,감정의처리보다는감정의‘머무름’에집중한다.

그래서이책은감정을배제하지않으면서도,그속에매몰되지않는드문소설집이다.우리는인물들이끝내표현하지못한감정을짐작하고,그마음이남은자리를오래응시하게된다.이처럼절제된태도는때로냉정해보이기도하지만,그속에는정교하게다듬어진마음의윤곽이있다.『아보카도』는우리가미처끝내지못한감정에대해,그리고그감정이삶에남기는흔적에대해다시생각하게한다.

살아있는자의자리

『아보카도』에나오는인물들은대부분‘남겨진사람들’이다.죽은자가떠난자리,끝난관계가빠져나간공간,무너진가족과그이후의일상등이그러하다.이들은모두어떤큰사건이후에도계속해서삶을살아가야하는사람들이다.그리고이들이살아가는방식은대부분조용하고,반복적이고,감정이정리되지않은모습이다.이책은그런사람들을대변하거나,섣불리재단하려들지않는다.그저그들을따라간다.그들의감정을드러내거나판단하지않고,무너지지않는대신무너지기직전의태도를유지하는삶을조용히관찰한다.

특히인상적인건이모든작품이위로나해답을제시하지않는다는점이다.이역시우리삶의방식과궤를함께한다.그러나우리는바로그불완전함속에서인물의진실을발견한다.김혜영작가는갈등을해결하지않고,감정을미화하지않는다.대신그모든불완전한조건속에서살아가야하는이들의,혹은우리의태도를있는그대로드러낸다.이는단순한관찰이아니라지금이시대를살아가는우리삶에대한정직한기록이기도하다.

『아보카도』는죽은사람보다산사람에대해,끝난관계보다그이후를견디는사람에대해이야기한다.애도를마친사람,애도를시작하지못한사람,감정을유예한사람등,이책의인물들은때로완성되지않은상태로등장하며,그렇게미완의상태로살아가기도한다.그모습은때로막막하고냉담해보일수있다.하지만그안에는우리가일상에서겪는감정의진짜결이있음을기억하면좋겠다.『아보카도』는그결을지나치지않고붙잡으며소설이지금할수있는정직한이야기를끝까지밀고나가는힘을지녔다.

말하지않는사람들을위한이야기

좀처럼말이없는이소설집은큰사건이있어도,감정이흔들려도,속마음을잘털어놓지않는다.그렇다고무감각하다고말할수는없다.단지말하지않는쪽을선택할뿐이다.울지않고,고백하지않고,설명하지않는다.그리고그저일어난일들을바라본다.그런인물들을따라가다보면이상하게감정이더크게느껴진다.아마도말하지않기때문에더잘들리는종류의감정들일것이다.

「너의찰스」의인물은감정의소용돌이속에서도끝내자신의상태를명확하게진술하지않는다.“찰스가짖는지내가낸소리인지이제는정말모르겠다.”(226쪽)라는문장은혼란과붕괴의감각을단순하게표현하면서도깊은충격을안긴다.재건축을앞둔아파트에서일어나는이야기인「공가」에서는“복구할수없을정도로산산이깨진감정들”(94쪽)이라는말을통해감정이대사보다장면속에더선명히남는방식을보여준다.이러한문장들은소설전체가지닌태도처럼읽힌다.감정을직접말하지않고,말하지않음으로써감정의깊이를확보하는방식이다.

이책은감정을말하지않음으로써그것에대해말하는방식을취한다.담백한문장들이그려내는건거창한사건이아니라,사건이후에도계속되는하루하루다.억지로읽는이들의손을잡아이끌지않고,관계를끝까지설명하지도않는다.대신정지된순간에오래머무르게하며,그모든풍경이낯설어지게만든다.그리듬에익숙해지는순간이책은꽤매력적인방식으로우리를감정의바깥으로데려간다.그리고거기서감정의본모습을보여준다.말없는방식으로,말많은시대를건드리는소설이다.그야말로지금의한국문학이도달한또하나의경계위에서,그리고동시대서사에가능한방식으로응답하는책이아닐수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