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한 인문 교류와 문명 대화의 역사적 군상: 사람과 문화의 이동으로 다시 읽는 중한 교류사

중한 인문 교류와 문명 대화의 역사적 군상: 사람과 문화의 이동으로 다시 읽는 중한 교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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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위셴룽

저자 : 위셴룽
상해외국어대학교(Shanghai International Studies University)
상하이 글로벌 거버넌스·지역국별 연구원(SAGGAS) 전임연구원
글로벌문명사연구소 부소장
북경대학교 법학 박사
주요 연구 분야는 동아시아 국제관계와 역사·문화이다.

목차

머리말: 인간을 시각으로 본 중한관계사

一. 군왕(君王): 권력자에게도 따뜻함이 있다
고려 충선왕과 싸찌아사(薩迦寺)
조선의 왕과 두보의 시
한국 역사에서 본 중국 황제의 집: 자금성
복(福) 문화, 그리고 청 건륭(乾隆)황제와 조선 정조
〈삼국지〉와 고대 한반도의 왕권 정치·문화

二. 문신(文臣): 군자는 벗과 함께 학문을 익힌다
최치원과 쌍녀분(雙女墳)
‘어진 신하’ 이윤(伊尹)에 대한 인식
명 동월의 〈조선부(朝鮮賦)〉
이유원의 시 속에서 본 중국 역사
조선 이정구와 명의 웅화(熊化)

三. 문인(文人): 문명의 불씨를 전달하는 주역이다
조선 선비들이 여조겸(呂祖謙)에 대한 인식
허균과 명 사인 간의 교류
서예, 왕희지 그리고 〈해동금석원〉
신라 박구(朴球)와 고대 중한의 바둑 교류
중국 문인과 고려묵
한유(韓愈)가 고대 한국 문인에 미친 영향
황현의 중국 인연
도연명에 대한 인식과 무릉도원

四. 의인(義人): 난세에 진정한 의리가 드러난다
남원의 ‘만인의총’
김택영과 장젠의 우의
반파시즘 협력의 역사적 증인:
‘광복군 총사령부 충칭(重慶)유적’
김구 선생의 창사(長沙) 요양지
신4군과 광복군의 공동항일, 반파시스트의 우정
우사 김규식의 쓰촨(四川) 이야기

五. 상인(商人): 장사꾼이자 문화의 사자이다
장보고와 적산법화원
인삼무역과 임상옥
중국인에 대한 조선 청심환의 미력
담걸생의 한성 상호 ‘동순태(同順泰)’
‘해상 실크로드의 출발점’ 취안저우(泉州)에서 본 고대 중한 교류

六. 무장(武將): 두 나라를 넘나드는 고대 군인의 이미지이다
악비(岳飛)에 대한 인식
전라남도에 있는 진린의 사당
당나라에 간 백제 흑치상지
조선조의 관우 신앙

七. 도승(道僧): 사람에게 국적은 있으나, 도법에는 국적이 없다
신라 김가기(金可紀)의 신선 이야기
조선 왕조와 ‘태을(太乙)’ 신앙
고대 한국인의 뇌성보화천존 신앙
‘중원절’과 고대 한국인
왜란 속의 승려와 명군의 협력
원측법사의 숨결을 느끼다, 완화(萬華)산의 신라왕자대(臺)
‘불멸의 찬란함’, 청두(成都) 대자사(大慈寺)와 신라의 무상선사
중화 문화에 정통한 신라 ‘해외파’ 원광대사
한반도 임제종의 시조, 보우선사

八. 여성(女性): 무시된 우리의 반쪽이다
무측천, 선덕여왕 그리고 모란
중국 고대 미녀 ‘서시’와 한국과의 이야기
한반도에 간 서왕모 전설

九. 동물과 인문 교류
한반도의 기린 문화
과하마(果下馬)와 한국 문학
해치와 한국의 정치적 이상
중한일 삼국의 호랑이
한국 고대 문헌 속의 ‘정위’

