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김일곤 제10시집)

거울 앞에서 (김일곤 제10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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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저자의 말〉

아버지의 서른 세번째 기일을 맞아 고향 선산을 찾았다.
조부모님과 부모님 산소에 조화 한 다발과 술 한 잔과 담배 한 개피를 올리고, 내 손주 지후 재롱을 담은 동영상을 보여드리며 내가 살아온 예순 두 해 가족과 관련된 희로애락喜怒哀樂 지난날을 돌이켜본다.
희喜
내 생애 가장 기뻤던 순간은 아들과 첫 손주 지후와 둘째 손주 하루(태명)의 잉태소식을 접했을 때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를 주저할 것 없이 꼽는다.
로怒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치밀어 용서할 수 없는 아픈 순간의 기억이 두 번 있다.
첫번째는 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께서 수업을 하시다가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셨을 때,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일곱시간 동안 대기만 하시다가 운명을 달리하셨던 순간이다.
실력이 덜한 인턴으로 진료한 병원과 담당의사를 원망한 것은 물론이지만, 그렇게 아버지를 떠나 보냈던 내 자신의 무지함을 향한 노여움은 아직도 용서할 수가 없다.
두번째는 조부의 부음을 관보로 접수하고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고, 장례를 마친 주말 오후에나 외박을 허락했던 군사정권 시절의 하수인들을 노여워 한다.
애哀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이 사랑하는 가족과 영원한 이별을 했을 때다. 당신께서 그토록 사랑했던 손주의 첫돌을 두 달 남겨두고 홀연히 떠나가신 아버지를 포함한 어머니와 조부모님, 그리고 내 가슴속에 묻어 둔 소중한 또 한 명과의 이별은 가슴이 찢어지도 록 슬프다.
락樂
온통 나의 머리속에 자리잡고 있는 손주 지후가 자라면서 안겨 주는 재롱과 애교때문에 요즘 삶이 무척 즐겁다.
또한 내년 정월이면 만날 수 있는 하루를 기다리는 설렘이 즐거 움을 더한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하늘아래 선산 주변 밭두렁에서 큰 키 를 흔들며 마냥 기쁜 듯 즐겁게 춤추는 옥수수가 문득 깨달음을 준다.
희로애락喜怒哀樂 삶을 살아왔던 지난날의 노여움과 슬픔을 걷 어내고 얼마인지 모르지만 나에게 남아있는 앞으로의 삶은,
기쁨을 깨닫고 사랑을 즐기는 희오애락喜悟愛樂의 삶을 살아가 라고.
저자

김일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