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문장으로 떠오르는 얼굴

한 줄 문장으로 떠오르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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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심경숙의 시집 『한 줄 문장으로 떠오르는 얼굴』은 제목 그대로 “한 줄”의 문장이 “얼굴”을 떠오르게 만드는 경험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그 한 줄은 단정하고 담백하며, 무엇보다 장소와 단단히 맞물려 있다. 시인은 절집, 강나루, 터미널, 산사, 밭두렁 같은 구체적 장소의 공기와 빛, 소리의 결을 받아 적는다. 이곳에서 감정은 과장되거나 격앙되지 않는다. 오히려 생활의 리듬, 기도의 호흡, 농삿일의 땀이 낳는 정서적 안정이 우리를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장소를 사랑하는 마음, 즉 포토필리아가 시집 전체의 지형을 이룬다.
이 시집의 첫인상은 고유명사가 그려내는 지리적 구체성이다. 수타사, 청평사, 봉정암, 오미 나루, 홍천버스터미널, “공지천 ‘사이로 248’ 출렁다리” 등 지명은 배경이 아니라 주체를 형성하고 길들이는 힘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농부와 시인」에서 같은 이름의 카페는 “꽃향기 커피 향처럼/농부가 되고 시인이 된” 작은 터전이다. 여기서 시 쓰기는 고상한 직능이 아니라 삶의 향을 우려내는 노동과 맞닿는다. 장소애가 직업윤리이자 생활철학으로 확장되는 대목이다.
장소는 종종 기억의 문이 된다. 「홍천버스터미널」의 차가운 의자, 서릿발 바람, “출발과 경유지와 도착지가/서로 다른” 안내문들은 기다림의 정서를 환기한다. 이곳에서 시간은 달력의 시간이 아니라 몸의 온도로 측정된다. “차디찬 의자”는 “또 다른 시간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고통이 아니라 관계의 윤리를 복원하는 장치다. 「오미 나루」의 나룻길은 “어머니 소리 사라지듯/다시 울지 않는다”는 사라짐의 문장으로 각인된다. 강 너머로 건너던 뱃길의 기억은 물소리와 바람의 촉으로만 남는다. 건너감은 곧 이별의 인식이며, 되돌아올 수 없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태도다.
이 시집에서 가장 깊은 심연은 어머니를 둘러싼 기억의 층위다. 「어머니」는 “엄마, 부르면/산 너머 메아리로 사라집니다”라고 한다. 울부짖음이 아니라 메아리로 남는 소환의 실패가 더 큰 사랑의 크기를 가늠하게 한다. 「깻잎 사랑」에서 시인은 “깻잎의 내림 사랑”을 아이들에게 얹어 준다. 재료, 손질, 절임, 양념의 순서를 따라가는 부엌의 시간이 곧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의 전승이다.
이 시집의 시들은 쓸쓸하면서도 슬픈 소재로 감정을 고조시키지 않는다. 그보다는 전체적인 시적 정조가 대개 기도·묵상·노동의 리듬 속에서 가라앉는다. 「수타사의 겨울」의 “동안거 참선 중이다”라는 종결은 감정의 파고를 잠재우는 수행의 종지부다. 「바람이 머문 자리」에서 시인은 쓰러진 벼 이삭을 보며 “상처 아닌 상처”라고 말한다. 자연의 상처를 과장하지 않고, 삶의 무게로 공감한다. 이 시집의 표제작인 「둥지 튼 슬픔」에서 슬픔은 “깃털을 가진 문장”이 되어 새집에 둥지 튼다. 슬픔을 제거하지 않고, 거처를 마련해 공존한다. 이 ‘공존의 미학’이야말로 이 시집이 지향하는 안정의 핵심이다.
『한 줄 문장으로 떠오르는 얼굴』은 장소애와 기억, 어머니의 사랑, 소박한 생활윤리가 고요한 파장으로 겹쳐지는 시집이다. 시인은 감정을 끌어올리는 대신, 감정을 잘 놓아둘 자리를 마련한다. 절집의 풍경, 강의 물결, 출렁다리, 밭두렁, 카페 등의 장소들은 슬픔과 기쁨을 과장 없이 정착시키는 영토이다. 그 영토 안에서 우리는 “둥지 튼 슬픔”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소금꽃”의 염도로 하루를 맛본다. 이 시집이 보여주는 것은 거창한 사유를 통한 깨달음이나 위안이 아니라 생활의 온도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적막이 풍경소리로 운다는 것을 알아차릴 만큼의 감각과 숨을 간직하는 일. 그 일의 언어가 바로 심경숙의 담백한 문장으로 재탄생된 것이다. 이 시집 속의 한 줄의 문장이, 오늘 우리에게도 누군가의 얼굴을 조용히 떠오르게 한다.
저자

심경숙

강원홍천출생
「대한문학세계」시부문등단
시집「한줄문장으로떠오르는얼굴」
강원,춘천,홍천문인협회원
여성문인협회회원
한림대평생교육원시창작반
서울지하철 시 공모전 수상(2020, 2024)

목차

1부소원의틈과틈사이로
생각이무거워진날

농부와시인/글의집/수타사의겨울/돌탑/수타사시화전/수선/
강가에머문신발한짝/뉘시오/농부의손/거울속에서엄마를만난다/
홍천버스터미널/시인의밥/문학적인안개/몽돌/미루나무서사/

2부가만히고개숙이면
얼굴이사라진다

청평사에서/동화사풍령은바람을먹고삽니다/옷집앞에서/오이꽃지면/
길은질문으로자라고/수타사에서시를만나다/봉정암의하룻밤/마음의빈곳간/
잠실/오미나루/가을꽃상여/선물중의선물,탄생/동심적인밥/연꽃얼굴/
기억을더듬으며/오름으로가는내림/소금꽃얼룩무늬

3부모서리가서로의소원으로엉겨가는세상
층층돌

어머니/산책길/돌무덤/상실의지게/아버지의고무신/가을을딴다/돌탑마을/
여름/최고의선물/달팽이서사/지상의첫걸음/콩꽃이붉다/은우가봉숭아꽃물들때/
미로/객차에앉아바라보는생의풍경/밭두럭에소금꽃그린다/오일장/풀꽃처럼

4부가슴깊숙이들앉은
당신이라는새

오미나룻길/춘천사이로248/물소리가좋아요/달팽이/비오는길/날다/
달그림자/요양원/김치꽃/복숭아계절이오면/깻잎사랑/무덤앞에서시읽기/
할머니에게은우가쓴시/바람이머문자리/찔레꽃필때면/12월/둥지튼슬픔

해설_경작과함께,시와함께-여성농부의시세계!
이영춘(시인)

출판사 서평

심경숙시인은일을하다가도시상이떠오르면밭고랑에앉아혹은논두렁에앉아시를쓴다.미처저장하지못한시상은밤늦은시간까지컴퓨터앞에서작업을한단다.이번시집『한줄문장으로떠오르는얼굴』에수록된대부분의시가그렇게탄생된시다.그러므로심경숙시인에게는흙과땅과그땅을둘러싸고있는산과강과비바람이전부시의소재이다.이런까닭으로심경숙의시는맑고깨끗하고순수무구하다.

자신의삶을한번씩이렇게‘수선’하듯되돌아본다는것은결국자아성찰의자세다.후회로남는일들,그리고미처못한일들은‘수선’하듯고치고반성하면서새삶,새길을찾겠다는의지의시다.좋은시는독자와함께할때그빛이난다.보편적진리로공감대를이룰때독자들은그시를사랑한다._이영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