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소리꾼 연대기

익산 소리꾼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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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소리꾼을 우리는 명창이라고 부른다. 그들에 대해 예의를 갖춘 호칭이다. 그러나 향창(鄕唱)이라는 말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향창은 중앙 무대에 서지 못한 채, 한 지역에서 평생 소리를 하며 살아간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좀 더 쉬운 말로는 ‘또랑광대’다. 큰 무대가 아니라 동네에서,잔칫집 마당에서, 노인회 총회 혹은 활터 잔치 때 소리를 했던 사람들이다. 이 책은 향창들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저자

김성식(金盛湜)

전북김제에서태어나전주에서학교를다녔다.대학시절부터논농사민요를찾아마을을누비며구술조사를시작했고,그인연은1991년≪MBC민요대전≫까지이어졌다.
전북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하고동(同)대학원에서구비문학을전공해박사학위를받았다.1990년대에는전북곳곳의당골(세습무)들을찾아다니며그들의삶과소리를녹음하고기록했다.이후전북도립국악원과전주역사박물관을거쳐현재는프리랜서연구자로활동하며사람과장소에깃든기억을채록하고있다.
오랫동안민요와무속,지역예인들의삶을추적해온저자는최근익산의향창(鄕唱)들을만나며이름없이사라져간소리꾼들의이야기를다시불러내고자했다.이책은그여정의기록이다.
예전에는대문밖에만나서도이야기가쏟아졌는데,요즘은이야기가사라졌다.이또한참상이다.필자는현재‘마을사’연구자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저자의말


프롤로그


1부.무대가차려지다

1.두강사이의땅
2.소리꾼이있어야잔치가된다
3.활터,또하나의무대

2부.소리판의사람들

1.소리를남기지못한사람들
2.소리를나른사람들
3.배움을잇지못한사람들
4.소리뒤켠사람들
5.소리를지킨사람들

3부.이땅이낳은명창

1.소리인생을돌아보며,그가그리워한것
2.정정렬이자란땅은따로있었다
3.정정렬나고춘향가다시났다

4부.이름으로만남은가객

1.남도에박동실,북도에이기권
2.숨어야했던사람들
3.무당이된여자,첩이된여자
5부.소리를먹여살린만석꾼

1.함라삼부자의시대,그뒤에남은것
2.소리꾼들의든든한뒷배
3.끝내소리를놓지못한조해영

6부.소리는살아남았다

1.오정숙과배기봉,평생의인연이되다
2.오정숙,스승의가르침을완성하다
3.오정숙이떠난자리에남겨진것들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대체누가,어디서,어떻게판소리를즐겼을까.그소리는또어떻게퍼져나갔을까.답을좇다보니자연스레한시기,한지역으로좁혀졌다.일제강점기부터전쟁과폐허의시대를지나,산업화가한창이던1980년대까지.그리고이리(裡里)를중심으로함라,웅포,황등,삼기,함열,용안,망성을두른금강변,익산서북부지역이다.
문제는자료였다.향창들에관한기록은거의남아있지않았다.신문기사한줄,사진한장조차드물었다.그래서이책은처음부터구술에의지할수밖에없었다.누군가의기억에의지해또다른누군가의삶을복원하는일이다.같은사람을두고도서로다르게말하는증언들이있었다.그충돌을굳이하나로봉합하지않고나란히두기로했다.정정렬명창의출생지를두고도증언들이엇갈렸는데,그엇갈림조차그대로옮겨두었다.정답을찾는일보다그시절을살았던사람들의목소리를가능한한그대로옮기는일이더중요하다고판단했기때문이다.

이책은한지역사람들이함께기억해온판소리의삶을엮어낸구술사에가깝다.
강매실은어렸을적부터공옥진명인의부친공대일선생한테소리를배웠다.신이들린어머니를따라명산대찰을떠돌다가장항에정착했을때가스무살이었다.다시소리공부를시작하다.매일도선(渡船)을타고군산으로건너가최난수선생에게소리를배웠다.그도선에서만난남자가남편이되었다.힘과체구가장사인남편은어린자식둘을남기고급사했다.가진게그것밖에없었다.그때까지만해도회갑잔치와경로당노인잔치,동갑계잔치가남아있어서강매실은먹고살수있었다.세상이변해잔치판이종적을감추자더는흥도나지않았다.그러다치매가찾아왔다.

‘남광대’는익산시황등에서살았다.황등의옛날사람들은‘남광대’를다기억한다.황등은일제강점기부터개발된석산으로유명하다.황등‘돌쟁이’들이‘이리’에나가지않으면룸살롱이며금은방이며‘메이커옷’가게들까지장사가안될정도였다.그만큼돈이‘시글시글’한곳이었다.남광대가향창으로서먹고산배경이었다.

이이야기들을기억속에서소환해낸이가바로김갑태다.비상한기억력으로옛시절의장면들을마치어제의일처럼풀어내는남다른재주를지닌이다.왼쪽눈은어려서솔가지에찔려시력을잃었다.그눈으로평생이땅의소리꾼들을지켜보았다.그가소리를배운이가바로남광대였다.남광대에게서사설을한글로베껴적으며소리를배웠다.

정정렬의춘향가레코드도수없이반복해들었다.
그레코드는이제이세상에없다.그뒤에도그는익산에서열리는‘국창정정렬추모익산전국판소리경연대회’에몇차례출전했다.광주의임방울대회에도두어차례출전했다.소리를사랑한것이었다.
이기권명창의생몰연대와가족관계가비로소드러났다.그는정정렬에게배웠고,홍정택등많은제자를두었다.“남에는박동실,북에는이기권”이라는말은두사람이각각전남과전북을대표하는소리꾼이었음을말해준다.늘댄디한신사차림이었고,초대받지않은자리외에는일체소리를하지않았다.이기권의가계는탄탄한예맥(藝脈})을이루었다.이기권의맏형이칠권은스물하나로요절하였지만피리를불면“저공중에서소리가나는것으로착각할정도”였다고한다.“기생하고노느니이칠권하고논다”고할정도여서,잔칫집에서서로데려가려고인력거가상시대기하고있었다.그러나이기권의예맥은두세대를이어가지못한채사라졌다.사회적편견과냉대를견디지못한후손들은대부분기독교인이되었다.그들이예인집단으로승화·계승되지못한것이시대적한계였는지,개개인의선택이었는지,필자로서는알수없었다.

남광대,이동권,추석봉,강매실,명바우,공바우,나창순,백준기.
이책이시작할때불렀던이름들이다.다시끝에서한번더불러본다.오갑순여성농악단의공연도,김성수선생의계면성음도,곰보소리꾼의강짜도,강매실의치매(癡呆)속에묻힌마지막기억도이제는어디에도없다.모두흩어졌다.그러나흩어졌다고해서사라진것은아니다.적어도이책안에서는아니다.이름을적어두는것.그것이필자가할수있는전부였다해도과언이아니다.국악애호가로서그시절이그리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