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스미는 동안 (김경순 소설집)

빛이 스미는 동안 (김경순 소설집)

$14.00
Description
다채로운 감정의 결로 드러나는 상처와 희망의 언어
어둠과 다정함이 교차하는 자리, 잔광처럼 남는 이야기
아홉 가지 색으로 반짝이는 김경순의 첫 소설집
2004년 ‘문학수첩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이후 《춤추는 코끼리》를 통해 제8회 〈김만중문학상〉을 수상하고, 《장미꽃을 쏴라》로 제8회 《황산벌청년문학상》을 받은 김경순의 첫 소설집 《빛이 스미는 동안》이 문학수첩에서 출간되었다. 여성이 체험하는 다양한 삶의 단면을 매만져 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 담긴 아홉 편의 이야기를 통해 서로 다른 색채로 반짝이는 감정의 결을 드러낸다.

〈열대를 베다〉는 삶의 기저가 무너진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상처와 그 상처를 덮으려는 부단함 그리고 이 모든 것에서 비켜서 잠깐이나마 머리를 기대는 순간을 그린다. 〈양의 기호〉는 연애와 일 모두 관계의 바깥에 머물던 여성이 함께하기를 바라지만 작은 소원조차 결국 바래 버리고야 마는 과정을 따라간다. 〈쇼윈도〉는 버리고 싶은 것과 차마 버릴 수 없는 것 사이에서 길게 늘어지는 마음과 피어싱처럼 그사이를 통과하는 아픔을 응시한다. 〈체인〉과 〈너의 빛〉은 빛과 어둠이라는 상반된 대상을 드리우는 존재가 실은 다르지 않음에 관해서 말하며, 〈탈수〉는 퇴색한 피부 아래 자리한 부글대는 욕망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도시의 벤치〉는 현재를 연료로 기억의 불씨를 지피는 여성을 그려 내고 있다. 이처럼 김경순은 다채롭게 번지는 감정들을 세심하고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우리 앞에 펼쳐 놓고 있다.

앞선 작품과는 또 다른 질감으로 새로운 빛을 내는 소설도 있다. 우연히 휘말리게 된 살인 사건, 자신의 증언만이 용의자를 특정할 유력한 증거가 되는 상황에서 갈림길에 선 소년이 느끼는 두려움을 다룬 〈파파의 괘종시계〉, 식량 문제로 인해 멸망할 위기에 놓였던 인류가 개량한 인육을 통해 생존을 영위하는 세계, 그곳에 번진 추함과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반짝임을 말하는 〈언더그라운드 소금 광산〉이 바로 그 두 작품이다.

이처럼 김경순의 첫 소설집은 개별 작품들이 보여 주는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결국 모두 인간이 겪는 상처와 결핍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그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의 결을 집요하게 포착하고 있다. 관계의 균열, 일상의 위협, 사소한 흔들림이 켜켜이 쌓여 인물 주위를 에워싸지만 작가는 그것을 단순한 고통의 나열로 두지 않는다. 대신 고통과 다정함, 빛과 어둠이라는 상반된 요소가 동시에 존재하는 장면을 세밀하게 붙잡아,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내면의 결을 섬세하고도 정확한 언어로 드러낸다. 언제나 환할 수는 없는 세계에서 선물처럼 어깨를 감싸는 빛 그리고 그 빛이 사라질지언정, 남은 온기가 삶을 앞으로 밀어 올리는 순간들을 김경순의 소설집을 통해 만나 보길 바란다.
저자

김경순

저자:김경순
2004년〈쇼윈도〉로문학수첩신인문학상을받아등단했다.장편소설《21》,《춤추는코끼리》,《빌바오,3월의눈》,《장미총을쏴라》를출간했다.제8회〈김만중문학상〉,제8회〈황산벌청년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열대를베다…7
양의기호…41
쇼윈도…71
체인…95
너의빛…119
탈수…141
도시의벤치…165
파파의괘종시계…179
언더그라운드소금광산…207

작가의말…230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입주당시중학생이던딸에게꿈과희망을주고싶어서창이있는밝은쪽을내주었다.그러나딸이하교해서제일먼저한일은암막커튼을치는일이었다.
_15~16쪽,<열대를베다>에서

50센티미터?호수가깊지않은데왜배를타고다니지?
물이너무더러워서.
노를젓는건배가앞으로나아가기위해서다.여기선배를밀었다.배를미는게오염된물때문이라고는아무도생각하지않을것이다.
_33쪽,<열대를베다>에서

맞아.그랬어.그게그말이지.그럴상황이안돼서안하는거나,하기싫어서안하는거나결과는같잖아.
그럴상황이되면한다는건데그게어떻게같아?넌항상그런식이더라.
그는그렇게규정짓고떠났다.무선포트의물은혼자끓은뒤혼자조용히식었다.케이크의딱딱한절단면도공들여자를필요가없어졌다.그녀는이케이크는이럴운명이었다고생각하며버렸다.
_45쪽,<양의기호>에서

쪽유리창을통해본세상은닭봉지를건네는사람과낚아채가는사람두종류였다.여자는쇼윈도밖의세상에눈을떼지않았지만그들은여자를곁눈질조차하지않았다.시간은사람들의물결처럼흘러갔다.
_81쪽,<쇼윈도>에서

오늘은우리아들학교에서뭐하고놀았어?
응응,벌레놀이했어.
벌레놀이?그게어떤놀이야?
지렁이를잡는거야.내가지렁이야.친구들이나한테모래를뿌리면나는꿈틀꿈틀해.
아이가갑자기시무룩해지더니이마를만졌다.땀에젖어이마에달라붙어있는머리칼을들춰보니피딱지가맺혔다.
_112쪽,<체인>에서

영가등에서따뜻한빛이은은하게배어나왔다.죽음의빛치고는황홀했다.죽음은흰빛일거야.별빛처럼차가운빛.벌겋게타오르는살생의세계에서흰빛을지킨다는건힘든일이지.달빛처럼손이라도갖다대고싶은빛이어야지.
_139쪽,<너의빛>에서

밤이되면그녀는조용히어둠의은신처에서기어나온다.가장편한벤치에누워기억의방을배회한다.오로지꿈만이그녀와그녀를이어준다.그녀가되었어야하는것의늦어버린모호한꿈.
_177쪽,<도시의벤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