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과 근대 (복합재난시대, 철학이 묻는다)

재난과 근대 (복합재난시대, 철학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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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오늘날 우리는 일상화된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것도 둘 이상의 재난이 연쇄적으로 또는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함으로써 그 피해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복합 위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보편론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기후 위기, 기술의 급속한 발전, 인간성의 약화,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분열은 더 이상 개별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문명적 징후로 나타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복합재난’의 근저에는 근대가 구축해 온 사유 방식과 삶의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근대는 인간 해방과 진보라는 이름 아래 눈부신 성취를 이루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기와 파국의 조건을 축적해 왔다.
특히 인공지능을 비롯한 현대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인간의 삶에 편의를 제공하는 동시에, 인간의 노동과 판단 기능을 대체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위상에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다움이 어떠한 철학적 근거 위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다시 제기하며,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고전적 질문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근대성의 빛과 그림자를 ‘재난’의 관점에서 철학적 성찰을 시도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과 산업 자본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존재 가치는 점차 약화되고, 삶의 방향성 또한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재난’의 관점에서 성찰하고자 하였다. 기술과 자본이 결합하여 이윤 추구를 극대화할수록, 인간다움의 의미와 인간 존엄성의 문제는 더욱 심각한 철학적 과제로 부각된다. 이 책은 그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도출된 연구 성과이다.
이 책에 수록된 연구들은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박남희 교수의 「복합재난시대에 철학적 고찰 - 인간의 사라짐에 대하여」는 현대 재난을 단순한 자연적 사건이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인간적 문제’로 규정한다. 특히 오늘날의 위기는 인간 자체의 소멸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상실’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적 경쟁과 기술 환경 속에서 인간은 점차 사물화되고, 타자와의 관계를 상실한 채 고립된 존재로 전락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난의 극복은 기술이나 정책이 아니라 인간성의 회복, 즉 ‘사람다운 사람’의 재구성에서 출발해야 함을 강조한다.
정대성 교수의 「모더니티의 변증법 - 해방의 기획과 그 좌절」은 모더니티를 ‘인간 해방의 기획’으로 규정하면서, 그 내적 변증법을 분석한다. 근대는 이성을 통해 자연과 사회의 억압에서 인간을 해방하려 했지만, 그 이성은 다시 인간을 대상화하고 지배하는 도구로 전환되었다. 또한 자유의 급진화는 오히려 전체주의적 위험으로 귀결되었다. 그는 이러한 모순을 넘어 주체 중심의 사유를 상호주체성으로 전환하고, ‘증언하는 공론장’을 통해 타자의 고통과 보편적 정의를 연결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근대는 폐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계승되어야 할 미완의 과제임을 밝힌다.

한상연 교수의 「포스트휴먼 시대의 재난 - 인간 기계화와 실존의 위기」는 포스트휴먼 시대를 배경으로 인간의 기계화 문제를 탐구한다. 현대 기술은 인간을 단순한 정보 처리 시스템이나 기능적 존재로 환원하려는 경향을 보이며, 이는 인간 존재의 의미와 존엄을 위협한다. 그는 포스트휴머니즘과 트랜스휴머니즘의 논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인간이 기계화 과정에서 스스로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존재론적 차원에서의 자기 이해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인간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초월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 재확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연도 교수의 「근대와 기술의 그림자 - 모호해진 가상과 현실의 경계」는 기술 문명 속에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붕괴되는 현상을 분석한다. 시뮬레이션과 이미지의 범람은 ‘실제’를 대체하며, 인간의 정체성 또한 불안정해진다. 이는 근대적 합리성과 기술 발전이 가져온 새로운 형태의 재난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이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자신을 정립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기술과 인간 사이의 균형 잡힌 관계 재정립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지혜경 교수의 「절대진리의 붕괴가 불러온 위기 - 근대 이분법적 사유의 비판」은 근대 사유의 핵심인 이분법적 사고를 비판한다. 서양 근대는 진리와 세계를 이원적으로 분리하여 이해해 왔으며, 이러한 사고는 다양한 위기를 초래하였다. 포스트모던 사유 역시 이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동양철학 특히 천태지의의 삼제설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는 근대적 이분법을 넘어 통합적이고 관계적인 진리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사유 방식으로 제안된다.
심상우 교수의 「재난의 주체화와 평등의 사건 - 랑시에르 정치철학의 새로운 지평」은 재난을 단순한 피해가 아니라 정치적 주체화의 계기로 바라본다. 랑시에르의 정치철학을 통해 재난은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평등의 가능성을 여는 사건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재난은 단순히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생성하는 계기로 이해될 수 있다.

서동은 교수의 「기후 위기 재난 극복을 위한 성찰 - 하이데거와 윅스퀼의 대안을 중심으로」는 기후 위기를 중심으로 근대 자연관과 기술 중심 사고를 비판한다. 하이데거와 윅스퀼의 사유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성을 제기하며, 존재론적 전환을 통해 생명과 세계를 새롭게 이해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근대적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사유로 나아가려는 시도이다.

마지막으로 박승현 교수의 「기술문명시대에 인간 존엄성 확보의 길 모색 - ‘생명 철학’을 중심으로」는 기술문명 시대에서 인간 존엄성의 문제를 ‘생명 철학’의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지식 중심의 근대 학문이 인간을 도구화해 왔다면, 이제는 생명 중심의 실천적 지혜가 요구된다. 인간 존엄성은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 구현되어야 하며, 이는 동양적 인(仁)의 사유와도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근대를 단순히 비판하거나 찬양하지 않는다. 근대는 인간을 해방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속박을 낳았고, 풍요를 가져오면서도 파국의 가능성을 내포하였다. 따라서 오늘날의 과제는 근대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의 모순을 성찰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재구성하는 데 있다. 복합재난의 시대에 철학은 더 이상 사변에 머물 수 없다. 그것은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다시 묻고,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를 성찰하는 실천적 지혜가 되어야 한다. 이 책이 그러한 성찰과 질문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저자

박남희

연세대학교철학박사.희망철학연구소장.????모든순간의철학????,????처음읽는현대철학????(공저),????세상을바꾼철학자들????(공저)등이있다.

목차

복합재난시대에철학적고찰:인간의사라짐에대하여
모더니티의변증법:해방의기획과그좌절
포스트휴먼시대의재난-인간기계화와실존의위기
근대와기술의그림자-모호해진가상과현실의경계
절대진리의붕괴가불러온위기-근대이분법적사유의비판
재난의주체화와평등의사건-랑시에르정치철학의새로운지평
기후위기재난극복을위한성찰-하이데거와윅스퀼의대안을중심으로
기술문명시대에인간존엄성확보의길모색-‘생명철학’을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