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섬에 밤이 오면 (김신중 시집)

무섬에 밤이 오면 (김신중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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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신중 시인의 시선은 늘 사물의 앞면보다 뒤편을 향한다. 빛나는 것보다 그늘진 것, 온전한 것보다 부서지고 기울어진 것, 중심에 놓인 것보다 구석으로 밀려난 것들이 이 시집의 시에 주로 등장한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앞쪽에서 빛나게 반짝이는 사물보다는 뒤쪽에서 수런거리는 것들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무섬에 밤이 오면』을 관통하는 시적 태도이다. 김신중의 시는 삶의 환한 표면을 지나 그 이면에 쌓인 고통과 외로움, 가난과 상처의 흔적을 살핀다.
이를테면 「유성의 품, 뒤란」에서 뒤란은 그러한 시선이 머무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부서진 것은 죄다 뒤란에 모인다.” 부러진 상다리와 못 쓰는 호미, 야단맞고 마음 한쪽이 떨어져 나간 아이와 훌쩍이는 누이동생까지 모두 뒤란으로 간다. 뒤란은 쓸모 잃은 것들이 내몰리는 어둡고 습한 장소이다. 그러나 그곳에도 “눈물겹도록 별이 많았”고, 마침내 뒤란은 “꿈꾸는 마당”이 된다. 시인은 버려진 자리의 어둠을 오래 응시함으로써 그 안에 남아있는 빛을 발견한다.
시집에는 몸의 쇠락과 늙음, 가난과 가족의 기억도 자주 등장한다. 「화분」에서 폐경운기 위에 들꽃이 피고, 화자는 얼굴의 검버섯을 바라보며 자신의 몸도 “산이 되고 화분도 되어” 낮은 들꽃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화는 쇠퇴의 징표이면서도 오랜 삶이 만든 새로운 풍경이다. 「호빵과 아버지의 온도」에는 가난했던 학창 시절과 무뚝뚝한 아버지의 사랑이 서려 있다. 차갑게 식은 호빵은 따뜻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표현되지 못한 서툰 아버지의 온기가 남아있다. 시인은 차가운 호빵에서 오히려 더 깊은 사랑의 체온을 읽어낸다.
김신중의 시는 비루하고 약한 존재들을 향한 연민을 가지고 있다. 「혼밥이 아프다」의 혼자 칼국수를 먹는 노인, 「택배 상자는 집이 없다」의 버려진 상자들, 「각질」의 떨어져 나온 굳은살, 「구석 증후군」의 다리 부러진 의자는 모두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존재들이다. 시인은 이들을 감상적으로 아름답게 과장하지 않는다. 외로움과 피로, 버려짐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 존재들은 시인의 시선을 통해 한 생의 이력과 존엄을 얻는다. “쓰레받이” 위의 각질조차 “한 생을 버텨온” 시간의 흔적이 되며, 기울어진 의자는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받아주는 자리가 된다.
이 시집의 중요한 미덕은 상처와 결핍을 삶의 실패로 단정하지 않는 데 있다. 「비대칭 전력」에서 태풍에 부러지고 뒤틀린 나무는 오히려 옹이의 단단함으로 도끼날을 튕겨낸다. “기울어진 자세로 벼랑을 버티는/비대칭의 전력”이 몸을 세운다. 삶은 균형과 완전함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상처와 비틀림, 기울어짐이 때로는 존재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사과나무 가지치기」에서도 잘려나간 가지의 상처 사이로 햇살이 길을 만들고, 가지치기는 꽃눈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 된다. 고통은 삶을 훼손하지만, 그 자리에 새로운 빛이 들어오는 통로가 생기기도 한다.
표제작인 「무섬을 여미다」에서 시인은 저무는 무섬과 외나무다리 앞에 앉아 지나온 생을 바라본다. 사랑도 이별도 세월 속에서 삭고, “은빛마저 버리고 저녁으로 흘러가는” 고요가 찾아온다. 밤이 오자 별 하나가 내려와 “한 점 소금”이 된다. 이 소금은 눈물의 결정이며, 동시에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삶의 작은 의미이다. 이 시집에서 삶의 희망은 밤을 몰아내는 태양처럼 오지 않는다. 깊어진 밤에 별 하나가 내려와 눈물과 상처를 조용히 받아주는 그런 방식으로 온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으면 삶의 어둠을 견디는 작은 사물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낮고 약한 것들이 오래 버티며 피워 올린 희망의 언어가, 밤이 깊어질수록 더욱 또렷하게 빛난다.
저자

김신중

충북대국어교육과졸업
1995년『월간문학』등단
경상북도문학상수상
시집『집에돌아와불을켜다』『둥근밥상』『무섬에밤이오면』
한국문인협회경상북도지회장

목차

1부꽃눈을달아서불을밝히고

묵화/유성의품,뒤란/화분/나머지의이력/수평선당기기/침묵에는씨앗이자란다/
예쁜치매입은할미/사과나무가지치기/아직도島에서이순신이쓰다/비대칭전력/
땅콩이보낸편지/집터를닦다/복수초

2부사과꽃향기로무르익은노을을던져

영산홍의설법/골목을팔다/한생으로건네는온기/그녀의뒤에는나이테가있다/
병산,갈참나무아래에서/은은하거나따뜻하여오히려서늘한/택배상자는집이없다/호빵과아버지의온도/혼밥이아프다/각질/사랑이라는게/그루터기에앉아/
그길에,아들이있었다

3부은빛마저버리고저녁으로흘러가는

물끄러미와우두커니사이/무섬을여미다/등골바라기/심장에도통풍이있다/
구석증후군/복고풍으로노래하다/초롱꽃등/꽃일확률/꽃병/환히눈빛을걸고/
누이의49재/몸에핀연꽃

4부몸으로바람을다시읽으니

섬과섬사이에는,/바람이뼈를지날때마다/시,몸으로품다/산/꼰대/
한때를버리다/거기,흰빛으로/둥긂을위하여/산행을하면서/투발루섬/
어느술집의독백/거룩한궁핍/패랭이꽃


해설_‘뒤란’을위하여
전해수(문학평론가)