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우주의 문법 (그 우주에는 인어와 화성인과 주머니고양이가 산다)

다른 우주의 문법 (그 우주에는 인어와 화성인과 주머니고양이가 산다)

$18.80
Description
언어가 창조하는 광대한 우주를 탐험하는 아홉 편의 오디세이아
언어라는 접속 지점이 우리의 경험과 만나는 순간, 이 점은 우주가 되어 이 세계를 만든다. 아련한 유년기 첫사랑의 경험담에서 시작해 차별과 학살의 굴곡진 역사와 파도처럼 물결치는 인어의 언어와 주시경에서 〈자유부인〉으로 이어지는 한글의 변천사를 거쳐 지금 이 순간에도 생성되고 분화하고 있는 언어의 생명력 넘치는 현실로 돌아오는 경이롭고 환상적인 오디세이아.

“외국인들에게 처음으로 한국어를 가르칠 때 받는 느낌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여러 표현이 있겠지만 나는 ‘난파당하다’라는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바다에서 항해하다 난파당한 느낌. 내가 잘 알던 바다는 내가 전혀 모르는 곳이 된다.”_〈꿈의 형태〉
저자

백승주

저자:백승주
한국의변방제주에서나고자랐다.제주에서육지로불리는땅으로건너와서10년동안외국학생들에게한국어를가르쳤다.이시간동안한국과한국어를타자의눈으로보는법을익혔다.지금은전남대학교국어국문학과에서한국어교육학과사회언어학을연구하고가르치고있다.지은책으로《어느언어학자의문맹체류기》,《미끄러지는말들》이있다.

목차

프롤로그
1장아껴부르는이름
2장수심12미터
3장당신의삼각형:조각들
4장바람의음운론
5장꿈의형태
6장실험의재구성
7장테라인코그니타
8장다른우주의문법
9장그녀.가면.풍경.
감사의말

참고자료

출판사 서평

익숙하고당연한세계에균열을내는도끼
―이상한세계의언어학자

우리가쓰는언어는우리가선택한것이아니라주어진세계이다.우리는이미정해진말의체계를통해삶을시작한다.이렇게너무익숙해서의심조차할수없는언어에대해한가지질문을던진다면어떨까?‘외국인에게한국어를가르쳐본적이있는가?’그때비로소보이지않던것들이갑자기낯선모습을드러낸다.나의모어가외국어가될때우리는모어에대해서하나도모른다는사실을제일먼저깨닫게된다.신간《다른우주의문법》은이도발적질문이던지는균열의기록이자,익숙한세계바깥으로낯선세계의가능성을일깨워주는인문학에세이다.

《어느언어학자의문맹체류기》,《미끄러지는말들》을통해새로운시선으로한국사회를재해석해왔던언어학자백승주교수의실험적글쓰기는《다른우주의문법》에서절정에달한다.이책은음성학,음운론,형태론,통사론,의미론,화용론같은언어학의핵심개념들을골격으로삼지만,교과서처럼딱딱하고어려운설명을늘어놓지않는다.그대신언어학에상상력과픽션이라는낯선장르를결합한다.그결과,언어학의지식은우리삶에그대로투영되어생생한서사와감각으로재창조된다.

프롤로그에서백승주교수는프리모레비를떠올린다.처절한경험과지인들의이야기를각각의원소로비유했던프리모레비의《주기율표》처럼저자역시언어학의개념들을설명의도구로쓰려했다고고백한다.그러나글을쓰고난뒤저자는깨닫는다.이책은자신이언어에대해말한것이아니라,언어가자신을빌려세상과삶에대해말한기록이라는사실을.《다른우주의문법》은사전이나문법책속화석같은언어가아니라삶에서끊임없이분기하는활화산같은언어의현장을보여준다.앨리스를이상한나라로인도하는분홍색눈의하얀토끼처럼이책은독자에게언어라는토끼굴을통해광대하게펼쳐지는새로운다른세계로안내해줄것이다.

“외국인들에게처음으로한국어를가르칠때받는느낌을뭐라고표현하면좋을까?여러표현이있겠지만나는‘난파당하다’라는말이제일먼저떠오른다.자신이너무나잘알고있는바다에서항해하다난파당한느낌.내가잘알던바다는내가전혀모르는곳이된다.”_〈꿈의형태〉

언어가몽상하는세계와삶의이야기
―영원히계속되는변신과변주

언어는소리와대상으로이루어진다.그리고이소리와대상의관계는필연적인것이아니라어디까지나자의적이다.그러기에세상에는같은내용을다른형식으로말하는각양각색의언어가존재한다.이런소리와대상의관계처럼《다른우주의문법》은언어라는의미를다양한형식으로표현한책이라고할수있다.책에수록된아홉가지의이야기는형식적으로장르적으로계속변신하며언어라는‘기의’와결합하는‘기표’역할을수행한다.독자는책을펼치는순간부터이책이‘언어학’에관한인문서인지,흥미진진한소설를읽고있는지분간할수없을것이다.픽션과논픽션을오가는저자의글쓰기는언어를하나의시점에서바라보는것이아니라다른각도에서다른관점으로낯설고흥미롭게조망한다.

