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우언라이 (중국 최고 권력의 그림자)

저우언라이 (중국 최고 권력의 그림자)

$78.00
Description
25년간의 연구와 검증, 방대한 다국어 사료로 집대성한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생애와 중국 공산주의 혁명의 명암
국제 냉전사 및 중국 현대사 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천젠(Chen Jian)이 25년간의 연구로 완성한 본격 저우언라이 평전. 중화인민공화국 건설의 주역이자 초대 총리로서 내정과 외교 양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 저우언라이의 생애를 다층적으로 살핀다.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미·중 관계 정상화, 한국전쟁 등 세계사의 주요 분기점을 따라 저우언라이의 삶을 입체적으로 추적하며, ‘영원한 인민의 총리’이자 ‘독재자(마오쩌둥)의 부역자’라는 모순된 평가를 동시에 받는 한 인물의 궤적을 중국 혁명의 명암으로 재조명한다.
한 정치가의 생애를 넘어, 권위주의 체제 속 국가와 개인,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고 조정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20세기 중국 정치사에 대한 결정적 기록.

√ 중국에서 저우언라이는 인민을 사랑하고 거듭된 국난을 극복한 ‘영원한 총리’로 추앙받는다.
반면 일부는 그를 ‘마오쩌둥의 충견’이자 ‘역사적 비극의 조력자’로 비판해 왔다.
이 책은 그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중국 현대사나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읽자마자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역작이다.
- 조영남(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 30년 넘게 저우언라이 연구에 매진해 온 국제 냉전사의 거목, 천젠이 내놓은 회심작.
이용 가능한 모든 사료를 총동원한 매우 균형 잡힌 대작이다.
저우언라이와 중국 현대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뜻깊은 경사가 아닐 수 없다.
- 정종욱(전 중국 대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저자

천젠

ChenJian,陈兼
냉전국제사,미중(美中)관계사,현대중국사분야를선도하는세계적인석학.
중국상하이에있는푸단대학(复旦大学)과화동사범대학(华东师范大学)에서역사학석사학위를,미국서던일리노이대학교(SouthernIllinoisUniversity)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뉴욕대학교(NYU)와뉴욕대학교상하이(NYUShanghai)의글로벌네트워크역사학석좌교수,코넬대학교(CornellUniversity)후시역사학명예교수,화동사범대학지장석좌초빙교수로재직하고있다.
2007년코넬대학교에서중국과의학술교류증진에기여한공로를인정받아‘제프리숀리먼(JeffreySeanLehman)연구기금’을수여받았다.또한1993년노르웨이오슬로의노르웨이노벨연구소펠로십(NorwegianNobelInstituteFellowship),1996~1997년미국평화연구소(UnitedStatesInstituteofPeace)의제닝스랜돌프시니어펠로십(JenningsRandolphSeniorFellowship)등여러연구펠로십을받았다.
2005년에는다큐멘터리〈기밀해제:닉슨의방중(Declassified:NixoninChina)〉으로뉴스·다큐멘터리연구부문에서성과를인정받아에미상을공동수상했다.
대표저서로는중국의한국전쟁참전결정을‘냉전초기미중대결의시작점’으로분석한『중국의한국전쟁으로가는길(China’sRoadtotheKoreanWar)』(1994),마오쩌둥시대중국의대외정책과냉전체제전략을재구성한『마오치하중국과냉전(Mao’sChinaandtheColdWar)』(2001)이있으며,이외에도수많은논문과편저를남겼다.
기존에서구중심으로구성되어온냉전사서술에중국과아시아의관점을반영하여균형을더하고냉전국제사연구의지평을넓혔다는평가를받는다.

목차

영어원문에쓰인본문약어
프롤로그

제1부유년기
제1장유년시절1898~1910
제2장만주에서난카이까지1910~1917
제3장일본1917~1919
제4장5·4운동가1919~1920
제5장유럽에서공산주의자가되다1920~1924

제2부혁명을만들다
제6장대혁명의폭풍속으로1924~1927
제7장상하이지하활동1927~1931
제8장장시농촌1931~1934
제9장대장정1934~1935
제10장“중국인으로서,우리는하나의국가로싸워야한다”1935~1937
제11장충칭의안개1938~1943
제12장옌안의일출1941~1945
제13장강대국정치의소용돌이1944~1946
제14장내전1946~1949

