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그곳에 있을까 (최월순 시집)

아직 그곳에 있을까 (최월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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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최월순 시인의 『아직 그곳에 있을까』는 성숙한 마음으로 쓴 시집이다. 시인은 격렬한 정서를 토로하지도 않고 서둘러 삶의 진실을 결론지으려 하지 않는다. 봄빛이 지나가고, 꽃잎이 떨어지고, 비가 내리고, 달빛이 골목을 비추는 동안 천천히 마음을 돌아본다. 그래서 이 시집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지 않는다. “봄엔 안단테로 걸어요”라는 말처럼, 시인은 자연이 건네는 리듬에 맞추어 삶의 속도를 조절한다. 상처와 기억, 그리움과 부재가 밀려와도 이 시집은 애상의 정서를 과장하지 않고, 꽃과 나무와 바람과 호수의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조심스레 다독인다.
『아직 그곳에 있을까』에서 자연은 시인의 사유가 머무는 배경이며, 슬픔이 잠시 기대어 숨을 고르는 피난처다. 분꽃 피는 저녁, 청초호의 물결, 자귀나무의 접힌 잎, 달빛 아래 환한 골목, 가을비와 낮달과 겨울새는 모두 시인의 내면을 비추는 조용한 거울이 된다. 시인은 자연을 통해 세계를 설명하지 않고, 자연 곁에서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흔들리고 견디는지 보여준다. 한 꽃잎이 다른 꽃잎에게 “하루치의 위로”를 건네는 장면은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아름다운 이미지이다. 시인에게 삶의 위로는 저녁마다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을 보는 작은 행복으로부터 온다.
이 시집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상실의 슬픔이다. 어머니, 아버지, 이모, 고모, 언니, 형부 그리고 곁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의 기억은 시인의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풍경으로 되살아난다. 어머니가 끓여주던 김칫국에는 바다가 들어 있고, 아버지의 출항에는 매일의 이별과 생의 고단함이 실려 있다. 떠난 이들의 자리는 텅 비어 있지만, 시인은 그 빈자리를 쉽게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그곳을 오래 들여다본다. 가족의 사랑은 때로 가난과 노동과 병과 돌봄의 수고를 떠올리지만, 바로 그 때문에 더욱 절절하고 구체적이다. 최월순 시인의 시에서 가족은 추억 속 사진으로 박제되어 있지 않고 꽃향기와 빗소리와 바닷바람을 타고 그리움으로 살아 돌아온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 시집의 시들에서 상실의 슬픔은 비통하지 않다. 슬픔은 자연 속으로 스며들며 치유된다. 형부가 떠난 뒤에도 뜨락에 라일락이 피고, 고모님 떠나는 길에는 빗방울이 눈물처럼 맺히며, 어머니는 나비처럼 다시 마당으로 찾아온다. 시인은 죽음과 이별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슬픔을 꽃과 바람과 달빛 속에 놓아둔다. 그러면 슬픔은 견딜 수 없는 통증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기억으로 바뀐다. 이렇게 이 시집 속의 자연은 상실의 슬픔을 가지고도 살아갈 방법을 가르친다.
시집 곳곳에 보이는 바다의 이미지 또한 인상적이다. 속초, 청초호, 울산바위, 설악, 고향 바다는 시인의 기억과 가족사를 떠받치는 근원적 공간이다. 바다는 아버지의 생업이자 어머니의 기다림이며, 유년의 기억이자 지금의 마음이 돌아가고 싶어 하는 자리다. “그 하늬바람 아직 반짝일까”라는 물음에는 사라진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하지만 시인은 과거로만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그 물음은 오늘의 삶을 다시 생각하는 질문이 된다. 아직 그곳에 있을까, 라는 제목의 질문은 결국 사람과 장소와 기억을 향한 물음이면서, 동시에 내 안에 남아 있는 삶의 생기를 확인하려는 물음이다.
『아직 그곳에 있을까』는 삶의 석양에 당도한 사람이 자연의 시간과 나란히 걸으며 써 내려간 시집이다. 꽃이 피고 지는 속도, 비가 내리고 그치는 속도, 달이 차고 기우는 속도, 물결이 마음을 밀어내는 속도에 맞추어 시인은 자신의 슬픔을 다독인다. 시인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빠르게 소비되는 감정의 시대에 천천히 살아보자고 독자들을 권유한다.
저자

