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의 이야기

이야기 속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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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야기란 문학 용어로 말하면 서사敍事인데 시간과 공간과 사건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이야기에는 문자와 말로 표출된 의미만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의미도 그 속에 함축되어 있다. 독자나 청자는 언어로 표현된 이야기를 읽거나 듣지만, 실은 드러나지 않은 의미도 함께 감상한다. 그 의미가 자신에게 가치 있는 것이면 재미있는 이야기이지만,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해 감흥이 없다면 무의미한 언어의 나열이니 지루할 수밖에 없다. 단순하고 재미없는 이야기 속에 드러나지 않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면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이야기라도 새롭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므로 ‘이야기 속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한다. 이야기는 소설처럼 글로 쓴 문학도 있고 신화, 전설, 민담처럼 말로 구술되는 문학도 있는데, 여기서는 말로 구술된 이야기를 중심으로 드러나지 않은 의미를 탐색하려고 한다.
사실을 바탕으로 꾸민 이야기이든 상상으로 꾸민 허구이든 간에 그 이야기가 가치 없다고 생각되면 들어도 금방 잊어버려 관심에서 멀어지지만,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여긴 이야기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면 그것이 늘 자기의 마음속에 남아서 삶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마음에 남았다는 것은 비록 꾸며진 것이라 해도 이야기에 담긴 의미가 내 삶에 가치가 있기 때문인데, 이야기에 담긴 의미는 바로 이야기 속에 숨겨진 진실이고 이것을 탐색하는 작업이어서 글 제목을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고 했다.
어렸을 적에 밥을 먹다가 상 밑에 밥알을 흘리기도 하고, 밥그릇에 남은 밥알을 깨끗이 먹지 않고 남기기도 하는데 이를 본 할머니는 밥알이 밥상 앞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쳐왔는지 그 지루한 밥알의 내력을 손주에게 예외 없이 이야기하신다. 할머니 시대에는 농부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 이루어지는 농산물이 없으니 농부의 수고에 늘 감사하는 할머니는 쌀 한 톨 밥알 하나가 모두 귀하지만 꼭 아까워서가 아니다. 농부의 수고가 헛되이 되는 것이 마음속에 걸려서고, 밥상까지 오르게 된 밥알의 일생이 마지막 순간에 손주의 부주의로 그르치는 것이 안타까워서다.
농부가 볍씨를 소금물에 담가 두었다가 잘 여문 것만 골라 모판에 뿌리고 싹이 트고 어느 정도 자라면 본 논에 모내기부터 시작해서 7월 백중 때가 되면 세 번째 김매기를 하는데, 이것이 마지막으로 잡초를 제거하는 만도리[만물]다. 그러고 나면 한 해 벼농사의 풍·흉년을 예측할 수 있어, 풍년이 들라치면 마을에 따라서는 풍물놀이를 하는 ‘풍장굿’이나 ‘삼동굿’을 벌이기도 한다. 또 ‘머슴날’이라 하여 그간 농사일로 수고한 머슴을 위해 음식을 장만해서 대접하고, 새 옷도 한 벌 지어주며 소에 태워 마을을 돌면서 위로하는 행사를 벌인다. 요즘으로 말하면 ‘근로자의 날’인 셈이다. 이러다 보면 벌써 추석이 다가와 가을걷이가 시작되고, 베어 말린 나락을 털어서 가마니에 담아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방아를 찧어 벼 껍질을 벗겨야 비로소 밥 짓는 쌀이 된다. 이렇게 지루한 이야기를 손주가 밥알을 흘릴 때면 반복해서 들려주어 밥알의 아름다운 일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손주에게 타이른다.
할머니 자신도 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고 솥단지에 앉히는 중에 행여 쌀이 그냥 버려질세라 늘 조심스럽게 밥쌀을 다룬다. 할머니는 볍씨에서 시작해서 밥그릇에 담겨 밥상에 오르는 쌀 한 톨의 일생을 그르치지 않으려고 늘 조심한다. 과거에는 쌀이든 잡곡이든 그것이 아주 귀해서 이렇게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밥알의 내력을 아는 할머니는 손주의 부주의로 어렵게 밥상에 오른 밥알의 일생이 그르치게 되고 농부의 정성이 물거품 되는 것이 마음에 걸리니, 귀한 손주지만 그 지루한 이야기를 주문 외듯 한다. 할머니의 지적을 잔소리로 여기고 짜증을 내는 손주가 서운하지만, 할머니는 그저 웃으면서 “얘야, 밥투정 부리면 복 달아난다.”라는 말씀으로 자신을 달랜다.
밥알을 흘릴 때면 들려주어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할머니의 잔소리가 귀한 밥알이 아까워서가 아니고, 농부가 쌀에 쏟은 정성이 허사가 되고, 밥알의 일생을 그르치는 것이 안타까워서 하신 말씀인 것을 청년이 되어서야 깨닫는다. 이런 손주가 교사라도 되어 남을 가르친다면, 학생의 일생이 자기로 인해서 그르쳐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자기가 할 일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버려진 밥알의 일생처럼 자기 때문에 학생의 일생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고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일생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한순간도 마음에서 떠나지 않으니, 잔소리 같던 할머니의 이야기가 이제는 손주의 마음속에 삶의 지침이 되었다. 이런 사람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 한 방울도 하수도로 그냥 흘려보내지 않을 것이고, 정성들여 만들어 준 음식을 함부로 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이처럼 이야기에는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드러나지 않은 의미를 찾아내어 읽어야 지루하지 않고 가치 있는 것이 된다. 이런 마음으로 요즘 시대에는 지루하게만 느껴져 전혀 어울리지 않은 옛이야기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보자.
저자

