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준
저자:이용준
에세이스트.일상속에서발견한생각과감정을글로기록하고있다.특별한사건보다평범한하루에더많은이야기가숨어있다고믿는다.지은책으로『심폐소생비트』,『어느미니멀리스트의고민』,『1985년의하와이』,『피넛버터와오후의코끼리』가있다.
1장음식앞에서떠오른음악
Track_01우동국물속에잠긴기타리프
Track_02존레논을생각할때나는바나나를깐다
Track_03감자한덩이로떠올린색소폰
Track_04소고기스튜를만들지않은오후
Track_05얼음위를미끄러지는기타리프
Track_06몽테크리스토와스테레오
Track_07삶은눅눅해지고,우리는바삭함을원한다
Track_08마라탕국물속의보위
Track_09닭껍질아래튄라틴리듬
Track_10딸깍,아주작게세상이닫히는소리
Track_11봄날의벤치와레몬파이의박자
Track_12홍차와함께젖어든기타음
2장집안에서흐르던음악
Track_13아침의테이블,햇살한조각처럼
Track_14모차르트와아버지의뒷모습
Track_15이집은다섯곡까지숨을쉰다
Track_16턴테이블과블루투스사이의나
Track_17자정이만든믹스테이프
Track_18수건을접으며듣는B사이드
Track_19라디오다이얼과양배추의리듬
Track_20화요일의틈
Track_21고양이,아이스커피,그리고두음사이
Track_22빗소리와재즈의가느다란접점
Track_23혼잣말로맞춘우주의템포
3장도시와거리에서들은음악
Track_24시티팝은그늘에서흐른다
Track_25재즈는비를핑계로말을걸었다
Track_26골목을걷다보면음악이따라온다
Track_27부산의골목과너바나의잔향
Track_28편의점앞,시간을거슬러흐르던노래
Track_29한쪽이어폰으로듣는도시의밤
Track_30믹재거의걸음,도시의리듬
Track_31슬로우리프와맥주두캔
Track_32아무일도없던오후의사운드트랙
Track_33전원이꺼진후에들리는것들
4장그시절에들었던음악
Track_34워크맨이멈춘날의소리
Track_35문틈사이로흘러나온리듬의기억
Track_36짧은이어폰줄가까운너
Track_37디스토션과아멘사이의고백
Track_38스키드로우와커피한잔분량의쓸쓸함
Track_39멈추지않는밤의속도
Track_40자판기커피와딜런의노래
Track_41달리는우편마차
Track_42마지막에부르는노래
Track_43이어폰속기타는언제나반박자빨랐다
5장일터에서흘러나온음악
Track_44회의실의정적과늑대의울음
Track_45미트와김치찌개,그리고한줄기타
Track_46택시안의음악과감정의목적지
Track_47씹다만감정이붙은톰웨이츠
Track_48반쪽짜리퇴근길
Track_49리듬이머물다간자리
Track_50차창밖인도와운전기사의멜로디
Track_51겨울거리의리듬
6장화면속에서시작된음악
Track_52다섯개의음으로도착한외계인
Track_53말없이감정을건네는멜로디
Track_54과장이진심일때뮤직비디오는빛난다
Track_55춤추는대사와흘러가는노래
Track_56애니메이션이다루는감정의방향
Track_57스파이의귓속말,브라스의그림자
Track_58작은무대위의거대한울림
Track_59기타줄하나의우주
Track_60마음에남는틈
7장우연히귀에들어온음악
Track_61조율되지않은정글의피아노
Track_62쇼팽과화장실의역설
Track_63엘비스코스텔로는내표정을훔쳐갔다
Track_64전구를갈다튀어나온프린스
Track_65발목에맺힌블루스
Track_66어떤노래에바치는헌정
Track_67재즈와라디오,16,000원의정서
Track_68우리모두는한곡쯤있다
Track_6915초의진동,그리고그너머
Track_70록의무게는몸에남는다
Track_71볼륨을줄일때생기는온기
Track_72과잉의태도
8장달력위에남은음악
Track_73만우절엔거짓말보다음악이진심이다
Track_74식목일,흙냄새그리고어쿠스틱
Track_75새해의첫소리
Track_76결혼기념일은스피커옆에서시작됐다
Track_77대체공휴일은멜로디가쉬는날
Track_78노인의날,오래된LP를꺼내며
Track_79청년과치매의날에러닝머신위에서
Track_80초코케이크와HappyBirthday
내인생가장뜨거웠던타임라인속으로,
밴드음악이소환하는우리들의찬란한기억
하나의음악장르를깊숙이들여다보고그장르에얽힌다채로운이야기를펼쳐내는새로운에세이시리즈‘임의재생’.시리즈의첫번째테마는우리를뜨거웠던청춘의한복판으로데려다줄밴드음악의세계다.시리즈의서막을알리는이책은전체80개의풍성한트랙리스트중무려절반이상을밴드사운드로채워넣었으며,함께수록된플레이리스트는날것그대로의전율과록스피릿의짙은향수를떠올리게한다.
