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또 다른 숨 (전봉수 시집)

그곳은 또 다른 숨 (전봉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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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전봉수 시인의 『그곳은 또 다른 숨』은 호흡의 은유로 삶을 다시 묻는 시집이다. ‘숨’은 생물학적 행위이면서 마음의 자세이기도 하다. 전봉수의 시 세계에서 숨은 그저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아니라, 자연·공동체·신에 접속하는 방식, 곧 삶을 감응적으로 견디는 법을 뜻한다. 전봉수 시인에게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시적 감응의 원천이다. 이런 점에서, 특히 첫 시 「소라게」는 주목할 만하다. 해 질 녘을 바라보다 놓쳐 버린 바람과 소식을 상기하며 “다시/또/밀물이다”라고 끝맺는다. 자연의 리듬(썰물/밀물)은 상실과 회복의 순환을 내면화하는 장치다. 그래서 전봉수의 평온은 현실과 단절한 절대적 고요가 아니라, 끊임없는 흔들림의 반복을 통해 도달하는 ‘견딤의 평온’이다.
이 시집에는 기도시가 많다. 전봉수 시인의 기도시는 간청의 목록이 아니라 감각을 회복하는 훈련에 가깝다. 「기도 1」은 “듣게 하소서/산과 들녘/공중을 나는 새의 노랫소리”, “보게 하소서/…/손뼉 치는 모든 나무”라고 말한다. 이렇듯 신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일이면서 동시에 보이는 것을 제대로 보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새벽기도 1」은 새벽을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시간으로 그리면서도, 그 만남의 방식이 감정의 도취가
아니라 겸허한 자기반성임을 강조한다. 전봉수의 기도시는 초월의 현현보다 일상 속 미세한 전환, 즉 마음의 자세가 바뀌는 순간에 더 많은 관심을 둔다. 기도는 세계를 바꾸는 마술이 아니라, 세계를 느끼는 감각을 바로 세우는 연습이다.
행복은 이 시집에서 중요한 모티브이다. 이 행복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성숙한다. 「행복한 사람 1」의 행복은 ‘당신’이라는 호명에서 시작한다. 「나의 푸름들이여」는 그 관계의 범위를 공동체로 확장한다. 전봉수 시인에게 행복은 경쟁과 소유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돌봄과 겸양의 언어를 통해 얻어진다. 이 시집의 정신적 태도를 한 마디로 얘기하면 사소함의 영성이다. 그런 영성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준다고 이 시집은 가르쳐 준다. 이 시집에 자주 등장하는 사물은 텃밭의 검정콩, 콩잎에 앉는 빗방울, 가방 속 책, 문 앞 동백-모두 작고 낮은 것들이다. 그러나 그 낮음이야말로 마음을 벼리는 연마장이 된다. 「가을에 나는」은 감정을 식물의 변신으로 환하게 비춰 보여주고, 흩어진 시간을 “푸르른 하늘에 새기”는 마음의 훈련을 제안한다. 일상을 조용히 돌아보는 일이 곧 감사의 언어를 만드는 일임을 이 시집은 조용히 증언한다.
『그곳은 또 다른 숨』은 독자에게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는 자연에 귀 기울이며 평온을 길러내는 감응의 기술이고, 둘째는 기도하는 일상 속에서 듣고 보고 말하는 윤리이다. 이를 통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 승리보다 감사, 앞줄보다 뒷줄을 선택하는 태도에서 자란다는 것이다.
책을 덮고 나면, “그저 길을 가라”는 자연의 목소리와 새벽길로 나서는 기도의 발걸음이 겹쳐져, 우리도 각자의 안식처를 찾고 싶어진다. 삶이 거칠게 흔들릴 때, 전봉수의 시는 숨을 고르는 법을 가르친다. 그 숨은 우리 안의 상처를 지우고, 조용한 기쁨을 길어 올린다. 그러니 이 시집은 화려한 발견의 기록이 아니라, 매일의 신실함을 닦아 세운 마음의 노트이며, 자연에서 찾은 평온, 기도하는 삶, 행복을 향한 자세라는 세 갈래 숨이 모여 빚은, 단정하고도 따뜻한 노래다.
저자

전봉수

충남홍성출생
2006년「문예한국」등단
풀꽃동인
시집「그곳은또다른숨」
공저『비와바람의숲에서』외다수

목차

1부이름모를작은풀꽃
가슴에내려앉은햇살

소라게/어떤울음은흐르지않고고인다/잘라내면더풍성해지는것들/
봄/이면지/저먼불빛은누구의등대일까/식물성호랑이/금가면도촌리/
기도1/소화시키다/봄으로속삭이는햇살/물과불을담은보석/
행복의동산/축복의동산2/바래지않는기억/그따스함에등을기대고

2부온통흔들어놓고는
그저길을가라한다

언제라도,지금/행동3/너의시간을찾아/ 나의푸름들이여/바닷가에서/
가을을담은마음으로/시골길/먼길함께가는친구/가능의범위/마중물/
빈말의힘/자동문/있는그대로/나다/일으켜세우는기도/숨/겨울비

3부누가적셔놓은건지
잊히지않는따뜻한향

동백나무와마주쳤습니다/순수를기다리는고백/간곡한통증/호암지/
들깨자르던날/내가한편의시라면/행복한사람1 /구름방석/
피고지는인연을바라보며/그친구/축가부르러가던날/아원의어느날/
소박한퇴임/늦은귀갓길/내오랜사람아/기다려준그대에게

4부흩어진시간들을모아
푸르른하늘에새기고

빗방울의팔랑임/코스모스1/감꽃목걸이/반갑지않은만남/그러고싶을때의욕심/
코스모스2/밤낚시/금릉동산언덕/새벽기도1/한식날/푸른바다에안겨/
논산훈련소가던날/새벽기도2/밤몇알의추억/가방속한알의사과/
가을에나는/마음뿐인것이이뿐일까


해설_그곳은또다른숨-헌신의시학과적요의미학111
한용국(시인)

출판사 서평

전봉수시인의시들은질박하며투명한이미지를통한서정의미학을드러내고있다.정념들은함부로흘러넘치지않고,여백은시의여운을잘가두리지으며,각각시편들은미학적완결성을맺고있다.이런절제의미학은김영랑의‘촉기’라는말을떠오르게한다.서정주시인의김영랑시에대한평가에서드러나는‘촉기’라는말은김영랑자신이한말로,‘슬픔을노래부르면서도그슬픔을딱한데떨어뜨리지않는싱그러운음색의기름지고생생한기운’을말하는데,전봉수시인의시집은바로그‘촉기’를품고있다.즉방만한감상이아닌내밀한절조를지향하고있다는말이다.그것은시인이견지하고추구하는삶의자세에서발생하는것이며,시인이시적주체를통해드러내고자하는시적사유이자미학일것이다.
해설_한용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