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김분홍 시집 『가족이라는 기후』는 제목 그대로 “가족”을 하나의 관계망이 아니라, 숨과 온도, 압력과 기류가 뒤엉킨 하나의 기후 시스템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 시편들 속에서 가족과 사랑, 사회와 자아는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늘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날씨에 가깝다. 독자는 이 낯익은 기후를 통과하면서, 시인이 던져놓은 이미지의 장치들 사이를 오가며 일종의 “진실 찾기 게임”을 수행하게 된다.
시집 맨 앞에 실린 「표준적인 사람」에서 화자는 “빈약한 줄기였다”는 자기 인식을 통해, 표준이라는 허구적 기준이 개인의 몸과 생애를 어떻게 눌러왔는지를 비판한다. 표준을 향해 줄 세우던 사회의 시선 속에서 화자는 오히려 표준 자체의 허구성을 들춰내며, 독자에게 “그 표준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이 바로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진실 찾기 게임의 첫판에 해당한다. 진실은 종종 착시와 거짓말의 형식으로 등장한다. 「루빈의 컵」은 말 그대로 인지심리학의 도상 실험을 끌어와, “컵과 사람의 옆모습”이 서로를 대체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이 시는 가족 같은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진실이 더 쉬이 은폐된다는 역설을 던져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 거짓말은 「겹겹이 거짓말」에서 한층 노골적이 된다. 이 시에서 화자는 거짓말과 몽상이 뒤섞인 층들을 하나씩 벗겨내면서, 끝내 “꽃말은 비어 있습니다”라는 허무에 도달한다.
이 시집의 상상력은 철저히 생태적이다. 다만 여기서의 생태는 목가적 자연이 아니라, 몸과 사물, 감정과 자본이 서로 스며드는 뒤틀린 생태다. 벚꽃, 딸기, 납작복숭아, 라넌큘러스, 이나무, 우엉, 수박, 산수유까지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식물과 과일의 이미지는 늘 인간의 상처와 억압, 욕망과 결부된다. 「킹스베리, 킹스베리」에서 딸기는 더 이상 예쁜 과일이 아니라, “전세냐 월세냐”를 오가는 관계의 기한, 빌라 시세와 함께 상처 입고 썩어가는 욕망의 물질적 형상이다. 「이나무」는 그 생태적 상상력을 더욱 기묘하게 밀고 나간다. 이 시에서는 치통의 고통이 “붉은 열매”를 맺게 한다. 여기서 생태는 곧 상처의 순환 구조를 가리키는 은유가 된다.
시집의 또 다른 축은 삶의 억압과 그것을 버티는 몸의 언어다. 「1992년 스투키」에서 화자는 노동과 생존의 구조 안에서 미래가 잘려 나간 청년의 시간을 식물의 언어로 옮긴다. 표제작이기도 한 「분지」는 가족 내부의 억압을 구체적이고 잔인하게 드러낸다. 턱 밑 수술 자국에 생긴 “분지”는 화산이 지나간 자리이면서, 타인과 맺은 관계가 만들어낸 지형이다. “모르는 사람과 만나 형성된 가족이라는 기후” 속에서 “소모적인 언쟁”은 고기압과 저기압처럼 오르내리고, “욕실에 걸린 축축한 수건”들 사이에서 부부는 늘 젖은 아침을 맞는다. ‘분지’는 개인의 흉터이자, 집단이 구경하는 풍경이다.
그런데 무거운 현실을 다루면서도 이 시집이 결코 음울하게만 읽히지 않는 이유는, 감각적 언어와 기발한 상상력이 거의 매 시편마다 우리의 의식을 깨우는 동시에 웃음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도로반사경」에서 화자는 “감정의 코너링”을 배우고, “하루에도 수천 가지 감정”을 볼록·오목, 무겁고 가벼운 감정으로 분류하는 “감정을 다루는 직업”을 갖는다. 반사경과 콜센터, 정서 노동이 겹쳐지는 이 장면은 슬프면서도 묘하게 유머러스하다. 「큐브 속의 여름」에서 사각 틀에 갇힌 수박이 “생각도 네모로 익”게 만드는 장면, 「길을 건너는 나를 본 적 있어요」에서 신호등 속 위층·아래층의 “두 명의 나”가 서로를 교대하는 설정 역시, 시인이 세계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의 산물이다. 이 시선은 날카로운 비판과 동시에 자기비하적 유머, 시니컬한 웃음을 함께 건넨다.