十. 경전, 서적과 인문 교류
‘효경’이 한국 역사에 미친 영향
고대 한국의 〈천자문〉
〈설문해자〉와 고대 한반도
〈황제내경〉이 고대 한국에 대한 영향
한반도와 〈전등신화〉
〈농상집요〉와 고대 한반도의 농업 발전

十一. 산천과 인문 교류
중국 우산(巫山)의 문화 이미지와 고대 한반도
중국 우타이산과 한반도의 역사적 인연
조선 선비와 ‘전당’의 인연
‘동정(洞庭)’ 이미지와 고대 한국
아미산을 통해 본 중한 고대 문화교류

十二. 음식과 인문 교류
고대 한국과 중국 과일 ‘여지’의 이야기
만두의 역사 이야기
중·한 게 요리의 역사와 문화

맺음말
필자 후기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사람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2,000년 중한 교류사

한국과 중국의 관계사는 왕조와 외교, 전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이 국경을 오가며 사상과 지식, 종교와 문화를 전했고 서로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저자는 국가 중심의 거시적 서사에서 벗어나 군왕·문신·문인·의인·상인·무장·도승·여성 등 역사 속 개인들의 경험과 역할을 따라간다. 충선왕과 싸찌아사, 조선 왕들이 사랑한 두보의 시, 최치원과 쌍녀분, 장보고와 적산법화원, 광복군의 충칭 유적 등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중한 관계사의 여러 얼굴을 보여준다.

사람에서 고전과 음식까지, 12개 테마로 만나는 문명 교류

이 책의 시선은 사람에 머물지 않는다. 기린과 해치 같은 동물, 《효경》과 《천자문》 같은 고전, 우타이산과 아미산 같은 공간, 여지와 만두, 게 요리 같은 음식까지 교류의 흔적을 살핀다. 12개 테마를 관통하는 것은 사람과 문화가 국경을 넘어 이동하고 서로의 문화 속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수용되었는가라는 질문이다. 2,000년 넘게 축적된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정치와 제도만으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던 동아시아 인문 교류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추천사

왕조의 연대기에서 사람들의 삶으로

책은 군왕·문신·문인·의인·상인·무장·도승·여성을 다룬 여덟 장에, 동물·경전과 서적·산천·음식을 다룬 네 장을 더해 모두 열두 장으로 구성됐다. 국가 간 관계를 조약이나 제도의 변화만으로 설명하기보다, 인물과 문화의 이동을 따라가며 들여다보는 방식이다.

장보고와 적산법화원, 허균과 명나라 문인들의 교류, 김택영과 장젠의 우의, 광복군의 충칭 유적에 이르기까지 책이 다루는 시간과 공간은 넓다. 고대의 교류에 머무르지 않고 근대의 격변 속에서 이어진 인연까지 시야에 담는다.

이러한 구성의 장점은 한중 관계를 추상적인 국가 관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의 경험으로 읽게 한다는 데 있다. 왕과 관료에게는 통치와 외교의 과제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그들의 삶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상인의 이동 역시 물자의 거래로만 끝나지 않으며, 문인과 종교인의 만남에는 지식과 신앙을 나누는 일이 뒤따른다. 이 책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교류’라는 익숙한 단어 안에 서로 다른 목적과 처지를 지닌 사람들의 삶이 겹쳐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역사를 읽는 온도의 변화다. 국가의 흥망과 세력의 충돌을 좇을 때와 달리, 한 사람의 경험과 인연을 따라갈 때에는 상대의 삶을 이해할 여지가 생긴다. 책이 전하는 따뜻함도 막연한 우호의 구호보다는, 그렇게 구체적인 얼굴을 마주하는 데서 나온다.

그리고 여성을 독립된 장으로 다룬 점도 눈길을 끈다. 이 장에는 무측천과 선덕여왕뿐 아니라 서시와 서왕모에 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실제 역사 속 여성과 함께, 여성을 둘러싼 전설과 문화적 이미지까지 살피는 구성이다.

