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돌봄이필요하다.
안부를챙기고끼니를걱정하는마음부터,
아플때돌보고곁을지키는일까지.”
사생활은사수하고고립은사양하는세여자의동네이야기
집근처에자주가는카페가생기고,골목에서마주치면인사하는얼굴이하나둘늘어난다.혼자읽은책에관해떠들사람이생기고,심심한저녁이면슬리퍼를신고나가만날친구가생긴다.그러다어느날아프거나곤란한일이생겼을때망설이지않고연락할사람이떠오른다.그때부터사는곳은조금씩우리동네가된다.
『대도시의동네생활자들』은서울은평구에사는세여성이각자의방식으로동네에스며들어사람을만나고관계를만들어온이야기를담았다.여행작가서지선,작가이자살림협동조합이사인박의나,은평구여성커뮤니티‘은평시스터즈’를운영하는김은평.같은지역에살지만서로다른경험과시선을지닌세사람은자신이살아온은평의풍경을각자의목소리로풀어낸다.
처음에는그저적당히느슨한관계를원했을지라도대도시에서혼자살며시간이흐르다보면관계에는여러깊이가필요하다는사실을깨닫는다.가끔만나반갑게인사하는이웃도필요하지만,힘든날불러낼이웃와아플때곁에있어줄사람역시필요하다.그렇게찾은동네친구는취미를나누는사람에서서로의안부를살피는이웃으로,나아가서로의삶을돌보는관계로천천히변해간다.
세사람의동네이야기가특별한까닭은은평구가특별해서만은아니다.이들이들려주는이야기는결국지금우리가살아가는도시의삶에관한이야기다.이웃의이름을모르고살아도이상하지않은도시,오래살집인지알수없어굳이관계를만들지않는도시,가족과직장밖에서새로운사람을만나기가갈수록어려워지는도시에서우리는어떻게외롭지않게살아갈수있을까.동네를조금더걷고,자주가는가게를만들고,소모임에한번나가보고,마음에맞는사람에게먼저말을거는것.반복해서얼굴을마주하고사소한일상을나누다보면어느새나를알아보는사람이생긴다.그렇게사는곳은서로를기억하는사람들이마주치는장소가되는것이다.
좋은공동체는좋은사람들만모인곳이아니다
수많은도시를여행하며더넓은세계를꿈꾸던사람은코로나19를계기로자신의생활반경을들여다보기시작한다.멀리떠나는대신동네를걸으며작은식당과책방을찾아다니고익숙한장소를여행하듯탐험한다.혼자였던일상에는독서모임과동네친구들이하나둘들어온다.직장때문에우연히은평으로이사온사람은지역의협동조합과풋살팀,동네모임을기웃거리다가어느새공동체한가운데에서게된다.비혼과1인가구등서로다른사람들이한동네에서부대끼며살아가는모습을통해함께산다는말의의미도다시배운다.그리고몇사람이가볍게시작한여성모임은어느덧수백명이연결된지역커뮤니티로자란다.함께취미를나누던모임에는회원규칙이생기고때로는지역사회의문제에목소리를내기도한다.사람이많아지면서갈등도생기고운영자의책임,외부의시선같은현실적인어려움도찾아온다.
그래서공동체와연대는마냥따뜻하고아름다운유토피아라할수없다.서로다른사람들이함께있기위해서는불편한이야기를꺼내야하고,누구도함부로배제되지않도록갈등을조율해야했다.그러한과정에서좋은공동체는저절로만들어지는것이아니라누군가의시간과노력,세심한배려가쌓인결과임을세사람은자신들의좌충우돌경험을통해증명한다.
은평을이야기하지만결국에는우리의동네를묻는다
대도시를살아가는청년대다수가느슨한연대를도시에서살아남기위한새로운관계의방식으로삼는다.하지만느슨한관계만으로정말충분할까?관계에는다양한거리가필요하다.때로는멀리있는사람도때로는가까이있는사람도필요하다.중요한것은모든관계를가깝게만드는것이아니라필요할때조금더가까워질수있는관계를만들어두는일인지도모른다.세사람이겪은은평에서의경험은은평구에관한이야기면서동시에자신만의우리동네를갖고싶은모든사람을위한이야기다.어디에사느냐보다그곳에서어떻게살아갈것인가를묻고혈연과가족을넘어서로를돌볼수있는관계의가능성은세사람이동네살이를하는과정에서자연스럽게선명해진다.결국좋은동네란처음부터존재하는것이아니라좋은관계를하나씩만들어가며비로소생겨나는것이다.