책장을넘기다보면어느새기억속전설들이하나둘무대위로걸어나온다.전주만들어도가슴한구석이서늘하고도아릿해지는라디오헤드(Radiohead)부터찬란한청춘의송가이자세대를초월해언제나우리를하나로묶어주었던오아시스(Oasis)의거대한떼창그리고심장을타격하는강렬한기타리프와야성적인에너지로시대를다스렸던건스앤로지스(GunsN'Roses)까지.이름을떠올리는것만으로도그시절방안의공기와나를둘러싸고있던밤의습도까지생생하게느껴진다.저자가안내하는트랙을하나씩따라가다보면이책이단순한음악에세이가아니라각자의인생에새겨진찬란했던타임라인을따라걷는여행임을깨닫게된다.
이어폰을깊숙이꽂고볼륨을높이는순간희미해졌던청춘의로망과뜨거운낭만이다시한번당신의일상위로세차게연주되기시작할것이다.그시절우리를구원하고뜨겁게불태웠던위대한밴드들의음악을다시‘임의재생’해볼시간이다.
음악이라는가장완벽한기억의방부제,
다잊은줄알았던그날의공기속으로떠나는시간여행
길을걷다어디선가들려오는짧은전주한소절에가슴한구석이찌릿하면서나도모르게발걸음을멈췄던경험이누구에게나있을것이다.라디오나카페스피커에서우연히흘러나온옛멜로디하나가,다잊어버린줄알았던과거의어느한낮으로우리를툭데려다놓는그런신비로운순간말이다.음악에는그런힘이있다.특별할것없던지극히평범한일상의한페이지였는데도음악이라는방부제가더해지는순간그날의공기,입안을맴돌던맛,코끝을스치던냄새와기분까지고스란히되살아나온몸의감각을깨우곤한다.
이책은그런기억들로가득차있다.마음에선명하게각인되었던찰나를기준으로장이나누어져있고,각장에소개된곡들은생생한기억을감춘채독자를맞이한다.이숨겨진기억을열어젖히고즐기는방식만큼은온전히읽는이의자유다.작가가들려주는에피소드와음악을동시에나란히감상해도좋고,마음에드는음악이있다면당장이어폰을낀채거리로나가자신만의새로운기억을그노래위에덧입혀도좋다.어쩌면우리역시마음속깊이묻어두었던‘튀김우동’이나‘바나나’같은기억을발견하고기분좋은시간여행을떠나게될지도모른다.
