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은바다가아니라마음에존재하는것이기에
우리를멈춰세우는것의정체를들여다보면그것이바깥의위협이아니라그위협을바라보는동안내안에서자라난두려움일때가많다.파도는그저파도일뿐인데,우리는거기에삼켜질미래와돌아오지못할결말을미리그려놓고그그림앞에발이묶인다.〈퍼스트펭귄〉은그러한우리의모습을정확하게짚어낸다.곤경의원인은바다가아니라우리가만드는두려움이라는말,그건무서움을가볍게여기라는뜻이아니다.그무서움이어디에서오는지를똑바로마주하라는권유에가깝다.
그렇다면두려움을없애야만앞으로나아갈수있는가.우리는흔히그렇게믿기도한다.무서움이완전히가신다음에야첫걸음을떼려하고,그래서영영떼지못하기도한다.그러나두려움은가시는것이아니라안고가는것이다.같은파도를보면서도누군가는위험만을읽고,누군가는그너머에서반짝이는것을본다.무엇을보느냐가멈출지나아갈지를가른다.결국용기란두려움이없는상태가아니라,두려움곁에서도잡고싶은것을높지않는마음일것이다.
이책이그리는건거창한영웅이아니다.배가고프고,무섭고,작은마음을가진,어쩌면우리와닮은존재다.우리는저마다의물가앞에서머뭇거린적이있고,누군가가먼저뛰어드는모습을멀찍이서바라본적도있다.그래서가장먼저바다로향하는이작은모습은낯설지않다.언젠가의나였거나,한번쯤되어보고싶은나의모습이기때문이다.
두려움은멈추라는신호가아니니까
책을덮은뒤에도오래마음에남은장면은두려움을읽어내는방식을뒤집는순간이다.우리에게두려움은보통경고음처럼들린다.위험하니멈추라고,더가지말라고보내는신호다.그래서무서움을느끼는순간우리는본능적으로발을거둔다.그런데이책은같은감정을정반대로해석한다.두려움이찾아왔다는건내가이미익숙한자리를벗어나무언가를향해움직이기시작했다는뜻이다.멈춤의이유였던감정이,나아감의증거로뒤바뀐다.
이작은전환이품은힘은크다.두려움을없애야할적으로두는한,우리는그것이사라지기를기다리느라제자리에머문다.나아가야하는길에함께따라오는동행으로서두려움을여긴다면,무서운채로도한걸음을뗄수있다.가장용감한사람은두려움을느끼지않는사람이아니라두려움을느끼면서도그것을다르게받아들일수있는사람이다.거센파도를멈추라는명령이아니라지금이나아갈때라는신호로받아들이는마음.그작은차이가멈춤과나아감을가른다.
다만용기는그리손쉬운승리의전리품이아니다.마음을다잡고뛰어든다해도더큰파도가우리를삼킬테고,캄캄한바닥에서길을잃는순간은다시찾아온다.〈퍼스트펭귄〉이정직한건이대목이다.그럼에도우리를다시일으키는건대단한결심이아니라끝내놓지못한단하나의바람이다.잡고싶은것하나를깊이품는일이어떻게가장어두운자리에서고개를들게하는힘이되는지를,설명하는대신보여주는책이다.
흑백의바다가끌어안는빛
신율마작가의첫그림책인〈퍼스트펭귄〉은색을모두덜어낸흑백의화면으로두려움을그려낸다.가장단순해보이는이선택이오히려감정의폭을확장한다.색이빠진자리에는빛과어둠만남고,그둘의농도와경계가그대로마음의무게가된다.화려한색이일러주는정해진감정대신보는이가저마다의결로채워넣을여백이생긴다.그래서같은장면에도누군가는막막함을,누군가는고요함을읽는다.
어둠을다루는방식도눈여겨볼만하다.가라앉는바다밑은온통검게만칠해져있지만그어둠은무언가를가두기위한것이아니다.빛은늘암흑의가장자리에서새어나오고,어둠이짙을수록그작은빛은더욱또렷해진다.어둠과환함,두려움과용기,가라앉음과떠오름이한화면안에등을맞대고있다.우리는가장어두운순간에야작은빛을알아본다는사실을,이흑백의바다는색이아니라명암으로말한다.
어둠을통과하고나면한때나를삼킬듯무섭기만했던것이실은나를밀어올리는품이었다는깨달음이찾아온다.같은파도가위협에서포옹으로바뀌는이마지막자리는두려움을끝내통과해본사람만이닿을수있는풍경이다.우리에게도저마다의거센파도가있고,그너머에는우리를기다리는무언가가있다.그파도가위협이아니라나를안아주러오는손길로느껴지는날은그것을통과해본사람에게만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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