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오래전부터 문학과 예술, 특히 영화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노력해왔다. 논문을 쓰고 저술을 남기고 강연을 하면서도, 의외로 영화가 왜 존재해야 하고 무엇을 위해 유지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정작 등한하게 여기곤 했기 때문이다. 말로는 영화가 지금까지의 예술 중 가장 현대적인 예술(장르)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렇게 현대적인 장르가 탄생한 배경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했다는 생각이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이 저술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영화란, 무엇인가” 혹은 “문학과 예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아주 사소한 대답일 수 있다. 영화는 궁극적으로 더 위대한 예술이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관점으로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나에게 영화는 세상을 이해하는 ‘나’를 가장 솔직하게 바라보는 예술(장르)로 우선 인식된다. 영화가 세상을 열고 타인을 바꾸고 역사와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러한 인지 주체로서의 ‘나’에 가장 솔직하게 접근하는 방식을 개발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 저술은 드문드문 이어졌던 사고가 청탁과 집필의 기회 때마다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 일종의 솔직한 자기 고백과 다르지 않다. 애초부터 민감하게 의도하고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경우는 아니지만, 그 고백이 나에게 또 다른 사유의 여지를 줄 것 같아 주저하지 않기로 한다.
코로나19가 지난 자리에서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코로나19가 그 변화를 주도한 것인지, 단지 촉매제 역할만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시기적으로 겹친 것인지는 면밀하게 구분하지 못하겠지만, 코로나19의 영향력은 막대했다. 그중 영화에 대한 영향력 역시 간단하지 않았다. 영화관이 내리막길을 걸었고, 자연스럽게 관객의 이동이 이루어지면서 영화는 온전히 영화로서의 관객을 상당 부분 잃었다. 영화가 추동하던 예술적 원동력도 예전에 비해 대폭 감소했다고 해야 한다.
다만 그러면 그럴수록 영화가 깊게 접근했던 해부력은 과거에 비해 두드러진 지형으로 남는 것 같은데, 이 저술이 그 지형을 드러내고 그 형상을 기억하도록 돕는 발판이 되었으면 한다.
영화는 본래부터 그 자리에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 영화를 보고 그 감상을 논하는 이들이 바뀐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저술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영화란, 무엇인가” 혹은 “문학과 예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아주 사소한 대답일 수 있다. 영화는 궁극적으로 더 위대한 예술이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관점으로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나에게 영화는 세상을 이해하는 ‘나’를 가장 솔직하게 바라보는 예술(장르)로 우선 인식된다. 영화가 세상을 열고 타인을 바꾸고 역사와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러한 인지 주체로서의 ‘나’에 가장 솔직하게 접근하는 방식을 개발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 저술은 드문드문 이어졌던 사고가 청탁과 집필의 기회 때마다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 일종의 솔직한 자기 고백과 다르지 않다. 애초부터 민감하게 의도하고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경우는 아니지만, 그 고백이 나에게 또 다른 사유의 여지를 줄 것 같아 주저하지 않기로 한다.
코로나19가 지난 자리에서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코로나19가 그 변화를 주도한 것인지, 단지 촉매제 역할만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시기적으로 겹친 것인지는 면밀하게 구분하지 못하겠지만, 코로나19의 영향력은 막대했다. 그중 영화에 대한 영향력 역시 간단하지 않았다. 영화관이 내리막길을 걸었고, 자연스럽게 관객의 이동이 이루어지면서 영화는 온전히 영화로서의 관객을 상당 부분 잃었다. 영화가 추동하던 예술적 원동력도 예전에 비해 대폭 감소했다고 해야 한다.
다만 그러면 그럴수록 영화가 깊게 접근했던 해부력은 과거에 비해 두드러진 지형으로 남는 것 같은데, 이 저술이 그 지형을 드러내고 그 형상을 기억하도록 돕는 발판이 되었으면 한다.
영화는 본래부터 그 자리에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 영화를 보고 그 감상을 논하는 이들이 바뀐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의 깊은 곳의 나 (저마다의 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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