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김종관 시인의 시집 『우린 흐림에서 만나 맑음에서 헤어졌다』는 외로움을 감추거나 미화하지 않고, 그것을 신앙과 삶의 언어로 번역해 생활의 감각 속에서 다시 확인하는 시집이다. 독자는 첫 작품에서부터 “나는 외로움을 지갑에 넣고 다닌다”는 고백을 만난다. 외로움은 결핍의 통화처럼 쓰이고, 나와 타인의 관계를 계산하는 지폐처럼 나부낀다. 그러나 시인은 그 지폐가 담긴 지갑을 단순한 자기연민으로 닫지 않는다. 「하와 주차장」에서 외로움은 태초의 비명과 원죄의 다른 이름으로 제시된다.
이 시집의 언어는 기도와 생활, 은총과 가계부 사이를 오가며 독특한 사유의 리듬을 만든다. 「사과가 둥근 이유」에서 시장길의 귀뚜라미 울음, 세일 딱지 붙은 바나나, 둥근 사과바퀴가 한 장면에 들어오면, 울음은 가격표를 거부하는 존재의 무게로 바뀐다.
시인은 이런 생활의 자세를 하늘을 향한 곧은 마음을 통해 설계한다. 「대나무 세우기」에서 장미에 목이 감겨 흔들리는 대나무를 세우는 장면은 곧은 마음이란 경직이 아니라 흔들림을 통과해 다시 서는 능력임을 알린다. 「하늘의 눈」은 전장에서 울리는 아이들의 울음 앞에 구름의 눈물을 불러오고, 신의 위로를 기상과 비유의 스케일로 확장한다. 이런 신앙의 자세는 대개 가족이라는 작은 공동체에서 훈련된다. 「햇살 우산」은 어머니의 눈물과 끼니, 체온과 가난의 무게를 한데 묶어 “봄볕 같은 부모 은혜”로 환원하는 노래다. 신앙은 여기서 교리의 조항이 아니라 체온의 기억이다.
특히 3부에서 부부의 세계를 다룬 작품들은 노년의 외로움을 밀어내는 서정의 중추다.
「봄날의 기호」는 바느질과 글쓰기의 은유를 빌려, 헝클어진 말과 생활의 결을 한 코 한 코 고쳐 달아 ‘정답 같은 아내’를 뜨개질한다. 이것은 편안함을 찬양하는 노래가 아니라 함께 늙는 두 존재가 각자의 언어를 해석하며 상호 번역하는 노동의 기록이다. 「똑딱단추」의 재봉틀과 기차 이미지는 만남을 ‘달달 박는’ 지속성으로 바꾸고, 그 지속성이 옷처럼 서로를 덮어주는 사랑의 속성을 획득한다.
「부부 열매」에서 두 사람은 직선 기차를 타지 않고 반 바퀴씩 서로의 혈관을 순환한다. 직선이 아닌 순환, 곧 상호 의탁과 환류는 부부애의 핵심이며, 노년의 외로움을 밀어내는 장치다. 「이슈 부부」에서는 성당의 면사포 속 달빛, 오래된 부품의 덜컹거림, 차 안의 다툼을 지나오는 여정이 “혼자는 썩어서 외출을 몇 번 더 해도 되겠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함께 늙는다는 것은 갈등의 소거가 아니라, 덜컹거림을 견디는 공명 주파수를 만드는 일임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우린 흐림에서 만나 맑음에서 헤어졌다』는 결국, 외로움의 고백으로 시작해 신앙과 가족애의 기술로 건너가 부부애의 순환으로 귀착하는, 따뜻한 삶의 기록이다. 외로움은 지갑 속에서 계속 출납되지만, 그 통화가치가 떨어지는 순간은 타자를 위해 지출할 때다. 하늘은 머리 위가 아니라 하늘을 지향하려는 자세를 통해 도달되고, 노년의 사랑은 직선의 속도가 아니라 반 바퀴씩 서로의 혈관을 도는 호흡으로 완성된다. 그러므로 이 시집은 외로움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신념의 구호 대신 생활의 오브제를 건넨다. 재봉틀의 똑딱 소리, 세일 딱지 붙은 바나나, 장미에 묶인 대나무, 목사의 보행기, 유리종이와 눈물 잉크. 이 촘촘한 기호들의 뜨개질을 따라가다 보면, 봄은 계절이 아니라 태도임을, 신앙은 높이가 아니라 체온임을, 사랑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임을 알게 된다. 그때, 우리 각자의 지갑 속 외로움은 조금씩 얇아진다.
