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서 자랐고요 아직도 종로에 삽니다

종로에서 자랐고요 아직도 종로에 삽니다

$16.80
저자

심이안

저자 : 심이안
199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초등학생 때 종로를 떠나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서 6년을 살았고, 돌아와 다시 종로에 자리를 잡았다. 14년을 살아 익숙해진 종로에서도 아직 처음 보는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한 후 현재는 프리랜서 감독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엄마 김소연과 함께 자전적 장편 다큐멘터리 <자바커피 다이어리>를 만들고 있다.

목차


여는 글

첫 번째, 처음 만난 종로
상당한 기분파
동심
이야기 도깨비가 자라는 동안
횡단보도를 못 건너는 아이

두 번째, 낯설어진 종로
책벌레 전학생
정독도서관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세 번째, 다시 발견한 종로
아빠 따라 더 도어스 II
사진 현상소 우성상사
궁궐 옆 후라이드 치킨
눈 오던 날의 첫 영화
엄마, 납치되다!
아씨님으로 불리던 한 달

네 번째, 종로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원서공원에서 놀던 밤
1 선생님에서 동네 친구가 되기까지
120 인왕산을 타다
129 종로를 기록하는 사람들
135 창신동 달밧
143 알록달록 서촌
150 수영장에 나타난 모녀 듀오
157 두 모녀가 ‘오디션’에 간 날
167 창덕궁 돌담길

닫는 글

출판사 서평

〈해빙〉〈인간수업〉 엄혜정 촬영감독,
〈십개월〉〈고백의 역사〉 남궁선 영화감독,
《문어 그림자에 루명 쓴 며느리》 오유경 작가 추천!

“오래 산 동네를 돌아보니 내가 어떻게 자랐는지가 보였다”
종로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영화감독이 된 지금까지
카메라로 담고 글로 기록한 나의 동네

종로라고 하면 경복궁과 창덕궁, 북촌한옥마을, 인사동처럼 서울을 대표하는 장소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종로는 관광을 위해 찾아가는 장소가 아니라 장을 보고, 친구를 만나고, 하루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의 공간이기도 하다. 심이안 감독은 초등학생 시절 안국에 이사 온 뒤 삶의 상당 부분을 종로에서 보냈다. 하지만 오래 산다고 해서 동네를 모두 아는 것은 아니다. 익숙했던 장소가 사라지기도 하고, 늘 지나던 골목에서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심이안 감독은 어린 시절에 엄마와 함께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서 6년을 보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종로는 기억 속에 있던 모습과 같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인연은 끊겨 있었고, 익숙했던 가게들은 사라지거나 바뀌었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동네에서 오히려 이방인이 된 듯한 시간을 보낸 그에게 종로는 완전히 익숙한 곳도 낯선 곳도 아닌 장소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경험은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감각이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하는 일과 만나는 사람은 달라졌지만 일상의 많은 장면은 여전히 종로 안에서 이어진다. 우리는 흔히 사람이 장소를 기억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심이안 감독의 종로 이야기를 듣고 나면 반대의 질문도 가능해진다. 오랫동안 살아온 장소 역시 한 사람의 여러 시절을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좋은 동네를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에

오래 살아온 장소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특정 지역의 거창한 역사나 건축물보다는 사람 사이의 작은 관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우성상사가 대표적인 공간이다. 처음에는 필름을 사고 현상을 맡기는 가게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장님들과 안부와 고민을 나누는 장소가 됐다. 심이안 감독이 여행을 떠나면 사장님들은 돌아오는 날짜를 달력에 적어두고, 여행을 다녀오면 이곳을 찾아가 사진을 맡긴다. 사진을 자주 찍지 않게 된 뒤에도 저자가 이곳을 계속 찾는 까닭은 자신을 기억하고 반겨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동네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과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나는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심이안 감독은 성인이 된 뒤 종로주민소통센터의 기록활동가로 참여하며 그 관계를 더 넓힌다. 창신동, 부암동 등 잘 알지 못했던 동네의 주민들을 만나고 사진을 찍으며 서로 다른 세대와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에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활동가들에게 사진을 알려주는 일을 어색해하지만, 그들의 삶 속에서 자신이 아직 갖지 못한 시선을 발견한다. 기록 활동을 거치면서 그는 ‘자신이 살아온 종로’에서 한발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이 살아온 종로’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나를 키운 엄마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
한 사람의 성장 뒤에 있던 또 다른 사람의 삶