제3부‘신중국’을건설하다
제15장“우리중국인은일어섰다!”1949~1950
제16장한국전쟁1950~1953
제17장사회주의이행1952~1955
제18장제네바에서반둥까지1954~1955
제19장돌진할것인가,말것인가?1956~1958
제20장대약진운동1958~1960
제21장마오,‘2선’으로후퇴하다1959~1962
제22장주석이돌아오다1962~1963
제23장중간지대의혁명들1962~1965
제24장거센바람속의먹구름1965~1966

제4부문화대혁명에서살아남기
제25장문화대혁명의서막1966~1967
제26장천하대란1967~1968
제27장린뱌오의죽음1969~1971
제28장닉슨과키신저,중국에오다1969~1972
제29장영광이눈물을거두다1972~1974
제30장마지막날들1974~1976

감사의말
옮긴이의말
주석약어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마침내저우언라이에게마땅한전기가출간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초대총리이자외교의거인
혁명과냉전,권력투쟁의소용돌이속에서
중국의운명을설계한‘태양옆의2인자’,저우언라이
2026년저우언라이서거50주기를맞아『저우언라이:중국최고권력의그림자』가필로스시리즈46번째도서로출간된다.국제냉전사및중국현대사연구의세계적석학인천젠(ChenJian)이25년간축적한연구와방대한다국어사료를바탕으로완성한본격평전이다.
저우언라이(周恩來)는중화인민공화국을건설한공산주의혁명가이자초대총리로,27년간권력의중심에서국가의기틀을다진실무형지도자다.국제무대에중국의존재를알리고중국의행정체계와외교노선을실질적으로구현한핵심인물로서,마오쩌둥의‘계속혁명’이야기한혼란을조율하고냉전의한복판에서미·중관계정상화를주도했다.전세계를놀라게한‘핑퐁외교’를설계한이또한저우언라이다.
그러나오늘날마오쩌둥의혁명에대한평가가본격화되면서오랫동안14억중국인에게‘현명하고자애로운인민의총리’로추앙받아온그는다시복잡한해석의대상으로떠올랐다.마오의극단적인혁명노선이대약진운동으로인한대기근과문화대혁명이라는거대한파괴를초래했다면,그에게평생충성하며정책을수행한저우언라이를어떻게이해해야하는가?
『저우언라이:중국최고권력의그림자』는저우언라이를‘인민의총리’나‘독재자의부역자’같은하나의잣대로규정할수없다는인식에서출발한다.저자는대약진운동과문화대혁명,한국전쟁과미·중관계정상화등세계사의결정적장면속에서저우언라이의삶을복원하며,중국공산주의혁명의모순과명암을상징하는인물로그를재조명한다.이를통해중국을실질적으로움직인행정가이자냉전의얼음판위에서전략을설계한외교가,그리고마오쩌둥이라는압도적권력앞에서흔들릴수밖에없었던한개인이라는다층적인모습이드러난다.
국제냉전사연구의거장천젠은25년간의연구와영어·중국어·러시아어등다국어사료를바탕으로저우언라이의전기를치밀하게재구성했다.여기에미국조지H.W.부시미·중관계재단선임연구위원인국제정치학자이성현교수가번역을,중국현대사·엘리트정치연구를이어온조영남서울대학교국제대학원교수가감수를맡아완성도를더했다.
『저우언라이:중국최고권력의그림자』는한정치가의전기를넘어혁명과권위주의체제속에서국가와개인,이상과현실이어떻게충돌하고조율되는지를보여주는20세기중국정치사의결정적기록이다.현대중국사와세계사,그리고혁명이라는거대한주제를입체적으로이해하고자하는독자들에게귀중한지적여정이될것이다.