귓가의이어폰을잠시빼고
나만의배경음악을음미하는법
취사버튼이눌린전기밥솥이칙칙거리며내뿜는증기소리,도마위에서일정한간격으로서걱거리며감자를써는소리.우리는보통이런소리를일상에서지워내야할소란스러운소음으로치부하곤한다.하지만악기로만들어내는소리만음악이라고생각하는틀을깨부순다면삶을둘러싼생활소음도저마다의훌륭한리듬과독특한질감을가진음악의재료로재탄생할수있다.전기밥솥을닫는무미건조한마찰음에서일정한드럼비트를포착하고,도마위의서걱거림을경쾌한재즈의리듬으로변환하는작가의시선을관찰하고일상에적용해보자.어느새소리와소음의경계는자연스럽게허물어진다.
글이이끄는대로소리의질감을가만히음미하다보면문득귓가를꽉막고있던무선이어폰을잠시빼고주변을둘러보고싶어진다.일상의소음을온전한음악으로대하는작가의태도를글속에서느끼고나면,우리에게도세상을다르게듣는‘새로운귀’가열리기때문이다.늘무심히흘려보냈던냉장고의윙윙거리는진동,베란다창문을스치는바람소리마저하나의연주로와닿는이경험은,따분했던생활공간을순식간에살아움직이는공연장으로바꾸어놓기에충분하다.
책속에서
“뚱,뚱,뚱,뚱,뚱,뚜,뚱,뚱,뚱,뚱뚱,뚱.”
리듬이컵라면위로곧장내려앉는것만같았다.가게안에서흘러나온소리였다.면을입에넣는것도잊고고개를들었다.
그때까지딥퍼플이어떤밴드인지도제대로몰랐다.그저카세트테이프커버에박힌검은배경과무표정한얼굴들,로고의도발적인글씨체가멋져보였을뿐이다.음악은소리가크고,리듬은거칠었고,‘착한아이’들이몰래라도들으면안될것같은분위기였다.무섭다고할까.그낯설고약간은불량한음악을들으며국물이뜨거운튀김우동을조용히먹었다.그렇게딥퍼플과튀김우동은전혀어울릴것같지않게,한테이블에놓이게되었다.
-17쪽
폴매카트니(PaulMcCartney)를떠올리면늘아침이따라온다.그가실제로몇시에일어나는지,아침을챙겨먹는사람인지는알수없다.그래도내머릿속에서폴은늘해가막올라온시간대에존재한다.그의음악을들으면하루가막시작되려는순간의공기가함께따라오기때문이다.
아침은완전히잠에서깬것도아니고,하루에온전히뛰어든것도아닌시간이다.몸은움직이기시작했지만생각은아직느슨하게풀려있고,창밖의빛은사물의윤곽만조심스럽게드러낸다.폴의음악은정확히그상태에머문다.
여행지에서묵었던숙소의작은부엌이떠오른다.이른아침,아직동네가완전히깨어나지않았을시간이었다.토스터에서식빵이튀어오르는소리와커피포트의미세한끓는소리가번갈아들려왔다.라디오에서는익숙한멜로디가흘러나왔고,그게누구의노래인지금세알아차렸다.
폴이었다.정확히어떤곡이었는지는기억나지않지만,‘이공간에는이목소리가필요했다’는생각이들었다.음악이부엌한쪽에원래부터놓여있던물건처럼느껴졌다.
-58쪽
비가오는날이면말수가줄어든다.누가시켜서가아니라,빗소리가먼저말을시작하기때문이다.창틀을두드리는빗방울은일정한박자를갖고있지않지만,리듬이있다.나는그리듬에맞춰컵을내려놓고,커피를천천히마시고,소파에기대앉는다.모든동작이반박자쯤늦어진다.비가내리는날의템포는원래그렇다.
그날밤도그랬다.오후부터시작된비가밤이되자조금더굵어졌다.작은원룸창가옆소파에앉아LP한장을꺼냈다.마일스데이비스(MilesDavis)의『KindofBlue』.비오는날이면거의자동으로손이가는앨범이다.트럼펫의첫음이빗소리와마주치는그순간을좋아한다.
