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아프게하지않는이야기를쓰고싶었다”
한국문학의근간을호명하는소설선올-타임
그첫번째,전경린이등단31년만에처음으로꺼내놓은유년의기억
‘올-타임’은시대를초월하여우리곁에함께했으며,앞으로도함께할작가를조명하는프로젝트로,김영사에서선보이는첫번째한국소설선이다.그시작을등단31주년을맞이한소설가전경린이연다.사랑과상실,욕망과모순으로뒤엉킨인간의내면과관계를탐구하며한국문학의한주축으로자리해온그가이번에는아주특별한작품을들고찾아왔다.신작『천개의웃음과눈물의낙원』은작가가등단이후처음으로꺼내놓은‘빛나는보물’같은작품이다.“쓰지않으려고꽤나버텼다”던작가의고백처럼,이소설은그가가장행복했던시절,유년의기억에서길어올린작품이다.
기억의끝에서길어올린한줌의광휘
쓰지않으려버텼지만끝내축복처럼쏟아진이야기
깜깜한길을걷다도저히움직일수없을때,딱한발짝을떼기위한한줌의빛이간절할때,우리마음한구석에서는무언가반짝빛을발한다.그것은어떤기억이자눈길이다.내가바라보았고,나를바라보아주었던다정한시선들.세간의평가나잣대없이세상을투명하게바라보던어린날의나.“아주오랜시간이지난뒤에,나라고하기엔너무먼그아이를새별이라고부르고싶어.”소설은이렇듯기억의가장자리에남아있는한줌의광휘에서시작된다.
“그마을은사과속의씨앗처럼세상에서꼭꼭숨어있어.가장먼저떠오르는건감꽃으로덮인길이야.누가부려놓은듯,마을안길이온통감꽃으로덮여있었지.감꽃은흔히미색이라고하는연한노란색이야.태어나처음입는배내옷같이옅고흐린색,그건초유의색이기도해.”
온통감꽃으로덮인미색의흙길을지나도달한작은마을.소설의어린화자‘새별이’는어느날마을로이사온아이다.작가는새별이를만나기위해“나선형의기억을따라”이제는“흙으로덮여버린”길을오래도록더듬어야했다.너무나소중해쉬이꺼내볼수없던기억이지만,그한줌의광휘는때로평생을살게하는힘이된다.‘사과속의씨앗처럼’세상에서꼭꼭숨어있는마을,‘태어나처음입는배내옷같이’옅고흐린감꽃이뒤덮은그곳은작가가오랜시간아껴온빛나는보물이다.
“그런데낙원이라니”
아프고불온한시대속에서도
기어이피어난웃음과눈물
감꽃이뒤덮은마을은언뜻낙원처럼보인다.그러나이곳은“어딘가아프고불온”한낙원이다.곳곳에전쟁의상흔과시대의핍박이짙게배어있다.피난길에포탄을맞아정신이나간‘복덕이’,학도병으로끌려가한쪽다리를잃고돌아온상이용사‘희조아재’,아이를낳지못한다는이유로쫓겨난‘순자이모’,치마를입지못하는아이‘재남이’,여섯살난아이를떼놓고집을떠나야했던‘봉연이할매’와사람이떼로죽어피로물든바다를본뒤론다시는바다를바라보지못하게된새별이엄마까지,사연없는이가없다.발문을쓴소설가강화길은질문한다.“그런데낙원이라니.”
강화길의말처럼“새별의시간은결코낙원이아니다”.그렇다면그들의삶은그저불행하기만했을까?소설곳곳을채우는웃음과눈물은그렇지않다고단언한다.새별이가처음세상을감각하고,상실을예감하며,타인의사랑을통과해나가는날들은감꽃이눈처럼떨어지던순간,이름이처음다정하게불리던찰나의순간들로눈부시게반짝인다.
‘천개’는새별이가아는가장큰숫자,곧헤아릴수없이많다는뜻이다.그러니제목이말하는낙원은다름아닌,셀수없이많은웃음과눈물이쌓인곳이다.전경린이그리는낙원은행복만으로채워진공간이아니다.그안에는기쁨도있고,고통도있다.그러나전경린은그사이사이에감꽃과보리,메주냄새,누에가뽕잎을갉아먹는소리를채워넣음으로써사소하지만끈질긴것들이한사람을살아가게하는근원임을조용히증명한다.
자극과도파민이넘쳐나는시대,이소설은그반대편에조용히서있다.“누구도아프게하지않는이야기”를쓰고싶었다는작가의고백처럼,작가에게평생힘이되어준그시절의이야기는고단한현실을살아가는모두의마음에깊은위로와다정한응원을건넨다.
추천사
그러니까이소설은외로움과슬픔,사무치는서러움에도불구하고스스로빛났던어떤아이에관한기록이다.맹랑하고,눈치빠르고,서슴없이사랑을표현하는아이.그리고그시절덕분에여전히빛을내고있는누군가의이야기이기도하다.그래서궁금하다.슬픔이어떻게기쁨이될수있을까.상처가어떻게빛이될수있을까.새별이는어떻게사랑을사랑으로기억할수있었을까.
-강화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