“저우언라이의생애는중국공산당의역사그자체다”
혁명가이자행정가,이상과현실의경계에서근대중국사의격랑속을건너온한인물의궤적
저우언라이의생애는제국주의일본의침략에분노했던소년시절부터암으로생을마치기까지근현대중국사의굴곡과정확히포개진다.천젠은그의유년부터말년까지를역사적사건과사회적맥락속에배치해,한인물의궤적을통해시대전체를비추는평전을완성했다.
쇠락한가문에서태어나어린나이에생계전선에뛰어든저우언라이는불교적신심과유교적윤리를내면화하며성장했다.이경험은공산주의자로변모한뒤에도조용한헌신,절대적충성,최고권력에대한무욕이라는성향으로이어졌다.청년기에는항일학생운동에참여하고일본과유럽유학을거치며조국을구할사상과새로운‘주의’를탐색했다.그리고유학시절중국공산주의청년단유럽지부활동에참여하며,그는철저히‘당의사람’으로살아가게된다.
그러나혁명의현장은이상과거리가멀었다.장제스의탄압을피해혹독한대장정을견디고국공내전승리후중화인민공화국수립에참여했지만,곧마오쩌둥의급진적노선과충돌하게된다.사회주의조기이행요구에본능적반감을품으면서도저우언라이는정풍과자기비판을반복하며충성을택했다.그러나그충성이곧동의를뜻하지는않았다.그는체제내부에남아극단을완화하고피해를최소화하기위해가능한모든조율을시도했다.
혁명의고비마다저우언라이의역할은결정적이었다.홍군이궤멸위기에몰렸을때말라리아로병상에있으면서도조직을지켜냈고,국공내전승리뒤에는권력투쟁의균열을봉합하며국가수립의기반을닦았다.이승리의배경에는저우언라이특유의현실감각과조정능력이있었다.
소련의노선과중국내부현실이충돌하던순간,장제스의압박과코민테른의지시사이에서당의존망을결정짓는선택을감당한것도그였다.국공내전의혼란기뿐아니라중화인민공화국수립이후에도그는스스로권력내부의완충지대역할을맡아극단을누그러뜨리고균형을유지하려했다.
그의생애를따라가는동안독자는중국공산당의역사가추상적이념의승리나단선적인성공신화가아니라,냉혹한현실속에서생존을위해치러야했던선택들의연속이었음을실감하게된다.혁명가와관료,이상주의자와현실주의자가한인물안에서끊임없이충돌하고공존하는내적긴장은혁명의필연적그림자이자20세기중국사의본질이며,이평전은그지점에서개인의전기를넘어시대를해석하는역사분석으로확장된다.

중국을넘어세계의역사를바꾼“외교의거인”
제네바에서반둥까지,외교의최전선에서세계질서를다루다
저우언라이는국공내전전후장제스와의협상과중국공산당정보기관운영을통해특유의균형감각과조정능력을인정받았고,중화인민공화국수립이후에는국가를대표하는외교의얼굴로자리잡는다.타이완의장제스와경쟁속에서유엔대표권을확보하며중화인민공화국의정당성을국제사회에각인시킨것도그의성과다.
특히1954년한국전쟁휴전직후열린제네바회의는저우언라이외교의정점으로평가된다.그는인도차이나전쟁에서승리를눈앞에둔베트남을설득해국토의일시적분단을수용하게함으로써동맹국의신뢰를확인시키는한편,강대국간충돌을방지하며중국의외교적위상을널리알렸다.
이후저우언라이는1955년인도네시아반둥에서열린아시아-아프리카회의에나선다.그는이회의를“중국이비서구국가들사이에서영향력을확대할절호의기회”이자,“중국공산당의국내동원노력에큰영향을미칠”(514쪽)사건으로보았다.이에인도총리자와할랄네루와버마총리우누와사전접촉해지지를확보했고,회의장에서중국이“제국주의와식민주의의세계적지배에반대하여서있는아시아및아프리카국가들중하나임”(520쪽)을천명했다.이는중국을고립된혁명국가에서비서구연대의핵심축으로끌어올린저우언라이외교의대표적성취로평가된다.
특히이자리에서저우언라이는중국이다른국가에공산주의이념을수출하지않을것임을공개적으로확약했다.원칙은지키되표현방식에서는과감한유연성을발휘하는,저우언라이특유의외교스타일이뚜렷하게드러난장면이다.이러한접근은이후인도와의영토분쟁에서도다시확인된다.
저우언라이는언제나대화와타협을통해문제를해결하고자했던외교관이었다.이러한접근은종종강력한대중동원을중시했던마오쩌둥과갈등을빚기도했지만,결과적으로중국이국익을지키고국제적위상을유지하는데결정적인역할을했다.“외교의거인”이라는칭호는결코과장이아니며,저우가없었다면오늘날중국의위치와세계사의흐름은크게달라졌을것이라는평가도무리가아니다.