-88쪽
약속이취소된날이었다.이미집을나섰고,셔츠는다려입은상태였다.괜히머리도한번더정리해둔참이었다.휴대폰화면에뜬짧은메시지를몇번이나다시읽다가,신촌의카페앞에서방향을틀었다.돌아가기엔어정쩡했고,그대로서있기엔더어정쩡했다.예정돼있던시간이통째로비어버리면,나는잠깐중심을잃는다.
이어폰을꽂고스노우패트롤(SnowPatrol)의「ChasingCars」를눌렀다.이노래는시작부터달리지않는다.기타는같은패턴을반복하고,리듬은쉽게개입하지않는다.한동안제자리를맴돈다.결론을미루는사람처럼,시간을조금더늘인다.약속이사라진오후와닮아있었다.
-102쪽
문을열자너바나(Nirvana)의「ComeAsYouAre」가흐르고있었다.도입부의베이스라인이공간을먼저점령하고있었다.물결같은리프.단순하지만방향이분명한음.가게안에는낡은소파와나무선반,그리고LP와CD가뒤섞여있었다.카운터뒤에는중년남자가앉아있었고,별다른인사없이고개만한번들었다.나는창가자리에앉아아메리카노를주문했다.커피머신의증기소리가기타리프사이를잠깐비집고들어왔다가사라졌다.
「ComeAsYouAre」는독특한곡이다.가사는모순을반복하고,리프는거의변화없이지속된다.공격적인듯하면서도어딘가느슨하다.긴장과이완사이의애매한상태가곡전체를끌고간다.그날그카페의분위기도비슷했다.곡이끝나자펄잼(PearlJam)이이어졌고,다시스매싱펌킨스(TheSmashingPumpkins)가흘렀다.선곡에는일정한결이있었다.90년대초반,약간의거칠음과과도하지않은분노.닦아내지않은창문을통과한빛처럼,약간의거칠음이그대로남아있었다.
나는카운터쪽을보며“예전에음악하셨어요?”라고물었다.남자는잠시고개를들더니“네,밴드했어요.”라고말했다.더설명은없었다.대신다음트랙이재생됐다.같은앨범의다른곡이었다.
-106쪽
중학교체육관뒤편에는낡은벤치가하나있었다.페인트가벗겨진철제프레임위에나무판자를얹은,딱그시절학교뒤편에있을법한벤치.여름에는햇볕을그대로머금어바지에열기가달라붙었고,겨울에는손을대기조차싫을만큼차가웠다.그벤치에앉아처음으로누군가의워크맨을빌려들었다.
워크맨은이미여기저기긁혀있었고,버튼하나는가끔말을듣지않았다.재생버튼을누를때마다살짝걸리는손맛이있었다.확실히눌렸는지아닌지,소리가나올때까지0.5초쯤기다려야했다.그래도헤드폰을귀에걸자주변의소리가한겹접히는느낌이들었다.체육관에서들리던공튀는소리와아이들웃음소리는멀어졌고,귀안쪽에서다른공간이열렸다.
그때흘러나온곡이듀란듀란(DuranDuran)의「HungryLiketheWolf」였다.정확히말하면,완전한상태의노래는아니었다.
-128쪽
중학생때또래와조금다른음악을들었다.친구들이발라드나댄스곡을흥얼거릴때,LA메탈테이프를가방안쪽에넣어다녔다.수업시간에는책상밑으로이어폰을숨겼다.담임의목소리가교실을고르게채우는동안,귀안에서는기타가먼저치고나갔다.건조한교실과바람만남은운동장도그소리가흐르면조금은견딜만했다.
주말이면시내음반가게에갔다.회색간판아래좁은매장,카펫과플라스틱케이스냄새가섞인공기.유리진열장안에빽빽하게꽂힌테이프들을하나씩넘기다포이즌(Poison)의「EveryRoseHasItsThorn」을집어들었다.겉면의화려한스타일과달리,곡은조용하게시작했다.어쿠스틱기타한줄이먼저나오고,그위에보컬이낮게얹힌다.메탈밴드의대표곡이라기엔의외로절제된도입부였다.
-15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