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김진수 시인의 시집 『닿은 연만으로도 한 생이 환하겠다』는 불교적 사유를 바탕에 깔고 있다. 다만 이 시집의 시들은 교리를 설명하거나 독자를 설득하는 설법은 아니다. 시인은 ‘연기緣起’와 ‘무상·무아·공空’ 같은 불교적 사유를 관념으로 내세우지 않고, 산사에서 마주친 사물과 빛과 소리 그리고 일상의 낮은 자리에서 만난 얼굴들의 모습으로 번역해 보여준다. 세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인연의 조건들이 잠시 짜 맞춰진 흐름이라는 불교적 통찰이 ‘문턱’, ‘문틈’, ‘이슬 사이’, ‘울림’, ‘물안개’ 같은 감각의 언어로 구현된다.
이 시집에서 시 쓰기는 표현 기술이기보다 수행의 한 방식에 가깝다. “손 모은/기원”이라는 태도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자세이고, 표제가 된 시구 “닿은 연만으로도 한 생이 환하겠다”는 거대한 구원이나 초월의 약속보다 먼저, 관계의 최소 단위인 ‘닿음’이 삶을 밝힌다는 선언처럼 읽힌다. 그래서 김진수의 시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얻는 깨달음이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는 삶의 전환이다. 이 시집이 자주 순례의 형식을 띠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인이 사찰과 유적을 찾아다니는 일은 관광이나 감상의 수집이 아니라, 몸을 움직여 마음의 집착을 비워내는 수행의 과정이다.
순례 시편들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경계의 감각이다. 「천년의 하루」에서 화자는 피안교를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건너야 할 강폭이 딱 이만큼인가?”라고 묻고, “큰 걸음으로 예닐곱”이면 닿을 것 같은 거리로 피안을 재구성한다. 해탈이 먼 곳이 아니라 인식의 전환에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곧바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음인가 헛되다”라는 자책이 따라붙는다. 사찰은 자동으로 마음을 정화해 주는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가져온 번뇌를 더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이다. 이 지점에서 순례는 풍경 소비가 아니라 자기 점검이 된다.
이 시집의 미덕은 바로 그 ‘자기 확신을 의심하는 능력’에 있다. 「꽃살의 숨결」에서 화자는 꽃살 무늬를 보며 “눈먼 물고기”가 되어 “이슬과 이슬 사이”를 잰다. 절집의 장식은 장식이 아니라, 찰나의 틈을 보게 하는 장치가 된다. 더 나아가 “극락도 속세처럼 빛이 닿지 않는 곳이 있음인가?”라고 묻는 대목은 신앙의 약화가 아니라, 정토를 도피처로 절대화하지 않으려는 자세이다. 그 전환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 「부처님도 비켜 앉은」이다. “있어야 할 분이 안 보여” 문틈을 더듬는 마음은 사실 부처를 확인 가능한 대상으로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다. 시는 그 욕망을 무너뜨리기 위해 부처를 ‘비켜 앉게’ 한다. 정면으로 붙잡으려는 순간, 진리는 한 발 옆으로 물러나며 “붙잡지 말라”는 방식으로 현현한다.
시집 곳곳에 등장하는 ‘업을 씻는다’는 주제는 물과 씻김의 이미지로 반복된다. 「백제의 미소」에서 “저 웃음만으로도… 모든 죄업 씻기고도 남겠다”는 말은 씻김의 주체가 내 노력보다는 마주침이라는 사건에 있음을 말해준다. 또한, “씻고 씻어도 씻기지 않아… 온전히 물을 맞는” 행자의 모습은 수행이 성취의 과시가 아니라 견딤의 자세임을 보여준다. 그렇게 경계가 느슨해질 때 “경계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또한, 이 시집은 정토를 멀리 두지 않는다. 「정토淨土」에서 정토는 장소의 특권이 아니라, 자아를 내려놓는 순간 드러나는 세계의 다른 얼굴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재래시장에서 만난 관음보살」이다. 난전의 할머니 좌판이 “법당”이 되고, 구겨진 신문지 위의 삶에서 “자비”와 “경전”이 읽힌다.