여기서 독자는 두 가지 질문을 만나게 된다. 여성은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그리고 후대의 사람들은 여성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야기했는가. 두 질문은 서로 연결되지만 같지는 않다. 전설 속 인물을 실제 교류의 주체와 동일하게 다룰 수는 없지만, 그 전설이 전해지고 받아들여지는 과정 역시 문화 교류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여성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기록과 기억을 함께 살피는 방향으로 넓어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책의 시선은 사람을 넘어 동물과 자연, 서적과 음식으로 이어진다. 기린과 해치, 『효경』과 『천자문』, 우타이산과 아미산, 만두와 게 요리까지 서로 다른 소재들이 한중 교류사를 읽는 통로가 된다.

얼핏 흩어져 보이는 이 주제들을 묶어 주는 것은 결국 사람의 인식이다. 어떤 동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한 권의 책을 읽어 삶의 기준으로 삼으며, 먼 곳의 산천을 시와 이야기 속에 담아내는 일은 모두 인간의 해석을 거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어디에서 어디로 전해졌는지를 확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삶과 문화 속에서 어떻게 바꾸어 갔는지를 묻는 데 있다.

이 대목에서 문화 교류사를 읽는 질문도 달라진다. ‘누가 먼저 만들었는가’만이 아니라 ‘어떻게 전해졌으며,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는 동안 무엇이 새로 생겨났는가’를 묻게 되는 것이다. 닮은 점을 발견하는 즐거움과 차이를 이해하는 노력이 함께할 때, 문명 간 대화라는 말도 비로소 구체적인 내용을 얻는다.


관계가 흔들릴 때 지탱해 주는 ‘바닥짐’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랜 교류의 기억은 오늘의 한중 관계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저자가 인문 교류의 역할을 설명하며 제시한 ‘바닥짐’이라는 비유는 특히 인상적이다. 바닥짐은 배를 앞으로 움직이는 동력은 아니지만, 배가 크게 흔들릴 때 균형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인문 교류 역시 외교적 갈등을 단번에 해결하는 수단이라기보다, 관계가 어려워졌을 때에도 상대를 이해하고 대화를 이어 갈 여지를 남기는 토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문화적 친연성이 정치적 신뢰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교류가 오래 축적됐다는 이유만으로 정책의 변화나 갈등의 해소가 저절로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그 한계를 인정하는 것과 인문 교류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당장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더라도 상대를 하나의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바라보지 않게 하는 일, 협력과 공감의 가능성까지 잊지는 않게 하는 일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두 나라는 오래전부터 가까웠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와 기억의 폭을 넓혀 준다는 데 있다. 국가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사람의 경험을 더하고, 갈등의 기억 곁에 교류와 연대의 기억을 함께 놓아 보게 한다.

그렇다고 따뜻한 이야기가 역사의 상처를 덮는 장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중 관계를 우호의 역사로만 서술하는 것도, 대립의 역사로만 환원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교류 속에 존재했던 위계와 긴장,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을 존중하면서도 사람들이 만나고 배우며 관계를 만들어 온 과정까지 함께 살필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이야기들 역시 그러한 시선으로 읽을 때 더욱 깊은 의미를 얻는다.

책을 덮고 나면 한중 관계를 향한 질문이 조금 달라진다. ‘우리는 왜 갈등하는가’에 더해, ‘우리는 무엇을 주고받으며 살아왔고, 그 경험에서 무엇을 다시 배울 수 있는가’를 묻게 된다.

이웃을 이해한다는 것은 좋은 모습만 골라 보는 일이 아니다. 익숙한 몇 가지 이미지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상대의 역사와 삶을 알아가는 일이다. 『중한 인문 교류와 문명 대화의 역사적 군상』은 그 길로 독자를 이끈다. 국가의 이름 뒤에서 사람의 얼굴을 발견하는 것, 어쩌면 오늘의 한중 관계를 다시 생각하는 일도 거기서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