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별하라 불러 주면 좋겠어 (정문정 시집)

정문정의 『내 이름을 별하라 불러 주면 좋겠어』는 안개와 물, 흰색과 식물, 얼굴을 바꾸는 신의 기척과 일상의 가벼운 사물들 사이를 오가며 잊힌 자아의 잔광을 더듬는다. 이 시집에서 ‘흰색’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기억을 덮고, 경계를 흐리고, 때로는 뭔가를 새로 출현하게 만드는 작동 기제이다. 물기가 스며든 문장들과 건조해진 사물들이 교차할 때, 시적 화자는 “다른 것 되기”를 통해서만 자신에게 되돌아갈 수 있음을 배운다. 별처럼 높게 빛나기를 바라는 시집의 제목은 기억 속 나를 먼 별빛으로 다시 불러내는 호명으로서의 시 쓰기를 암시한다.
「흰색 유령」은 이 시집의 핵심 모티프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흰옷, 안개, 커튼, 동굴 같은 실내의 ‘흰빛’은 사물의 윤곽을 지우며 우울을 불러들인다. 흰색은 무無의 색이 아니라 과도한 빛이 그림자를 말려버린 자리, 감각을 둔화시키는 과잉의 표현이다. 이때 화자는 흰색을 기피하거나 숭배하는 대신, 그것이 어떻게 마음의 상태를 조성하는지 관찰한다. 흰색의 과잉이 경계를 흐리면, 그 흐려진 윤곽 속에서 잊힌 자아가 문득 떠오르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흰색의 이미지는 「기억주의보」에서 ‘안개’로 변화된다. 집을 삼킨 호숫가, 안개발전소 등 이 일련의 장치들은 상실의 지형도를 그린다. “오래전 물속에 나를 두고 왔다”는 고백은, 과거의 내가 물아래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음을 암시한다. 화자는 그곳으로 다시 간다. 엄마를 보내지 못한 자리, 태어난 곳이 물속이라는 운명론적 전언을 마주하는 자리에서, 기억은 회복과 상실의 경계에서만 움직인다는 사실이 또렷해진다.
이 시집에서 자주 나타나는 전략은 “다른 것 되기”다. 「한통속이 될래요」에서 화자는 초록을 먹고, 폐부에 공기를 채우고, 겨드랑이에서 잎이 돋아나는 상상을 통해 나무가 된다. 이는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화자의 윤리적 선택이다. 「캔디라이트」에서는 사막 같은 집의 평수를 늘리는 동안 대형 수족관이 들어오고, 문을 열자 물고기가 집안을 배회한다. 물/사막, 습윤/건조, 길들여짐/탈주가 한 공간에서 뒤엉키는 장면은, 타자로 변신하는 길이 동시에 자기 회복의 유일한 통로임을 시각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변검」은 다른 것 되기의 전략을 운명과 신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엄마가 여러 신을 품고 얼굴을 바꿔가며 사라지고 돌아오는 장면은, 개인사를 넘어 지역적·민속적 기억의 흐름을 떠올리게 한다. 불러도 닿지 않는 목소리, 강물에 삼켜지는 호명의 기억은 이 시집이 끝까지 놓지 않는 질문, 즉 ‘부르면 돌아오는 이름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일생의 화두로 남긴다. 그렇게 이 시집은 기억과 망각, 빛과 흰색, 물과 사막, 인간과 식물·동물의 경계에서 끝없이 페이딩과 포커싱을 반복한다.
정문정 시인의 시집 『내 이름을 별하라 불러 주면 좋겠어』는 “기억 속의 나를 들여다보기”와 “잊혀진 나를 다시 찾기”를 서로 다른 두 절차가 아니라 하나의 연속 동작으로 제안한다. 흰색의 지대에서 경계를 흐리고, 다른 존재가 되어 물과 빛의 스펙트럼을 통과하는 일 그리고 그 과정을 거쳐야만 우리는 비로소 자기 이름을 높이 빛나는 별처럼 먼 곳에서 다시 듣는다. 별은 흰 점이지만, 그 흰빛은 셀 수 없는 색의 합성이다. 정문정의 시는 바로 그 합성의 빛으로 우리를 비춘다. 읽고 나면, 각자의 생활 속에서도 작은 변검이 가능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잊혀 점점 희미해져 가는 자신이 별처럼 높이 빛나게 되기를 오늘 다시 꿈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