시집 『닿은 연만으로도 한 생이 환하겠다』가 독자에게 남기는 것은 교훈이 아니라 여운이다. 범종이 밤새 품었다가 새벽에 풀어놓는 소리처럼, 이 시집은 마음 안쪽에서 어떤 감각을 오래 숙성시킨다. 거대한 계시가 아니라 ‘닿은 연’ 같은 작은 밝음, 문틈과 이슬 사이를 더듬는 시간, 비켜 앉은자리에서 확신을 내려놓는 순간이 한 생을 조용히 환하게 만든다고, 이 시집은 시인의 감각으로 증명한다.
이 시집에서 시 쓰기는 표현 기술이기보다 수행의 한 방식에 가깝다. “손 모은/기원”이라는 태도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자세이고, 표제가 된 시구 “닿은 연만으로도 한 생이 환하겠다”는 거대한 구원이나 초월의 약속보다 먼저, 관계의 최소 단위인 ‘닿음’이 삶을 밝힌다는 선언처럼 읽힌다. 그래서 김진수의 시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얻는 깨달음이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는 삶의 전환이다. 이 시집이 자주 순례의 형식을 띠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인이 사찰과 유적을 찾아다니는 일은 관광이나 감상의 수집이 아니라, 몸을 움직여 마음의 집착을 비워내는 수행의 과정이다.
순례 시편들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경계의 감각이다. 「천년의 하루」에서 화자는 피안교를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건너야 할 강폭이 딱 이만큼인가?”라고 묻고, “큰 걸음으로 예닐곱”이면 닿을 것 같은 거리로 피안을 재구성한다. 해탈이 먼 곳이 아니라 인식의 전환에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곧바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음인가 헛되다”라는 자책이 따라붙는다. 사찰은 자동으로 마음을 정화해 주는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가져온 번뇌를 더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이다. 이 지점에서 순례는 풍경 소비가 아니라 자기 점검이 된다.
이 시집의 미덕은 바로 그 ‘자기 확신을 의심하는 능력’에 있다. 「꽃살의 숨결」에서 화자는 꽃살 무늬를 보며 “눈먼 물고기”가 되어 “이슬과 이슬 사이”를 잰다. 절집의 장식은 장식이 아니라, 찰나의 틈을 보게 하는 장치가 된다. 더 나아가 “극락도 속세처럼 빛이 닿지 않는 곳이 있음인가?”라고 묻는 대목은 신앙의 약화가 아니라, 정토를 도피처로 절대화하지 않으려는 자세이다. 그 전환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 「부처님도 비켜 앉은」이다. “있어야 할 분이 안 보여” 문틈을 더듬는 마음은 사실 부처를 확인 가능한 대상으로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다. 시는 그 욕망을 무너뜨리기 위해 부처를 ‘비켜 앉게’ 한다. 정면으로 붙잡으려는 순간, 진리는 한 발 옆으로 물러나며 “붙잡지 말라”는 방식으로 현현한다.
시집 곳곳에 등장하는 ‘업을 씻는다’는 주제는 물과 씻김의 이미지로 반복된다. 「백제의 미소」에서 “저 웃음만으로도… 모든 죄업 씻기고도 남겠다”는 말은 씻김의 주체가 내 노력보다는 마주침이라는 사건에 있음을 말해준다. 또한, “씻고 씻어도 씻기지 않아… 온전히 물을 맞는” 행자의 모습은 수행이 성취의 과시가 아니라 견딤의 자세임을 보여준다. 그렇게 경계가 느슨해질 때 “경계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또한, 이 시집은 정토를 멀리 두지 않는다. 「정토淨土」에서 정토는 장소의 특권이 아니라, 자아를 내려놓는 순간 드러나는 세계의 다른 얼굴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재래시장에서 만난 관음보살」이다. 난전의 할머니 좌판이 “법당”이 되고, 구겨진 신문지 위의 삶에서 “자비”와 “경전”이 읽힌다.
시집 『닿은 연만으로도 한 생이 환하겠다』가 독자에게 남기는 것은 교훈이 아니라 여운이다. 범종이 밤새 품었다가 새벽에 풀어놓는 소리처럼, 이 시집은 마음 안쪽에서 어떤 감각을 오래 숙성시킨다. 거대한 계시가 아니라 ‘닿은 연’ 같은 작은 밝음, 문틈과 이슬 사이를 더듬는 시간, 비켜 앉은자리에서 확신을 내려놓는 순간이 한 생을 조용히 환하게 만든다고, 이 시집은 시인의 감각으로 증명한다.
닿은 연만으로도 한 생이 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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