저자의아련한유년기첫사랑이야기(〈아껴부르는이름〉)에서시작하여관동대학살과4·3사건이라는굴곡진역사에서언어가어떻게차별과혐오를공고히하는역할을했는지추적하는가하면(〈당신의삼각형〉),주시경의행적과〈자유부인〉(정비석,1954)에담긴숨겨진역사를통해한국어표기법이형태주의로확립되는과정을살펴본다(〈꿈의형태〉).그런가하면〈바람의음운론〉은인어가실재로존재한다는가정으로시작하는단편소설이다.소설은언어가단순한커뮤니케이션수단에그치지않는다는것을‘인어’라는메타포로상징적으로보여준다.

또한파도에따라변하는인어의언어를통해자의적이면서배타적인,언어의유령같은본질까지포착해낸다.표제작〈다른우주의문법〉은SF소설〈전도서에바치는장미〉소개로시작해서종국에는저자와소설속주인공이벌이는가상의논쟁으로이어진다.사전과문법만을달달외우면모든언어를이해할수있다고주장하는상대에게저자는“언어를배운다는것은그언어를사용하는사람들의삶을함께공유하고배운다는것”이라고일갈한다.이처럼《다른우주의문법》은실재하는역사와가상의픽션을오가며카멜레온처럼다면적인얼굴을지닌언어의총체적인본질이무엇인지탐구한다.

“문법의의미는그문법을사용하는사람들사이의수많은사회적상호작용,당신이숨결이라고부르는것속에있습니다.문법은결국그런상호작용으로생성된일종의사회적구성물이죠.그래서우리가예상하지못했던새로운질서가발생하기도하고요.이것이진정한문법의성질입니다.”_〈다른우주의문법〉

끊임없이순환하는언어와세계
-언어는세계가되고,현실은다시말이된다

관동대학살당시일본인자경단은아무나붙잡고‘쥬우고엔고쥬우쎈(15엔50전)’을발음해보라고시킨다.유성음과무성음을구분하지않는조선인들이이발음을잘하지못한다는사실에기반한사냥법이었다.삶과죽음을갈랐던‘쥬우고엔고쥬우쎈’은오늘날‘짱깨,페미,맘충,틀딱,급식충,영포티’로부활하여계속이어지고있다.우리는보통언어가현실에영향을받는다고생각하고언어가현실에영향을준다고생각하지는않는다.하지만저자는위와같은끔찍한사례를통해반문한다.정말언어는도구에불과할까?말이사고를만들고,사고가현실을결정한다면,언어란우리의삶전체를규정하는가장근본적인힘이아닐까?

《다른우주의문법》은언어가세계를비추는거울일뿐아니라세계를‘설계’하고‘조립’하는틀자체라고얘기한다.언어는현실을기록할뿐아니라,현실을규정하고해석하는방식자체를결정한다.더나아가언어는현실을새롭게만들어내기까지한다.처음에는학벌사회에대한농담에서시작됐던‘인서울’은맥락과내용이잊히고한국인들의욕망을상징하는단어로불멸의생명력을얻었다.이제한국은서울과비서울로구성된나라로재편되어‘인서울’을충실하게따른다.‘인서울’이라는새로운단어가현실을추동하여실제한국의지리를바꾸고있는것이다.

이처럼언어는우리의생각이상으로강력하고파괴적으로세계를재구축해나간다.말이사람들을통과해세계가되고,세계가다시사람들을통과해말이되는순환을통해우리가사는세계는끊임없이변화한다.그속에서진짜주인공은우리가아니라언어인것이다.언어는인간이사용하는도구가아니라오히려인간의내면에서잠들어있던기억과욕망을일깨우며우리를움직이게한다.그런의미에서이책은언어를이해하는것이곧‘세계가확장되고뒤바뀌는경험’이며,우리가가진언어를바꾼다면우리가사는세계도바꿀수있음을흥미롭고설득력있게보여준다.지금이순간에도우리머릿속에서는이미어떤단어가,어떤문장이우리의경험과공명하여꿈틀거리기시작했을지모른다.그미지의단어와문장이열어젖히는문너머에다채롭고경이로운우주의문법이우리를기다리고있는것이다.

“요동치는나의횡격막과는달리물속은무심한듯고요하다.그고요속에서나는깨닫는다.내입속모든소리는결국나의폐를가득채웠던숨이었다는것을.”_〈수심12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