중국혁명시대의모순적초상
대약진운동과문화대혁명이라는광풍속에서
외교무대에서빛났던저우언라이도내부의격랑을피할수는없었다.1956년,마오쩌둥은“중국의경제발전이빠르면빠를수록더좋다”(528쪽)는신념아래무리하고“재앙적인대약진운동”(529쪽)을밀어붙였다.저우는사회주의적재건과변혁의급속한추진이경제에미칠위험을우려하며신중론을폈쳤지만,무모한전진에반대한이“치명적인실수”로인해그는가혹한비난에직면하고“위대한설계”를위반한잘못을공개적으로시인하고사죄하며철저한복종을맹세해야했다.
그러나저우의우려는곧현실이되었다.무리한철강생산목표는국가경제에파국을불러왔고,결국‘사람이사람을잡아먹는’끔찍한대기근에이르렀다.이어진문화대혁명에서도상황은달라지지않았다.마오쩌둥은인민을직접동원해당과국가기구에도전했고,그누구도반기를들수없었다.그는혁명과정권의정당성서사를독점했고,지도부누구도그에맞설새로운서사를제시할수없었다.
저우언라이는혁명의조속한종결을바랐지만,마오의승인없이는아무것도할수없었다.사실마오자신도혁명을언제,어떻게끝낼지알지못했다.“문화대혁명은마오와저우모두‘마르크스를만나러’간후로부터도칠년이더지나서야(794쪽)”끝나게되었다는이책의서술로부터우리는‘혁명이란무엇인가’를고민하게된다.
문화대혁명이라는폭풍속에서저우언라이는외교부와국무원조직등을보호하고국가생산을유지하도록하는등중국이무너지지않도록가용한모든행정권력을동원했다.그럼에도결국그는마오쩌둥에게부역했고,그과정에서초래된재앙적결과에대한책임또한피할수없다.그러나동시에책은지적한다.저우언라이가“없었다면승객수억명을태운중국이라는큰배는침몰했을지도모른다”(791쪽).이모순적이지만필연적인양상속에서저우언라이의삶은다시한번평가를요구받는다.

마오쩌둥과저우언라이,
평생서로의그림자속에살아야했던
중화인민공화국의두최고권력
살을에는듯추웠던1976년베이징의겨울,“톈안먼광장에서열린저우언라이의추도식에마오쩌둥이모습을드러내지않았다”는서술로책은시작한다.추모인파는이내흩어지지않았다.군중은“저우언라이를보위하자”(21쪽)라는현수막을들고다시광장에모였고,인근담벼락에는다음과같은시가내걸렸다.“진시황독재의시대는영원히갔으니/인민은더이상그리쉽게속지않으리!(24쪽)”.
마오쩌둥은이시위를“본질적으로반동적(24쪽)”이라규정했고,무력으로진압할것을명했다.그로써자신의혁명이실패하였음을스스로시인한것과다름없었다.“이것이바로중국혁명시대의장례식이었다.바로그때에탈혁명시대의막이올랐다(24쪽).”저우언라이의사망과함께마오쩌둥의시대가저물기시작했다는진술은섬뜩할만큼상징적이다.
1925년광저우에서의첫만남이후저우언라이는줄곧마오의가장든든한동반자였다.마오의과도한권력욕을경계하면서도,그는결국마오에게자신의신념을맡길수있다고믿었다.1934년대장정을떠날때도저우는마오가반드시함께해야한다고강하게주장했다.그가아니었다면마오는장시홍구에남아비참한최후를맞았을수도있다.세계사의흐름역시달라졌을것이다.이후마오가홍군을지휘하게되었을때도,정보활동의귀재였던저우언라이는자신이획득한정보를오직마오에게만공유했다.그렇게부상한‘군사천재마오쩌둥’신화뒤에는늘저우언라이의조율과희생이있었다.
그러나역설적으로마오쩌둥은저우언라이를온전히신뢰하지못했다.강렬한권력욕의화신이었던마오는스스가단일한정당성서사가되었으며,그서사에는어떤흠집도허용되지않았다.그는자신의혁명노선에완전히동조하지않는이라면누구든가차없이숙청했다.그의2인자였던류사오치(劉少奇)와지명후계자였던린뱌오(林彪)도그렇게몰락했다.그런마오가평생의심하고여러차례혹독하게비난하였던저우언라이만은끝내숙청하지못했다는점을주목하여보아야한다.
이책은그이유를문화대혁명이라는역설적상황에서찾는다.기존의당과국가구조와단절하려했던마오는바로그혼란속에서역설적으로“기존구조가지닌권력의화신”(751쪽)이던저우언라이를그어느때보다필요로했다.저우언라이없이마오는혁명을유지할수없었다.무한한권력을쥔듯보였지만,결정적순간마다저우언라이의조력에기대야했다.결국마오쩌둥에게저우언라이는자신의‘불능’을자각케하는존재였다는것이다.
그리하여“저우의행정능력이마오의권력을결국포획했다(915쪽)”라는이책의분석은두사람의관계를단순한주종관계,협력관계내지는1인자와2인자로바라보는기존의단편적인시각을넘어새롭고입체적인관점을독자들에게제시한다.마오는권력의주인이었으나,저우가만든현실적기반위에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