최월순

강원고성출생
한국교원대학교교육정책대학원(교육학석사)졸업
1996년『문예사조』등단
시집『그대의즐거운노래』(2019년)
시집『아직그곳에있을까』(2026년)
한국문인협회강원지회회원,물소리시낭송회회원
강원문화재단전문예술(문학부문)창작지원작가선정(2026년)

목차

1부연둣빛안개를몰고와

안단테로걷는봄/꽃으로여는여름/봄날의선물/라일락,우리언니/
달빛,등꽃/꽃샘바람/거기,네가있어서/이봄을왈츠로드릴게요/
어떻게알았을까/ 청초호자귀나무/봄비/하루치의꽃잎/꽃목의시간/
고모님떠나시는날/문득,구름이/달빛편지/

2부그하늬바람아직반짝일까

푸른상처/한사랑이한사람을지우네/소설小雪에눈이내렸다/
이모를기억하는두장의판화/어머니의김칫국/스위트홈SweetHome/
봄꽃들분분히날리고/마음에비내리는날/복사뼈,안부를묻다/
아버지의출항/눈물점/야생적통증/그냥속기로했어요/부푼심장/
각인을새기는생의오후/하늘껍데기

3부먼해양을떠도는은빛물고기처럼

나를시인이라고부르는사람/텃새/노래를하네/누가옛노래를부르네/섬망/지키는온도/
퇴원하던날/성실한출근/상처/투망/어머니,눈물속을걸어가시네/
속초와불/가을비오는날에/해독의시간/청초호반로/약속

4부녹음의푸른빛을띤날개

그림자/좋아하는시나쓰면서/시시때때의시/저기,노을이잠기네/가을장마/
꿈꾸지않는달/태풍이지나간저녁/슈퍼문supermoon/우표도없이겨울이왔네/
새벽을끌어안고/위로가필요한시간/밀란이내게/낮달에기대어/다어디갔어/
동굴속으로걸어가는사람/흐르는징검돌을밟는밤


해설_종이비행기를타고히말라야를넘는127
박대성(시인)

출판사 서평

오래지않아사라질봄빛처럼
사라진봄빛을기억하는비둘기처럼

봄엔안단테로걸어요
-「안단테로걷는봄」부분


능소화를그리겠다고
내내여름을붙잡고
-「꽃으로여는여름」부분


서로가얽매어
눈물흘리는날에도
때론허공으로
소망을쏘아올렸다
-「달빛,등꽃」부분


한꽃잎이한꽃잎에게
하루치의위로를건네는

분꽃피는저녁
-「하루치의꽃잎」부분


그사람
지나가네

거침없던그사랑을
지우네
-「한사랑이한사람을지우네」부분


몇마리오징어의날개를털고
돌아온날은
동경과환희로
당신의바다를풀어놓으시네
-「아버지의출항」부분


물마시던박새한마리
깃털하나뽑아두고날아가네

진심을전한다는건
그런것인가
-「각인을새기는생의오후」부분


남기지말자,고
그가말한다

남길것이있기나한듯이
-「약속」부분


바다를이야기하자면
해질녘에출항하여
새벽에귀항하는오징어배쯤은
타보아야할것이다
-「태풍이지나간저녁」부분


허약한발목을잡던풀밭길지나
눈앞의징검돌건너느라
해가지는것도몰랐습니다.
-「흐르는징검돌을밟는밤」부분


너는아직도여전히몽상가

종이비행기를타고
히말라야를넘는다
-「밀란이내게」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