김분홍의 시는 세계의 파편들을 예쁘게 정리해 주지 않는다. 대신 뒤틀린 기후 한가운데로 독자를 데려가, 이 이상한 날씨 속에서 자신의 체온과 호흡을 다시 느껴 보라고 말한다. 그 체온과 호흡이 곧, 각자에게 주어진 “가족이라는 기후”를 견디고 변형시키는 힘일지도 모른다.
시집 맨 앞에 실린 「표준적인 사람」에서 화자는 “빈약한 줄기였다”는 자기 인식을 통해, 표준이라는 허구적 기준이 개인의 몸과 생애를 어떻게 눌러왔는지를 비판한다. 표준을 향해 줄 세우던 사회의 시선 속에서 화자는 오히려 표준 자체의 허구성을 들춰내며, 독자에게 “그 표준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이 바로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진실 찾기 게임의 첫판에 해당한다. 진실은 종종 착시와 거짓말의 형식으로 등장한다. 「루빈의 컵」은 말 그대로 인지심리학의 도상 실험을 끌어와, “컵과 사람의 옆모습”이 서로를 대체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이 시는 가족 같은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진실이 더 쉬이 은폐된다는 역설을 던져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 거짓말은 「겹겹이 거짓말」에서 한층 노골적이 된다. 이 시에서 화자는 거짓말과 몽상이 뒤섞인 층들을 하나씩 벗겨내면서, 끝내 “꽃말은 비어 있습니다”라는 허무에 도달한다.
이 시집의 상상력은 철저히 생태적이다. 다만 여기서의 생태는 목가적 자연이 아니라, 몸과 사물, 감정과 자본이 서로 스며드는 뒤틀린 생태다. 벚꽃, 딸기, 납작복숭아, 라넌큘러스, 이나무, 우엉, 수박, 산수유까지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식물과 과일의 이미지는 늘 인간의 상처와 억압, 욕망과 결부된다. 「킹스베리, 킹스베리」에서 딸기는 더 이상 예쁜 과일이 아니라, “전세냐 월세냐”를 오가는 관계의 기한, 빌라 시세와 함께 상처 입고 썩어가는 욕망의 물질적 형상이다. 「이나무」는 그 생태적 상상력을 더욱 기묘하게 밀고 나간다. 이 시에서는 치통의 고통이 “붉은 열매”를 맺게 한다. 여기서 생태는 곧 상처의 순환 구조를 가리키는 은유가 된다.
시집의 또 다른 축은 삶의 억압과 그것을 버티는 몸의 언어다. 「1992년 스투키」에서 화자는 노동과 생존의 구조 안에서 미래가 잘려 나간 청년의 시간을 식물의 언어로 옮긴다. 표제작이기도 한 「분지」는 가족 내부의 억압을 구체적이고 잔인하게 드러낸다. 턱 밑 수술 자국에 생긴 “분지”는 화산이 지나간 자리이면서, 타인과 맺은 관계가 만들어낸 지형이다. “모르는 사람과 만나 형성된 가족이라는 기후” 속에서 “소모적인 언쟁”은 고기압과 저기압처럼 오르내리고, “욕실에 걸린 축축한 수건”들 사이에서 부부는 늘 젖은 아침을 맞는다. ‘분지’는 개인의 흉터이자, 집단이 구경하는 풍경이다.
그런데 무거운 현실을 다루면서도 이 시집이 결코 음울하게만 읽히지 않는 이유는, 감각적 언어와 기발한 상상력이 거의 매 시편마다 우리의 의식을 깨우는 동시에 웃음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도로반사경」에서 화자는 “감정의 코너링”을 배우고, “하루에도 수천 가지 감정”을 볼록·오목, 무겁고 가벼운 감정으로 분류하는 “감정을 다루는 직업”을 갖는다. 반사경과 콜센터, 정서 노동이 겹쳐지는 이 장면은 슬프면서도 묘하게 유머러스하다. 「큐브 속의 여름」에서 사각 틀에 갇힌 수박이 “생각도 네모로 익”게 만드는 장면, 「길을 건너는 나를 본 적 있어요」에서 신호등 속 위층·아래층의 “두 명의 나”가 서로를 교대하는 설정 역시, 시인이 세계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의 산물이다. 이 시선은 날카로운 비판과 동시에 자기비하적 유머, 시니컬한 웃음을 함께 건넨다.
김분홍의 시는 세계의 파편들을 예쁘게 정리해 주지 않는다. 대신 뒤틀린 기후 한가운데로 독자를 데려가, 이 이상한 날씨 속에서 자신의 체온과 호흡을 다시 느껴 보라고 말한다. 그 체온과 호흡이 곧, 각자에게 주어진 “가족이라는 기후”를 견디고 변형시키는 힘일지도 모른다.
가족이라는 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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