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의 영원 : 안 사라지면 영원도 없다

사라지는 것들의 영원 : 안 사라지면 영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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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곽재혁

저자 : 곽재혁
삶과 죽음의 위태로운 경계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실존을 치열하게 관조해 온 목회자이자 신학자이다. 시카고 맥코믹 신학교(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에서 수학하는 동안 해방신학, 성서비평학, 그리고 위르겐 몰트만의 신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후 볼리비아의 황량한 알토 광야에서 선교사로 헌신하며 제도화된 기독교 내면에도사린 제국주의적 속성과 선교 구조의 한계를 온몸으로 겪었고, 이는 기성 교회가 고수해 온 법정적 대속 이론을 실존적으로 날카롭게 재성찰하는 결정적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에 교회를 개척한 후에도 유니온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에서 학문적 여정을 이어가며 제임스 콘과 폴 니터의 사상적 유산 아래 흑인해방신학, 종교다원주의, 그리고 불교-기독교 대화를 깊이연구했다. 27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국 이민자 공동체의척박한 삶의 자리를 지키며 문화와 언어, 그리고 완고한 교리의 장벽을 뛰어넘는 살아있는 신앙의 형태를 실험해 왔으며, 이를 통해 진짜 교회는 이미 무너져 내린 제도적 담장 밖 폐허 위에서 예수와 함께 공동 집필되는 서사적 실재임을 온 삶으로 증명해 내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명사의 감옥을 깨부수고 동사로 흐르라

제1부 홀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만날 수 없는 하나님

서문.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제1장. 존재, 죽음, 그리고 인간 실존 - 왜 예수는 ‘죽어가는 하나님’이어야 했는가?
제2장. 존재의 하나님이 만든 신학적 한계 - 플라톤, 하늘, 이성, 그리고 교회의 하나님
제3장. 비존재를 삭제해 버린 문명 - 십자가와 서구 형이상학의 한계

제2부 죽음 속으로 걸어 들어오시는 동사의 하나님

서문. 죽음 속으로 들어오시는 하나님
제4장. 하나님이 인간이 되는 위험을 선택하신 순간 - 전지전능함 대신 관계를 선택하시다
제5장. 성전 된 몸을 허물다 - 마이너스(-)의 문으로 흘러 들어가는 인생의 서사
제6장. 십자가 형상과 공의 경계에 서신 예수 - 존재와 비존재, 색과 공의 사이에서
제7장. 게임으로서의 인생 -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우리와 손을 잡으시는 하나님

제3부 무너진 담장 너머에서 쓰는 신앙과 이야기

서문. 교회 담장 밖 폐허 위에서 던지는 질문들
제8장. 삶과 죽음의 게임 - 예수는 앞서 달려가지 않고 우리 곁에 나란히 앉으신다
제9장. 케노시스(비움) 대 플레로마(충만) - 경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묻는가?
제10장. 교회 담장 너머 - 여전히 쓰이고 있는 교회의 이야기
제11장. 닫히지 않는 결말 - 사라짐 너머에서 시작되는 영원의 서사

에필로그. 담장을 허무는 것이 아니라 지평을 넓히는 일
미주

출판사 서평

죽음과 상실의 자리에서 다시 묻는 삶과 신앙의 의미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죽음은 생의 마지막에만 찾아오는 사건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실패와 좌절, 질병과 소외처럼 자신의 존재가 무너지는 모든 순간에 인간은 이미 크고 작은 죽음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사라져 가는 삶에서 영원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과 죽음 앞에 어디에 계시는가? 곽재혁의 《사라지는 것들의 영원》은 이러한 근원적인 질문에서 출발해 기독교의 핵심인 십자가와 부활, 구원과 영생의 의미를 새롭게 탐색한다. 저자는 영원을 변하지 않는 존재의 지속으로 이해해 온 전통적인 신학적 관점에 의문을 제기한다. 오히려 모든 것이 변화하고 사라지는 무상함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며, 죽음은 영원을 향한 이야기가 시작되는 필연적인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존재와 비존재, 삶과 죽음을 대립적인 개념으로 바라보던 익숙한 사고에서 벗어나, 사라짐 자체에 담긴 창조와 구원의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시도다.

전지전능한 절대자에서 인간의 고통에 동참하는 존재로

저자가 주목하는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을 멀리서 지켜보는 초월적 절대자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죽음의 심연으로 들어오는 하나님이다. 플라톤의 존재론과 서구 형이상학의 영향을 받은 전통 신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불변성과 전지전능함을 강조하는 교리적 설명이 인간의 구체적인 고통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특히 예수의 십자가를 인간의 죗값을 대신 치르는 법정적 거래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상실과 죽음에 직접 참여하는 사랑의 사건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불교의 무상(無常)과 공(空), 기독교의 케노시스(자기 비움)와 플레로마(충만)를 연결하는 신학적 사유로 확장된다. 저자는 자기중심적인 집착을 넘어 타인을 향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에서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나아가 부활을 단순히 죽음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사건이 아니라, 죽음을 통과한 관계와 사랑의 이야기가 영원으로 이어지는 사건으로 이해한다. 이는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와 긴장을 형성하는 해석이지만, 신앙이 인간의 실존적 고통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

완성된 교리가 아닌, 삶의 현장에서 계속되는 신앙의 이야기

이러한 신학적 성찰은 자연스럽게 오늘날 교회의 역할과 신앙의 본질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제도와 교리를 보존하는 데 집중해 온 교회가 정작 고통받는 인간과의 관계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되묻는다. 그러나 그 목적은 교회와 기존 교리의 단순한 부정이나 해체가 아니다. 교회의 담장 너머로 신앙의 지평을 넓히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인간과 동행하는 예수의 이야기를 회복하려는 데 있다. 신앙은 이미 완성된 정답을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타인의 고통에 참여하고 하나님과 이웃이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목회 현장의 경험과 성서 해석,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 사상을 넘나드는 논의는 교회의 위기와 탈종교화가 거론되는 시대에 기독교 신앙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기존의 교리적 설명에 의문을 품어 온 신앙인뿐 아니라 죽음과 상실,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독자에게도 새로운 사유의 계기를 제공한다. 사라짐을 영원의 반대가 아니라 영원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우리는 사라지는 동안 누구와 함께 살아가며, 어떤 사랑의 이야기를 남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