이 시집의 언어는 기도와 생활, 은총과 가계부 사이를 오가며 독특한 사유의 리듬을 만든다. 「사과가 둥근 이유」에서 시장길의 귀뚜라미 울음, 세일 딱지 붙은 바나나, 둥근 사과바퀴가 한 장면에 들어오면, 울음은 가격표를 거부하는 존재의 무게로 바뀐다.
시인은 이런 생활의 자세를 하늘을 향한 곧은 마음을 통해 설계한다. 「대나무 세우기」에서 장미에 목이 감겨 흔들리는 대나무를 세우는 장면은 곧은 마음이란 경직이 아니라 흔들림을 통과해 다시 서는 능력임을 알린다. 「하늘의 눈」은 전장에서 울리는 아이들의 울음 앞에 구름의 눈물을 불러오고, 신의 위로를 기상과 비유의 스케일로 확장한다. 이런 신앙의 자세는 대개 가족이라는 작은 공동체에서 훈련된다. 「햇살 우산」은 어머니의 눈물과 끼니, 체온과 가난의 무게를 한데 묶어 “봄볕 같은 부모 은혜”로 환원하는 노래다. 신앙은 여기서 교리의 조항이 아니라 체온의 기억이다.
특히 3부에서 부부의 세계를 다룬 작품들은 노년의 외로움을 밀어내는 서정의 중추다.
「봄날의 기호」는 바느질과 글쓰기의 은유를 빌려, 헝클어진 말과 생활의 결을 한 코 한 코 고쳐 달아 ‘정답 같은 아내’를 뜨개질한다. 이것은 편안함을 찬양하는 노래가 아니라 함께 늙는 두 존재가 각자의 언어를 해석하며 상호 번역하는 노동의 기록이다. 「똑딱단추」의 재봉틀과 기차 이미지는 만남을 ‘달달 박는’ 지속성으로 바꾸고, 그 지속성이 옷처럼 서로를 덮어주는 사랑의 속성을 획득한다.
「부부 열매」에서 두 사람은 직선 기차를 타지 않고 반 바퀴씩 서로의 혈관을 순환한다. 직선이 아닌 순환, 곧 상호 의탁과 환류는 부부애의 핵심이며, 노년의 외로움을 밀어내는 장치다. 「이슈 부부」에서는 성당의 면사포 속 달빛, 오래된 부품의 덜컹거림, 차 안의 다툼을 지나오는 여정이 “혼자는 썩어서 외출을 몇 번 더 해도 되겠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함께 늙는다는 것은 갈등의 소거가 아니라, 덜컹거림을 견디는 공명 주파수를 만드는 일임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우린 흐림에서 만나 맑음에서 헤어졌다』는 결국, 외로움의 고백으로 시작해 신앙과 가족애의 기술로 건너가 부부애의 순환으로 귀착하는, 따뜻한 삶의 기록이다. 외로움은 지갑 속에서 계속 출납되지만, 그 통화가치가 떨어지는 순간은 타자를 위해 지출할 때다. 하늘은 머리 위가 아니라 하늘을 지향하려는 자세를 통해 도달되고, 노년의 사랑은 직선의 속도가 아니라 반 바퀴씩 서로의 혈관을 도는 호흡으로 완성된다. 그러므로 이 시집은 외로움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신념의 구호 대신 생활의 오브제를 건넨다. 재봉틀의 똑딱 소리, 세일 딱지 붙은 바나나, 장미에 묶인 대나무, 목사의 보행기, 유리종이와 눈물 잉크. 이 촘촘한 기호들의 뜨개질을 따라가다 보면, 봄은 계절이 아니라 태도임을, 신앙은 높이가 아니라 체온임을, 사랑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임을 알게 된다. 그때, 우리 각자의 지갑 속 외로움은 조금씩 얇아진다.
우린 흐림에서 만나 맑음에서 헤어졌다 (김종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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