심이안 감독의 삶에서 종로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엄마다. 어린 그와 함께 인도네시아로 떠났고 영화과 입시를 준비하며 많은 도움을 주었던 사람. 대학에 들어가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뒤에도 엄마는 배우가 되고, 프로듀서가 되고, 때로는 가장 가까운 조언자가 되었다. 그러나 너무 가까운 관계였기에 오랫동안 엄마의 삶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엄마와 함께 지역 활동을 하고 수영을 다니며, 그는 자신이 알고 있던 ‘엄마’ 바깥에 존재하는 한 사람을 발견한다. 특히 과거 바리터(여성영상창작집단)에서 활동했던 엄마가 오랫동안 품어온 영화의 꿈을 다시 꺼내는 에피소드에서 꿈을 품은 한 창작자를 마주하게 된다. 딸을 키우느라 뒤로 미뤄두었던 창작자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자신이 지금까지 당연하게 받아온 엄마의 시간과 노력을 이전과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이 계속되더라도 상대가 살아온 시간을 조금 더 알아가는 것만으로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심이안 감독이 엄마의 과거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성장 과정을 다시 읽어내듯이 말이다. 서로를 발견해 나가는 이 모녀의 서사는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엄마인 우리 모두의 삶에 특별한 의미를 선사한다.

책 속에서

내 이름의 ‘안’과 안국의 ‘안’은 편안할 안(安)으로 한자가 같다. 이 한자의 뜻 때문인지, 나는 상당히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사람들도 나를 만나면 마음이 놓이고 기운을 얻는다고 한다.
14쪽

방송국에서 늦은 시간까지 편집하고 왔기에 무척이나 피곤했을 텐데 그런 아빠를 이해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여러 순간은 부모님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시간이었겠지. 그리고 내가 이야기꾼으로 자랄 수 있었던 것도, 부모님이 내게 내어준 그 시간 덕분이었을 것이다.
31쪽

정독도서관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공간은 바로 식당 ‘소담정’이다. 정독도서관을 다녔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돈가스와 우동을 떠올릴 만큼, 두 메뉴는 이곳의 소울푸드였다. 별도 건물에 위치한 소담정은 굉장히 높은 천장을 자랑한다. 답답한 도서관이나 열람실에서 잠시 벗어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랄까.
56쪽

필름과 거리를 둔 지는 시간이 좀 되었지만 여전히 여행을 다녀올 때면 늘 필름 카메라를 챙기는 습관이 생겼다. 심지어 내 유일한 악몽은 여행을 떠났는데 필름 카메라를 깜빡하고 두고 온 꿈이다. 여행 직전 우성상사에 들러 필름을 사 갈 때면, 사장님네 대형 달력에 내가 돌아오는 날을 작게 써 놓고 떠난다. 이번에는 또 어디를 가냐며, 잘 다녀오라고 말씀해 주신다.
76쪽

영화는 언제나 삶을 다른 방식으로 또 배울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만드는 즐거움, 결과물의 뿌듯함 그 이상의 경험을 선사한다. 인생을 다 바칠 만큼의 시간과 돈,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영화 만들기의 유일한 단점 같다. 아, 혹은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하는 것일까?
89쪽
치열하게 살다가도, 가끔은 아무것도 걸지 않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여유가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러려면 엄청난 체력이 동반되어야 할 테다!
118쪽

나는 영원히 엄마를 이해하고 싶지 않다고,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엄마처럼 자신의 꿈을 이루는 데에 30년도 더 걸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 나는 엄마처럼 자신의 꿈을 간직한 채로 딸을 키우며, 딸이 다 자라고 나서 그 꿈을 향해 다시 나아가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을 것만 같다.
1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