김균태

저자:김균태
1948년생으로,서울대학교사범대학국어교육과·대학원국어국문학과를졸업,1986년에박사학위를받았고,한남대학교국어국문학과교수를역임했으며,현재는명예교수로있음.
저서로는「이옥李鈺의문학이론과작품세계연구」,「한국고전소설의이해」(공저),「알기쉽고재미있는초학한문初學漢文」,「우즈베키스탄고려인의이주와삶」(공저)「구비문학대계」(장성·화순·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편,공저),「부여의구비설화」(공저),「금강유역구비설화」(공저)등이있으며,번역서로는「이옥李鈺문집」,「부여효·열지」,「백천유집百泉遺集」,「군자의논어」,「동리신재효한시자료」,「한국선교이야기」(공역),「한국문화이야기」(공역)등이있음.

목차

1.곰과교혼交婚한이야기
환웅桓雄과웅녀熊女
만주소수민족의‘곰어미’
<곰나루>와변이형들
그외‘인수교혼’담

2.알에서태어난임금이야기
<주몽朱夢>
<혁거세赫居世>
<수로首露>

3.밤에찾아온손님[야래자]이야기
<수리산비암사>
<야래자>변이형

4.당산堂山신神이야기
제의발생과유지
제의변화와소멸

5.백제멸망이야기
의자왕義慈王의실정失政
소정방蘇定方과조룡대
위령제와여인들의항거

6.꿈이좌절된장수이야기
민란의주모자이몽학李夢鶴
의병장김덕령
관군의장수임경업林慶業

7.자식을희생한효행이야기
<손순매아遜順埋>,<식장산食山>,<동자삼童子蔘>
실천이가능한효행

8.죽어서별이된이야기
<삼태성三台星>의유래
<북두칠성北斗七星>의유래

9.탐색을떠나는이야기
<바리데기>
<구렁덩덩신선비>
<지하국地下대적大賊퇴치>

10.보쌈이야기
상고시대보쌈이야기
18세기이후보쌈이야기

11.변신이야기
<우렁이각시>
단계별구술자의자의식

12.회귀回이야기
한국<쥐[두더지]혼인>
인도<암쥐이야기>
중국<노서가녀老鼠嫁女>

13.치악산꿩[까치]이야기
<치악산꿩[까치]의보은>
상원사의신종<치악산>

14.호랑이이야기
<떡하나주면안잡아먹지>
<해누이달오빠>

15.나무꾼과선녀이야기
<나무꾼과선녀>
<수탉이하늘보고우는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