우리는지금사는동네에서어떤사람을알고있는가.급할때연락할이웃이있는가.자주가는가게에서나를알아보는사람이있는가.함께무언가를해보고싶은사람이있는가.만약아직그런사람이없다면우리는지금부터만들수있을까.대도시는빠르게변하고작은지역에서는익숙한장소들이사라진다.집과땅이자산과투자의언어로치환되는시대에조금다른방식으로장소의가치를바라볼필요가있다.한곳에애착을가지고그장소에사는사람을알아가며자신의삶과동네의삶이함께나아갈방법을고민하는태도도되돌아봐야한다.좋은동네를만드는것은핫플레이스도유명한가게도아니다.바로서로를알아보고안부를물으며살아가는동네이웃들.혼자살아도혼자가되지않는삶은어쩌면아주가까운곳,내가오늘도걷고있는동네에서시작할수있다.
책속에서
은평구의골목길을걷는다.오래된주택사이에서사람들의목소리가흘러나온다.목소리는다채롭다.문을활짝열어둔상점에서흘러나오는할머니들의수다와일찍이하교하는학생들의카랑카랑한목소리가뒤섞인다.햇볕쬐는어르신앞에서아직걸음마가서툰아기가어설픈걸음을걷다넘어진다.
-63쪽
은평구는정말이상한동네다.구민들끼리는버스타는것보다걷는게빠른것같다는이야기를흔히한다.그날그날의날씨나체력에따라서걷기는힘든데,버스를타면걷는것만큼오래걸리는데다환승까지해야될때가많고,이미지하철은버뮤다응암지대에갇혀있다.그렇다고급한건도아닌데택시를타기에도애매한상황이펼쳐진다.
-83쪽
물론은평이라고내가원하는결의사람만있는건아니다.세상에그런무균실은있을수없다.일단나부터도유해한구석투성이다.반대로다른동네라고해서비슷한가치관을공유할사람들이없을리도없다.은평에서유독그런만남이좀더수월했던것은,비교적비슷한경험과문화를추구하는사람들이모이고연결될수있는접점이많아서가아닐까..
-141쪽
요즘젊은세대가선호하는‘느슨한연대’는바로이런피로감에대한반작용일것이다.끈적이지않고산뜻하게.모임목적에만충실히.뒤풀이는패스하거나가볍게.너무사적인질문은삼가며서로에게‘빌런’이되지않기위해배려하는쾌적한거리감.그적당함과조심스러움이좋았다.
-197쪽
은평바깥이라고페미니스트가없고,정상성규범이싫어몸부림치는사람이없고,연결이절실한비혼가구가없을리가없으니까.
그래서내바람은두가지다.은평에서좌충우돌부대끼며함께나이드는것.만약은평을떠나더라도동네에서배운연결의감각을잃지않고살아가는것.집은잃을수있어도,삶의방식은잃지않을수있을테니까.
-207쪽
은평시스터즈라는이름으로만들어낸모임은완벽한시스템이나전략이아니라우리의엉망인감정과각자의고집,서로에대한약간의경외심과끈질김에서비롯된결과였다.우리는서로를포기하지않았고쉽게좋아하지도않았으며때때로서로를향해실망하면서도여전히같은식탁에앉았다.그식탁에서나눈대화들.험담처럼시작되었지만결국서로의존재가치를확인시켜주던농담들.그모든시간이동네모임을이어가게했다.
-227쪽
그밤의무력감은내가꿈꾸던공동체라는안전망이제도없이는얼마나가벼운지깨닫게했다.내가만드는연결망이친목을넘어언젠가는나를지키는실질적인손길이되기를바라는마음.사회적가족제도는이런개인적인필요를사회적인온기로바꾸려는노력이다.우리는서로에게기댈수밖에없는존재들이니까.
-2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